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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가장 먼저 태어난 언어
세계수의 그늘에서 태어난 나이트 엘프의 비술은, 밤에 가까운 시각에 더 강력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비술을 행하는 시간은 자연스레 밤으로 잡혔다.
나는 해가 저물 때까지 평소처럼 혼자 체력단련을 했고, 엘레노어는 달이 밝게 뜰 즈음에 다시 나를 찾아왔다.
“마침 오늘은 만월이 뜨는 밤이다. 어서 가자꾸나.”
나이트 엘프의 비술이 강력해지는 것은 밤에 가까운 시각이지만, 딱히 어두워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한다.
달이 밝다는 점은 오히려 밤이라는 개념을 더 강하게 만들기에, 보름달이 오히려 비술의 효과를 증폭시켜 줄 거라고.
비술이니 주술이니 하는 것들은 옛날 방식의 마법 같은 것이라, 이런 추상적인 요건이 중요하다나 뭐라나.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비술을 펼치는 데에 무슨 지리적 요건이 필요하다고는 듣지 못했는데.
“요정이 사랑하는 땅에 갈 거다. 항상 마력이 풍부하게 솟아나는 곳이라, 마력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에서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엘레노어는 나를 이끌었다.
이윽고 도착한 장소는 어떤 널찍한 호숫가. 다크엘프의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장소였다.
[별빛이 자라는 호수]
호숫가에 도착하자 시스템 메시지가 지명을 알렸다.
던전은 아니지만 나름 특별한 장소로 취급되고 있는 곳 같다. 그러고 보니 관련된 커뮤니티 글을 본 적이 있다.
공략글은 아니고, 어떤 서버의 도전자가 누구한테 홀딱 반해서 고백하게 됐다는 썰풀이 글이었다.
실명이 그대로 공개되는 커뮤니티에 그런 글을 썼다는 것은, 당연히 성공했다는 뜻이었고.
그 고백을 성공한 자리가 바로 여기였다고 들었다. 확실히 이렇게 보니 분위기 좋은 장소긴 하다.
-찌르르르……
시골에서나 듣던 풀벌레 소리가 조금씩 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달빛이 비치는 호수가 흔들린다.
하지만 굳이 다른 층에서 내려오는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와야 할 장소인지는 모르겠다.
그 커플은 20층 언저리를 공략 중인 도전자라고 했으니, 7층 근처까지 내려오려면 무척 번거로웠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엘레노어가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력이 풍부하다는 점 때문에 온 것만은 아니다. 멋진 장소여서 꼭 그대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
엘레노어의 이런 말에도 도무지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렇게까지 멋진 장소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그대에겐 아직 이른 이야기겠지만 말이야. 그럼, 바로 시작할까?”
-툭, 툭.
엘레노어는 마을에서 챙겨온 지팡이 같은 것으로 땅을 두들기더니, 작은 조약돌 몇 개를 바닥에 뿌렸다.
“이 비술은 정확하게 말하자면, 서로의 정신으로 향하는 통로를 잇는 거라고 봐야 한다.”
“통로를 통해 곧바로 사념이 흘러들어 가는 건 아니야, 서로 문을 열어줌으로써 그 너머를 엿볼 수 있게 되지.”
“그대에게 내 사념의 문을 열어줄 테니, 그대는 그걸 따라 들어오기만 하면 돼. 어렵지 않을 거다.”
간략한 설명이 끝나고, 준비를 마친 엘레노어는 내 얼굴을 붙잡았다.
“눈을 감고, 문을 찾아라.”
그대로 눈을 감고 이마를 맞댄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
눈을 감고 있음에도 보이는 어두운 통로 멀리, 금빛의 문이 보였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은 손대지 않았음에도 저절로 열렸다. 나는 문 너머의 빛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언가 약한 저항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물속에 잠수한 채로 걷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다지 강한 것은 아니었던지라, 나는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천천히 빛이 모습을 바꾸었다.
-게 섯거라!
갑작스럽게 들린 소리에 흠칫 몸을 돌렸다. 무언가 작은 빛무리가 목소리를 내며 달려나가고 있었다.
묘하게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다.
소리를 내는 빛무리는 조금씩 형태를 갖추었고, 이내 작은 아이의 모습이 되었다.
나는 아이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어릴 적의 엘레노어였다. 하얀 토끼처럼 생긴 짐승을 열심히 쫓아가고 있었다.
사냥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웃으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아하니 놀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바뀌었다.
나타난 것은 기억에 있는 장소였다. 얼마 전, 리즈멜과 이야기를 나누었던 쉼터였다.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를 엘프식으로 만든 듯 보였던 바로 그 장소, 하지만 정작 이용하는 어린아이는 없어 보였는데.
이제 보니 그 의미를 알겠다. 이곳은 엘레노어가 어릴 적에 만들어진 장소였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요 조그만 짐승아!
엘레노어는 요리조리 놀이터 곳곳을 쏘다니는 작은 짐승을 끝없이 쫓았다. 짐승은 곧 작은 울타리를 넘어갔다.
-아아, 거긴 안 되는데.
울타리 너머로는 함부로 나가면 안 된다고 들었던 엘레노어는 잠시 걸음을 망설였다.
토끼를 쫓고 싶은 마음과, 울타리를 넘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잠시 충돌했다.
하지만 이윽고 생각은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울타리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마음과 의지는 곧 일치했고, 엘레노어는 힘차게 달려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숲 바깥의 개척을 담당하던 나이트 엘프의 본능, 두려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습성.
다크엘프의 공주로 태어난 엘레노어는 누구보다 그 습성과 본능을 강하게 타고났던 것이다.
나는 어느새 과거의 엘레노어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엘레노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엘레노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이 전달되고 있었다.
울타리를 넘은 엘레노어는 토끼를 붙잡고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울타리 너머를 좀 더 탐색하고 싶다는 듯,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별빛이 자라는 호수에 도착했다.
-와아, 예뻐!
엘레노어는 눈을 반짝이며, 호숫가에 천천히 발을 들여놓았다. 호수의 물결이 내게도 함께 느껴졌다.
시간이 흐른다. 시점은 점점 빠르게 바뀌어 간다. 작달막하던 엘레노어는 빠르게 성장해 성인이 되었다.
그러면서 호수의 모습도 점점 바뀌어 갔다. 처음에는 그저 꽃이 많이 피었을 뿐인 호수가, 빛나기 시작했다.
별빛이 자란다는 말에 딱 걸맞게,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솟아올라 엘레노어의 주변을 둘러쌌다.
아름답다.
별이 비처럼 내리고, 웃음소리와 함께 요정이 춤추며, 그 가운데에서 엘레노어도 함께 춤을 추었다.
엘레노어가 느끼고 있는 즐거움이 내게 그대로 전해졌고, 엘레노어를 둘러싼 요정의 호흡도 함께 전해졌다.
숨을 들이키면 별빛이 몸 안으로 들어와 함께 흐르기 시작한다.
나는 깨달았다.
이 별빛이 바로 내가 느끼고 싶어하던 마력이었음을.
[패시브 스킬 : 마력 감응 1레벨을 습득하셨습니다.]
그리고, 맞닿아 있던 엘레노어의 이마가 떨어져 나갔다.
**
엘레노어의 사념 세계에서 떠나 눈을 뜬 순간, 주변에서 용솟음치는 마력의 빛이 보였다.
“어때, 이제 그대도 볼 수 있겠지?”
호숫가에는 어느새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한 요정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별빛- 아니, 반딧불을 닮은 마력의 빛도 요정들과 함께 주변을 에워싸고 바람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20층대의 도전자들이 굳이 이곳까지 내려온 이유가 있었다.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이 호수의 아름다움이.
“요정들이 그대와 춤추고 싶어하는구나, 어울려 주는 게 어떤가?”
“뭐? 춤을 추라고?”
“어려울 것 없다, 함께 빙글빙글 돌아주는 걸로 충분해.”
요정들이 내 손을 잡아 이끌고, 엘레노어는 등을 떠밀었다. 나는 얼결에 그대로 끌려갔다.
“선율에 몸을 맡기는 거야, 처음은 듣는 귀부터.”
요정들은 무작정 나와 함께 마구잡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규칙성이라고는 없는 혼잡한 움직임이다.
“감각을 넓히는 법을 배웠으니, 그대에게도 들릴 테지.”
“바람 소리, 물소리, 풀과 벌레의 소리.”
“그것들이 하나가 되어 노래를 만들고 있잖아?”
귓가에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며, 혼란하게 보이던 요정들의 움직임이 점점 춤으로 변해 갔다.
하지만 그것을 쫓아가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그도 그럴게, 나는 춤을 춰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엘레노어는 말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어머니인 대지가 낳은 생명이라면 모두 기억하고 있어. 어떤 언어보다 먼저 만들어져, 가슴 깊이 새긴 음색을.”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난 생명이 아니다. 탑 바깥에서 태어나 끌려들어 온 인간이니.
하지만 이상하게도, 엘레노어가 말한 것처럼- 춤출 수 있었다.
요정들의 손길에 이끌려 움직일 때마다,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듯 몸이 선율을 따라간다.
분명, 그냥 춤추고 있을 뿐인데.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냥 함께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인데도-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패시브 스킬 : 마력 감응 2레벨을 습득하셨습니다.]
[업적 달성 : 요정과 춤추는 자]
[업적 보상 ‘정령 친화도+50’ 을 획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