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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의지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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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정신을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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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은 항상 규칙적으로, 정해진 횟수만큼 끊어서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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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떠오르는 잡념은 모두 떨쳐버리고, 오롯이 몸 안의 마력을 느끼는 것에만 신경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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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다 보면,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린다. 의지대로 조종할 수 없는 근육의 떨림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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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지나고 또 지나도, 마력인지 지랄인지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애초에 그게 대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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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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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의 명상은 할 때마다 괜히 스트레스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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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에게 마력 감응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지 벌써 일주일 째, 나는 그동안 최선을 다해 명상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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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는 이렇다. 마력 감응을 깨우치기는커녕, 매일매일 스트레스만 적립하고 있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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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으로 마력 친화성을 타고나는 엘프의 수련법은 내게 맞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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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쩌면 그냥 명상이라는 짓거리 자체가 나한테 안 맞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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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만히 앉아서 집중력을 끌어올린다는 부분부터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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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뭘 어떡해야 꼼짝도 안 하고 정신만 집중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뭐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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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체내에 흐르는 마력에 집중해 보라고 하는데, 느끼지도 못하는 것에 어떻게 집중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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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애당초 나는 집중이라는 행위에 많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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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에서 커뮤니티 유머글이랑 숏폼만 딸깍거리던 개백수가, 집중이라는 걸 얼마나 해 봤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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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 피가 저절로 끓어오르는 전투 상황 속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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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를 혹사해서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을 억지로 만들지 않는 한, 끊임없이 잡념이 떠오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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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진짜 폭포 수련이라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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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을 쉼 없이 처맞다 보면 잡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관련 내성이 오를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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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폭포가 아니라 불을 피워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명상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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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 내성도 올릴 수 있을거고, 극한의 고통으로 잡념을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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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내 화염 내성이 이미 너무 높아서, 평범한 불꽃에는 백날 지져져도 멀쩡하다는 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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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층은 숲이 배경이라 화염속성 몬스터는 안 나오는데, 다크엘프 중에서 화염 마법을 쓸 수 있는 녀석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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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불길 속에 있다 보면, 마력이 뭔지도 좀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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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 김에 바로 실행으로 옮기자, 일단 속성 마법을 쓸 수 있는 녀석부터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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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시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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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엘프는 대부분 그림자 마법을 사용하는지라, 속성 마법 사용자를 찾기는 매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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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네가 그 소문의 인간족 손님이구나? 화염 마법을 쓸 수 있는 마법사를 찾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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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없지는 않았다. 간신히 화염 마법을 다룰 줄 안다는 정찰대원 한 명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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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가능한 강하고 오래가는 걸로 불 좀 피워줬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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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대원은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고, 나는 곧바로 만들어진 불꽃의 벽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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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지금 뭐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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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5초 만에 끌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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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에 들어가 명상을 하려 했다는 소식은 엘레노어에게도 금방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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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방법으로 마력을 느껴보려 한 건, 온 세상을 통틀어서 그대 한 명 뿐일 거야. 황당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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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엘레노어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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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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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한 명도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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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내 말을 딱 잘라 끊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무척 단호한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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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방법을 쓴다고 해서 딱히 마력을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대는 참 막무가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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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 감각 강화를 포함해, 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기술을 습득해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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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대가 명상에 그렇게 약할 줄은 몰랐어, 집중력이 부족한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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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난 그럴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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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자기평가가 아주 낮구나, 그대가 싸우는 모습을 한 번 보면 누구나 똑같이 생각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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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게 평가해 주는 건 고맙지만, 그런 건 강해지는 일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방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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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대에게 집중력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아마, 마음의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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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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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그대가 싸우는 모습이 무척 위태롭게 보인다고 한 적이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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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다. 리즈멜과 크리스탈 거미를 쓰러트리고 돌아온 날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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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과 내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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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말이라 그냥 흘려넘겼었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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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검이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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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도구다. 그리고 도구는 사람의 의지를 담아 휘둘러지는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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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검과 주인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건 무슨 의미일 것 같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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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휘두르는 이유와, 검을 휘두르는 순간의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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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며, 한걸음 성큼 다가와 내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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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마음이 무엇보다 위태롭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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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의 말은 충격적일 정도로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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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 그대로, 내 마음이며 정신은 분명 위태로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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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일차원적인 욕망에 눈길을 주었고, 그런 것에 눈길을 주는 자신을 혐오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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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과 수면욕과 성욕을 모두 갖고 있음에도, 그 모두를 스스로 거세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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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바라며 위기에 뛰어들면서도, 살아남아 이 탑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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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불안정한 심리를 자각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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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엘레노어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내 마음이 무척이나 위태로운 상태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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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어. 그건 그것대로 굉장한 의지력을 의미하지만, 나는 그걸 좋게 생각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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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내 가슴에서 손을 떼고, 이번에는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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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내 욕망대로 행동한다. 내 의지는 언제나 마음과 같은 방향을 달리지. 혹 그대,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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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는 화살이요, 마음은 불꽃이라. 두 가지가 함께하면, 하늘조차 꿰뚫고 나아가는 불화살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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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불 속에 들어가 명상을 할 게 아니라,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지펴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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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엘레노어의 눈동자는, 언젠가 봤던 것과 같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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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밤하늘의 별을 닮은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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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의 이야기는 분명 강렬하게 다가왔지만, 그게 실질적인 힘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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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된 의지와 마음이 잡념을 만들어, 명상을 방해하고 있다는 건 잘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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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고민한다고 금방 답이 나올 문제도 아닌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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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냥 불에 들어가서 고통으로 잡념을 지우는 게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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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가시 박힌 방석 같은 걸 구해서 앉는다거나, 진짜로 폭포 수련을 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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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를 하자, 엘레노어는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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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대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뭐어, 그대가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말도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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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언젠가 생각이 바뀌었을 때, 내가 한 말을 떠올려 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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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좀처럼 잊지 못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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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조언은 이쯤하고……이번에는 실질적인 해결 방법으로 넘어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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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방법? 그런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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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지, 나도 지난 일주일간 그대를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찾고 있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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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쭉 내민 가슴이 자꾸 눈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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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그냥 명상하는 방법만 알려주고 내버려 두는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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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오늘따라 엘레노어를 여러모로 다시 보게 된다. 역시 다크엘프의 공주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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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를 조사해서 나이트 엘프의 오래된 비술을 하나 찾아냈지, 이거라면 아마 그대도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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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작은 종잇조각 하나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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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 언어로 쓰여 있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나는 곧바로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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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술이라는 게 뭔데, 그것만 있으면 마력을 느낄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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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어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편리한 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감각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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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정신을 연결해 사념을 전달할 수 있는 비술이다. 효과는 어제 직접 시험해 봤지, 썩 괜찮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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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만 들으면 텔레파시 같은 걸로 들리는데, 그게 어디에 도움이 된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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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력을 느끼는 감각을 그대에게 직접 전해줄 생각이다. 그러면 그대도 감을 잡을 수 있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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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런 거구나. 그거라면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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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명상에 집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마력을 아예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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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비술이라는 걸로 마력을 간접적으로 한 번 느끼고 나면, 어디에 어떻게 집중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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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기대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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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엘레노어의 웃음이 좀 음흉하게 들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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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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