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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신세계
은신에 도움을 주는 망토를 걸치고, [암영] 스킬을 사용해 모습을 감췄다.
상원의원을 잡으며 엘리시온의 주요 전투병력을 작살내 놨기 때문인지, 화이트 존 안쪽으로 잠입하는 것은 아주 쉬웠다.
잠입 후에는 먼저 미궁 지역인 블랙 존으로 이동했다. 블랙 존의 환경은 커뮤니티에 작성된 정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괴한 폭주 로봇과 생체실험으로 생겨난 뮤턴트가 바글거리는 지하도- 솔직히 그냥 하수구 같은 느낌이다.
지저분하고, 어두침침하고, 가끔씩 더러운 시궁쥐(로봇) 같은 게 나오고, 이 정도면 거의 비슷하지.
물론 커뮤니티에서 이런 소리를 하면, 도전자들은 그 시궁쥐들이 미친 살인병기지 않느냐고 따지겠지만.
[병균 보유 개체, 일급 질병 유발 개체, 오염, 소독, 제거합니다, 정화합니다!]
“니가 제일 더러워, 로봇청소기 새끼야.”
-콰직!
나한테는 이 살인 로봇들이나 진짜 쥐새끼나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아무튼, 커뮤니티에 뿌려져 있는 지도를 토대로 블랙 존을 탐험하고- 오래 걸리지 않아 보스룸을 찾아냈다.
이 안쪽에 있는 키메라 드론만 처치하면 전이문을 활성화하고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유토피아 시티를 한 번 확인하고 가기로 했으므로, 일단은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블랙 존에서 빠져나와 [암영]을 사용해 은신하고, 화이트 존의 거리를 빠르게 지나 ‘벽’에 도착했다.
유토피아 시티와 화이트 존을 나누는 경계문, 하지만 이 게이트는 사실 겉모습만 이렇게 꾸며놓았을 뿐이다.
상원의원이 말하기를, 필요에 의해 문처럼 보이도록 꾸며놨지만- 사실은 절대 열리지 않는 그냥 벽.
엘리시온보다 먼저 존재했던 인류를 위한 낙원의 경계선, 나는 [강철 직검]에 오러를 둘러 휘둘렀다.
-카각!
“응?”
하지만 벽에는 굵은 흠집이 하나 생겼을 뿐이다. 이거 대체 뭘로 어떻게 만든 벽인 거지.
얇은 오러였다지만 고작 흠집이라니, 이 정도 단단함은 미스릴 같은 최상급 소재에서나 나오는 건데.
물론 아예 못 자를 정도는 아니다. 나는 시간을 들여 최대한 마력을 집중시키고, 더 강한 오러를 형성했다.
-카가가각!
그럼에도 벽은 결코 쉽게 잘리지 않았다. 결국, 간신히 몸만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뚫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작은 구멍으로 유연성을 발휘해 몸을 욱여넣고, 마침내 입성한 유토피아 시티의 모습은 놀라웠다.
낙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황폐했다던가, 사실 낙원 따위는 없었다던가- 그런 건 아니다.
“이게 뭐야.”
벽 안쪽에 펼쳐진 것은 널따란 마당이 딸린 주택이 주욱 늘어선 극도로 평범한 길거리.
높은 빌딩이나 화려한 전광판, 날아다니는 로봇이나 비행선 같은 사이버펑크적인 요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전이문을 타고 다른 층으로 넘어왔는가 의심이 될 정도로, 유토피아 시티 안쪽은 그냥 평범한 주택가였다.
그리고, 그 평범한 주택가에는- 정말로 평범하게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
남자, 여자, 아이, 노인-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다.
가볍게 산책을 하기도 하며, 일터로 떠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집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나 평범한 일반 주택가의 모습이라 오히려 황당했다. 분명 뭔가 거대한 비밀이 숨어 있을 줄 알았건만.
가만히 기다려 봐도 퀘스트가 발생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주변을 둘러봐도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주택의 모습이나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 비슷비슷하다는 것 정도일까.
하지만 비슷한 건물이 쭉 늘어서 있는 건 대한민국에서도 흔한 일이고, 옷차림이 비슷한 것도 마찬가지.
“뭐지, 대체.”
가볍게 마력감지까지 펼쳐 봤지만, 뭔가 특이한 기척이 감지된다거나 하는 일도 전혀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이번에도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을 내렸다.
지나가는 행인 하나를 붙잡고, 바깥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안내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바깥이요?”
바깥에서 온 사람을 경계하거나 적대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친절하게 굴어 주면 더더욱 좋고.
“제가 잘 몰라서……경찰서에 가보시는 게 어때요? 저쪽으로 쭉 가시면 있어요.”
하지만 돌아온 것은 너무나 무난하고 평범한 반응이었다. 행인은 그대로 기척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여전히 퀘스트는 생기지 않은 채고, 커뮤니티를 열어서 유토피아 시티에 대해 검색해봐도 나오는 건 딱히 없다.
어쩔 수 없나, 일단은 움직여 보는 수밖에. 경찰이라면 뭔가 좀 더 그럴듯한 반응을 해 주지 않겠어?
“응?”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 순간, 나는 뒤늦게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생활하는 지극히 평범한 주택가- 하지만 이곳에는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었다.
방금 지나간 그 사람도, 주변에서 움직이는 다른 사람들도,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아니, 조금 다르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서 생명반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초감각]
스킬을 활성화해 청각을 강화시켰다. 개미 걸어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두근, 두근, 두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린다.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도 들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명반응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히 모든 기관이 살아 있는 것처럼 소리 내고 있음에도.
마력을 사용해 [초감각]스킬을 더 강화하고, 광역으로 정밀도가 높은 감지를 다시 펼쳐 보았다.
“아하, 그런 거군.”
심장박동 소리, 위장이 음식물을 소화하는 소리, 혈관에 피가 흐르는 소리- 모두 들리는 한편으로.
작고 미세한 다른 소리가 섞여서 함께 들려온다. 위잉위잉 돌아가는 엔진의 구동음이, 사람들에게서.
유토피아 시티의 주민들은 사람이 아니다.
**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나,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사이보그도 뇌나 심장을 비롯한 주요 신체기관은 남아 있기에, 마력을 퍼트려 생명반응을 감지할 수 있다.
사신들의 경우도 복제된 클론이면서 신체 대부분이 기계로 개조된 사이보그였지만, 제대로 생명반응이 있었으니.
하지만 이곳의 시민들은 아니다. 심장 비슷한 것이 뛰고 있지만 심장이 아니다. 뇌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고 대가리를 터트려 보면, 그 안에는 뇌가 아닌 기계부품이 들어 있을 것이다.
“안드로이드의 도시……뭐 그런 건가.”
솔직히, 이렇게까지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 그냥 사람이 아닐까 싶지만- 뭔가 생각이 턱턱 막힌다.
정해진 행동대로만 움직이는 NPC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기묘한 불쾌감.
생명반응을 잡아내는 마력감지 없이, 단순히 [감각 강화]같은 스킬만 있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 텐데도.
나는 이 기묘한 로봇들의 존재에, 어째서인지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소름이 돋는다.
“후우……”
작게 심호흡하며, 일단은 계속 걸었다. 그리고 동시에 마력감지의 범위를 더욱 넓혀 보았다.
현재 내 마력감지의 최대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넓으면 넓을수록 정밀도는 떨어지지만 말이다.
하지만 유토피아 시티의 전경을 간략하게 파악하는 것뿐이라면 대단한 정밀함은 필요치 않다.
“찾았다.”
광역 탐지를 사용해 뭔가 딱 봐도 중요해 보이는 시설물 하나를 찾는 데에 성공했다.
국회의사당을 연상시키는 외견의 건물, 그 지하에 무언가 숨겨진 공간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
[신속]
스킬을 사용해 재빨리 그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동시에 이 도시의 이상한 점을 하나 더 찾아냈다.
사람들이 사는 주택의 모양과 구조가 모두 거의 똑같다. 사람들의 외모와 체형과 옷차림 역시 거의 비슷하다.
마치 몇 종류의 NPC를 복제해서 이곳저곳에 풀어놓은 느낌. 도시의 전체적인 구획과 구조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여가를 보내고,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도시.
[유토피아 의사당]
도착한 건물은 정말로 국회의사당이었고, 건물 안팎으로는 또 비슷한 얼굴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나마 차림새는 조금 다른 면이 있는데, 배지를 달고 있는 걸 보면-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인 것 같다.
하지만 저들 역시 생명반응을 내는 생명체는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고 의사당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봐요, 여긴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입니다.”
제지해오는 경비원을 밀쳐내자, 경비원은 그대로 정지하더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버그가 난 것처럼.
신경이 쓰였지만, 일단 이 아래에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다.
“흡.”
-꽈앙!
인벤토리에서 꺼낸 대형 망치로 바닥을 깨부수고, 숨겨진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곳에 있는 것은 수천 개는 되는 전선과 코드가 연결된 거대한 컴퓨터와- 작은 디스플레이 하나.
여전히 퀘스트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디스플레이가 담긴 컴퓨터는 스피커로 소리를 내뱉었다.
[어서 오십시오, 유토피아 관리 시스템 A2-33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윙윙거리는 구동음과 함께 눈을 뜬 컴퓨터는 작은 디스플레이로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