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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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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변화는 성장인가
실전 감각을 키우고자 진입했던 23층이건만, 어쩐지 요리사 노릇이나 하고 있는 꼴이다.
물론 꾸준히 전격장을 습득하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기도 하고, 기어이 전자발경을 어느 정도 익혀내기도 했다.
고로, 딱히 문제가 있거나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애초에 내 음식을 먹는 사신들의 리액션이 보통 재미있는 게 아니라서, 이것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편이다.
듣자하니, 사신들은 아예 식사라는 행위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한다. 기껏해야 칼로리 스틱을 좀 먹어봤을 뿐이라나.
심지어 사신들은 시험관에서 고속 배양된 몸이기에, 실질적인 나이는 대부분 거의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한다.
제대로 외견만큼의 연령을 가진 건, 고참에 속하는 1호 사신 정도뿐.
가장 어린 사신은 만들어진지 2년 정도밖에 안 됐으니, 어떤 면에서는 에인보다 더 순수한 백지상태인 셈이다.
그런 녀석들이 사이버펑크 세계관에서는 귀하디귀한 자연 재료를 이용한 음식을 맛봤으니, 리액션이 좋을 만도 하지.
요리가 취미인 사람에겐 잘 먹는 사람만큼 반가운 상대도 없다고 하던가, 하여튼 보고 있으면 재밌는 녀석들이다.
참고로, 이런 사신들의 먹는 모습을 즐기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어서-
[작성자 : 서진혁#2661]
[제목 : 풀토핑 떡볶이 코스 흡입하는 8호 사신보고가셈]
(사진)
떡볶이는 일반, 로제, 까르보까지 해서 3종류
튀김은 잘 기억안나는데 튀길만한건 다 튀겨서 대충 7종류 될거임
완식하고나서 후식으로 샤베트까지 깔끔하게 조졌음
8호의 추천조합은 로제 양념에 튀김빵 푹찍어먹기
얘가 사신중에서 제일잘먹는듯
- 저걸 혼자 다만들었다고?? 이새끼 요리 왤케잘함??
- ㄴ 진혁이 요리스킬도 따로 있을걸?
- ㄴ 요리시작한지 얼마안됬다는데 벌써 10렙넘었다고함
- 위꼴 ㅅㅂ 이시간에 이런거올리지 말라고 개새끼야
- ㄴ 오늘치 잡템팔고 떡볶이 2인분 즉시구매했다
- 새우튀김개바삭해보이네
- 저 튀김빵은 뭐임 고로케같은거냐
- ㄴ 비슷함 내용물은 치즈
- ㄴ 통모짜핫도그같은건가보네 개맛있겠다
- 서진혁 내 아내 합격
- 8호사시니 개귀여워퓨ㅠㅠㅠㅠㅠ
-지난 몇주간 내가 올린 사신들의 먹방씬은 모조리 인기글 탭에 올라가 있을 정도였다.
에너지 효율 문제로 굉장히 많은 양을 먹으면서도, 다들 가지런하게 먹는 편이라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하지만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다. 다른 게 아니라, 사신들에게 요리를 해먹이기 위한 식재료가 바닥날 때가.
아직 인벤토리에 남아 있는 식재료의 양 자체는 상당하지만, 사신들의 먹성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겠지.
과연 이 재료들이 다 동나기 전에 전격장을 습득할 수 있을까 싶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전격장 연습에 매진한 지 일주일이 더 지났고-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결국 전격장을 습득하지 못한 채로, 가진 식재료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
내가 조심스럽게 전한 소식에, 사신들은 말 그대로 세상이 끝난 것만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라고……파스타를 더 이상 해줄 수 없다고?”
“갈비찜도 못 만들어 준다고?”
“떡볶이도 이제 못 먹는다고? 무슨 말이야?”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차림에도 개성이 확실한 사신들이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의 반응은 다들 비슷했다.
사실 아직 식재료가 완전히 떨어진 건 아니다. 아직 여유 분량이 조금 남아 있지만, 거의 동나기 직전인 거다.
다 떨어지고 나서 말하는 것보다는, 아직 여유 분량이 남아 있을 때 말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런 건데.
“지, 진짜예요……? 진짜로 우리 이제 맛있는 거 못 먹는 거예요? 왜요?”
찐따 같은 성격의 17호 사신이 울먹이며 물었다. 나는 남은 식재료의 현황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학습장치를 통해 습득한 지식 외에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인 사신들도, 숫자에 관한 계산은 무척 빠르다.
사신들은 남은 재료의 양을 듣자마자,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몇 번이나 더 먹을 수 있을지를 바로 계산해냈다.
“야아, 농담이지? 그럼 이제 돈까스는 앞으로 열 개밖에 못 만든다는 거잖아?”
“이, 이거 진짜야? 내 피자는 아무리 많아도 세 개밖에 못 만드는데? 거짓말이지?”
뒤늦게 식사의 즐거움을 배워버린 사신들은 말 그대로 멘탈이 나가버렸다. 곧 사신들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뭐, 뭔가 방법은 없는 거야? 나는 이제 핫도그 없이는 못 살아…제발, 방법이 있다고 말해줘.”
“재료만 구할 수 있다면야 당연히 더 해줄 수 있지. 근데, 그게 안 되잖아.”
“그러면 뭔가 대체 재료를 쓴다거나…아니면, 우리 나노슈트를 팔아서 재료를 사는 건 어때? 꽤 비쌀 텐데!”
고문을 하든 뭘 하든 입도 뻥끗 안 하겠다던 녀석들이, 자발적으로 극비 물품인 나노슈트를 팔겠단다.
내가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긴 하지만, 너희 진짜 원래 임무는 이제 안중도 없구나. 그래도 되는 거냐.
“그런 거였군……우릴 중독시킨 뒤, 값비싼 식재료를 대가로 성적인 착취를 하려는 거였어!”
“넌 아직도 그 소리냐?”
“흥, 시치미 떼봤자 소용없다. 나는 네 음란한 속셈 정도는 훤히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그 와중에 1호는 또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다. 얘는 진짜 학습 데이터에 야설이라도 들어 있었던 걸까.
어쨌든, 그렇게 상황을 전달하고 잠시 놔두었더니- 사신들은 저들끼리 쑥덕쑥덕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전격장을 위해 이 녀석들에게 일부러 음식을 챙겨줄 필요는 없다.
전자발경의 기본 원리는 충분히 감을 잡았고, 공격을 더 맞아봤자 새롭게 깨달을 건 없다. 남은 건 연습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신들과 계속 지내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이 녀석들에게 요리를 해주는 게 즐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이 녀석들의 보스인 상원의원의 멱을 따러 가야 한다. 어차피 때가 되면 헤어질 사이라는 얘기다.
앞으로의 퀘스트에 특별한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여기서 놓아달라고 하면 그냥 보내줄 생각도 있었다.
“좋은 생각이 있다.”
그런데 잠시 후, 회의를 마친 사신들은 정말 상상도 못한 소리를 꺼냈다.
“엘리시온 중추를 습격해서, 식재료를 약탈해 오는거다!”
너희들, 내 요리가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냐?
**
내 요리에 쓰이는 재료들은 딱히 이 사이버펑크 세계에서 구할 수 없는 것까지는 아니다.
다만 합성 식품이나 칼로리 스틱 같은 가공품이 아닌 식재료는 매우 귀하기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구할 수 없을 뿐.
그리고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에 푹 빠져버린 사신들은,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식재료를 구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레드 그리드를 거쳐 화이트 존으로 가자. 거기선 밀가루도 고기도 다 유통되고 있어.”
화이트 존은 가장 안쪽의 ‘유토피아 시티’를 제외하면 가장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 사는, 이른바 ‘부자 동네’다.
그리고 이 사신들의 보스인 상원의원이 거주하고 있는 구역이기도 하다.
그런 곳을 습격해서 약탈하자니,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편하고 좋은 동선이지.
그런데, 그레이 캐슬이 화이트 존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만들어진 암살병기들이- 이런 소리를 하다니.
“밥도 안 주고 일만 시키는 파파따위 알게 뭐야, 우리도 그냥 우리 마음대로 살 거다.”
“우, 우리한테는 파파가 내리는 명령만이 전부였어요……그치만 이젠 그렇지 않아요……!”
이건 최근에 알게 된 건데, 상원의원은 클론 사신들에게 자신을 ‘파파’라고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그저 명령만을 수행하는 꼭두각시였음에도, 사신들은 그 호칭 그대로 상원의원을 아버지처럼 여겼던 모양이다.
아마 학습장치를 통해 어떤 부분에 조작을 가해서, 충성심을 가지도록 세뇌를 가한 것 아닐까 싶다.
“파파보다 떡볶이가 더 좋아. 그냥 네가 새 파파 해.”
그런데 그 세뇌가 고작 맛있는 식사 몇 번에 풀려버리다니, 높은 기술 수준에 걸맞지 않은 허술함에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욕망이야말로 사람의 의지를 가장 강하게 불태우는 불씨니까.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엘레노어와의 내일이라는 단순한 욕망 하나를 붙잡고, 탑의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 않나.
암살병기로 키워졌다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각자 확실한 개성을 확립했을 만큼 강한 자아를 지닌 이 녀석들이라면.
맛있는 식사라는 단순한 욕망과 쾌감을 계기로,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
“그래, 니들 맘대로 해라.”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 이 사신들이 그런 것처럼, 세상의 그 누구도 다르지 않겠지.
그리고, 모두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시련의 탑 세계에서는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