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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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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항구도시의 영웅
따당, 따당, 따당- 멀리서 리듬감 있는 망치 소리가 들려온다.
“이거 하나 주쇼.”
“예이, 나갑니다!”
잘 손질된 생선이 꾸러미에 담겨 내게 건네진다. 나는 붕대가 칭칭 감긴 왼손으로 그걸 받아든다.
생선장수는 꾸러미를 건네며 잠시만 기다려 보라더니, 매대 뒤편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왔다.
슬쩍 들여다보니, 그 안에는 이 항구도시 특유의 방식으로 가공된 반건조 새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거 별 건 아니고, 며칠 전에 팔다 남은 거 따로 손질해둔 거야. 가져가서 먹어.”
나는 괜찮다며 거절하려 했지만, 생선장수는 반쯤 억지로 새우 주머니를 내게 안겨주었다.
“잘 먹어야 그 손도 빨리 나을 거 아니야, 용사 형씨.”
그는 그렇게 말하며 붕대에 감긴 내 손을 가리켰다. 흠, 호의를 너무 거절하는 것도 좀 예의가 아니지.
나는 적당히 고맙다고 말하고, 생선 꾸러미와 새우를 인벤토리에 쑤셔 넣은 뒤 커뮤니티를 열었다.
[작성자 : 서진혁#2661]
[제목 : 이거 어떻게 먹는게 맛있겠음?]
(사진)
반건조 새우라는데 그냥 구워먹으면 되나?
- 새우가 반건조가 있음? 그냥 말린새우 아님?
- ㄴ 좀 다름 저번에 보니까 껍질벗기면 새우살 쫀득하게 있던데
- ㄴ 중국쪽에 비슷한 요리법 있던걸로 기억함 ㅇㅇ 대충 센불에 볶으면 될듯
- 나 저거 써본적 있는데 튀긴담에 소스묻히면 맛있음
내가 글을 올린 건, 오픈 커뮤니티의 여러 탭 중 가장 글리젠이 적은 ‘요리&생활’ 게시판.
탑 안에 장기 체류 중인 도전자들을 위한 생활 팁을 공유하는 곳으로, 내가 최근 들어 많이 활동 중인 곳이다.
18층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게시판을 자주 들락날락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뭐, 이것도 에인 덕분인 셈인가……”
나는 중얼거리며 붕대로 감긴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 싸움 이후 벌써 몇 주가 지났다.
성위의 힘이 깃든 도끼에 맞은 재버워크는 그대로 깨끗이 소멸했고, 나는 무리하게 도끼를 휘두른 대가로 양손을 잃었다.
팔꿈치 부근까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 탓에, 포션이나 [초재생] 스킬로도 회복할 수 없었다.
물론, 보다시피 지금은 양손 모두 제대로 붙어 있다. 여러 마탑의 협력 덕분이다.
나는 에인과 함께 재버워크를 쓰러트린 뒤, 가까운 마탑을 통해 청색 마탑과 적색 마탑에 연락을 돌렸다.
전한 것은 에인의 출생에 얽힌 비밀과, 재버워크의 실체에 관한 폭로였다. 마법계는 이 일로 완전히 난리가 났다.
처음에는 증거도 없는 이야기라 믿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원군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적색 마탑주의 측근이었던 한 마법사가, 생전에 마탑주가 수집한 재버워크에 관한 자료를 가져와 공개한 것이다.
재버워크가 벌여온 온갖 끔찍한 생체실험이 세상에 드러나며, 추가 조사 끝에 마법계는 우리의 폭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 이후에도 뭐, 돌이켜 보면 이런저런 귀찮은 일들이 많았지만- 결국 다른 마탑들의 협력을 얻고 지금에 이른다.
-저벅.
커뮤니티에 올라온 새우 요리 레시피를 확인하며 걷던 중, 목적지에 도착해 발걸음을 멈췄다.
항구도시에는 어울리지 않는, 길쭉한 탑 형태의 건물. 날림으로 지어진 이곳이 지금 나의 숙소다.
건물 앞에는 나무를 대충 잘라 만든 조그만 표지판이 박혀 있고, 그 위에는 삐뚤빼뚤한 글씨가 쓰여 있다.
‘여기는 회색 마탑, 외부인 출입 금지!
항구도시의 영웅으로 불리게 된, 우리 회색 꼬맹이가 직접 쓴 글씨였다.
**
물론 ‘회색 마탑’이라 당당하게 적혀 있어도, 당연히 진짜 마탑은 아니다.
이곳은 항구도시 복구를 위해 파견된 마법사들을 위한 임시 숙소일 뿐, 마법 연구와는 거의 무관하다.
그저 에인이 좋아하니까 적당히 회색 마탑이라 이름 붙이고, 탑 모양으로 지어 놨을 뿐이다.
숙소에 돌아온 나는, 우선 백색 마탑에서 파견된 마법사에게 양손의 상태를 진단받았다.
“생각보다 회복이 빠르네요, 이제 붕대는 풀어도 될 것 같아요.”
룬 문자가 새겨진 붕대를 풀자, 겉보기엔 멀쩡한 양손이 드러났다. 손에 마력을 둘러본다.
-우웅……!
마력이 방출되는 속도도 출력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하다. 역시 아직은 무리인가.
내 양손은 외형만은 멀쩡히 돌아왔지만, 팔에서 이어지는 마력 회로와 같은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소실된 상태다.
이걸 회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희석된 엘릭서 정도는 필요할 거라나, 하여튼 귀찮아졌다.
“저는 이야기로만 듣고 있는데, 재활은 계속하고 계신 거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활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다. 그냥 손을 많이 쓰라는 것뿐.
내가 항구의 시장에서 생선을 사 온 이유도 바로 그 재활 때문이다. 이래저래 손을 쓸 겸, 요리를 하고 있거든.
인벤토리에 비축해 뒀던 식품이 거의 다 떨어진 김에, 에인한테도 먹여줄 겸 시작한 건데……생각보다 적성에 맞았다.
[초급 요리]스킬의 레벨도 부쩍 올라 벌써 11레벨, 며칠에 한 번꼴로 레벨이 오르고 있는 셈이다.
사실, 마력회로만 멀쩡했으면 오러를 더 연습하거나 마법을 배울 생각이었지만.
뭐, 내가 만든 요리가 제일 맛있다며 기뻐하는 꼬맹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내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싱숭생숭한 감각이 가슴 언저리에서 피어오르니.
“저는 아직 못 먹어봤지만, 다른 분들이 진혁님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 말씀하시더라고요.”
백색 마탑에서 파견 나온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손뼉을 쳤다. 뭐, 그런 소리를 듣고 있긴 하지.
처음에는 에인에게나 먹여 주었던 요리지만, 요즘에는 이 숙소의 다른 마법사들의 몫까지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재활 삼아서 시작한 요리였는데, 이래서는 완전히 재미를 붙인 꼴이다. 이런 건 나도 엄마를 닮은 건가.
우리 엄마도 내게 이런저런 요리를 해 주는 걸 무척 좋아했었지. 정작 본인은 끼니도 잘 챙기지 않았으면서.
나도 에인이 없었다면 굳이 요리에 손을 대지는 않았을 거다. 사놓은 음식이 떨어지면 화이트롤이나 먹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나는 인터페이스를 조작해 퀘스트 창을 열었다.
[퀘스트 완료 : 회색 아이와 마법의 서 - 최종장]
[진행상황에 따라 랭크 및 보상을 결정합니다……평가 완료.]
[랭크 : S+]
[다음 층으로 이동하여 지정된 보상을 수령하십시오.]
그동안 이어져 온 에픽 퀘스트가 마침내 끝을 맞이했고, 남은 것은 보상을 받는 것뿐.
꼬마 에인과도 헤어질 때가 되었다.
**
얻어온 반건조 새우는 기름에 튀겨낸 다음, 진한 소스를 입혀서 접시에 담았다.
시장에서 사 온 생선은 회를 떠서 가볍게 초밥을 쥐어 봤다. 에인은 이렇게 한입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초밥은 이번에 처음 만들어 보는 건데, 생각보다 잘 됐다. 생각해보면 내가 못 만들 수가 없는 요리였다.
회를 뜨는 것도 결국은 칼질이라 잘 할 수밖에 없었고, 밥 쪽이야 들어가는 재료의 양만 잘 지키면 그만이었으니.
나는 여분의 음식은 근무 중인 마법사들에게 나눠주고, 에인의 몫을 챙겨서 탑 꼭대기의 방으로 걸음했다.
-끼익.
나무로 된 문을 열어젖히자, 기척을 느낀 에인이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날 흘렸던 눈물이 무언가 기폭제가 된 것인지, 요즘 들어 에인은 표정이 무척 다양해졌다.
에인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종이를 치우고, 내 손에 들린 접시를 받아갔다.
“우와, 진혁악마님 밥이다.”
옅은 웃음기와 함께 콧노래를 부르며 에인은 구석에 놓여 있던 식기를 꺼냈다.
첫 마을을 떠날 때 샀던 어린이용 스푼과 포크 세트,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 몫의 식기까지도.
딱히 생각은 없었는데, 이러면 같이 먹어야겠네. 함께 식사하는 건 싫지 않다.
“공부는 요즘 어때, 잘 돼?”
나는 소스를 입힌 새우튀김을 씹으며, 툭 던지듯 물어보았다.
“응, 몰라.”
요 꼬마도 이런 부분에서는 여전히 한결같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름 설명을 하려고 한다는 부분일까.
에인은 초밥을 입에 물고, 책상에 올려놨던 종이더미를 이리저리 뒤지더니, 이내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 하나를 꺼냈다.
재버워크의 마력회로를 강탈하는 마법진만큼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복잡한 마법진이었다.
“만들고 있는데 잘 안돼, 아직 모르겠어.”
이건, 에인이 자신에게 깃든 마족의 피를 희석하기 위해 만들고 있는 마법이다.
회색 마왕으로 타락하지 않기 위해, 마족의 피로 발생하는 영향을 스스로 제거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고유마도마저 베껴낼 수 있는 천재인 에인에게도, 이것만큼은 무척 어려운 모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마법이며, 개발 단계에서 실험도 불가능하기 때문.
게다가 에인은 가진 마력량마저 희박하다 보니, 뭔가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건 거의 다 됐어.”
에인은 그렇게 말하며, 일전에 개조했던 ‘천뢰의 장갑’을 꺼내 보였다.
내가 빌려 왔던 마도구들은 흑색 마탑의 것을 제외하면 모두 재버워크와의 결전에서 손실되었다.
에인은 개조된 형태로나마 남아 있는 ‘천뢰의 장갑’을 반환하기 위해, 다시 원래의 기능대로 돌려낸 것이다.
참고로, 자색 마탑의 마도구는 무사한 줄 알고 있었는데- 반납하러 갔더니 인벤토리에 없었다.
아마 전투 중에 인벤토리로 돌려놓는 걸 까먹어서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자색 마탑주가 엉엉 울었지.
“대단하네, 역시 우리 현자님이야.”
나는 어설프게 웃으며 에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막상 헤어지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
엘레노어의 영혼은 아마도 SSS랭크 달성으로 인한 특례, 혹은 시련의 탑의 안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떠나고 난 후- 여기에 남은 에인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재앙에 의해 마법이 쇠퇴한 19층이라는 미래, 그리고 회색 마왕의 영혼이 나타나는 48층의 미래.
18층의 에인이 퀘스트 완료와 함께 깡통으로 변하고, 그 영혼과 기억이 이어지게 된다면.
그건, 비극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