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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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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한 번 마탑주급의 마법사와 싸워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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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금속의 자유로운 조작을 무기로 삼는 청색 마탑주, 쉽게 이기긴 했지만 마냥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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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에인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공격을 맞아 준 거긴 했지만, 한 방 한 방이 무시 못할 위력을 품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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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색 마탑주와 눈앞의 적색 마탑주를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강할까-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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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쪽이 훨씬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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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로서의 기량만 놓고 보자면 동등하다고 생각되지만, 보유한 마력량에서 차이가 크게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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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림잡아 두 배 이상, 거기에 마탑의 설비가 공급해주는 양까지 포함하면 열 배는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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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마탑주라는 자리를 마법 대결로 정하는 것도 아닐 테니까. 전투능력의 차이가 커도 이상하지는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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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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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대만 맞으라는 내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마탑주는 수십 개의 마법진을 작동시켜 선제공격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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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순간, 눈앞을 가득 메우는 불꽃의 파도. 이건 못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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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의 공격속도가 빠르고 어쩌고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범위가 개지랄맞게 넓어서 못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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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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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냥 안 피했다. 방패를 앞세우고 오히려 불길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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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묘하게도 불길은 벽처럼 물리적인 저항력을 가지고 내 몸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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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눕혔던 마법사 중 몇 명이 비슷한 마법을 사용했었다. 중량을 가진 단단한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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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나를 탑 바깥까지 밀어낼 셈인가 본데, 그러기에 이 정도로는 좀 부족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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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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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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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방패를 쥔 손에 힘을 넣으며 그대로 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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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불꽃의 파도가 반대로 밀려 나간다. 하지만 마탑주는 당황하지 않고 이어서 다른 마법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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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안쪽이 묘하게 따끔거렸다. 공기를 들이마시며 화염이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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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뭔가 호흡하기가 어색한데……이것 봐라, 산소가 아예 없어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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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불꽃은 기본적으로 마나를 연소시켜 만드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일부러 산소를 태운 거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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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의 벽으로 나를 밀어내면서, 동시에 질식을 유도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확실히 이건 꽤 유효한 공격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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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가 넓어 피할 방법이 없으면서, 강력한 물리력으로 몸을 밀어내는 화염의 파도에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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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를 태워버려 호흡도 곤란하게 만들고, 목구멍으로 침투하는 불길로 몸 안쪽을 함께 태워버리는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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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광!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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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이어서 날아오는 고밀도 화염의 탄환까지, 한 번에 수를 아낌없이 털어서 싸우는 타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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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청색 마탑주에게 마법사간의 전투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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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마탑주는 ‘마법사간의 전투는 체스와 같다’ 라고 비유하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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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냥 체스가 아니라, 눈과 귀를 모두 가리고 진행하는 블라인드 체스 같은 것이라 말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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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어떤 기물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수를 뒀는지도 모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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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차례인지도 모르고, 사소한 반칙을 잡아낼 방법도 없이, 더듬더듬 진행하는 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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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입장에서는 그게 맞는 비유인가 싶었는데, 적색 마탑주의 전투방식을 보다 보니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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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날아드는 수많은 마법은, 체스로 치면 주요 기물을 모조리 쏟아부어 펼치는 공세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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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계산과 심리전을 엮어 펼치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의 예술적인 두뇌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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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마법사간의 싸움이 아니다. 마탑주는 체스를 두고 있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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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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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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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에서 분출된 맹렬한 마력에 의해, 화염의 탄환은 튕겨 나가고 불꽃의 파도는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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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가 퀸, 나이트, 비숍, 룩을 모두 동원해 포진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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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폰 10마리를 제물로 바쳐 체크메이트의 거신병을 소환해, 체스판을 둘로 쪼개는 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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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거롭게 머리를 굴리고 수 싸움을 펼칠 필요가 없는, 압도적인 힘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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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벅, 저벅, 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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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의 파도를 뚫고 천천히 다가간다. 마탑주는 사색이 된 채로 나를 마냥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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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력으로 후려치면 마탑주는 분명히 죽겠지. 그러니까, 마력강화는 다시 풀고- 아이템도 장착을 해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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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벽]이나 [혼신] 같은 버프 스킬도 해제하고, [약점 간파] 등의 스킬도 발동하지 않게 제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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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도 오러도 두르지 않고, 그저 순수한 육체의 힘만을 주먹에 담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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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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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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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으깨지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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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대만 맞자고 했지만, 정말로 한 대만으로 끝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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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으로 흩날린 불꽃, 부서진 벽과 금이 간 바닥, 그리고 이따금 튀어 있는 핏자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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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하게 ‘오해’를 푼 흔적이었다. 그 참혹한 한가운데에서, 마탑주는 숨을 헐떡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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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역시… 불공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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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로 텅 비어 있었고, 목소리는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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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나만… 왜 나한테만… 이런 괴물들이 몰려오는 건데.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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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뭘 그렇게까지 억울해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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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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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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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탑주의 어깨를 짓밟았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목 안쪽에 걸려 있던 질문들이 하나씩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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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에인의 부모가 맞지? 그 애랑 무슨 관계야. 그리고 왜 그 애를 모르는 척한 거지- 당장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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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는 내 물음에 실로 격하게 반응했다. 돌연 미친 듯이 웃고, 울다가, 불길을 토해 내듯 말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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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낳았어. 내가 낳았지만……왜 내가 그 더러운 것의 부모여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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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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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니고, 배고 싶어서 밴 것도 아니야, 내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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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바뀌어 가던 마탑주의 표정은 이내 조소로 끝맺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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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노인네가 내 뱃속에 쑤셔 넣은 악마의 잡종……그걸 왜 내 자식이라 불러야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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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로브 자락을 풀어헤치고, 그 밑의 셔츠를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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훤히 드러난 아랫배에 새겨진 칼자국과, 옅은 마력이 느껴지는 검은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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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자국에서는 호문쿨루스와 [심연의 파편]에서 느낄 수 있었던, 불길한 마력이 새어나오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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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국 밑에는 칼로 새긴 듯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마탑주는 그것을 소리내어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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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이 제공하는 번역 기능이 멋대로 의역한 탓에, 알아들을 수 없었던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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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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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진 숫자는 ‘1’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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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더러운 잡종을 부르는 호칭은 이거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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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마녀는 담담한 조소와 함께, 자신에게 있었던 비극을 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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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몇 년 전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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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몇 년 전이었더라, 나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어린 마법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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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이름을 남길 대마법사가 되겠다는 포부는 있었지만, 그만한 능력은 없었던 멍청하고 우둔한 마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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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 능력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어. 그때나 지금이나, 여자 마법사는 늘 편견의 대상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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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배우는 여자는, 적당히 출세해서 좋은 집안에 시집가려는 생각밖에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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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에서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마법사라도, 여자라는 이유로 언제나 그런 말과 시선을 받고 사는 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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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능력도 부족하고 멍청하기까지 한 촌뜨기 마녀에겐 어땠을까. 받아주는 마탑이 있을 리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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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꿈을 안고 상경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나에게- 그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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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야, 내 밑에서 마법을 배워 보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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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많았지만, 어딘가 묘하게 매력적인 남자 마법사였지. 지성이 가득 담긴 짙은 회색 눈이, 어쩜 그렇게 멋져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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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겉모습만 매력적인 게 아니었어. 그는 전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실력의 마법사이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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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사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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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눈앞에서 펼쳐 보인 마법에, 나는 단숨에 시선을 빼앗겼어. 그토록 아름답고 압도적인 마법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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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때 나는- 시골 아이들이 나를 보고 ‘마법사’라며 외치던 때의 반짝이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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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바로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어. 마법의 길을 걷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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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개의 마법을 개발하고, 수십 개의 일화를 남기고, 몇 개의 전설을 써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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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두문불출하는 탓에 실존 여부마저 의심받고는 하던 신비의 마법사가, 내 눈앞에 나타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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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뜨기에 불과하던 나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먼저 제자로 들어오지 않겠냐고 제안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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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에 대한 욕심만큼은 누구보다 컸던 어린 마녀가, 그 제안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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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유혹이었던 거지, 말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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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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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물쭈물하면서도 건네진 손을 잡았고, 그렇게 나는 그 사람의 제자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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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마탑, 백색 마탑, 갈색 마탑의 마탑주를 모두 겸하고 있는 마법 학회의 최고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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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마법사 대부분의 스승이자, 주문 언어학자이자, 아케인 칼리지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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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전 대륙을 떠도는 방랑 마법사라고도 알려진 살아 있는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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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버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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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실험체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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