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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은 전력을 다해 땅을 밀어내며 제 왼팔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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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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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친 위력의 초식 앞에서 능월과 스스로를 보호하려면 팔 하나 정도는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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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어떻게든 그 검은 불꽃을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미 팔은 그 기능을 잃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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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터졌던 팔이 이제는 아예 검게 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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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인경을 이루며 얻은 진혈이 무색하게도 재생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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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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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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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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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질문에 백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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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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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궁에 저런 놈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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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 역시 머리가 복잡했다. 빙궁이 숨겨놓은 비밀 병기? 말이 안 된다. 그런 것이라면 백윤이 모를 리가 없다. 고작 삼백 년만에 저런 놈이 튀어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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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궁진천 정도 되는 재능이 있다면 모를까, 하필 그런 놈이 백윤이 빙궁을 떠나자마자 나타났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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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까 그건 분명 마기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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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백신공과 북명신공, 그에 더해 마기까지?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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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는 것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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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 저런 놈은 들어본 적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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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이 이를 악물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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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기에 대한 지배력은 자신을 아득히 넘어선다. 특히 놈이 보여주었던 그 말도 안 되는 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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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빙옥을 도로 분해해 제 것으로 만든다니?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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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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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빙옥을 분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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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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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빙백신기를 다루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허나 혈기는? 그것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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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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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이 제자리에 멈춰섰다. 그 상태 그대로 고민에 잠긴 백윤의 낯이 혼란을 담아 이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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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 멸신회의 일원 중 나 외에 빙궁 소속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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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는 없다. 애초에 아는 놈들도 몇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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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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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놈이 멸신회 소속이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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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공의 특출난 점이라면 그 범용성. 본디 피를 가지고 태어난 모든 인간이 익힐 수 있으며, 이미 익히고 있던 무공과도 별다른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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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무공과 달리 기맥이 아닌 혈관을 통해 연마하는 무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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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 역시 사내의 몸으로 빙백신공을 완전히 익혀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판단하여 혈공을 통해 혈인경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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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는 것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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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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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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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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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 허나 종종 나무처럼 얼어붙은 얼음 기둥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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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의 눈이 그 기둥들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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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이미 지나쳤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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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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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급 무인 둘이 길을 헤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농담 같지도 않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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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내 백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확실히, 이미 지나쳤던 장소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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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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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술, 혹은 진법. 어느 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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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간을 찌푸린 백윤에게 능월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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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놈을 죽이지 않으면 벗어나기 힘들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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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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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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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과 능월이 시선을 교환했다. 놈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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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은 화경급이 둘. 저쪽은 하나. 이쪽이 수적으로 우위에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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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가장 큰 문제는 백윤이다. 그의 기공이 적에게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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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기공은 어느 한 쪽의 역량이 확연하게 뛰어날 경우, 그보다 못한 이의 기공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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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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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든 버텨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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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상대의 역량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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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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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놈의 불꽃만 조심해라. 전투 도중 불꽃이 옮겨붙는다면 대처하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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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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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이 픽 웃으며 창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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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버티는 동안 내가 놈의 숨통을 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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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놈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백윤 역시 만만한 수준의 무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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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의 재능이라면 분명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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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꼬리를 끌어올린 능월의 시야에 백서준의 모습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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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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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과 능월이 기수식을 취했다. 백서준은 여상하게 걸어 그들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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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회의는 다 끝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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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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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는 듯 새카만 불꽃이 주변을 에워싼다. 순식간에 곤두박질친 기온에 백윤과 능월의 머리칼 위로 서리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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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영역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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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도 영역 나름이다. 저런 식의 막대한 출력을 뿜어내는 영역은 시전자에게 부담이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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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한 시선으로 백서준을 살피던 백윤이 양손에 빙혈신기를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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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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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사이사이로 붉은 얼음이 물처럼 흐른다. 백윤은 빙혈신기의 조율에 모든 신경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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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힘을 합친다고 더 강해질 리가 없다? 그렇다면 놈조차 파해할 수 없을 만큼 그 연결을 견고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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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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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의 열 손가락이 서로 맞닿았다. 손바닥 사이의 공간. 거세게 휘몰아치는 붉은 빙괴(氷塊)가 폭발하듯 여러 갈래로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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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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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수처럼 길게 이어진 빙괴. 서준이 손짓하자 허공에서 일어난 검은 불꽃이 빙괴를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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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억-! 삽시간에 빙괴가 얼어붙는다. 이치에 어긋난 일이다. 얼음이 다시 얼어붙는다니? 일종의 역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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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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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검은 불꽃은 당연하다는 듯 백윤의 빙괴를 얼려내며 빠른 속도로 백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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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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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빨리 빙괴를 흩어낸 백윤이 땅을 박찼다. 파악-! 순식간에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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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에서 밀린다면 체술로 만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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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놈에게 오래 닿을 수는 없다. 닿는 순간 북명신공에 의해 조금씩 내공을 빼앗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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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발을 디딘 백윤이 오른손을 빠르게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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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바박-! 십수 개의 잔영이 남으며 서준을 향해 장강이 쏟아진다. 서준 역시 마주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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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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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내젓는 손짓에 백윤의 장강이 모조리 흩어졌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기. 투웅-! 서준이 허공을 밀어내자 흩어졌던 기가 얼어붙으며 송곳처럼 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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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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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락-! 백윤은 기다란 소매로 얼음 송곳을 걷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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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술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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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지 않는다. 그런 자신이 있었다. 사내의 몸으로 빙궁의 장로직을 맡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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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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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뻗은 장이 서준의 손목을 쳐낸다. 활짝 열린 가슴. 그대로 파고들며 반대손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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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엉-! 장이 허공을 때린다. 어깨를 비틀어 피해낸 서준이 손을 뻗어온다. 구부러진 손가락. 금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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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히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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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을 쳐내 걷어내고, 발을 앞으로 밀어넣는다. 허공을 땅처럼 밟는 화경의 무인이라지만 다리로 몸을 지탱하는 것은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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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중심이 이동하는 순간, 투욱, 축이 되는 발을 세게 밀어냈다. 서준의 신형이 기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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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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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듯하나,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백윤이 서준을 상대로 맞설 수 있다는 증명임과 동시에, 전투의 흐름이 이쪽으로 넘어왔다는 확실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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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공략할 곳은 있기 마련. 스스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체술이라는 강점을 내세워 밀어붙인 자신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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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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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는 심득이 되고, 심득은 번뜩이는 영감이 된다. 백윤은 뇌리를 하얗게 태우는 쾌감에 몸서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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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알 것 같았다. 빙공과 혈공. 그 둘을 완벽히 조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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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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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벽 위로 생겨난 자그마한 균열. 백윤은 그 너머의 세계를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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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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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미소를 지은 백윤이 즉시 한 발짝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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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해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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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이 씩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백윤과 자리를 바꾸듯 튀어나오며 한껏 끌어모은 힘을 앞으로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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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휘계(月光輝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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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의 영역인 월광염세. 그 영역 속 모든 공간을 물들인 달빛이 찬란하게 빛나며 서준의 주변을 에워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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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달빛 한 줄기 한 줄기가 전부 창의 휘두름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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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가르고자 한다면 능히 수십의 산을 가를 것이요, 바다를 가르고자 한다면 능히 바다를 수십으로 나눌 일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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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가 무너진 서준은 제때 반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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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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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이라기에는 너무 어설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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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기울어진 자세 그대로 서준이 손을 뻗는다. 그 손끝에 찬란한 빛무리가 깃들었다. 별빛. 그것을 품는 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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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월의 눈이 부릅 뜨이는 순간, 서준이 손을 횡으로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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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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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달빛이 얼어붙으며 능월의 창격을 걷어낸다. 능월이 휘두른 수천의 창격을, 서준은 단 한 번의 휘두름으로 떨쳐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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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것 역시 기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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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움직임은 단 한 번. 허나 궤적처럼 남은 강기가 수천 번의 복잡한 움직임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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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극에 달한 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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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보다 더한 당혹감에 능월의 표정이 처참하게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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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월광신기(月光神氣)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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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다. 빙백신기에 혈기, 마기까지 다루더니 이제는 월광신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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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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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은 몇 번 부딪힌 것만으로 상대의 무공을 훔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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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달이 하나 필요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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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 허공을 땅처럼 밟았다. 건물의 벽을 딛고 선 듯 옆으로 섰으나, 중력이 기이하게 작용하는 듯 머리칼이며 옷가지는 그의 발을 향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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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단 물러선 백윤과 능월을 보며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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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적응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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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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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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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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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 세상이 타오르는 듯 밝아졌다. 백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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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하늘 위에 떠있는 태양과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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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을 중심으로 세계가 회전한다. 백윤은 허공에 선 채 천천히 기울어지는 세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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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구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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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그 회전이 멎었을 때, 모로 서있던 서준의 발 아래 대지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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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다. 세상에 스스로를 맞추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세상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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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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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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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은 무심하게 발아래 놓인 천하를 보았다. 세계를 기울여 축을 맞춘 역천자를 중심으로 태양과 달이 공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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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이 하나의 점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그 주인을 아득한 곳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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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일맥지간 화위참천거수(南宮一脈之幹 化爲參天巨樹)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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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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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을 하나로 잇는 줄기가 하늘을 찌르는 거대한 나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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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지 못한 백윤의 미간이 구겨지고, 이내 아득한 존재감이 공간을 찍어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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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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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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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압력에 허공을 딛고 서있던 백윤과 능월이 땅에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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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높은 곳. 태양과 달이 역광으로 비추는 새카만 인영이 천하를 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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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나무에서 뻗어나온 가지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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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뒷짐을 진 채 백윤과 능월을 보았다. 역광 속에서 붉은 두 눈만이 섬뜩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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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놀이에 자랐던 한 쌍의 뿔이 한순간에 스러지고, 일순 서준의 신형이 백윤의 코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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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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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하지 못했다. 부릅 뜨인 눈. 서준이 백윤의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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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지 말고 전력을 다해라. 네 모든 걸 쏟아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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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두두둑-! 척추와 함께 뽑혀나온 백윤의 머리와 서준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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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텐데, 놓치면 안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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