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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지만, 우습게도 후작은 그조차 유쾌한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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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로 그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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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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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를 내 아들로 삼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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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처럼 수양딸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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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의미의 [트리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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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트리스탄의 성을 주겠다는 뜻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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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후계자 ‘자격’을 준다는 뜻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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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자격만 얻는 게 아니지. 내겐 현재 자식이 없으며, 방계 중 완전한 트리스탄을 이어받을 만한 영특한 녀석들도 없다. 그나마 베일이 가장 가능성이 높긴 하겠지만, 하필 그 녀석은 기사단에 들어가면서 후계자 자격을 모두 포기하고 말았지. 그런 뜻에서 자네가 내 아들이 되는 순간 바로 후계 서열 1위가 되는 것일세! 무려 그 트리스탄의 후작이 될 수 있는 거라네! 아무렴, 이런 기회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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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밖에 없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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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이 내미는 달콤한 제의가 아닐 수 없었으며, 아무리 무욕한 이들일지언정 마음이 안 흔들리고 배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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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권력욕과 명예욕 등이 있는 인물이라면 이 제의를 거절할 수 없는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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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진심 사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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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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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튕기는 게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으니 다시 선언하지만. 진짜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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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트리스탄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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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 안 보고, 그냥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는 것부터가 난이도가 극악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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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더 상처구먼. 거 귀족도 사람일세. 좀 돌려서 말할 수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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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돌려서 말한 게 이 정도지, 안 그랬으면 아저씨 감당 못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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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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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의 표정은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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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장난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후작은 가볍게 ‘아들’ 선언을 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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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쉽군. 하긴, 쉽지 않으리라 생각은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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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받아들였다면 진지하게 자식으로 삼을 생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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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중진들과 원로들이 이 얘기를 들었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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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을지라도, 후작가를 침범했던 괴한에게 어찌 트리스탄의 성을 줄 수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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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후작은 자신의 결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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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한 녀석이라면, 후작가를 맡겨도 될 것 같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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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은 대귀족이란 이름을 쓰고 있지만, 그들에겐 [신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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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의 시조의 경우 신비를 비롯한 마궁(魔弓)과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명맥은 오래 전 끊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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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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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은 솔직히 말해 지난 수백 년 동안 수십 번을 가볍게 넘는 위기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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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명궁조차 되지 못할 바보 같은 놈이 후계자가 되기도 하였고, 신비나 마궁 따위의 가주를 증명하는 증표가 없다는 이유로 방계들에 의한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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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제니미아 자신이 젊을 적, 가문을 잠시 비워뒀을 뿐인데 가문의 중진파와 원로파가 싸워 반으로 쪼개진 경우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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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하드와 라이오넬이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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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겐 ‘절대적인 정통성’을 증명하는 신비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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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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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에게 중요한 건 트리스탄이란 이름과 무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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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이란 성을 앞으로 수백 년 이후까지 전해지게 할 잠재력과 가문 전체를 아우를 압도적인 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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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두 가지 자격만 갖춘다면 트리스탄의 성은 누가 이어도 상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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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귀족은 ‘피’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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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귀족들의 피는 옅어질 대로 옅어진 상황에 피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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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만약 그 피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 녀석들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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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계 쪽 여자 한 명과 애를 낳게 하면 그만인 것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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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트리스탄의 피는 그 특성이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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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되는 초대 가주가 요정과 아이를 낳아서 그런지 몰라도,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아이를 낳으면 모두 트리스탄의 피를 타고 나며, 그 증거로 붉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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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피 같은 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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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런 제니미아의 생각을 들었다면 멍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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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기사 한 명 얻자고 그렇게까지 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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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는 이리 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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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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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보석이다. 그것도 아직 세공할 부분이 넘쳐나는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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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자신이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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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골치가 아프긴 하겠지만, 죽이는 것도 가능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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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것도 ‘지금’의 얘기이지, 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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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일’은 과연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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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만났을 때보다 기세가 안정되어 있구나, 아무리 젊을지언정 이토록 무섭게 성장할 수가 있나,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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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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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녀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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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도달할지도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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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어느 용맹한 검투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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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광신도였을 사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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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재라 불렸던 어느 여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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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젊은 기사 또한 닿을지도 모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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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 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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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포기해버리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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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기회를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만 멀고도 먼 원대한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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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제 자식은 아니지만, 저가 인정한 사내가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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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대리만족이라 할 테지만, 대리만족이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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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젊은이에게 기대감을 품는 게 어른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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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되는군,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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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지금은 이렇게 씨를 뿌려두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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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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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면 딱 재밌을 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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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 삼고 싶다는 것 자체에는 마냥 이러한 대리만족을 하고 싶다는 이유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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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보면 질리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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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로 삼고 싶다는 제안 자체에는 이해득실이 없는 제니미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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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봐라, 이 얼마나 재밌는 녀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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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아쉽게 됐군. 하면 말일세, 그 허공을 걷는 수단이라도 우리 기사단에게 가르쳐 줄 수 있겠나? 값은 충분히 치를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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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목적이 나왔네! 안 돼. 내 제자들도 아니고, 타 문파, 아니 기사단에게 왜 내 기술을 가르쳐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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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흐음…. 이 얘기는 그냥 하는 혼잣말이지만, 어느 괴한이 부순 문과 건물, 벽돌과 대리석, 조각상 등등의 가격을 합치니 대력 금화 삼천 개는 나오겠더군. 특히 망가진 것들 중엔 드워프제도 섞여 있는지라 복구비용이 더 오를 것 같은데…, 허어, 범인을 잡아 물어내라고 해야 할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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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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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물어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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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눈 위에 발자국 안 남기고 걷는 법은 안 필요하신가? 답설무흔이라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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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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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라, 보고만 있어도 재밌는 녀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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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유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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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롱부리는 아들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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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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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나쁜 아저씨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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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기가 빠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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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주먹다짐하고 칼부림하는 게 덜 지치지, 능구렁이 같은 정치가와 대화하는 건 기가 쏙 빠지다 못해 머리가 지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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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닌 정신적으로 지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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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피폐해지는 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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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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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흰 종업식 참석 안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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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를 풀듯 마른세수를 하던 이한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처럼 목소리를 내었고, 일순 어디선가 작은 떨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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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떨리는 가지의 떨림보다 미세했고, 남들 같으면 눈치도 채지 못할 떨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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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에겐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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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안 좋은 버릇이다. 항상 숨어 듣는 버릇. 나중에 걸리면 제대로 다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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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를 건네는 듯한, 아니 스승이 내리는 가르침과 같은 조언이었고, 그 조언이 끝나자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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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교관님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우리가 여기 숨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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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진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개의 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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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녀석들이었고, 이한은 마른세수를 끝내며 두 생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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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과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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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종이 쓴웃음과 함께 이한을 마주했고, 잭은 볼을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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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잘 숨었다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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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확실히 잘 숨었더라, 넌 어떻게 된 게 검술보다 숨는 솜씨가 더 좋아지냐? 기사 말고 암살자로 제대로 전직하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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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그저, 재능이 있다 보니 굳이 연습을 안 해도 숨는 실력이 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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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참, 재수 없는 발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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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저놈도 남들에 비해 눈에 안 띄어서 그렇지, 재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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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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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 어린 시선이 쏟아지자 고개를 점점 내리는 잭이었고, 이한은 잠시 노려보다 반대편에 있는 흑발머리 녀석에게 강렬한 시선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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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생긴 것만 보면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보고만 기다릴 것 같은 녀석이, 왜 현장에서 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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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체질은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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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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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도 제가 여기 있는 것을 눈치챈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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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가장 먼저 알았을 거다. 그 아저씨 감각이 나보다 위일 테니까. 일부러 모른 척했지 않을까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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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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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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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을 거절한 것치고, 제니미아 후작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싶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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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자체가 모난 양반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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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거절하신 겁니까? 후작 정도면 괜찮은 후원자가 되어 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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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에 궁금한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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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이지 않습니까, 이 정도 오지랖은 괜찮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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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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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이 녀석은 아무래도 자신의 선택이 이상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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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의 제안만 받아들였으면 단숨에 이 나라의 일각을 대표하는 왕권파의 대표 귀족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왜 거절한 건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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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단순히 제니미아 후작을 아버지라 부르고 싶지 않다는 이유가 다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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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물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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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진짜 그게 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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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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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가볍게 답변했고, 로엔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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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게 다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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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참 생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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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말만 회귀자지, 나이는 허투루 먹은 제자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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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먹고 내가 부모님한테 용돈 달라고 하랴? 아니면 애교를 부릴까? 결혼해서 애를 낳아도 모자랄 나이에, 이제 와서 뭔 놈의 부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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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의 자식이 된다는 건 단순히 용돈을 받는다는 개념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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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텐 그거나 그거야, 그리고 그런 속물적인 이유로 가족을 필요로 하면 안 되는 거다. 가족한테 중요한 건 돈도 권력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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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뭐가 필요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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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와 책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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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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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도 없이 답변이었고, 로엔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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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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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중요한 건 그런 거야.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지켜야 할 의리를 지키며. 자식도 자식 된 도리를 지켜야 하고, 동시에 이런 관계를 유지할 책임감을 가지고 가족이 돼야 하는 거다. 타산적인 이유로 가족이 된 사람들의 결말은 거의 비슷해. 서로에게 불행만 있을 뿐이야. …그렇다고 무조건 불행해지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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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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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런 뜻에서 후작과 나는 가족이 될 만한 관계가 아니야. 나는 부모를 필요치 않고, 반대로 후작은 자식이 아니라, 그저 나라는 대상이 흥미로워 키워보고 싶은 거겠지.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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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은 이미 후작이 자신을 마냥 좋게 봐서 그런 제안을 건넨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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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힘이든 뭐든 탐이 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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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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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는 사람의 능력을 알아줬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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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사내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버린다’고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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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자신은 누군가의 인정을 필요로 할 만큼 배고픈 놈이 아닐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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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만약 자신이 세상에 지쳐 있거나 누군가의 인정이 고픈 놈이었다면 아마 저러한 제안에 바로 머리부터 박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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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양반 밑에서 재롱부리면서 사는 건 좀 그렇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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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린다며 혀를 내둘렀고, 그런 그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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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봤을 때 그건 아닌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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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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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은 아무리 봐도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 사자나 곰이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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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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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성장하면 사람을 찢어 버리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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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주둥이를 놀리는 검정머리 놈이었고, 이한은 말보다 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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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아라한신권으로 맞아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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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지는 모르겠지만,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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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사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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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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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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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엿듣는다고 고생이 많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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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몰래 엿듣는 살쾡이들 때문에 미처 다 묻지 못한 것이 있다는 듯 아쉬움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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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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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아쉬움을 곱씹으며 마차에 오르는 그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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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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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틈 사이에 끼어진 쪽지 하나를 확인하며 후작은 잠시 멈칫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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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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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슨. 그보다 혹 마차 근처로 다가온 이들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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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 리가 있겠습니까? 병사들이 이렇게 많이 호위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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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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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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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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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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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너털웃음과 함께 마차에 올랐으며, 집사로 보이는 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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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후작은 집사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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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너무나 손쉽게 병력을 뚫고 전서를 전한 인물을 생각하며 호쾌할 따름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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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후작가의 소동이 지나치리만큼 조용하게 묻혔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후작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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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의문이 확실하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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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들로 삼고 싶어 했던 기사는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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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녀석. 위험한 인물에게 호의를 사고 있구나. 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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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적혀 있지 않으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듯한 붉은 촛농 위로 새겨진 용의 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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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쪽지 위에 적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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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다. 탐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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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강한 경고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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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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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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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저에게, 아니 트리스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강한 힘을 가진 왕뿐이십니다. …당신께선 아직 그럴 자격이 없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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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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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한 미소를 머금으며 쪽지를 찢어버릴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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