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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왕립 아카데미는 정말 규모로든 화려함에서든 어처구니없는 게 수두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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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워 게임을 벌일 정도로 거대한 콜로세움이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지만, 학술원을 뒤져보면 대형 미술관이나 수영장, 승마장과 같은 여러 거대한 시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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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보면 여기가 마냥 젊은 생도들을 키워내는 기관이 아니라, 영지나 학술 도시란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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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러한 도시에 마련된 유독 개방적이면서도 그리스 양식의 신전을 연상케 하는 파티장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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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쓰일 일이 없는 장소라, 그냥 생도들도 지나가다 얼핏 보고 그러려니 하는 장식물인 줄 착각하는 건물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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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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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게 진짜 그 칙칙한 건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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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원은 정말이지 놀랄 것투성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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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큼은 차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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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성이 절로 나오는 화려함에 압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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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생도의 말대로 칙칙한 건물이었으나, 지금 이 순간 건물은 아름답고도 찬란한 형식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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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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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사방팔방을 채운 꽃들과 건물 이곳저곳에 덩굴이 맺히며 꽃들이 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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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저토록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만개할 계절이 아닌데도 이만한 꽃이 핀 걸 보면 확실히 학술원, 아니 팬드래건의 저력을 알려주는 특별함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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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준비한 티가 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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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천박하지 않고 적당히 화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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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 제압은 무리더라도, 저력은 보여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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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익숙한 귀족들은 마냥 화려함에 속지 않고, 화려함의 이면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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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스럽게 성사된 것이지만 국빈급 인사들이 처음으로 공식선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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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파티란 외국의 사절에게 왕국의 저력을 보여주는 일종의 무력시위로 쓰일 때도 있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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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러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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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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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유치해 보이지만, 이 유치해 보이는 방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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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러한 이면을 모르는 순진한 생도들 입장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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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 꽃이 이렇게 많은 건 난생 처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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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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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눈이 즐겁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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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모르기에 행복한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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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찌든 귀족들은 저들처럼 순수하게 이 광경을 관람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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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하고 만 현재와 다른 지난날의 젊은 시절을 꿈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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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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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맛있네, 음료도 괜찮고. 근데 이런 건 먹어도 되는 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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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핑거 푸드 같은 경우엔 사용인이 직접 주는 거니까요. 물론 안 먹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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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불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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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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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임에도, 아니 기사 서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파티의 이면 따위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파티를 즐기는 기사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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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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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용인들이 주는 핑거 푸드와 무알콜 샴페인을 열심히 챙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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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꽃에도 관심이 없을뿐더러, 귀족들의 정치적 언어는 괜히 얽히면 골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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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이렇게 열심히 챙겨먹기라도 해야 남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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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아는 척 끼어드는 것보단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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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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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진솔 담백한 그의 의견에 격렬히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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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그녀가 스승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라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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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또한 귀족들과 엮이는 건 사양하고 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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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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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이 그 트리스탄에 입양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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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색이 곱군, 흐음, 우리 아들과 혼담이나 좀 넣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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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두게, 아무리 입양이라도 트리스탄일세,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간 자네 가문만 힘들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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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는가? 그 트리스탄과 사돈 관계를 맺으면 얼마나 이득인가.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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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정말 못 말리겠구먼, 흘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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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또한 저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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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들 외에도 외부에서 초대된 귀족들도 제법 있는지라, 파티장은 상당히 번잡해진 상태였고, 많은 이들의 대화가 섞여 타인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 게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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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보통 사람이라면 들리지 않을 뿐, 레비는 충분히 여러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을 능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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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한의 우수한 제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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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란 건 정말 사용법이 무궁무진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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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다른 사람들보다 시작점은 늦었으나,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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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경]만큼은 상당히 능숙하게 사용하는 그녀는 주변의 속삭임조차 자세히 듣는 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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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본인을 평가하거나 음흉하게 보는 이들의 대화조차 쉽게 들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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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저들의 대화를 들으며 화를 내기보단 쓰게 웃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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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저열하기 짝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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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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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한은 귀족 혐오적인 발언을 장난처럼 내뱉지만, 그 발언 안에는 귀족에 대한 ‘불신’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지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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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레비는 그가 귀족 사회를 불신하는 것이 충분히 납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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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토록 겉과 속이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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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향해 음흉한 속내를 가진 이들은 막상 자신 앞에 서면 품격과 친절함을 드러내며 그녀와 친해지려 할 테지만, 속내는 아마 음산하기 짝이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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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단숨에 신분이 출세한 그녀를 질투할 터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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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이는 그녀가 가진 권력이 탐이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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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친해질 가치가 있다 생각하고 다가올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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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모든 게 레비는 진저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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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귀족에 의해 인생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본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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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귀족이란 이들에게 반감이 가장 심한 이는 어쩌면 이한이 아니라, 그녀일지도 모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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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녀가 웃을 수 있고, 저러한 자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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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가서 손봐주고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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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괜찮아요,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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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안 괜찮아. 걱정 마라. 얼굴은 기억해놨으니까. 나중에 몰래 분근착골 한 시간 코스만 해주고 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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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는 정말 괜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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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렇게 자신을 대신해서 진심으로 화를 내주는 사람이 있는 덕분에 레비는 괜찮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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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웃을 수 있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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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지금 좀 갔다 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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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시만요,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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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과도하게 화를 내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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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는 난감하면서도 한편으론 기쁨이 공존하는 자신의 심정이 아이러니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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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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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실랑이가 있긴 했지만, 파티장이 마냥 불편하거나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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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교관님이 제복을 입은 건 처음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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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어요, 교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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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제발 그렇게 좀 입고 다니시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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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면면에, 제자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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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보자마자 왜 이렇게 달려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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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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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 한껏 꾸민 티를 내며 그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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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연약하고도 비실거리는 소녀들이지만, 엄연히 귀족 영애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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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와 화장으로 힘껏 꾸민 소녀들은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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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장을 둘러싼 꽃들을 무색하게 하는 싱그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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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젊은 게 깡패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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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버지들은 나중에 눈물 좀 많이 흘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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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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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딸들이 시커먼 사내놈한테 시집간다고 생각해 봐라, 눈물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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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후, 뭐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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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일 수도 있지만 이한과 병아리들은 사이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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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몸이 튼튼할 수 있도록 운동도 시켜주고, 여러모로 챙겨준 구석이 많으니 소녀들은 남자 생도들과 달리 이한에게 사감이 없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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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알게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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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관님, 나중에 저와도 춤춰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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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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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호감을 품은 소녀들도 있을 정도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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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가 품은 순수한 호감과 달리 약간 가볍고 계산적인 호감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고마운 감정인 건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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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는 바보가 아니었고, 그는 이 상황을 가볍게 무마할 대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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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오늘 나는 혼자가 아니라서, 내 파트너한테 허락부터 맡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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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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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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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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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를 걸고넘어지는 이한이었고, 이 치사한 수단은 생각보다 잘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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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야 매일 보는 제자인지라 그러려니 할 테지만, 레비는 남이 봤을 때도 충분히 감탄이 나오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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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카린이 괜히 ‘아카데미의 첫사랑’이니 뭐니 하는 낯간지러운 별명으로 불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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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지켜주고 싶은 보호욕구를 자극하면서도 상냥함이 엿보이는 미소가 어여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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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그녀가 옆에 있는 이상 영애들조차 함부로 이한을 빼앗을 수 없었고, 평소엔 순둥이 아기곰처럼 생긴 레비가 압박 어린 미소를 머금고 있어 더욱 다가가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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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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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영애들이 치를 떠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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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지금이야 이한 때문에 다가오지 못하는 것뿐, 레비에게 호감을 가진 남성들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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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인간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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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만 세면 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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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영애님이랑 춤을 추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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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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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게 원한이 중첩적으로 쌓이는 이한이었고, 정작 이를 모르는 그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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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따라 등이 왜 이렇게 따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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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향해 다가오는 따가운 질투가 낯설기만 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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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그가 질투의 원인을 찾기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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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대륙을 지배하는 17명의 술탄 중 한분이자, 가장 거대한 오아시스의 주인 살라흐 알 아딜 무함마드 술탄께서 입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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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법사들의 상아탑! 그 상아탑의 탑주의 대제자이자 황금의 마법사란 이명을 가진 휴이 드 베이런 공께서 입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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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인 인간들이 입장하면서 이한을 비롯한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려들었고, 두 사내가 차례대로 입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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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국의 복장을 입었으나, 조금도 그 품위가 흐트러지지 않은 미남자가 아마 술탄으로 보였으며, 뒤이어 어딘지 냉소적인 인상에 금발을 휘날리는 남자가 뒤이어 걸음을 옮겼고, 이한이 그런 그들에게 느낀 감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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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닝남이랑 금발 양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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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 금/태가 적절히 반으로 나뉜 듯한 두 남자를 보며 이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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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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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대로 놀 것같이 생긴 놈들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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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한 평가가 아닐 수 없었지만, 이한의 진솔 담백한 소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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