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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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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동에 있는 카트들을 끌고 내려오는 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일이었기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과장님이 말한 대로 숫자가 좀 많긴 했어도 어차피 몇 번이나 해왔던 일이니까.
다만, 지금 내게는 일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새끼야, 시선이 다 느껴진다.”
“……남자의 본능이야.”
오늘은 유난히 앞에서 씰룩거리는 느낌이 드는 유아린의 엉덩이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게 된다.
내 시선을 부담스럽게 느낀 유아린은 얼굴을 붉히고 투덜거리면서도 또 무작정 싫어하는 느낌은 또 아니었다.
“허전해, 뭔가.”
아래가 허전하다면서 부끄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의 뭔가가 막 쿡쿡 쑤셔오는 느낌을 받았다.
두근거린다고 해야 할까?
‘묘하게 다른데.
단순한 두근거림보다는 다른 것을 자극하는 유아린의 몸짓.
주변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데 엉덩이를 슬쩍 손으로 가리는 가벼운 행동들도 지금만큼은 격하게 내게 와닿고 있었다.
‘쓰읍, 이것들이 쌍으로…….
친구는 닮는다고 하던가.
서예린도 그렇고, 유아린도 그렇고.
심심한 마음에 경각심을 불어넣는 요물들이 따로 없었다.
대충 카트를 전부 옮기고, 유아린이랑 같이 돌아가는 길.
“어우, 씨 안 되겠다.”
카트를 끌려면 두 손을 다 써야 하는데 덕분에 엉덩이 쪽을 손으로 가릴 수 없던 유아린은 나를 보며 말했다.
“다시 돌려줘, 가서 입고 올게.”
“…….”
“가리고 줘라. 괜히 주변에서 보면 이상해지니까.”
진짜 미친 듯이 꼴리네.
주변을 휙휙 둘러보면서 얼른 내놓으라는 유아린은 분명 가슴의 무언가를 일깨우고 있었다.
“싫어.”
그래서일까.
“뭐?”
이런 대답이 나와 버린 건.
“싫다고.”
“…….”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지 모르겠다면서 빤히 나를 쳐다보는 유아린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장난치지 마.”
정색하면서 쏘아보는 유아린.
기세가 워낙 강렬했기에 당장이라도 주머니에 있는 걸 전부 내놓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어차피 고삐는 이쪽이 쥐고 있다.
“얼른 가자.”
“야! 야아!”
도망치듯 카트를 끌고 이동하자 당황한 유아린이 다급하게 불러보지만.
나는 무시한 채로 그대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카트를 끌고 오니 대기하고 있던 이서아와 한봄이 받아주었는데.
내 뒤를 따라오던 유아린을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걱정했다.
“힘들었어? 우리가 도와줄 걸 그랬나?”
“김우진! 우리 아린이한테 너무 다 시킨 거 아냐?”
“과장님이 양 많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좀 힘들었던 거지.”
능청스럽게 대꾸하는 나를 쏘아보는 유아린.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 있는 게 부끄러워서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나한테 속옷을 건네준 건 본인이었기에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분을 삭히면서 일할 뿐이었다.
“으읏.”
끌고 온 카트를 정리하는 유아린의 입에서 옅은 신음이 흘러나온다.
왜 그런가 싶어서 쳐다보자 입술을 앙 물면서 대꾸했다.
“바람 불어…….”
“지하인데?”
“환풍구 있잖아.”
하긴.
그럼 좀 앉아서 쉬라고 제안하자 그게 좋겠다면서 냉큼 의자로 갔는데.
“…….”
감촉이 평소랑 다른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일부러 허벅지를 손으로 비벼대며 이상 행동을 하는 유아린.
평소에 그렇게 강하게 굴던 녀석이 묘하게 순종적이게 변하니까 음흉한 만족감이 들기 시작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대나무숲 관리자와 관리인으로서 갑과 을의 관계성이 이제야 완성되었다고 해야 할까.
- 관리자: 관리인 제압 성공.
그런 의미에서 대나무숲에 영양가 없는 글 하나 띡 하고 남겨준다.
의외로 다들 대나무숲을 자주 보는 건지 답글이 금방금방 달렸다.
↳ 익명198: 관리인 엉덩이 때리는 중? 막 앙앙거리게 만들었음?
↳ 익명69: 섹x 하고 싶다?
↳ 익명90: 섹x 하고 싶다아아!
↳ 익명243: 관리자님 지난번에 문의 보냈던 ‘폭주 2기 보셨나요?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 익명11: 미친 새끼. 관리자한테 그런 거나 보내고 있네.
↳ 익명247: 198은 나중에 어디 뉴스 나오는 거 아니냐? 쟤는 취향 확고하네.
↳ 익명307: 관리인한테 성희롱 고소당하는 거 아님?
↳ 익명198: 다들 꼴리면서 왜 아닌 척하는지 모르겠네.
‘다들 신났구만.
최근 들어 대나무숲에 익명69의 도배와 가끔 종교 동아리 권유 혹은 알바 제안과 홍보 같은 거만 올라오다 보니 심심했던 모양.
방학 끝나면 한동안 대나무숲 터져나갈 거 생각하면 벌써 골치 아팠는데.
느껴지는 따끔한 시선에 천천히 눈을 돌리자.
본인 핸드폰을 보면서 씩씩거리고 있는 유아린이 나를 노려본다.
- 익명59(관리인1호): 관리자 죽인다.
섬뜩한 경고문구가 올라온 걸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등줄기가 오싹했고.
관리자와 관리인을 싸움을 직관하기 시작한 대나무숲의 익명 친구들.
↳ 익명11: 1호 응원한다. 저 새끼 좀 맘에 안 들긴 해.
↳ 익명309: 왜 갑자기 둘이 싸우는 거임? 설명 좀.
↳ 익명291: 관리자가 관리인 조교 실패했음.
↳ 익명198: 관리자야. 난 너 응원한다. 진심으로. 부탁이니까 1호 묶어서 엉덩이 때리는 거 좀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라.
↳ 익명198: 신음만 줘도 괜찮음. 충분함. 돈 지불 의사 있음.
↳ 익명247: 198은 진짜 밴 좀 먹이자.
↳ 익명59(관리인1호): 이미 줬음.
벌써 하루 밴 당해버린 198.
아마 본인도 관리인을 계속 건드리면서 언젠가 저렇게 될 걸 알고 있었겠지.
어차피 방학 기간이니 하루 밴 당한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을 거다.
↳ 익명69: 섹x?
↳ 익명90: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아까부터 익명69의 반응이 좀 거슬리기도 했고,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유아린이 무섭기도 했기에 일단 여기서 일단락시킬까 싶다가도.
↳ 익명75: 1호한테 먹혔냐 ㅋㅋㅋㅋㅋㅋ
↳ 익명17: 이제부터 여긴 1호가 접수한다.
↳ 익명117: 관리자 수준ㅋㅋㅋ 지난번에 후타퍼리짤 올린 거 가지고 밴 할 때부터 알아봤다.
↳ 익명11: 이 새끼는 영구차단해라 제발.
↳ 익명154: 이거 보니까 관리자가 일 잘하는 거 같기도 하고.
↳ 익명98: 한 번만 더 올려주라.
나를 밀어내려는 놈들이 보여서 살짝 거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허전함에 양다리를 오므리고 허벅지를 비벼대고 있는 유아린을 보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씨이……!”
그런 나를 보면서 거칠게 숨소리를 흘리는 유아린. 이런 취향은 따로 없었는데 저런 흠칫거리는 몸짓을 보니까 가학심 같은 게 차오른다고 해야 하나.
‘이게 다 익명198 때문이야.
어느 순간부터 계속 관리인 엉덩이를 때리라지 않나, 묶어서 괴롭히라는 말들을 내뱉으니까 내가 이렇게 되는 게 아닌가.
어쨌든 평소에 기가 센 유아린을 굴복시키고 있다는 감각이 썩 나쁘지 않다.
그런 내 기분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유아린은 남들 보지 못하게 슬며시 나를 향해 중지를 들어 올렸다.
기가 막힌 녀석.
절대 꺾이지 않는구나.
슬며시 녀석의 옆자리에 앉자 뭔가 당할 줄 알았는지 유아린의 몸이 순간 움찔 떨렸으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자.
“으, 음흉한 새끼.”
뭔가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 좀 있다가 진짜 뒤졌어.”
이를 갈면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게 이거 진짜 자칫 잘못하다가는 오늘 퇴근하고 죽기 직전까지 처맞을 수도 있겠다.
처음에는 약간 야동에 나오는 여자 조교 하는 남자가 된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철장 밖에 있는 사자를 입마개 씌우고 있는 정도의 감각.
‘좀 무서운데.
차라리 지금이라도 건네줄까 싶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와중 아까부터 계속 싱글벙글하신 과장님께서 시계를 확인하시더니.
“오늘은 이만 퇴근해라.”
갑자기 우리에게 퇴근을 명령하셨다.
“지금요?”
아직 30분 정도 근무 시간이 남아서 퇴근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게다가 애초에 원할 때 막 퇴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리더기에 퇴근 시간대가 찍히기 때문에 일이 없다고 갈 수도 없는데.
“그냥 휴게실 가서 쉬든가 아니면 좀 많이 이르지만 저녁이라도 먹어.”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떨떠름하니 있자니 과장님은 괜찮다며 다독여주셨다.
“다른 부서 알바 애들은 한 번씩 이런 경험 있을걸? 고작 30분인데 부담스러워 하지 말고 얼른 가봐라.”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머쓱해지실 수 있다.
그렇다면 감사히 가보겠다고 말씀드린 후, 퇴근 시간 전까지 호텔에 있는 가게들이나 한번 쭉 둘러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굳이 유니폼 입고 다닐 필요 없지?”
“그치, 갈아입고 앞에서 보자.”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와중.
“야, 야아!”
작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유아린.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녀석은 내게 바짝 다가온다.
“속오옷! 줘야지이!”
투정 부리듯 속삭이면서도 울상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유아린. 이런 그녀는 정말 처음 보는지라 살짝 어깨가 우쭐해진다.
“받고 싶어?”
“받고 싶은 게 아니라 내꺼잖아!”
“네가 준 거잖아.”
“이 개새……!”
목소리를 높여서 쌍욕을 박으려다가 주변을 둘러보고는 가까스로 참은 녀석.
그러더니 이마를 툭 치면서 자신의 지난 행동을 후회하다가도.
“무, 뭐야…… 원하는 게.”
이야기가 참 빠른 게 보기 좋았다.
검치노팬으로는 옷을 갈아입다가 친구들이 이상하게 볼 수밖에 없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기회를 놓치면 계속 노팬티로 있어야 할 가능성이 농후했으니 유아린에겐 절대로 지금 팬티를 챙겨야 했다.
“관리자를 너무 무시하던 게 아닐까?”
“씨이…….”
투덜거리듯 찡얼거리던 유아린은 결국 핸드폰에 뭔가를 토독토독 적더니 슬쩍 보여준다.
- 익명59(관리인1호): 관리자님께 굴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흐.”
“이제 됐지? 내놔!”
밑에 주르륵 달리는 댓글들은 실로 달콤한 승리의 과실이었으나, 아직 내 주머니에 있는 팬티는 나올 생각이 없었다.
“좀 공손하게 부탁하셔야죠?”
능청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아린에게 말하자 파르르 떨리는 주먹은 당장이라도 내 명치를 조지고 싶어 했으나.
울상이 되어, 볼이 살짝 부푼 그녀는 씩씩거리며.
“부…….”
이를 악물곤 말했다.
“부탁합니다아아.”
“뭘?”
“제, 제 팬티 주세요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오는 걸 겨우 입가를 손으로 가리며 참아냈다.
“이거 주면 안 때릴 거지?”
“…….”
“어? 말 안 해?”
슬쩍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다시 몸을 틀자 다급한 유아린이 양손으로 나를 붙잡는다.
“아, 안 때려요! 지, 진짜 안 때려요!”
“하아, 말로만 하는 건 좀 신빙성이 없는데.”
“진짜요오! 진짜 안 때릴 거예요! 제발요! 패, 팬티 주세요오!”
아등바등 달라붙어 오는 유아린.
이서아와 한봄이 왜 안 오냐며 유아린을 부르기 시작했기에 나는 결국 선심 쓰는 척 손을 내밀었다.
“옛다.”
검은 팬티가 다시 유아린에게 갔고, 녀석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증오와 분노로 얼룩지며 이글이글 타오르려는 걸 보고.
“김우진, 이 씨바……!”
“쟤, 쟤들이 부르잖아!”
나는 얼른 이서아와 한봄을 가리킨 다음 남자 탈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후.
‘재밌어서 즐기긴 했는데…….
이제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