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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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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들려오는 건 재촉하듯 째깍거리는 시계와 그것에 맞춰 움직이는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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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찰 정도로 힘들 때는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도 어느새 종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생각하니 감회가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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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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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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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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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단 말이 오늘만큼은 가슴에 울림을 선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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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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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항에 답을 적어놓은 뒤, 눈가를 꾹꾹 누르면서 숨을 고르자 드디어 현실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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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마지막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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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일부터는 학교에 안 나와도 된다는 해방감이 찌릿하니 몸을 타고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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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주일 정도 있으면 바로 골드원 호텔로 가서 일하게 되겠지만 어찌 됐든 쉴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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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드라마랑 영화 같은 거 좀 싹 보고, 게임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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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험은 다 봤으나 머리로 잠깐 앞으로 할 일에 대해 구상을 끝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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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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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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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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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171: 끝! 끝! 드디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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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254: 드디어 학교랑 작별이다! 졸업생분들 수고하셨고 남은 저희도 열심히 학교 다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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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67: 방학 동안 꿀 알바 하실 분 구합니다. 빵집인데 그냥 계산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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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93: 하, 시험 하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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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59(관리인1호): 고생했다. 방학 동안 대나무숲은 폐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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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278: 개소리임. 방학 동안 자격증이나, 알바 같은 거 때문에 여기는 그대로 운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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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59(관리인1호): 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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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11: 좆 같았고. 내년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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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시험이 끝난 시간도 다르고, 아직 끝나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다들 비슷한 감상을 공유하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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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대나무숲을 슬쩍 보곤 웃으면서 공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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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겨울방학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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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긴 해도 공지라는 건 원래 길게 쓰는 거 아니다. 흥얼거리면서 집에 가려는데 바로 온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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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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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인 걸 봐서는 내가 공지 올린 걸 알고 바로 톡을 보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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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대나무숲을 하고 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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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방금 시험 끝나서 집에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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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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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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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따로 답이 없는 걸 보면 용건은 그게 끝이라는 건데. 별 관심 없다는 걸로 보이기도 했으나 반대로 그거면 충분하다는 걸로도 해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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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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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싶어서 슬쩍 톡을 보내자 조금 있다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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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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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거길 왜 가 등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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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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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민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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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묘하게 유아린이 자주 찾아오는 것 같아서 혹시나 싶어 말했는데 좀 과했던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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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ㅈ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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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다리 짚은 걸 사과하자 바로 온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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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ㅇㅇ 근데 맥주는 뭐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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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안 온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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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안 가. 그냥 맥주 뭐 좋아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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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다 잘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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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하긴 네가 뭘 가리면서 먹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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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집 냉장고에 맥주 넣을 곳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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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안 온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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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린: 안 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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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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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하지 않고 얼른 집으로 간다. 괜히 붙잡힐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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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집에서 간단히 씻고 나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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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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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어,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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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년아 안 온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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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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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긴 뭘 모른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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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을 내쉬면서도 일단 문을 열어주는 내가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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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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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온 건 유아린과 정찬우. 둘이 맥주를 바리바리 싸 들고 웃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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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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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너를 위해 우리가 같이 있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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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도 왔어?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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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정찬우만 반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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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가 담긴 비닐봉지를 내미는 유아린의 입술이 삐죽 내밀어진다. 본인보다 정찬우랑 더 친해 보이는 게 기분 나빴던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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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우한테 줄 거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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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온 찬우에게 나는 바로 유아린이 지난번에 만들고 간 흉물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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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꺼야,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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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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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이 만들고 간 흉물이야. 지난번에 이름도 지어줬는데…… 그,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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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집처럼 냉장고에 맥주를 넣고 있는 유아린이 심드렁하니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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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이와 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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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름 아니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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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도 쪽이 우진이고 박힌 쪽이 찬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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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까 지난번에 아저씨 사건 누가 아린이한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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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범인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되묻는 건 좋은 습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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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찬우에게 조언을 해주려고 했으나, 녀석의 싸늘한 시선이 이미 내게 꽂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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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말한 거야…… 아저씨랑은 연락하고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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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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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아닌 건지 호들갑 떨 정도인가. 그분 그래도 좋은 사람처럼은 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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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거리면서 화장실에 가버리는 찬우와 콧노래와 함께 들썩거리는 어깨로 대충 자리를 깔고 있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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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러 온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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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자고. 너도 시험 끝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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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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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 같이 골드원 가는데 서로 우애도 돈독하게 다지고, 가서 뭐할지 알아보면 좋잖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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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그렇……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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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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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유아린을 쳐다보자 녀석은 입가에 손을 가져대며 브이 자를 하고는 앙큼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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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일 열심히 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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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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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등학교 친구들 전부. 주희 선배한테 말했더니 바로 소개해 주시던데? 덕분에 겨울방학에 꿀 알바 찾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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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차라리 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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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는 얼굴이 많은 게 지내기 편하겠지. 거기서는 따로 내어준 숙소에서 몇 명씩 지내게 될 텐데 찬우라면 같이 지낼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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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뭐 먹을까? 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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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이 시키셔야죠. 술은 우리가 사 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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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개소리냐는 유아린의 대답에 나는 핸드폰으로 배달 앱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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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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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맥주에 뭔 닭갈비야. 치킨 같은 거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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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추가해서 닭갈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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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주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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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나를 보며 투덜거리던 유아린은 그나마 최후의 저항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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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치즈 닭갈비로 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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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야! 어딜 닭갈비에 치즈 같은 걸 얹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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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닭갈비는 그냥 먹어야 제맛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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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 나와 봐! 그냥 닭갈비야 치즈 닭갈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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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배가 좀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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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는 남의 집 오자마자 똥 싸고 있네. 얼굴이 잘생긴 거 아니었으면 그냥 쫓아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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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똥 싸는 자세도 섹시할 것 같아서 기분이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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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필요할 때 도움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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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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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렸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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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찬우 마음에 상처를 주는 발언이었으나 유아린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내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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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닭갈비! 시켜! 적어도 그걸로 먹자고! 사리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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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뭔 사리야! 볶음밥을 추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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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내가 키가 커서 핸드폰을 든 손을 번쩍 들자 유아린은 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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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뺏어 보겠다며 깡충깡충 뛰는 게 대략 두 번. 서예린이었다면 여기서 울상이 되어서는 짜증 냈겠으나 유아린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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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색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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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나무라도 타는 것처럼 성큼성큼 내 위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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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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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뜬금없는 상황에 순간 힘이 풀릴 뻔했으나 내가 누구인가. 시험 기간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홈트를 하고 있는 김우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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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기간에는 홈트가 왜 그렇게 재밌던 건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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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단단한 고목처럼 버티고 선 나는 손을 뒤로 빼면서 유아린이 잡지 못하게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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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거리며 올라탄 유아린은 내 목에 손을 두르고, 다리를 허리에 감아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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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버둥거리다가 숨도 거칠어졌고, 땀도 살짝 흘렸는데 거기에 서로의 뺨도 슬쩍 닿는 게 기분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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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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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꾹 다문 채 매달려 있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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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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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어서 묻자 녀석은 꿍얼거리듯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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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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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내려와. 찬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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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치즈 닭갈비 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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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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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안 내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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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한 양념에 어딜 치즈 같은 양놈들 것을 넣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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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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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냥 먹어도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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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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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해진 나는 얼른 유아린을 떼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녀석의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고 밀어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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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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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신음만 들을 뿐 결국 떼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유아린이 더 힘을 줘서 완전 밀착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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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어! 치즈 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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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으나 유아린은 여전히 내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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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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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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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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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사리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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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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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거 재밌어서 즐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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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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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었는지 드디어 내려온 유아린. 가쁜 숨을 내쉬면서 가까스로 유아린을 떼어냈고, 녀석은 내 핸드폰을 받아서 주문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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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온 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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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똥쟁아. 너 때문에 치즈 닭갈비 먹게 생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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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남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일단 똥부터 싸재낄 생각하냐고 따지고 들자 찬우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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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속이 안 좋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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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힐끔 우리 눈치와 방 공기를 보고 짓는 어색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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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집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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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뭔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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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게 좋아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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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눈치챈 듯 기묘한 말을 흘리는 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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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녀석은 무시한 채로 이미 사이드 메뉴까지 시키고 있는 유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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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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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일단 화장실로 간다. 가서 세수도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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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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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들어가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원래라면 쾌쾌해야 할 화장실이 여전히 쾌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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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놈은 냄새도 안 나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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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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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까 휴지가 거실에 있지 않았는가. 왜인지 묻지는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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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휴지가 없으면 정찬우는 어떻게 뒤처리를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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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도 없고, 뒤처리할 방법도 없다. 근데 물만 내린 걸 보면 그냥 볼일을 보지 않았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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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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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우가 의도적으로 나와 유아린만 있을 수 있게 자리를 비켜줬다는 걸 알게 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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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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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복잡한 술자리가 찾아왔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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