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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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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리스에 누운 채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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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은 같은 샴푸 쓴 게 맞는 건지 향긋한 살 내음을 풍기고 있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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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있는 그녀를 쳐다보면서 나는 살짝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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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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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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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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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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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조금 살살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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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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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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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잠들기엔 이른 시간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잡고 있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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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아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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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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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손톱으로 손등을 누르는 최이서.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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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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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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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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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지 못한 최이서가 슬며시 눈을 뜨면서 나를 노려본다.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반응에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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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트레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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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미지 트레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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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고 가정했을 때, 해줄 말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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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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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와는 조금의 진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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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들겨 맞고, 콘돔 뺏기고, 찜닭 먹고, 술 마시고, 영화 좀 보다가 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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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뭐 멜로 이런 게 아니라 액션을 본 덕분에 전투에 대한 갈망만 몸속에 남아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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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둘이 같은 방에 있음에도 몽글몽글한 분위기는 이미 창문을 통해 환기되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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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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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내면서 다시 눈을 감는 최이서. 나름대로 상황극이었는데 별로였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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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왼쪽 종아리가 간지러워서 긁으려고 최이서의 손을 놓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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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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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 손을 낚아채며 가져온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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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종아리 간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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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서 반대 손으로 긁으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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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을 감은 채 심드렁하니 대답한다. 관계는 가지지 않는데 손은 또 놓아주지 않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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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반대 손으로 종아리를 긁은 다음 다시 누웠다. 여전히 최이서는 내 손을 잡고 있었는데, 딱 거기까지라고 했기에 더 앞으로 나서진 않으나 물러서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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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잡은 두 손은 절대 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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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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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잔뜩 몸에 들어간 흥분을 억지로 잠재우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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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올까 모르겠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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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려고 노력은 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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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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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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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다가 일어나니까 미소녀가 몸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안기고 있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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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나 만화에서 클리셰로 등장하는 상황이니 솔직히 조금 기대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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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칼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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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고 보니 최이서는 군인처럼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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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찜질방에서 잘 때도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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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게 잠들어 계신 최이서의 손을 조심스럽게 놓고 시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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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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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건 최이서가 옆에 있어서 긴장해서라는 것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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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최이서는 긴장해서 늦게 자기라도 했던 건지 아직 곤히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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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근새근 숨소리를 흘리며 자고 있는 모습은 사진이라도 찍어두고 싶을 정도로 고왔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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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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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서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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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전 여친의 샴푸향이 내 머리에서 나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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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흥분은 차분히 가라앉고, 냉정해진 나의 이성은 아침을 고민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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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참 미친놈이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최이서가 유혹했다고 해도 여자친구도 아닌 애랑 그냥 막 하려고 했던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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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근데 내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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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한 사람이 잘못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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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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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 이성을 회복한 나는 얼른 씻으러 화장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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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선호하는 나였긴 해도, 어제 찜닭을 먹었으니 오늘 아침은 빵집에 가서 샌드위치 같은 거라도 사올까 고민하며 샤워를 마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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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는지 멍하니 매트리스 위에 앉아 있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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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스한 머리가 꽤나 귀엽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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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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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말리면서 최이서를 부르자 그녀는 어벙하게 나를 올려다본다. 그러곤 화들짝 놀라면서 이불로 몸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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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 그,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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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부끄러워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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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안 부끄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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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제 본인이 했던 행동들 떠올리면서 후회하고 있는 게 딱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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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미 한 차례 겪었던 일이라서 크게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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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으로 빵 사올 건데. 뭐 좋아하는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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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무거나 사와도 괜찮아. 다 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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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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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만 슬쩍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문을 닫고 잠깐 기댄 채로 기다리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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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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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들려오는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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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 미쳤어어어어! 미친년! 미친년! 미친녀어어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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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그냥 죽어! 제발 죽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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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찢어지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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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과 매트리스를 팡팡 때리면서 소리 지르는 최이서의 반응을 즐긴 후, 그대로 빵집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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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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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씻었는지 어색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던 최이서. 옷도 내가 준 티셔츠가 아니라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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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밥 먹고 코인빨래방 다녀왔던 게 최이서 입장에선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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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사 옴. 우유도 사 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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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종이봉투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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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프로필을 찍으시는 당신을 위한 야채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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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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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무가당 플레인 요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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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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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 모든 노력을 한 번에 터트릴 초코 도넛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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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세 개 다 건네자 최이서는 멍하니 내가 준 걸 보더니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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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럴 거면 앞에 두 개는 왜 산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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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노력하다가 포기하는 게 주변에서 보기엔 제일 재밌잖아. 다이어트하겠다고 닭가슴살 먹었는데 결국 1시간 뒤에 치킨 시켜 먹잖아? 그럼 닭가슴살도 먹고 치킨도 먹고 다이어트하기 전보다 더 먹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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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지 않은 얘기를 하면서 빵 포장지를 뜯는다. 방금 구운 거라서 따끈따끈한 게 맛있어 보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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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서 먹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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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8시 30분. 오늘 9시에 강의가 있어서 아무래도 지금 먹기보단 강의실에 일찍 가서 먹는 게 나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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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오늘 너 5시간 공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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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거 다시 떠올리게 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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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5시간 공강의 지옥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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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콕 찝어서 말해주는 최이서를 노려보며 빵을 챙겨 든다. 그러다 문득 최이서의 지금 상태를 보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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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좀 그러면 모자랑 마스크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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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최이서가 단발이라서 머리는 금방 말렸지만, 화장을 못 했으니 좀 애매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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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원래 잘 안 하긴 하는데…… 그래도 빌려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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쌩얼을 보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최이서 같은 경우는 화장 자체를 잘 안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는지 몰라도 크게 거부감이 없는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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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내 모자와 마스크를 쓴 최이서와 함께 집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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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뛰면서 가니까 20분 만에 도착했다. 집이 대학이랑 가까우니까 이런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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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구석에 자리 잡은 뒤, 빵을 꺼내 든다. 좀 식긴 했으나 그래도 맛이 나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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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침에 산 거라 그런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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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는 그런 거 상관없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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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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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이미 공장에서 가공해서 나온 플레인 요거트를 가지고 신선하다고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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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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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를 하는 최이서에게 일침을 가하면서 놀고 있자니 슬그머니 다가온 찬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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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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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같이 게임했던 서예린이었다. 처음에는 웃으며 인사했으나 자리에 앉아 우리가 빵을 먹고 있는 걸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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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둘이 같이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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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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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당황했는지 목에 사례가 들려 기침하는 최이서. 나는 그런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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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서 빵집에 들렀다 만났어. 얘도 늦잠 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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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그렇구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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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은 웃으면서 슬쩍 내가 먹고 있는 단팥빵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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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 입만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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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절대 주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뭔가 져줘야 할 것 같았기에 슬쩍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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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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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쁜 애들은 먹을 때도 저런 소리를 내는 건가 싶었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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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우니 그냥 봐준다는 생각으로 있었는데 얘가 빵을 입에 문 채로 놓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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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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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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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무슨 전차가 전진하는 것처럼 더욱 팥빵을 입에 넣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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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뭐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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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빵을 끝까지 다 드신 후에야 만족스럽게 웃는 서예린. 뺨에 빵부스러기 묻은 상태인데 입가만 손으로 가리고 조신하게 웃는 거 진짜 딱밤 개 마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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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른 빵이 많아서 크게 상관은 없다. 달라고 했으면 그냥 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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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크림빵을 꺼내 들었는데 서예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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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빵 취향이 좀 올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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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그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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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렸다는 듯 옆에서 바로 거드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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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가서 이상한 이름으로 된 빵이나 케이크만 퍼먹으시니까 그렇게 보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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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이건 올드한 게 아니라 근본이라고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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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빵, 크림빵, 소보로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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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넘치는 빵들을 감히 누가 낡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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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을 거의 다 먹었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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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서예린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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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으로는 밥 먹어야겠네? 빵 먹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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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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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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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점심까지 근본 없는 빵을 들이밀고 있나. 아무리 근본 삼총사 빵이 있어도 든든하고 뜨끈한 국밥이나 제육볶음에 어떻게 비비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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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근본의 근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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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점심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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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딱히 생각나는 게 없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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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이어가는 두 사람.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서예린을 힐끔 보니 특별히 이상한 건 못 느낀 모양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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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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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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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대화하는데 거슬리지 않게 몸을 뒤로 빼고 핸드폰을 확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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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린: 이서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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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린: 너희 집에 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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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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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싸한 감각이 등골을 스쳤다. 여전히 최이서랑 웃으면서 얘기하고 있는 서예린의 한 손이 책상 아래에 있다는 걸 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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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핸드폰 자판을 보지도 않고 이렇게 문자를 날릴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에 감탄함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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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이거 빵 어디서 산 거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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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내용이랑 다르게 방실방실 웃으면서 새침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살짝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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