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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여러모로 독특하고 신기한 일이 찾아올 때가 있는데,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찾아온 비일상적인 상황은 나라는 사람의 센스나 멘탈 혹은 반응속도 등을 시험하는 기분이다.
굳이 따지자면 오늘이 나에겐 바로 그런 날이 아닐까 싶었다.
양치질하면서 멍하니 거울을 보고 있었다.
강의도 없는 하루.
3학년 친절한 이웃, 선배님들께서 내 과제를 다 받아가 주신 덕분에 다른 학생들보다 한가한 날.
중간고사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니 공부나 좀 해볼까 싶어 자리에 앉았으나.
어느새 노트북을 켜서 게임 한 판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게임 그만하고 대나무숲 관리를 하다 보니 이번에는 포포의 방송을 보고 있는 내가 있었다.
건공과 자식들이 대나무숲에 포포 방송하고 있다고 도배를 해둬서 글 싹 삭제하고 오랜만에 포포나 보러 갔다.
‘잘 지내네.’
그녀는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얘기를 하는 중이었는데.
예전에 봤을 때보다 훨씬 안색도 좋아지고, 웃음도 많아진 게 보기 썩 괜찮다.
- 네? 이거 점심이냐고요? 아뇨, 아침인데요. 저 늦게 일어나서. 아점 아니에요. 금방 점심 다시 먹을 거라.
[누나 사랑해요.]
- 아이고! 포포사랑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저도 사랑해요?
포포는 후원에 대한 리액션이 다소 담백했다.
그것 때문에 황사장한테 쓴소리 듣긴 했으나, 방송 스타일이라면서 나름 고집을 부렸었지.
“흠.”
평소였으면 그냥 껐을 텐데.
시험공부가 뒤에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느새 나는 김우진 아이디로 코인을 쏘고 있었다.
황사장이랑 있을 때 애들한테 지시한다고 몇 번인가 쏘던 게 남아 있었다.
[파이팅]
- 네에, 김우진 님 10코인 감…….
멍하니 화면을 보던 포포가 눈을 비비면서 보더니 마우스를 잡는다.
내 이력을 검색하는 모양.
- 네? 왜 그러냐고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제 지인 분인 줄 알았어요.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포포는 계속 마우스를 움직인다.
-
아, 점심배달 왔나 봐요. 네? 더 시켰냐고요? 그럼 여기서 그만 먹어요?
-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니니까 콜라 흔들라고 그만해요? 콜라 흔들면 못 먹잖아.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화면 밖으로 나간 포포. 나도 방송을 끄고 다시 공부할 준비를 하는데.
우웅!
- 포포: 오랜만이에요.
톡이 왔다.
-
김우진: 방송해. 애들이 대나무숲에 워낙 도배를 많이 해서 한 번 보러 간 거야.
-
포포: 그럼 도배 더 하라고 해야겠네요.
-
김우진: 제발 그러지 마.
건공과 이 새끼들은 하여간.
-
포포: 저 2학기부터 복학해요. 사장님이랑 같이 복학하기로 했어요.
-
김우진: 그래? 잘하면 볼 수 있겠네.
-
포포: 저는 3학년인데요.
-
김우진: ……누나라고 불러줘?
-
포포: 보면 밥이나 사주세요.
-
김우진: 싫어. 너 기본 5인분이잖아.
간단하게 톡을 나눴다.
어쨌든 윤지랑 작은형이 포포를 잘 케어 해줘서 이제는 별문제 없어 보였다.
채팅들도 잠깐 봤는데 감금당했던 걸로 뉴스에도 나간 적 있어서 그런지 순한 채팅들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아, 진짜 공부해야지.”
노트북을 덮고, 옆으로 치워버린다.
서예린을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처럼. 이번에는 공부를 해서 최이서의 마음에 들 생각이었다.
진짜로 공부를 시작하는데.
똑똑.
누군가 방에 찾아왔다.
“누구세요.”
내 공부를 방해한 누군가를 향해 원망이 쏟아진다.
방금 진짜 집중 잘됐는데.
“선배, 저 규아예요.”
“네, 사람 없으니까 꺼지세요.”
“……선배 드시라고 빵도 좀 사 왔어요.”
“저 빵 안 먹어요.”
“선배? 얘기 좀 잠깐해요.”
“싫다고 이구아나 년아.”
진심으로 짜증 내면서 대꾸하자.
쾅!
문을 한 대 발로 찼는지 큰 소리가 난다.
“얘기 좀 해줘요! 선배 때문에 나 이미지 씹창 났다니까? 양다리 걸치는 거 다 들켜서?”
“그건 네 잘못이고!”
“하아.”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지가 먼저 나 노리고 저격하기도 했고.
“선배…… 사실 선배들 보고 저도 생각 많이 했거든요?”
다소 진지해진 목소리.
“저도, 뭔가 한 사람한테 푹 빠져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그런데…….”
“미안한데 나는 자리 다 찼어.”
“미쳤어요? 선배를 뭘 보고 좋아해. 안현호 선배랑 잘 되게 좀 도와달라고요.”
“…….”
김칫국 마셔버렸네.
한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가자 규아가 진짜 식빵을 하나 떡하니 들고 있었다.
“식빵 센스 엿 같네 진짜. 내 방에 잼도 없는데.”
“저는 식빵 그냥 먹어요.”
뭐가 됐든 일단.
“현호랑 잘되고 싶다고?
내가 그리 묻자 규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힘들 것 같은데.”
현호는 이미 규아한테 마음이 떠난 걸로 보였다.
……근데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양다리 피해자랑 가해자가 많은 거야.
대학이 원래 이런 곳인가.
“그래서 선배한테 조언을 구하러 왔잖아요. 선배는 대놓고 세 다리 걸치겠다고 선언해도 괜찮았으니까.”
“내가 맞은 거 못 봤구나.”
정신 잃을 정도로 맞았는데.
그때.
“우진아?”
복도 끝, 계단에서 올라오며 들린 최이서의 목소리.
나는 반사적으로 규아를 넘어뜨리려 했으나, 녀석은 어느새 요령 좋게 뒤로 쭉 빠져 있었다.
“……눈치 좋은데?”
“한두 번 당하나요.”
“뭐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최이서에게 나는 잠시 고민하다 확실하게 설명해 준다.
“복도 바닥이 더러워서 좀 닦으려고.”
“음?”
“그래서 1학년 애들한테 걸레 좀 가져오라고 했는데, 애들이 규아를 데려왔네? 하하.”
“시발 새끼.”
옆에서 규아가 욕했으나 상관없다.
인성 쓰레기라고 들어도 최이서한테 오해만 받지 않으면 된다.
“재미없고, 무례해. 규아한테 사과해.”
하지만 최이서는 오해는커녕 나를 혼낸다.
“죄송합니다.”
“그럼 도와주시는 거예요? 약속했어요?”
딴말하려고 했는데 바로 도망치는 규아.
“뭘 도와줘?”
의아해하는 최이서에게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안현호가 규아를 노렸었는데 포기했고. 이제는 반대로 규아가 안현호를 노리고 있다고.
그걸 듣자 최이서의 표정이 밝아진다.
“잘됐네! 현호도 연애하면 좋지!”
“……떼어낼 기회라고 좋아하는 거 봐.”
“큼큼.”
어색하게 헛기침한 최이서가 가져온 도시락통을 슬쩍 내민다.
“공부한다며. 기특해서 밥 해왔어.”
“오?”
“삽겹 필라프야. 김치볶음밥 같은 거 좋아하는 건 아는데. 그건 평소에 자주 먹을 것 같아서.”
쌀 좋아하는 내가 자주 못 먹는 쌀음식을 사 온 건가.
솔직히 볶음밥이랑 필라프 차이점은 잘 모르겠지만.
“고마워, 맛있게 먹을게.”
“방금 한 거니까 식기 전에 먹어.”
“직접 만든 거야? 이서야……!”
감동해서 뭉클하니 그녀를 쳐다보자, 최이서가 멋쩍게 팔짱을 낀다.
“아직 나는 네가 세 사람을 다 품겠다는 건 받아들이지 못해.”
“…….”
“그러면서도 네가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건 변함없으니까.”
반대로.
“네가 나를 고를 수 있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
“그리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심보도 있고. 어쨌든 나는 도서관에서 공부할 거니까 일 있으면 연락해.”
“내 방에서 같이 공부하지 왜? 도서관 사람 많고 좀 그렇잖아.”
내 제안에 최이서는 힐끔 방문을 보더니 여전히 팔짱 낀 채로 묻는다.
“너 딴짓 안 할 자신 있어?”
방금 공부하다 게임하고, 공부하다 방송보긴 했으나.
“안 할 자신 있는데?”
지금은 자신 있다.
근데 최이서가 옆에 앉아서, 어깨 한두 번 부딪치면 그때도 자신 있을지는 모르겠다.
“눈 보니까 아니야.”
그리 말하고 휙 돌아가는 최이서.
결국 최이서를 붙잡는 데 실패한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엄청 배고프진 않으니까 공부 좀 하다가 먹을 생각.
“아자!”
열심히 공부 좀 하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는데.
덜컹!
문이 열리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유아린이 들어왔다.
“야, 나 잠깐 샤워 좀 하고 간다.”
“……뭘 했는데 땀이 그렇게 나냐?”
“농구. 애들이 같이 하자고 해서 했는데 생각보다 재밌네.”
농구를 여자끼리 했을 것 같진 않은데. 그럼 남자애들이랑 한 건가?
어느새 화장실로 들어가 홀딱 벗은 유아린이 고개만 빼꼼 내민 채로 말한다.
“여자농구 동아리 애들이랑 했어. 하여간 저 새끼는 내로남불로 질투하는 것 좀 봐라.”
“크흠.”
쾅!
문을 닫고 샤워를 시작한 유아린.
물소리가 뭔가 야릇하게 느껴져서 묘한 감각을 느끼는 와중.
어느새 펜을 놓고 있는 내가 있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야, 수건 좀 줘.”
흠뻑 젖은 유아린이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거기 수건걸이에 있잖아.”
“한 장이잖아. 게다가 이거 살짝 젖어있어.”
“아하.”
나는 수건을 건네주면서 슬쩍 화장실 안으로 눈을 돌리려 했는데 녀석이 냅다 문을 닫아버렸다.
“후, 안 되겠네.”
남의 집에서 샤워하면 집주인한테 값을 치러야 할 거 아닌가.
혼내줄 심산으로 화장실 문 앞에 둔 갈아입을 속옷이랑 옷을 가져간다.
‘오, 검은 팬티.’
추억의 물건이지 않은가.
침대 위에 녀석의 옷을 가져다 놓자 다시 문이 열렸을 때, 유아린의 당혹스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내 옷 어딨어.”
고개를 내민 녀석은 내 침대 위에 자기 옷이 있는 걸 보곤 입술을 으득 문다.
“이 새끼가…….”
“갑자기 남의 집에 와서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하시면 곤란해요.”
“줘.”
“주세요겠지?”
“개자식아, 주세요.”
“어휴, 혀 긴 것 좀 봐라. 주인님 추가.”
“…….”
빠득하고 녀석이 이빨을 깨무는 소리가 들린 기분.
결국.
“후, 후우으!”
수건 한 장으로 가슴을, 나머지 한 장으로 다리 사이를 가린 채로 나온 유아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부끄러워하고 있다.
“개색기. 내가 굴복할 것 같아?”
쭈뼛쭈뼛 밖으로 나와서는 옷을 가지러 온다.
보기 좋다.
나는 그냥 가만히 녀석이 지나가는 걸 보고 있는데.
“훼이크다 이 새끼야!”
갑자기 수건 두 장을 내 얼굴로 집어 던진다.
다급하게 수건을 치웠을 땐, 이미 유아린이 옷을 챙겨 들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나체의 뒷모습을 보긴 했으니 이득 본 느낌.
“너 이거 입고 나가면 뒤졌어!”
녀석의 경고에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하는 와중.
벌컥.
또 현관문이 열리며 안으로 들어온 한 사람.
“우진아! 큰일이야 큰일! 대나무숲에서 이제 나를 섹x좌라고 안 불러줘엇!”
서예린이 울상이 되어서는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온다.
밖으로 나가려던 나한테 그대로 몸통박치기.
덕분에 뒤로 넘어지면서 깔리게 됐다.
“우지나아아! 나 어떡해에! 이제 다들 나보고 컨셉충이라잖아앗!”
“아니, 맞잖아.”
달라붙어서 도와달라고 비벼대고 있는 서예린.
일단 옆으로 밀어서 떼어놓는다.
이제 곧 유아린이 나오면 뒤지게 맞을 거라서 피신해야 되는데.
“계세요?”
또 또.
문밖에서 누가 찾아왔다.
평소에는 안 이런데 오늘 무슨 날인가?
문은 잠겨 있지 않으나 짜증 내며 벌컥 문을 연다.
“아, 누구세요?!”
여기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펼쳐질 때가 찾아온다.
그때 우리네 삶은 나라는 개인을 시험하듯 변수에 대응하라고 요구하니.
지금이 딱 그랬다.
그렇기에 오늘은 기이한 날이었다.
“……엄마?”
문밖에 서 있는 엄마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리가 굳었고.
“아들, 개집인 줄 알았어!”
부자만 할 수 있는 농담이라며 깔깔 웃어대는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