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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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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른 아침.
어차피 하루 조졌겠다, 그냥 아침밥 먹고 느긋하게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흐흥, 흐흐음.”
작은형이 데려다준다고 해서 옆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뭔 노래를 부르는 거야.”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일본어 노래를 형에게 묻자, 의아해하며 쳐다본다.
“음? 너 애니 같은 것도 자주 보지 않았니? 이거 몰라?”
“보긴 하는데 오프닝 같은 건 건너뛰지. 애초에 가사도 이해 못 하는데.”
“오프닝이랑 엔딩 다 봐라. 그런 게 진짜 즐기는 사람이야.”
“형은 가사가 무슨 뜻인지 알아?”
“모르지.”
그러면서 뭘 흥얼거리고 있는 건가. 자신이 하는 말이 일본어로 이상한 말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근데 형이 애니 노래 같은 걸 좋아했나? 옛날에는 별 관심 없던 거 같은데.”
내 기억이 맞으면 오히려 애니를 별로 안 좋아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랬지. 근데 우리 여친님이 좋아하시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더라.”
“…….”
“우진아, 내가 충고하는데-.”
“하지 마. 듣기 싫어. 딱 봐도 존나 오글거리는 말하려고 하겠지.”
“사랑이란 말이다?”
“하지 말라고 했지.”
“쳇, 형의 연애관을 듣는 순간 형이 그렇게 멋진 사람인 줄 몰랐다고 할 텐데.”
“내려줄래? 나 그냥 버스 타고 갈게.”
그제야 입을 꾹 다문 작은형.
하여간 큰형이랑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렇게 한동안 가다가 작은형은 또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근데 우진아.”
“왜 또.”
이번에도 사랑 타령하는 순간 내려달라고 말하자고 다짐했으나 그건 아니었다.
“너희 과 애들 중에 통통 튀는 인재 없냐? 인방 시킬만한 애로.”
“인터넷 방송?”
“응, 예쁘면 좋긴 한데. 요즘은 얼굴 가리거나 버튜버로 나갈 수도 있거든? 그래서 그냥 매력적이고 재치만 있으면 돼.”
“형 사업한다는 그거야?”
“맞아, 인방하는 애들 관리하면서 키우는 거지. 우리 여친님이 워낙 인지도가 높은 인방여신이라 주변 방송인들 다 흡수하면서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지.”
“흐음.”
“물론, 아무나 받진 않고. 나랑 윤지가 검수는 좀 해보겠지. 논란 한 번 터지면 매장되는 곳이니까 과거도 좀 중요하고.”
“내가 그쪽은 별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기껏해야 기억나는 건.
“우리 학교에 포포라고 있었어. 건공과 여신이라고 인터넷방송 하는 애.”
내 말에 형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끄덕인다.
“알아, 너희 학교에서 유명하지?”
“건공과는 거의 그 사람 빠돌이들밖에 없어. 대나무숲에 도배를 얼마나 하는지.”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방송 잘 안 한다고 얘기가 나왔었는데.
“포포 그 사람도 우리가 원래 영입하려고 했거든. 예쁘고, 입담도 좋아. 그런데 먹는 것도 복스럽고 많이 먹으니까 인기가 많거든.”
“으음.”
축제 때도 제육볶음 뿌시겠다며 20인분 시켰던 게 기억난다.
바로 현피 뜨자고 할 뻔했었지.
“근데 다른 소속 있다고 그냥 거절하더라. 좀 그렇긴 해도. 결국 본인이 선택한 거니까.”
“그 사람 요즘은 방송해? 방송 안 한다고 막 얘기 나왔던 거 같은데.”
대나무숲에 건공과 익명 친구들이 울면서 얼른 돌아오라고 글 쓰고 그러지 않았는가.
어떤 이상한 놈은 나한테 포포가 적은 게시글 내역 좀 보내달라고 요구까지 했었다.
“방송하지. 대학생이니까 개인 사정 때문에 좀 쉬다가 다시 복귀했어. 요즘 잘 나가.”
“그렇구나.”
역시 별일 아니었구나.
하여간 익명 친구들 호들갑은 알아줘야 한다.
‘최근 들어가지를 않았네.
새 학기가 시작되어 대나무숲도 활발할 텐데 최근 내 사정 때문에 좀 소홀히 하긴 했다.
유아린을 믿고 있긴 했으나, 사실 그것도 그냥 믿는다고 말하고 일을 다 떠넘긴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안하네.
나중에 따로 얘기를 해서 사과를 한 다음에 한동안 내가 관리하던가 아니면 아예 관리인 졸업을 시켜줘야겠다.
‘생각난 김에 지금 확인 좀 해볼까.
어차피 작은형도 더 할 말은 없어 보였기에 대나무숲을 켜봤는데.
“……음?”
최신 글이 2월 1일에서 멈춰있다.
- 익명69: 섹x!
우습게도 서예린이 쓴 섹x가 마지막 글이었는데 중요한 건 지금 2월 중순이라는 거.
뭔가 싶었는데 그 위에 보이는 처음 보는 공지 하나.
- 익명59(관리인1호): 관리자가 방치해서 나도 관리 안 함 ㅅㄱ
“…….”
그러고는 게시글 전부 동결시켜서 아무도 글을 못 쓰는 상태로 해두었다.
‘그래, 네가 너무 조용하다 싶었다.
생각해 보면 유아린 성격상 내가 관리를 안 하고 있는 걸 그냥 두고 볼 리가 없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였다.
지난번에 관리인 1호니까 권한 좀 올려달라고 해서 올려줬더니 이 지랄을 해뒀구나, 유아린.
툭.
바로 대나무숲 차단을 해제하고 공지를 올린다.
- 관리자: 우리 가게 정상영업 합니다.
이러면 알람이 가겠거니 싶어 조금 기다리려고 했는데.
- 익명90: 섹x!
- 익명69: 섹x!
섹x 듀오가 동시에 등장하면서 대나무숲이 다시 가동됨을 알려온다.
익명90보다 늦었다고 벌써부터 앙탈부리듯 화내고 있을 서예린이 눈에 훤히 보인다.
- 익명209: 허억! 허억! 숨이 쉬어진다!
- 익명367: 드디어 대숲! 물어보고 싶은 거 진짜 많았는데!
- 익명178: 시발 관리자야 뒤질래? 잘못하면 질식할 뻔했잖아.
- 익명93: 다 괜찮으니까 다시 닫지만 마라. 이거 없으니까 신입생들 교육하기 존나 귀찮더라.
↳ 익명228: ㅇㅈ; 대숲에 즐겨찾기 해놓은 정리글 보라고 하면 되는데 그거 못 보니까 설명하는데 정신 나가는 줄.
↳ 익명398: 신입생들도 진짜 답답했어요. 뭐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수가 없고.
↳ 익명407: ㅇㅈㅇㅈ
↳ 익명84: 와 이제 400번대까지 있네. 그냥 레게노.
↳ 익명234: 300번대가 건공과 전용이었는데 이제 그것도 안 될 듯.
- 익명301: 건공과 포포는 무적이고 신이다.
↳ 익명302: 건공과 여신 포포!
↳ 익명303: 건공과 여신 포포!
↳ 익명304: 나는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도 폴라포임!
↳ 익명305: 나는 과일도 포도만 먹음!
↳ 익명11: 병신들 신난 거 봐라.
- 익명11: 관리자 시발 놈아. 적당히 해. 책임감을 가지라고.
↳ 익명198: 관리인 1호가 문제임. 관리자가 1호 묶어두고 촛불 떨구고, 자x기구로 쑤시고, 괴롭혀야 함.
↳ 익명59(관리인1호): 씨발, 넌 고소다 개새끼야.
↳ 익명198: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신 안 그럴게요. 저 돈 없어요 ㅠㅠ
- 익명44: 싱글벙글 오늘의 괴담. 이 이야기는 5년 전 가현대에서 있었던 일인데…….
- 익명243: 대나무숲 못 쓰는 덕분에 그래도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정말 감사해요.
↳ 익명263: ? 애니좌가 친구도 만들었음?
↳ 익명243: 히메쨩, 사쿠라쨩, 하나쨩, 유키쨩, 하루카쨩-
↳ 익명11: 씨이발 친구는 같이 대화할 수 있는 게 친구다 좆병신아.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으니까 이제 모니터 속 여자까지 지랑 친구인 줄 아네.
↳ 익명94: ㅈㄴ 꼴 받는 게 ‘짱’도 아니고 ‘쨩’이라고 불러서 귀여운 척하는 것 같아서 더 꼴 받음.
↳ 익명408: 11님 너무 심하신데; 친구로 여길 수도 있죠 뭘 그렇게까지 욕을 함.
↳ 익명11: 좆 까시고요. 그럼 니 야동 보면 야동 배우가 니 여친이세요? 그럼 닌 하루 종일 여친 따먹히는 거 보면서 딸치시네요? 니가 야동에 등장할 일은 없으니까.
↳ 익명408: …….
- 익명7: 안녕하세요. 대나무숲 처음 이용하는데요. 이건 제 아는 친구 얘기인데, 걔가 친하게 지내는 여자 후배가 있어요. 근데 걔가 주변에 남자가 많은 것 같던데…….
↳ 익명117: 그냥 걸레 아님?
↳ 익명185: ㅇㅈ. 니가 걔 때문에 밤잠을 못 이룰 때, 걔는 다른 남자랑 침대에서 뒹구느라 못 잠.
↳ 익명426: 와, 이제부터 내 꿈은 저 여자 후배다.
↳ 익명64: 근데 숫자가 7인데 대숲을 처음 이용하네. 교수님인가?
순식간에 글이 쏟아지는 걸 보니 나름 흐뭇하기도 하면서 일단 선을 넘는 것들이나 사진들은 차단하기 시작했다.
우웅!
그때 울려온 핸드폰.
유아린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 정신은 좀 차리셨어요? 드디어 문을 여셨네요?
비아냥거리는 그녀의 말투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야, 그렇다고 대숲을 아예 폐쇄해 두면 어떡하냐.”
- 어쩔 수 없잖아. 학기 초라서 이상한 글들이 엄청 올라오는데 혼자 하기엔 바쁘단 말이야.
“뭐, 그렇긴 하겠지.”
나도 학기 초 대나무숲 관리는 아직 해보지 않았으니까 얼마나 힘들었을지 가늠이 잘 되진 않았다.
- 기숙사에 있어? 따로 학교에서 보이진 않는 것 같던데.
“아니, 밖에 있어. 지금 다시 돌아가는 중.”
- 오늘 공강이었어?
“그냥 본가에 일이 있어서 잠깐 밖에 나갔다 온 거야.”
- 본가에 다녀왔다고?
잠깐 숨을 고르더니 유아린은 곧장 목소리를 높인다.
- 어맛! 우지나! 아린이 실은 지금 배가 넘무넘무 고파서어! 소고기 머꼬 시픈데에!
“씨발!”
나도 모르게 핸드폰 끊을 뻔했다.
- ……존나 너무하네.
상처받았는지 목소리가 작아진 유아린.
아니 근데 이건 내가 피해자 아닌가 싶다.
“네가 사라.”
- 재벌집 막내아드님께서 집에 다녀왔으면 10만 원이라도 주머니에 꽂아주신 거 아냐? 그걸로 밥 먹자.
“방금 너 때문에 귀 테러당했으니까 네가 사라고.”
- 뭔 귀 테러야. 매력 터지는데.
“농담 아니고 핸드폰 터지는 줄 알았음. 무슨 저주라고 생각했어.”
- 줘 터지고 싶지?
당분간 가능하면 연락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투덕거리고 있다.
일단 전화를 끊으려고 했는데.
“우진아, 친구냐?”
옆에 있는 형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친! 앞에 차! 운전할 때 앞을 봐야지 어딜 봐!”
“어어어억?! 뒤질 뻔했네!”
운전 그따구로 할 거야 씨발놈아아아!
아저씨의 외침에 창문을 열고 사과하는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