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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긴 했으나 최이서가 와준 건 든든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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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에 손이 하나 더 늘어난 거기도 했고, 최이서는 체력도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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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최이서가 직접 찾아와준 게 가장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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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 때문에 잠깐 거리를 두고 있던 내 스스로가 어둔하게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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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나랑 같이 짐을 옮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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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방을 혼자 써서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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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든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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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마지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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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이게 마지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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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정리하던 나는 최이서가 마지막으로 가져와 준 짐을 받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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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고마워. 덕분에 훨씬 금방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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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방들은 아직도 짐 옮기는 데 한창인데 나만 벌써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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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 좀 적기도 해서 그래. 특히나 옷 같은 건 좀 사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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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에 있던 옷들을 옷걸이에 걸면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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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살 돈이 어디 있어. 여기 들어온 것도 돈이 없어서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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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의 위기감도 안 느껴지는 걱정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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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에 대해 알고 있는 최이서였으니 단순한 불평불만 정도로만 들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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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뭐 먹을래? 오늘 도와줬으니까 내가 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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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정리는 금방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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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최이서가 말한 걸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옷이 별로 없어서 정리가 빨리 끝났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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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부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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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럼 메뉴도 내가 정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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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가위바위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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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달라지는 게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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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같이 밥 먹을 때마다 메뉴 정하기로 가위바위보 하던 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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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최이서랑 이런 관계가 될 거라고는 정말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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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끔 놀러 오지도 못하겠네. 기숙사는 외부인 출입 금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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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안 돼. 그냥 놀러 오면 되는 거지. 대상이 형한테 들었는데 그런 건 그냥 쉬쉬하면서 한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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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들어오면서 벌써 이상한 것만 배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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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살짝 웃고 있는 걸 보니 나중에 놀러 올 생각이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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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오래 걸려? 좀 도와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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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들을 꺼내서 정리하고 있자니 최이서가 슬쩍 다가왔으나, 나는 손짓하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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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쉬어라. 이거 어차피 금방 정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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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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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내가 쓸 침대에 눕는 최이서. 매트리스는 버렸지만, 이불과 베개는 원래 쓰던 거였기에 익숙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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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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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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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에 얼굴 박고 말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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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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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보인 채로 누운 최이서. 그녀를 내버려둔 채로 나는 계속 방 정리를 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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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우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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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거 아닌가 걱정했을 정도로 조용하던 최이서가 작게 내 이름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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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당이라도 챙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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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발적으로 와서 고생해 준 최이서한테 비싸고 맛있는 거라도 사주자고 다짐하고 있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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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내가 사 온 콘돔은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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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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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상자를 까던 나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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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가 따가워서 슬쩍 눈치를 보자, 어느새 얼굴만 살짝 돌린 채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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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모르겠지만, 변명은 불가한다는 일종의 시위처럼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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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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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삼키며 목울대가 일렁이는 게, 내 감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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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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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가 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일단 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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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가 나가고 바로 들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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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가 오윤지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오윤지에 관련된 얘기를 하는 건 썩 좋아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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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오해를 할 수도 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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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어디 잃어버린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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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으쓱이면서 평소와 다를 거 없이 대꾸하고, 다시 짐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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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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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이 박수치면서 “너, 연기 재능 있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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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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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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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최이서는 내 거짓말을 간파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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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일어난 그녀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팔짱을 끼며 이제 노골적으로 나를 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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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이 콘돔을 잃어버렸다고? 내 생각에 콘돔 같은 건 짐 옮기면서 우선순위를 꽤 높게 쳐뒀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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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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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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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갑작스런 사태가 워낙 많으시잖아. 그래서 무조건 챙겼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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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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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여기서 갑자기 최이서가 나한테 하고 싶다고 말하면 바로 꺼내 들 콘돔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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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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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중요한 건 최이서가 사 왔던 콘돔과 다른 브랜드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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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가 바보도 아니고 다른 브랜드를 꺼내면 의심할 게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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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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빤히 노려보고 있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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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정리하던 내가 천천히 일어나자, 그녀의 시선도 나를 따라 위로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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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전 여친이 있었던 테크닉을 발휘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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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야, 저녁 뭐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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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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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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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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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 썼어. 예린이? 아님 아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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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일단 확실한 건. 여기서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꽤나 큰일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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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낚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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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 때도 몇 번인가 겪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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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니까 말하라고 해놓고 말하면 그날 뒤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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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지 관련 얘기를 하고 싶진 않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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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도 좋은데 괜히 오윤지 얘기해서 또다시 분위기가 다운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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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가 은근히 내 눈치를 보면서 또 거리를 두려고 할까 봐 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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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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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설득력 있는 말을 떠올린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후, 진지하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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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야, 난 아직 따로 누구도 사귀고 있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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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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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진지해지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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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은 내게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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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는 지극히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니까, 여기선 논리로 이겨 먹고 들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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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도 아닌 사람이랑 섹x 하는 건 옳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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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야, 도대체 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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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내 멱살을 잡고는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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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배운 기술인지 아주 깔끔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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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이고 상식적인 발언으로 승부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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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다고 외쳤으나, 최이서가 어이없다면서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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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투성이인 존재가 논리적인 말을 하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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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서예린이면 속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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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무시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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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멱살을 놓아준 최이서가 그대로 위에 올라탄다. 그러고는 빤히 내려다보는 삐진 느낌이 딱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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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말해봐. 누구랑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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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말해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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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랑 쓴 건 아니야. 그냥 창문 밖으로 던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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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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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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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밖에서 들려온 세 사람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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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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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지난번에 술자리에서 뵀던 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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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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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모임에서 봤던 영문과 철수와 영희 그리고 주희 선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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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몰라도 주희 선배는 신경질 부리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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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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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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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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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위에 올라탄 최이서를 본 철수와 영희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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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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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실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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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부끄러워하며 밖으로 도망쳐 버렸고, 주희 선배는 입을 떡 벌린 채로 멍하니 보시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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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미, 미,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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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붉히신 다음, 뒷걸음질 치면서 문을 닫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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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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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벌어진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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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를 올려다보자, 녀석도 당황했는지 몸이 굳은 채로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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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차라리 잘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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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잘됐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삑사리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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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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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배 예린 선배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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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니까. 와…… 저분은 2학년 과대 분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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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건물 1층에 있는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철수와 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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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녀온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15년, 사귀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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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금슬 좋은 부부라고 해도 될 둘은 소곤소곤 거리면서 방금 전 자신들이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에 대해서 곱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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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 선배 소문 엄청 안 좋다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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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관계가 복잡해서 소문이 안 좋은 거 아니야? 선배들이랑 싸운 것도 그런 이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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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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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두 꼬맹이가 떠들어도 신경도 쓰지 않고 소파에 앉은 채 멍하니 땅만 쳐다보고 있는 민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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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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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가 왔다는 건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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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자신이 김우진을 도와주려 했으나, 최이서가 도와주는 걸 보고 한 걸음 물러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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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것들이 방에서 안 나오는 걸 보고 묘하게 초조해진 민주희가 일부러 철수와 영희에게 김우진한테 인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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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서까지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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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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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 유아린이랑 즐기던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최이서랑도 그런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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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기숙사 방음이 썩 좋지 않아 밖에서 ‘콘돔’이라는 단어도 노골적으로 들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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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에 초조해진 민주희가 저도 모르게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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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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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희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입술을 꾸득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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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나답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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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최근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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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희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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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과 연장으로 고등학교를 살아왔으며, 대학에서는 반대로 장학금을 위해 공부에 매진 해온 여인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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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거에 씌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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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고른 민주희는 차분하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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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까지 당황해서 홍당무가 됐던 얼굴이 차분해지며 날카로운 눈빛이 옆에서 떠드는 꼬맹이들에게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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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이상한 소문 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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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가십거리를 부풀리고 있던 철수와 영희에게 쏟아낸 노골적인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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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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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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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잔뜩 겁에 질렸는지 냉큼 대답하고는 얼른 자리에서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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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이서가 짐을 옮기던 걸 다른 기숙사생들도 봤으니 소문이 안 날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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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 업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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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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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김우진은 신경 쓰지 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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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후배였고, 지금도 좋은 후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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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난봉꾼 기질이 있지만, 정작 여자들도 그걸 알고 있는 걸로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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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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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일은 그냥 잊어 버리자고 다짐하며 민주희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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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내일 영화라도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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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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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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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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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에 있는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온 민주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같은 영화를 기다리는 두 사람을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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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아직 자신을 못 알아차린 모양이었기에, 모자를 좀 더 푹 눌러썼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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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는 애가 왜 이렇게 센스가 없냐? 카라멜 팝콘으로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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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리는 김우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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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야. 소금맛이 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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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내면서 팝콘을 먹여주는 유아린에게 계속 시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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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팝콘이 뭔 소금맛이냐고. 그럴 거면 후추맛은 왜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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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고 다 처 먹지나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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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이나 맛있겠네. 아, 강제로 먹이지 말라- 우움? 우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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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핳, 이거 미친색기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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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개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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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에 얼굴 박지 마! 먹여줄 테니까 걍 입이나 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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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의 대화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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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지끈거리는 민주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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