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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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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긴 했으나 최이서가 와준 건 든든하긴 했다.
당장에 손이 하나 더 늘어난 거기도 했고, 최이서는 체력도 좋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최이서가 직접 찾아와준 게 가장 고마웠다.
오윤지 때문에 잠깐 거리를 두고 있던 내 스스로가 어둔하게 느껴질 정도로.
최이서는 시원스러운 미소와 함께 나랑 같이 짐을 옮겨주었다.
“그래도 방을 혼자 써서 좋겠네.”
옷이 든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온 최이서.
“그게 마지막이야?”
“응, 이게 마지막이야.”
안에서 정리하던 나는 최이서가 마지막으로 가져와 준 짐을 받아 든다.
“진짜 고마워. 덕분에 훨씬 금방 끝났다.”
다른 방들은 아직도 짐 옮기는 데 한창인데 나만 벌써 끝났다.
“짐이 좀 적기도 해서 그래. 특히나 옷 같은 건 좀 사야 할 것 같은데?”
상자에 있던 옷들을 옷걸이에 걸면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옷 살 돈이 어디 있어. 여기 들어온 것도 돈이 없어서인데.”
“……조금의 위기감도 안 느껴지는 걱정이네.”
우리 가족에 대해 알고 있는 최이서였으니 단순한 불평불만 정도로만 들리는 모양이다.
“저녁은 뭐 먹을래? 오늘 도와줬으니까 내가 사줄게.”
옷장 정리는 금방 끝났다.
방금 최이서가 말한 걸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옷이 별로 없어서 정리가 빨리 끝났다는 생각도 좀 들었다.
이제 내부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음, 그럼 메뉴도 내가 정해도 되나?”
“그건 가위바위보 해야지.”
“사람이 달라지는 게 없니.”
옛날에 같이 밥 먹을 때마다 메뉴 정하기로 가위바위보 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최이서랑 이런 관계가 될 거라고는 정말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이제 가끔 놀러 오지도 못하겠네. 기숙사는 외부인 출입 금지잖아.”
“뭐가 안 돼. 그냥 놀러 오면 되는 거지. 대상이 형한테 들었는데 그런 건 그냥 쉬쉬하면서 한다더라.”
“기숙사 들어오면서 벌써 이상한 것만 배웠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살짝 웃고 있는 걸 보니 나중에 놀러 올 생각이 충분해 보였다.
“정리 오래 걸려? 좀 도와줄까?”
짐들을 꺼내서 정리하고 있자니 최이서가 슬쩍 다가왔으나, 나는 손짓하며 거절했다.
“좀 쉬어라. 이거 어차피 금방 정리하니까.”
“그래? 그럼…….”
그대로 내가 쓸 침대에 눕는 최이서. 매트리스는 버렸지만, 이불과 베개는 원래 쓰던 거였기에 익숙해 보였다.
“자면 안 된다.”
“으븝.”
“베개에 얼굴 박고 말하지 마.”
“알아, 안 자.”
등을 보인 채로 누운 최이서. 그녀를 내버려둔 채로 나는 계속 방 정리를 하고 있는데.
“근데 우진아.”
잠든 거 아닌가 걱정했을 정도로 조용하던 최이서가 작게 내 이름을 불러왔다.
“왜? 일당이라도 챙겨줘?”
아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발적으로 와서 고생해 준 최이서한테 비싸고 맛있는 거라도 사주자고 다짐하고 있자니.
“지난번에 내가 사 온 콘돔은 어디 갔어?”
“…….”
다음 상자를 까던 나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뒤통수가 따가워서 슬쩍 눈치를 보자, 어느새 얼굴만 살짝 돌린 채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최이서.
낮게 가라앉은 눈동자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 모르겠지만, 변명은 불가한다는 일종의 시위처럼도 느껴졌다.
꿀꺽.
침을 삼키며 목울대가 일렁이는 게, 내 감정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분명.
오윤지가 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 때문에 일단 버렸던 걸로 기억한다.
최이서가 나가고 바로 들어왔으니까.
최이서가 오윤지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오윤지에 관련된 얘기를 하는 건 썩 좋아하지 않겠지.
이상한 오해를 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거? 어디 잃어버린 것 같네.”
어깨를 으쓱이면서 평소와 다를 거 없이 대꾸하고, 다시 짐을 정리한다.
‘존나 자연스러웠다.
서예린이 박수치면서 “너, 연기 재능 있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였으나.
“어디 있어.”
왜일까.
어떻게 최이서는 내 거짓말을 간파한 걸까.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팔짱을 끼며 이제 노골적으로 나를 노려본다.
“김우진이 콘돔을 잃어버렸다고? 내 생각에 콘돔 같은 건 짐 옮기면서 우선순위를 꽤 높게 쳐뒀을 것 같은데.”
“…….”
틀린 말은 아니다.
“응? 갑작스런 사태가 워낙 많으시잖아. 그래서 무조건 챙겼을 것 같은데?”
그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 갑자기 최이서가 나한테 하고 싶다고 말하면 바로 꺼내 들 콘돔은 있었다.
그래, 준비되어 있었다.
근데 중요한 건 최이서가 사 왔던 콘돔과 다른 브랜드라는 거.
최이서가 바보도 아니고 다른 브랜드를 꺼내면 의심할 게 뻔하지 않은가.
‘침착하자.
빤히 노려보고 있는 최이서.
짐을 정리하던 내가 천천히 일어나자, 그녀의 시선도 나를 따라 위로 올라온다.
여기선 전 여친이 있었던 테크닉을 발휘할 차례였다.
“이서야, 저녁 뭐 먹을까?”
“뒤질래?”
“…….”
안 통하네.
“누구랑 썼어. 예린이? 아님 아린이?”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지만 일단 확실한 건. 여기서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꽤나 큰일난다는 거였다.
‘저거 낚시다.
오윤지 때도 몇 번인가 겪어봤다.
괜찮으니까 말하라고 해놓고 말하면 그날 뒤지는 거다.
‘오윤지 관련 얘기를 하고 싶진 않단 말이지.
분위기도 좋은데 괜히 오윤지 얘기해서 또다시 분위기가 다운되고 싶지 않았다.
최이서가 은근히 내 눈치를 보면서 또 거리를 두려고 할까 봐 겁났다.
그러니까.
다른 설득력 있는 말을 떠올린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은 후, 진지하게 답했다.
“이서야, 난 아직 따로 누구도 사귀고 있지 않잖아.”
“……그치?”
갑자기 진지해지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최이서.
흐름은 내게 넘어왔다.
최이서는 지극히도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니까, 여기선 논리로 이겨 먹고 들어가면 된다.
“여자친구도 아닌 사람이랑 섹x 하는 건 옳지 않아.”
“이 새끼야, 도대체 뭐했어.”
바로 내 멱살을 잡고는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최이서.
어디서 배운 기술인지 아주 깔끔하시다.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발언으로 승부했는데?!”
억울하다고 외쳤으나, 최이서가 어이없다면서 한숨을 내쉰다.
“모순투성이인 존재가 논리적인 말을 하니까 그렇지.”
“쳇, 서예린이면 속았는데.”
“너무 무시하잖아.”
내 멱살을 놓아준 최이서가 그대로 위에 올라탄다. 그러고는 빤히 내려다보는 삐진 느낌이 딱 들었다.
“얼른 말해봐. 누구랑 썼어.”
결국 말해야 하는 건가.
“누구랑 쓴 건 아니야. 그냥 창문 밖으로 던졌어.”
“던졌다고?”
“그러니까 그게-.”
그때, 밖에서 들려온 세 사람의 목소리.
“선배! 계신가요!”
“선배님! 지난번에 술자리에서 뵀던 철수입니다!”
“에이, 씨.”
기숙사 모임에서 봤던 영문과 철수와 영희 그리고 주희 선배였는데.
왜인지 몰라도 주희 선배는 신경질 부리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셨고.
“…….”
“…….”
서로 민망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내 위에 올라탄 최이서를 본 철수와 영희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죄, 죄송합니다!”
“정말 실례했습니다!”
그대로 부끄러워하며 밖으로 도망쳐 버렸고, 주희 선배는 입을 떡 벌린 채로 멍하니 보시더니.
“그, 미, 미, 미안.”
얼굴을 붉히신 다음, 뒷걸음질 치면서 문을 닫아주셨다.
“이거 어쩌냐.”
갑자기 벌어진 상황.
최이서를 올려다보자, 녀석도 당황했는지 몸이 굳은 채로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나.
“차, 차라리 잘됐네?!”
뭐가 잘됐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삑사리 났다.
* * *
“그 선배 예린 선배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
“그니까. 와…… 저분은 2학년 과대 분 아니신가?”
기숙사 건물 1층에 있는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철수와 영희.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녀온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15년, 사귀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다.
이제는 금슬 좋은 부부라고 해도 될 둘은 소곤소곤 거리면서 방금 전 자신들이 목격한 충격적인 장면에 대해서 곱씹고 있었다.
“우진 선배 소문 엄청 안 좋다고 했는데.”
“여자관계가 복잡해서 소문이 안 좋은 거 아니야? 선배들이랑 싸운 것도 그런 이유고?”
“…….”
옆에서 두 꼬맹이가 떠들어도 신경도 쓰지 않고 소파에 앉은 채 멍하니 땅만 쳐다보고 있는 민주희.
‘설마 했는데.
최이서가 왔다는 건 알고 있었다.
원래는 자신이 김우진을 도와주려 했으나, 최이서가 도와주는 걸 보고 한 걸음 물러났으니까.
근데 이것들이 방에서 안 나오는 걸 보고 묘하게 초조해진 민주희가 일부러 철수와 영희에게 김우진한테 인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설마 이서까지이이!
결과가 이거였다.
서예린 유아린이랑 즐기던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최이서랑도 그런 분위기였다.
게다가 기숙사 방음이 썩 좋지 않아 밖에서 ‘콘돔’이라는 단어도 노골적으로 들렸으니.
그것에 초조해진 민주희가 저도 모르게 거칠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후우.
민주희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입술을 꾸득 물었다.
‘너무 나답지 않아.
그래, 최근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민주희가 누구인가.
주먹과 연장으로 고등학교를 살아왔으며, 대학에서는 반대로 장학금을 위해 공부에 매진 해온 여인이지 않은가.
‘이상한 거에 씌었던 거야.
숨을 고른 민주희는 차분하니 눈을 감았다.
방금까지 당황해서 홍당무가 됐던 얼굴이 차분해지며 날카로운 눈빛이 옆에서 떠드는 꼬맹이들에게 향했다.
“너희, 이상한 소문 내지 마라.”
벌써부터 가십거리를 부풀리고 있던 철수와 영희에게 쏟아낸 노골적인 경고.
“네, 넵!”
“그럼요 선배!”
둘은 잔뜩 겁에 질렸는지 냉큼 대답하고는 얼른 자리에서 벗어난다.
최이서가 짐을 옮기던 걸 다른 기숙사생들도 봤으니 소문이 안 날 수는 없겠지만.
‘그건 지 업보야.
후우, 됐다.
이제 김우진은 신경 쓰지 말기로 하자.
좋은 후배였고, 지금도 좋은 후배다.
다소 난봉꾼 기질이 있지만, 정작 여자들도 그걸 알고 있는 걸로 보이니까.
‘신경 쓰지 말자.
그날 밤의 일은 그냥 잊어 버리자고 다짐하며 민주희는 점퍼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는다.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내일 영화라도 보러 가야겠다.
* * *
“…….”
다음 날.
시내에 있는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온 민주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같은 영화를 기다리는 두 사람을 쳐다본다.
둘은 아직 자신을 못 알아차린 모양이었기에, 모자를 좀 더 푹 눌러썼으나.
“야, 너는 애가 왜 이렇게 센스가 없냐? 카라멜 팝콘으로 사야지.”
투덜거리는 김우진과.
“개소리야. 소금맛이 진리지.”
짜증 내면서 팝콘을 먹여주는 유아린에게 계속 시선이 갔다.
“아니, 팝콘이 뭔 소금맛이냐고. 그럴 거면 후추맛은 왜 없는데.”
“맛있다고 다 처 먹지나 마라.”
“퍽이나 맛있겠네. 아, 강제로 먹이지 말라- 우움? 우마이!”
“흐핳, 이거 미친색기넹!”
“어우, 개 맛있다?”
“팝콘에 얼굴 박지 마! 먹여줄 테니까 걍 입이나 벌려!”
후배들의 대화를 들으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민주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