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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잠든 유아린과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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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가 흠뻑 젖어서 그냥 내 팔을 베고 누운 두 사람은 눈을 꼭 감은 채 규칙적인 숨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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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업적 달성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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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3p를 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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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서예린이랑 유아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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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하던 둘을 동시에 따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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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나중에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 하루는 참 알차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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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더럽게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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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을 상대해 본 건 처음이라서 정신이 없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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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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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는 개한테 밥그릇 두 개 주니까 번갈아 가면서 정신없이 먹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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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이랑 유아린이 앞에서 전라로 있으니 어느새 정신이 나간 듯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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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갔던 정신이 다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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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타임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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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됐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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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적은 업적이고 이 일은 진짜 무덤까지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밀려오는 피로와 수마에 결국 천천히 눈이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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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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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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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저거 지 혼자 그만뒀다고 편하게 자는 것 좀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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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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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직 묵직한 눈꺼풀을 억지로 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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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팔에 느껴지던 무게감은 사라졌고, 커튼과 함께 창문이 열려 있었으며, 서예린과 유아린은 속옷 차림으로 옷을 입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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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때였다면 얼른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의 몸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뇌에 저장하려고 노력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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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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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체의 모습을 너무 많이 봤기에 그대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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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 먹었다고 존나 여유 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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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가 괘씸했는지 유아린이 바로 발로 밟았지만 졸려서 그런지 딱히 아프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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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진아, 우리 돌아올 때까지 가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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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단추를 잠그면서 경고하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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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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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만 더 자다가 냉큼 돌아갈 생각이었기에 투정 부리듯 대꾸하자 서예린이 ‘쓰읍’하고 혀를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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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랑 같이 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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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일주일은 더 있어야 하잖아. 그때까지 여기서 지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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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기생충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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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자애들이 모르게 얘네 방에서 숨어 사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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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돌아오기 전까지만 있어. 응? 배웅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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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너희 오기 전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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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거리면서 이불을 얼굴까지 덮자 유아린도 강하게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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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괜히 또 이상한 분위기 되면 늦게 가게 될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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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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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혹시나 싶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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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얘네 기다리다가 또 분위기가 야릇해지면 참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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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또 하루 지내게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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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섹x 루프도 아니고 그러다가 계속해서 얘네랑 같이 있게 될 것 같아서 얼른 떠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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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노린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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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섬뜩하게도 셋이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그걸 반기고 있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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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진짜 무서운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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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섹x만 할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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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으, 씨. 다리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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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직 얼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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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를 입으면서 곤혹을 겪는 두 사람의 신음을 만족스럽게 들으면서 눈을 꼭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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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른 애들도 출근할 테니까 좀 더 자다가 점심때 일어나서 집에 가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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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예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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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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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늦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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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 잠도 얼마 못 잤을 텐데 뭘 아직까지 준비를 하나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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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익명69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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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의 날카로운 질문이 핵심을 찌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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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에서 서예린이 나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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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더 이불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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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놓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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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은 위험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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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말하는 거랑 하는 행동이 딱 익명69야. 애니좌 구라고 섹x좌가 너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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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아, 아닌데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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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부터 덜덜 떨리는 걸 보니 이미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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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하여간 얼굴 예쁜 거 말고는 잘하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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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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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냥 좋아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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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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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보면 쟤가 정말 배우에 재능이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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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 오, 오타쿠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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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을 해라. 생각해 보니까 김우진이 지난번에 섹x좌가 우리 과에 있다고 했거든. 그게 너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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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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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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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서예린이 나를 밟고 있는 모양인데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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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어차피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뭐가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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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린은 나름대로 위로를 해보지만 서예린은 무슨 증기기차처럼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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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 이미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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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미친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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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한테 무슨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 이불 밖으로 나가면 두들겨 맞을 것 같으니까 참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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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또 이미지까지. 늦겠다. 일단 가자, 예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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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윽! 관리자 짜증 나! 오늘 도배하고 야짤 올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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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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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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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을 들추면서 바로 쏘아붙인다. 웃긴 게 유아린도 동시에 했다는 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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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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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듯 볼을 부풀린 채로 우리를 번갈아 가며 보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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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켜줘! 어차피 아린이가 내 정체도 다 알았으니까 그냥 나도 관리인 시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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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 들켰으니 억제기는 없다면서 투덜거리는 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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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으니까. 일단 가자. 진짜 늦겠어. 애들도 우리 부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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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들려오는 이서아와 한봄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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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출근해야 됐기에 유아린은 서예린을 끌고 그대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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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어차피 며칠 있다가 다시 만날 테니 굳이 인사까지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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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조심해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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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나 도착하면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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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 줄 알았는데 문 옆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는 인사하는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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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손을 흔들어 준 다음 그대로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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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아직 남아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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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서예린과 유아린의 향이랑 온기가 남아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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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흥분된다기보다는 포근하게 느껴졌기에 나는 차분하니 눈을 감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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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금방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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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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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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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눈이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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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피곤했는데 누군가가 강제로 나를 깨운 느낌이 들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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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시끄럽거나, 누가 흔들고 있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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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정말 조용하고, 차분하니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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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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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눈을 떴다고 해도 될 정도로 나는 고요함 속에서 몸 하나 움찔거리지 않고 눈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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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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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엄청나게 피곤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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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쌀쌀한 바람은 아직 오전임을 알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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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깬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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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나는 눈을 뜬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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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었던 머리도 슬금슬금 사고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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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지독하게 피곤했으며 몸의 피로가 풀리지 않았기에 당장 자라는 듯 눈꺼풀이 무거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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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을 감으면서도 어쨌든 사고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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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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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딱 두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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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서늘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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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아니라, 몸이 지니고 있는 서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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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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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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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다소 지독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담배 냄새가 코에 풍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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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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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지를 찾기 위해 눈동자를 아래로 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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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눈을 감고 깜빡 잠들 뻔했으나 어쨌든 나는 서늘함과 담배 냄새의 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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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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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깜빡이고 있는 흑발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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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내 품에 안겨들 듯 누워있는 그녀는 내가 내려다보기 전부터 이미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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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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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의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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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을 때 크게 놀라지 않는단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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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선배가 마치 내 품에 안긴 것처럼 누워서 이불 속에 파고들어 와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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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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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라서 못 움직이는 건지 아니면 그냥 졸려서 대응할 여력도 없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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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눈을 딱 마주친 주희 선배는 큰 눈을 몇 번인가 깜빡거리더니 그대로 굳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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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처럼 현실을 인지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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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주희 선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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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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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 안겨 있는 주희 선배의 머리에 손을 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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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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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촉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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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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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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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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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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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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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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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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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나는 곧장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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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후 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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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점심시간이기도 했으니 슬그머니 일어나서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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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을 순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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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한 번 보고 아쉬워하며 캐리어에서 모자를 하나 꺼내 푹 눌러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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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아직 자취방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거기 정리도 안 했으니 집에 가서 씻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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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이사 정리도 해야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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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 들어갈 거니까 준비하느라 또 한창 바쁘겠거니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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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고 대충 상태를 확인한 다음,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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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이서: 어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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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톡을 보낸 최이서에게 오늘 가게 됐다고 답하니 피곤하지 않으면 같이 저녁 먹자고 제안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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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쁜 새끼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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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향해 욕을 한 번 박아주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려 내가 사겠다고 답장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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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을 먹게 될 테니 가는 버스에서 좀 더 자고 집에 가서 바로 씻은 다음에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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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이서: 피곤할 테니까 그냥 너희 집에서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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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안이 야해 보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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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제부터 야릇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어서 그런지 최이서의 담담한 제안도 유혹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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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진: ㄴㄴ 배달 음식 질렸어. 밖에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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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이서: 그래, 따로 먹고 싶은 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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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를 고민하면서 버스 정류장에 타이밍 좋게 들어온 버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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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가서 같이 고민해 보기로 정하고, 나는 창밖으로 눈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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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몇 시간은 더 잘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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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결국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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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멀어져 가는 골드원 호텔을 보면서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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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경험을 했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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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될 대학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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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학년이지만 조금은 더 성숙한 김우진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또 뿌듯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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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린이랑 유아린과의 관계는 좀 복잡해지긴 했고, 최이서한테 들키면 죽을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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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됐든 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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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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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희 선배가 나한테 안겨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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