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11 KiB
서란은 배움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어떤 광고 문구를 발견했다.
‘수선계 일반 상식(비정기 강의)
강사 : 축기 도사
지식이란 곧 힘입니다.
험난한 수선계도 이것만 알면 안심!
지금 무료로 수강하세요.’
홍보용으로 진행되는 무료 강의였다.
안내문에는 수행에 도움이 되는 정보나 주의점, 수선계의 역사에 관해서 알려준다고 적혀 있었다.
수도문파 소속 수도자라면 자연스럽게 배우는 일반 상식이지만, 산수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영석도 없고, 동대륙 사람도 아닌 서란에게는 정말로 안성맞춤인 강의였다.
서란은 인파에 섞여서 강의실로 입실했다.
내부에 사람이 많아서 맨 뒷줄에 앉았다.
잠깐 기다리자 축기기 수사 한 명이 강단에 올라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수도자 여러분. 축기 과정 전문 강사, 축기 도사입니다. 오늘 강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한 인사가 끝나자 수강생들이 박수를 쳤다.
강사는 수많은 수도자를 앞에 두고도 차분하게 준비해 온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 경험이 많은 모양인지 관록이 느껴졌다.
강사는 커다란 흑판에 동대륙을 그리기 시작했다.
개략적인 대륙 지형과 그 중심을 차지한 대수림.
대수림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거대문파들과 변방으로 밀려난 약소문파들까지.
강사는 칠판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수선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륙의 지형부터 숙지하셔야만 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대수림 최심부에 존재하는 대균열입니다. 대균열이 오늘날의 수도 문화를 만드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다소 복잡할 수도 있지만, 제가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서란과 수강생들은 강의에 빠져들었다.
동대륙 중앙에 존재하는 대수림은 표층부와 심층부로 구분할 수 있었다.
표층부란 배움의 거리가 있는 태본곡을 포함해서, 오행인면목이 지배하는 모든 권역을 의미했다.
대수림 테두리를 두껍게 감싸고 있는 오행인면목의 영토에서 더 들어가면 드디어 심층부가 나온다.
표층부와 심층부를 구분하는 가장 큰 요소는 그 장소가 명계에 의해서 침식되었는지 여부였다.
침식이 진행된 곳은 절반쯤 명계로 변한다.
요괴나 귀신, 마도수사 이외의 존재는 한 발짝만 들어가도 명계의 규율, 죽음에 얽매인다.
명계가 영혼과 육체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저위계 수사가 멋모르고 들어갔다간 영혼을 빼앗기고, 오행인면목처럼 거대한 종족은 자기 체적을 감당하지 못하고 육체가 붕괴한다.
명계의 인력에 저항하면서 심층부에 접근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고위계 수사뿐이었다.
그것마저 화신기가 아니면 비행이 불가능했다.
원인은 대수림 최심부에 있는 대균열이었다.
대균열의 존재는 어떤 화신기 수사의 목숨을 건 탐험 덕분에 세상에 드러났다.
대균열 너머에는 놀랍게도 명계가 있었다.
인계의 절대자, 화신기 수사조차 하마터면 대균열을 통해서 명계로 끌려갈 뻔했다고 전해진다.
대균열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명계의 인력은 영혼과 육체뿐만 아니라 영기마저도 잡아당겼다.
그 결과, 대륙의 영기 분포는 극도로 편중됐다.
대수림이 위치한 대륙 중심부와 가까울수록 영기가 풍부하고, 변방으로 갈수록 급격하게 희박해졌다.
극도로 편중된 영기 분포,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수도문파의 형성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영기가 풍부한 중심부는 경쟁이 치열했다.
세력이 강한 거대문파일수록 대수림에 가까운 영토를 차지했고, 약소문파들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강자와 약자의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졌다.
양극화된 수도문파의 규모는 곧 대량의 산수들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영기가 고갈되다시피 한 변방에서 약소문파 소속으로 사느니 차라리 산수가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침 오행인면목이 지배하는 대수림 표층부는 산수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변방 약소문파들이 지속적인 인력 유출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진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표층부에 몰려든 산수 집단과 오행인면목은 오랜 세월 동안 공생 관계를 형성해 왔다.
태본곡처럼 몇몇 중립 도시에 모인 산수들은 오늘도 배움의 거리에 모여서 수선에 힘쓰고 있었다.
피나는 수행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좋은 조건으로 거대문파에 입문하는 게 그들의 주된 목표였다.
강사는 수행에 도움이 될만 한 여타 정보와 몇몇 주의점까지 설명하고 깔끔하게 강의를 끝마쳤다.
굉장히 알찬 내용에 수강생들이 박수를 보냈다.
서란도 열심히 동참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강생들에게 강사가 외쳤다.
“지금까지 수업을 경청해주신 수도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는 축기 전문 강사, 축기 도사였습니다! 연기기 수사들을 대상으로 한 유료 강의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유료 강의에 대한 홍보 내용을 듣고 솔깃한 수도자가 꽤 되는 것 같았다.
무료 강의를 미끼로 수강생을 모으고, 자기 강연 실력을 선보인 뒤에 유료 강의 홍보까지.
정말 빈틈없는 홍보 전략이었다.
서란은 터덜터덜 강의실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그랬구나, 대균열 때문이었구나.
어쩐지 서대륙에 비해서 산수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고, 수준도 상향 평준화 되어 있더라니.
동대륙 산수 대부분이 대수림에 모여서 거대문파 입문을 위해서 서로 절차탁마한다니.
서란은 차후 펼쳐질 동대륙 생활이 기대됐다.
이 배움의 거리에 머무르면서 매일매일 공부에 힘쓰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일단 인형술 강의부터 잔뜩 수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영석이 잔뜩 필요했다.
서란은 길모퉁이에 서서 한참을 고민했다.
단기간에 막대한 학비를 모을 방법이 필요했다.
토목 공사도 고려해봤지만, 거대문파를 제외한 약소문파가 모조리 말라죽은 상황에서 대규모 토목 공사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었다.
그때 옆을 지나가던 두 산수의 대화가 들렸다.
“아, 나도 강사나 할까?”
“네 주제에? 아서라, 아서.”
“아니, 내가 뭐 어때서?”
“강사 업계도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데.”
“누구는 며칠에 한 번씩 강의하고 수강료로 영석을 산더미처럼 벌어간다던대?”
“그것도 다 특출난 뭔가가 있으니까 가능한 거지. 축기도 간신히 성공한 네 강의를 도대체 누가 듣는다고.”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며 떠나갔다.
어떤 단어가 서란의 귀에 박혔다.
특출난 무언가, 남들에게는 없는 것.
번뜩이는 영감이 찾아왔다.
서란이 사악하게 웃으며 입맛을 다셨다.
태본곡 배움의 거리는 오랜만에 떠들썩해졌다.
어떤 신입 강사가 내건 수강 모집 광고 탓이었다.
무수한 강의가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 바닥에서 신참자가 내건 광고는 주목받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럼에도 새로 등장한 그 광고는 충격적인 문구로 수도자들의 복합적인 관심을 받았다.
광고지에 적힌 내용은 이랬다.
‘결단이란 무엇인가(정기 유료 강좌)
강사 : 결단기 수사 류서란
초대형 금단 보유자의 비전 대공개!
여의주만 한 금단을 만드는 방법!
당신도 결단기 수사가 될 수 있다!
(첫 강의는 무료로 진행됩니다.)’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경력 한 줄 없는 산수 출신 강사, 심지어 강의명은 ‘결단이란 무엇인가.’였다.
본인이 여의주를 문 용이라도 된다는 태도였다.
장담하는데 이토록 오만한 광고 전략을 내건 강사는 배움의 거리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도자들은 첫 강의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태본곡 배움의 거리에 저런 어처구니없는 광고를 믿은 순진한 산수는 한 명도 없었다.
마침 첫 번째 수업은 무료라고 적혀 있었다.
강의 첫날이 다가오자 수도자들은 어디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몰려와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사기꾼 얼굴이나 한번 구경하자는 심산이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고 서란이 강단에 올랐다.
영안술을 사용하고 있던 수도자들은 경악했다.
서란의 단전에는 주먹보다 큰 금단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결단기 수사의 금단은 평균적으로 콩알 크기였다.
간혹가다가 천재에게 거대문파의 지원이 집중되면 호두알만 한 크기의 금단이 완성되기도 한다.
저런 건 양심적으로 금단이라고 부르면 안된다.
차라리 여의주에 가까웠다.
그 순간, 수강생들이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다.
광고지에 적혀있던 ‘초대형 금단 보유자의 비전 대공개, 여의주만 한 금단을 만드는 방법.’은 과장 하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혹시 마지막 문구도?
기대와 흥분, 정적 속에서 첫 강의가 시작했다.
“수선은 초월, 그리고 초월이란 곧 보충입니다.”
첫 문장을 시작으로 강의는 매끄럽게 진행됐다.
서대륙 오대문파인 오죽문에서 가장 화신기에 가깝다고 평가되는 원영기 수사, 여무진의 가르침.
한낱 잉어로 태어나 천 년을 수련해서 승천 직전까지 갔던 소용녀, 담청의 가르침.
두 거물의 가르침이 수선계 역사에 전례가 없던 천재, 최연소 결단기 수사 류서란의 입을 통해서 동대륙에 전파됐다.
첫 수업이 끝나고 서란이 말했다.
“무료 강의 분량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내용을 더 듣고 싶으시다면 영석 결제를 통해서 유료 강좌를 수강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당일, 수강 신청 폭주로 접수처가 마비됐다.
배움의 거리 역사상 최고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