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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얼굴은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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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팔자 눈썹과 축 처진 입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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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라는 개념을 형상화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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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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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이 서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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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산책이라도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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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여전히 웅크린 채 반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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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내키는구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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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호혜문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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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아예 반응도 안 하는데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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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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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고민하다가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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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환경부터 바꿔보는 건 어떨까? 심마에 빠졌을 때 조용한 장소에 머무는 건 그다지 현명한 판단이 아닌 것 같아. 적막함 속에서 부정적인 생각만 반복할 게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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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이 듣기에도 그럴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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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소란스러운 장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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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급적이면 혼자 두지 않을 것. 심마의 원인과 연관된 요소들과 떨어뜨려 놓을 것.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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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혜문 언니. 큰 도움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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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문을 살짝 열어서 안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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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여전히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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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가끔 시선을 돌려서 약당에서 가져온 단약을 바라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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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쭈글쭈글한 표정이 더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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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속세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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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서란을 위한 효도 관광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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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라면 적당히 소란스럽고, 혹시라도 수선을 연상시킬만 한 사람이나 물건도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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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로 걷지는 않을 테니 서란을 옮겨주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줄 동행자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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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은 자의로 참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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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단술사들과 달달한 탕약을 개발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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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면 혹시라도 서란이 먹을까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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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청은 반쯤 타의로 참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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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모신과 교대해서 순례단을 맞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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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리스크 관리조차 소홀히 하지 않았던 어인 교단의 선견지명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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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멤버는 류서란, 호혜문, 금영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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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볼거리가 풍부한 양나라 왕도, 금영영의 비행 마차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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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왕도로 출발하는 날 아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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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이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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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요, 서란 언니 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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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를 받은 금영영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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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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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랑 신발, 손수건, 이불이에요. 가급적이면 매일 씻기고 갈아입혀 주세요. 잘 때 배에 이불 덮고 자는지도 확인해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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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보따리를 마차에 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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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뭐지, 모녀지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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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싣고 고개를 돌리니 이아금이 다른 보따리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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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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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입 심심하면 언니 먹으라고 싼 간식이에요. 한번에 너무 많이 주지는 마세요. 먹으면 자기 전에 꼭 양치질 시켜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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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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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구나, 사육사와 동물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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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보따리는 하나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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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책장에 꽂혀 있던 잡서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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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심심해 하면 읽어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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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얼른 마차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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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라도 보따리가 더 있을까 봐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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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바퀴도 없는 금속 마차가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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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 왕도까지는 금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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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 법기를 고 수사 거처 인근에 주차해 놓은 일행은 곧장 왕도 관광을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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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개최된 축제 덕분에 왕도는 떠들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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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의 현란한 곡예와 함박웃음을 짓는 구경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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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연주와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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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이 연신 하늘을 형형색색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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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딱히 목적지 없이 거리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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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연신 쏘아올린 폭죽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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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광대의 농담을 듣고 박장대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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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호혜문에게 업힌 채 실실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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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피식 바람 새는 소리를 듣고 금영영이 얼른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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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서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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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잽싸게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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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웃음을 참았더니 입꼬리가 경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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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가면극 할 때 쓰는 익살스러운 탈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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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밤에도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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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은 천혜루라는 구층 누각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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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일찍 잠들던 금영영은 벌써 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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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을 의자에 내려놓은 호혜문이 자신도 옆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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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불이 꺼지지 않는 야시장을 말없이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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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고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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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소리와 시끌시끌한 활기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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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다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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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하기 싫어, 더 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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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기도 싫어, 수행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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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선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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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정적인 생각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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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찾아올 심마의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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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 밤은 혼자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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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문득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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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누각 이름이 어째서 천혜루인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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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없어도 호혜문은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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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루는 수백 년 전에 건설됐죠.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저도 어릴 적에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물론, 수도자가 된 이후에는 감사하는 대상이 하늘이 아니라 수도문파였다는 진실도 알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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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침묵하던 호혜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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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얘기는 별로 재미가 없었나 보군요. 다른 이야기를 할까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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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이런저런 대화 소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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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에 대한 소감, 지필묵에 관한 선호, 양나라 십대 명승지, 권각술에 대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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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도저히 넘겨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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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수사를 보면 아버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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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남자였던 서란이 찔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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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자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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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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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관심을 가지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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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선을 피한 서란에게 호혜문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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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보낸 제 어린 시절이 궁금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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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먼산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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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질문을 하나 하죠. 이곳 왕도 북서부 지구 안에 있는 전체 토지 중, 저희 가문이 소유한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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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답 안 하면 뒷이야기를 안 들려 줄 것 같아서 서란은 대충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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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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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웃던 호혜문이 정답을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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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요, 배포가 너무 작으십니다. 정답은 최소한 육 할 이상입니다. 그것도 벌써 이십 년 전이니까, 지금은 더 늘어났을 수도 있겠네요. 이 천혜루도 저희 가문 소유입니다. 축제 와중에도 저희 세 사람이 꼭대기 층을 전세낼 수 있었던 비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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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꽤나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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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넓은 왕도를 아홉 등분한 북서부 지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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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광대한 토지의 육 할 이상을 한 가문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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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을 제외하면 양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이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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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나올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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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따라서 강물처럼 이어진 등불을 바라보던 호혜문은 이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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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어린 시절, 재녀로 명성이 자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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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버지 머리를 닮은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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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아버지는 호혜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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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명문가, 잘 생긴 외모, 빛나는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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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재상이라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가 약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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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처럼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비상하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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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병마가 천재의 날개를 꺾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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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심해지던 기침에 피가 섞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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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의 부축이 없으면 걷지도 못하는 병약한 몸으로는 대국의 재상 자리를 감당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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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귀에 거의 들어왔던 영광이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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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사내는 여전히 가진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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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까지 이어진 전답과 왕가 다음으로 명성 높은 대가문, 그리고 셀 수 없는 혈족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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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내는 잃어버린 영광에 집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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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분신이 될 천재를 직접 만들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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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첩을 들였고, 계속해서 자식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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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문이 트이면 곧장 어미에게서 떼어놓고, 가혹한 교육 환경에 던져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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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나눈 형제자매 간의 치열한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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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항아리 속에서 호혜문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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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에게 호혜문은 딸이 아니라 분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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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에 가까운 교육과 피나는 경쟁, 일곱 살에 수많은 경전을 외우는 재녀가 탄생한 배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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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기준을 요구하며 호통치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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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경쟁자로만 여기는 형제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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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란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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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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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고양이를 주워서 몰래 길렀던 적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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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금 자라더니 담장 너머로 도망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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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너머의 축제와 하늘을 수놓던 폭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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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열 살이 되어서야 담장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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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신술인 권각법에 집착했던 것도 내면에 잠재된 두려움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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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친 호혜문이 서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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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우연히 류 수사와 만났죠. 오해가 계기가 되어 친해지고, 함께 어울리면서 타인에 대한 두려움도 점차 옅어졌죠. 굴레를 벗어 던지니 축기기에 도달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류 수사가 차지하는 지분이 적지 않아요. 감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금이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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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홀린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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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분이 얼마나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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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글쎄요. 얼추,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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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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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이 크다고 했으니 삼 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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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할이 아닌 건 아쉽지만, 아금이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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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할로 만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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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결과를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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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삼 푼 정도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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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실망스러운 소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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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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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작게 웃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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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그래도 제 인생이니 남에게 휘둘리기만 하면 안되겠죠. 사실 삼 푼도 후하게 쳐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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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웃던 서란이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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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상처는 어떻게 극복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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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버지에게 악감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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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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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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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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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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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감정은 지금도 쓸 곳이 많습니다. 류 수사, 아금이, 금 수사, 용녀님, 그리고 가르치는 학생들도 있겠군요. 단순하게 우선 순위 문제입니다. 뭐, 세월이 수백 년 정도 지나서 한가해지면 용서해 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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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놀라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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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기에 도전할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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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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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천재니까요. 이영근자가 원영기 수사가 된다니, 솔직히 일영근자보다 대단한 일이죠? 굉장히 드물지만 가끔씩 성공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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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암산을 하다가 호혜문이라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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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이 계속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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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아참, 감정. 사람 감정이라는 것도 결국 유한한 자원이죠, 그래서 귀한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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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 선생 호혜문의 비밀 과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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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손가락질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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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감정도 도둑질의 대상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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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하면 정당하게 사랑받고자 하는 류 수사의 노력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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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경받는 선생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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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서 내가 싫었던 일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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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훗날 부모나 스승이 되었을 때, 나와 내 가르침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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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철학을 늘어놓다가 향후 자아 실현 방도까지 떠들기 시작한 호혜문에게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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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심마에 지면 어쩌죠? 혹시라도 제가 수선을 포기하면, 문파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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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 가득 찬 걱정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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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벗어난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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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유소년 교육 전문가는 대처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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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지는 겁니까? 그저 오래 살기 위해서 생애 대부분을 수행에 쏟는 삶이라니, 정말 불행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자고로 자기 행복을 위해서 살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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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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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존경이든, 사랑이든. 뭔가 목적이 분명해야죠. 수선은 그저 수단이지만, 목표는 다양할 수 있겠죠. 류 수사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목적과 수단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수단 따위, 필요하다면 버릴 줄도 알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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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수명을 늘린 다음에 행복을 찾는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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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도취된 호혜문은 점차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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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나 시간, 감정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우리 몸은 늙지 않아도 마음은 늙기 때문에! 류 수사, 마음 가는 대로 하십시오,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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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열이 올라서 붉어진 뺨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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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신만이 가능한 위업이죠! 하지만 적어도! 저는 서란, 당신을 사랑합니다! 물론 친구로서! 힘들다면 수선을 포기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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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의 일장 연설이 마침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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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의 고성방가로 시끄럽던 누각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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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이 코고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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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밀려온 호혜문이 떠듬떠듬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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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두서가 없었죠? 말하고 보니 꽤나 민망하군요. 새벽이라서 그런 것 같으니까, 이해해 주세요. 음, 저는 이만 가보죠. 대화 즐거웠습니다, 류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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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혜문은 호다닥 계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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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오늘 정말 선생님 같았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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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들은 호혜문이 더 빨리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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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잔불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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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책이나 조금 읽다가 잘 생각으로 책보따리를 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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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학습 인형 연구서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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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잡서와 같이 딸려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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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연구서를 펼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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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쏟은 노력이 무의미하진 않았는지, 어느새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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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서 저자 엽관보의 생각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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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도 인형애호가 엽관보의 일화를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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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심마를 극복하지 못한 일영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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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구서에 담긴 감정은 소문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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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륙 최고 인형술사 엽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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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과 충만함, 만족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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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망친 게 아니라 길을 찾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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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책을 덮고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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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위하여 수선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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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사랑받거나 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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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굳이 수선할 필요도 없이 결혼을 하거나 속세에서 왕 노릇을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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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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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해가 뜨고 아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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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호혜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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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사랑이란 오로지 신의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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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무한히 사랑받고, 무한히 사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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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마르지 않을 바다와도 같은 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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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신에게만 허락된 경지라고 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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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이란 곧 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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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란 수도자에게는 무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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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신이 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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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진 열정이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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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처럼 맹렬하진 않지만, 고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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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등불 속 불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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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금영영의 허벅지를 찰싹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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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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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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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 아침 먹으러 가자.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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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영영은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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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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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계단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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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걷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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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에는 자다 깬 금영영만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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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관광 이후, 서란은 심마를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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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은 요양과 안정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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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단약 섭취와 짧은 수행만 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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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금이 자신만만하게 탕약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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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마신 서란이 굉장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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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난 이아금이 소감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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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언니? 간신히 개발한 달콤한 탕약이야. 진짜 맛있지? 그거 만드느라 엄청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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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투덜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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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한데... 그리고 누가 약을 맛으로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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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아금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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