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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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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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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는 외견만 보면 서란보다 어려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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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절대로 인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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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기 수도자에 버금가는 정순한 법력과 머리에 달린 나뭇가지처럼 생긴 사슴뿔이 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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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고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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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녀석이 훔쳐간 여의주의 주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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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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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라면, 혹시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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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바람, 구름과 번개를 자유자재로 부리며 하늘을 고고히 떠도는 전설 속 영물이 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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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인계를 벗어나 온전히 승천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게 바로 여의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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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여의주는 용의 내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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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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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 몸이 바로 그 용이시다! 그러니까 빨리 여의주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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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서란의 멱살을 열심히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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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캑, 캐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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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졸린 서란이 열심히 죽는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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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용이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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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혀 있던 호흡이 재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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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숨에 들어온 신선한 공기가 곧장 혈액을 타고 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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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즉시 지난 기억을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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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라고 하니까 분명히 둥근 구체려니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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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풍경 속에서 어떤 형상이 툭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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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에서 주웠던 수정 구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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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리셨다는 여의주라는 게 혹시 이 정도 크기를 가진 수정 구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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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에 다급하게 제 주먹을 쥐어 보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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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분명히 그 정도 크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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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살짝 당황한 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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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용이 생각했던 여의주 도둑 체포 현장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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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게 발뺌하는 파렴치한에게 끔찍한 벌을 내려주는 게 도보 여행 도중 곱씹었던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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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라는 천고의 보물을 훔쳐간 주제에 이토록 고분고분하게 실토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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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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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수정 구슬을 줍게 된 경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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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일단 잡고 있던 멱살을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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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차분하게 서란의 해명을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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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모든 전후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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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원흉은 용이 손수 만든 제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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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주가 부족해서 약간 허술하게 마감된 건축물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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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산을 대굴대굴 굴러내려간 여의주는 진창에 빠졌고, 표면을 감싼 진흙이 절연체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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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번개를 담지 못하고 그냥 불완전한 여의주로 남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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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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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전부 내 잘못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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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크게 좌절한 용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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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번개야 다시 담으면 되죠. 제가 상자에 잘 보관해 놨어요. 돌려드릴 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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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떨던 용이 고개를 번쩍 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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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서 주운 여의주를 다시 돌려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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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라면 주운 사람이 여의주의 새로운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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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용은 다른 이의 여의주를 빼앗으면 영원히 승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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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몰래 훔치거나 거짓말로 속여서 건네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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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용은 솔직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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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용이 실수로 흘린 여의주는 주운 사람이 임자다. 너는 신선이 되겠다고 수행하는 수도자가 아니더냐. 그런데도 돌려주겠다고? 여의주만 있다면 손쉽게 선계에 갈 수 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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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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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만드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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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육백 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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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저도 필요 없어요. 아마 마음이 불편해서 수행에 방해가 될 것 같네요. 게다가 저는 천재니까 여의주 같은 거 없이도 비승할 자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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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에는 승천할 수 없을 거라고 절망하던 용이 눈물을 끌썽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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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로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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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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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과 용은 사이좋게 오죽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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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 걸음 걷다가 용이 철퍼덕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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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은 물속에서, 나머지 절반은 하늘에서 살았더니 직립 이족 보행에 너무 서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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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서란이 만든 점토인형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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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강한 연민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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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잃어버려서 날지 못하게 되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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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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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분실한 용은 더이상 날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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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잉어와 다를 바가 없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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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건 고작 튀어오르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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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쪼그려 앉아 등을 보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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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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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입고 있던 거적때기 밑자락을 들추며 서란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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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꼬마가 땅꼬마를 목말 태우는 진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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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목덜미에 차가운 살갗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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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뿔이 있길래 수컷인줄 알았는데 암컷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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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의문을 해결한 서란이 근처에 추락한 석연화로 달려가서 냉큼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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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패 발급소 앞에서 서란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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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방문패를 발급할 때 필요해서 그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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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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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완전한 용에게는 이름 같은 건 불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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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그냥 용녀님이라고 부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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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좋을 대로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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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대로 간 서란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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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은 용녀님이십니다. 사정이 있어서 오죽문에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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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에 찌든 담당자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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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함이 용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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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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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음. 그러면 종족은 사람입니까? 겉으로 봤을 때는 아닌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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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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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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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종족은 영물. 체류 기간과 방문 목적이 어떻게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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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목적은 지인을 만나는 것이고, 체류 기간은 사흘 이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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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방문, 기간은 사흘 이내. 잠시 얼굴 좀 확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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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무릎을 한껏 굽히자 용과 담당자가 시선을 마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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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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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는 시답지 않은 감상과 함께 방문객의 특징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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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는 사슴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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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채는 엷은 청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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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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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다음 열심히 서류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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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기간, 체류 목적, 종족은 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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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인은 축기기 수사 류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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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음, 별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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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이 뭐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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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녀 어쩌고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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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어쩌고 용녀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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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 창구 밖으로 고개를 모로 내민 담당자가 용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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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녀, 조그마한 용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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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가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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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소용녀라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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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나무패에 소용녀라는 글자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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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담당자가 패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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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가 방문패를 받아서 자기 뿔에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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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고 그냥 습성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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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용녀를 어깨에 짊어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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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이층으로 올라가서 기념품 상자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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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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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열매 씨앗, 금강호용자의 비늘, 발광석 두더지-인간 조각상, 금영영과 짝으로 구매한 삿갓 등등 많은 물건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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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 투명한 수정 구슬을 집어들어서 머리 위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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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습니다, 용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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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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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가 불완전한 여의주를 받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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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법력을 불어넣어서 공명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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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의주가 소용녀의 혼원법력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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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소용녀가 여의주를 유심히 들여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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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수정 구슬 내부에 노란색 법력이 안개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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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눈에 힘을 주고 내려다보니 정토법력으로 전신이 가득찬 서란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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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가 새로운 주인에게 종속된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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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의 뿔이 찰나에 번쩍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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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천기를 읽을 줄 아는 영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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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사슴을 닮은 그 뿔로 하늘과 교신해서 삼라만상에 관한 다양한 비밀을 내려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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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비유하자면 피뢰침과 비슷한 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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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적으로 천기를 읽은 소용녀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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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의 천부적인 영기 감응 능력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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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까지 닿을 믿기지 않는 재능이 무의식적으로 여의주를 종속시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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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보면 진창에 빠진 여의주를 서란이 발견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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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는 금방 해결책을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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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함께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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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서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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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의주를 돌려주겠다던 그 결심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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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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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여의주라면 이미 돌려드리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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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가 이미 너를 진정한 주인으로 선택했다. 그냥 평범한 물건 넘기듯 건네준다고 종속 관계가 바뀌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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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찌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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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완전히 통제한 뒤에 소유권을 넘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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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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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가 진지하게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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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를 다룰 수 있는 건 오직 용뿐이다. 반대로 여의주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면 용이 될 수도 있지. 네가 나에게 여의주를 돌려준다는 건 용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포기한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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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용이 분실한 여의주를 이용해서 수행 속도를 가속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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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주에게 자격을 증명하면 서란은 화신기 수도자가 아니라 용이 되어 승천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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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의 최종 목표인 영생을 손에 넣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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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가 다시 한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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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결심이 변하지 않았느냐? 모든 수도자가 추구하는 영생을 포기하고 고작 작은 선행을 하겠다고? 너는 불멸의 존재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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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하던 서란이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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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녀님은 어째서 수행을 시작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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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본능적으로, 용이 된 뒤에는 오로지 승천을 위해서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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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역시 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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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마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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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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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의 용안이 서란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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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눈은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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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란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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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가 멍하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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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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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존귀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수행을 시작했습니다. 용녀님의 꿈을 좌절시키면서까지 영생을 얻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다지 내키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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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서란이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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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녀는 서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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