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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휘(星輝)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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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좌 ‘만물을 비추는 등대’를 주신으로 모시며, 별빛과 관련된 일들을 책임지는 곳. 별을 모시는 다른 두 교단에 비해 온건하고, 평화롭게 일을 처리하여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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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진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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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 알려진 만큼 그들은 청렴하고 결백한 존재들이 아니란 사실을. 그 신도들은 모르겠으나, 수뇌부는 썩어 문드러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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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휘 교단이 보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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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나진은 과감히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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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뱉는 것만으로도 교단을 모욕했다며 엄벌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런 걸 신경 썼다면 애당초 지하도시를 탈출 하지도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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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교단의 이름이 나오는 걸 보니, 너도 그놈들과 악연이 어지간히도 깊은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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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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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응으로 하여금 나진은 몇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카프만이 딱히 교단을 좋게 여기고 있지 않으며, 교단에 속하지는 않은 인물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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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교단이 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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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제 턱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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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덜미에 닿아있는 나진의 롱소드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겨 밀어내고선, 그가 제 목덜미에 감겨있는 붕대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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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죽이면 인질을 꺼내주기로 약속했거든. 지하도시 아트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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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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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의 목덜미에 새겨진 것은 낙인이었고, 그 낙인을 나진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으니까. 저건 이반의 안대 안쪽에 새겨져 있던 낙인이었고, 약쟁이 하칸의 팔에 찍혀있던 낙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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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에 떨어진 이에게 찍히는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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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은 말했었다. 행운과 우연이 겹쳐 지하도시에서 탈출한다 한들, 저 낙인이 남아있는 한 교단에게 추격당해 죽고 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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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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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난 아트만 출신은 아니야. 이건, 그놈들이 내게 걸어놓은 목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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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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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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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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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딸아이. 흔한 이야기지. 이래서 군인들이 새끼를 안 치나 싶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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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걸걸한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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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받자고 하는 이야긴 아니다. 살려달라고 빌 생각도 없고. 어차피 널 안 죽이면 난 죽거든. 그렇다고 너 나한테 죽어줄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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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침묵했다. 거절의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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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봐. 난 너한테 졌고, 여기서 발버둥 친다고 널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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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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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가 승자의 권리를 누리게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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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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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하니, 너 교단과 악연이 보통 깊은 게 아닌 것 같던데. 하기야 그 아트만 출신이면 안 깊을 수가 없겠지. 그놈들이 왜 작정하고 널 죽이려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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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나진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는데, 알만하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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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알만하군. 열여덟 살에 소드 시커에 근접한 괴물인데··· 정말로 소드 마스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쯤 되면 교단을 무너트리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그래서 널 위험 요소로 여겼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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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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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교단이 자신을 위험 요소로 여기는 것은 사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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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거야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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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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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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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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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교단을 엎어버릴 생각이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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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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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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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꾸밈도, 거짓도 없는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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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도시의 바깥으로 올려보내 준 이반의 이름에 걸고 나진은 맹세했었다. 교단을 부숴버리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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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제 손으로 그리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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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참 많아 보이는 얼굴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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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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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뭐··· 거짓말 같지는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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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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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카프만의 판초였다. 나진은 카프만이 가리킨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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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져보면 계약서 한 장이 나올 거다. 내가 교단과 맺은 계약이 적힌 서류인데, 가지고 있으면 어딘가엔 써먹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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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카프만은 웃었는데, 그 웃음에서 나진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판초를 들고 카프만에게 나진이 다가가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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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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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팔을 뻗어 나진을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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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카프만이 무언갈 준비하는 걸로 보이진 않았고, 반격할 기미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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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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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를 고민하면서도 나진은 일단 걸음을 멈췄다. 거리를 두고 나진은 카프만을 바라봤다. 카프만의 웃음에서 느낀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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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휘 교단은 네 생각보다 더 지독하고, 더 철저하고, 더 음습한 집단이다. 그걸 기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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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늘어놓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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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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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들이 부릴 수 있는 말은 많지. 아주 많아. 인질이 잡혔든, 세뇌를 당했든, 아니면 순수하게 종교에 미친 광신도들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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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옷자락 안으로 넣어놨던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목걸이 끝에는 장신구가 달려 있었는데, 그 장신구에 담긴 무언가를 바라보던 카프만은 이내 쓰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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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작에 불과하겠지. 앞으로도 별 미친 것들이 너한테 달려들 거다. 잃을 것 없는 놈들이 좀 많아야지. 하여간 염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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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카프만이 손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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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 소리를 내며 목걸이의 줄이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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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열심히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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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은 한평생 가지고 다녔던 목걸이를 나진을 향해 휙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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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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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마법적인 수단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진은 카프만이 던진 목걸이를 낚아챘다. 카프만은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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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 그 목걸이나 같이 묻어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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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카프만의 목덜미에서 치이이이익 소리가 들려왔다. 시뻘겋게 달궈지는 낙인. 카프만의 눈과 코와 귀에서 피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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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언(禁言)···? 아니, 저걸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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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멀린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카프만이 피를 게워 내며 기어코 마지막 말을 입에 담았다. 씹어 죽일 새끼의 이름은 반드시 발음하고 말겠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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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를,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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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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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카프만의 몸이 부풀었다. 눈을 부릅뜬 나진이 판초를 움켜쥔 채 수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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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물에 뛰어듦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하는 둔탁한 굉음이 지하 수로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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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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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기어 올라온 나진은, 카프만이 주저앉아 있던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 카프만은 없었다. 사방으로 튀어 오른 살점 덩어리와 핏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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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언의 주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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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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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단어, 특정한 이름. 그런 걸 쓰거나 말하는 걸 방아쇠로 만드는 주문이지. 보통 몸을 터뜨리는 주문하고 같이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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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면서도 멀린은 찝찝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조금이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멀린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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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대에도 금지된 주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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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이런 식으로 사용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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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을음이 남은 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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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은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터져 죽었다. 사방에 가득 튀어오른 핏물과 살점만이 그 죽음을 증거할 뿐이다. 나진은 말없이 손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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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카프만이 던진 목걸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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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걸이 끝에 매달린 장신구를 열어보노라면, 그 안에는 사진이 담겨있다. 카프만과 그의 아내, 그리고 딸아이로 보이는 이가 담긴 사진. 나진은 한동안 그 사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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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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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이려 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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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껴서야 견디지 못한단 사실을 나진은 잘 안다. 그렇기에 애써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만, 사진을 본 순간 나진은 술렁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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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실린 어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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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를 나진은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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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이 금지한 인신매매에까지 손을 댔던 트릭시를 정리하며 나진은 그가 작성한 명부와 ‘상품’들을 확인했었고, 그 상품이 팔려나갈 곳을 보며 혀를 찼던 기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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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을 떠올린 나진의 표정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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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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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쌍욕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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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것도 없거늘, 속에서 무언가 울렁이더니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진이 까득 소리를 내며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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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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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감정. 나진이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멀린은 다만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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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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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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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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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신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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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동네는 다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별들의 시선을 받는 윗동네는 지하도시와는 다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좀 의심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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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가 더러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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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이 이곳을 비추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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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렇게 여겼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진의 안에는 의심이 싹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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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은 이 세상에 관심이 없습니까? 최소한, 별을 모시는 교단이란 것들이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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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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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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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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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별자리들은 이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어. 특히나 중앙 대륙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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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냐고 나진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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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에 멀린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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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이미 끝난 존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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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좌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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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업을 이루고, 하늘에 별을 걸고, 그 끝에 최후를 맞이했지.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이 아니라면 우린 개입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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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개입하려고 하는 애들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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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도 후회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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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방관자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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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성좌는 위대한 존재들이 아니야. 별들의 전장, 나락의 땅 캄란. 그런 곳에 발이 묶인 채 끝나지 않는 여정을 계속하는··· 얼핏 보면 망자와도 같은 존재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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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침묵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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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계속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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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관심이 없는 성좌가 태반이야. 대부분의 별은 자신들의 안위와 제 별을 빛나게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을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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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전장에서 다른 별들을 사냥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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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화신을 만들어 별들의 전장을 누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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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끝나버린 이야기의 다음을 갈망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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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성좌란 이들의 본질이야. 어쩌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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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라 말하려는 나진에게 멀린이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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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버린 여정의 다음을 갈망하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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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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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동경하는 네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성좌라 해서 다 위대하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야. 오히려 인간보다 더 추악한 별들이 더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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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환상을 깨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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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들려주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다. 그 진실을 입에 담으며 멀린은 나진의 심상을 바라봤다. 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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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별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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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심상에 떠 있는 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윽고 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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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더더욱 높은 곳에 올라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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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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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이 모시는 성좌. 그 등대라는 별도 이 일을 알고 있을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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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알고 있겠지. 엑스칼리버의 경우까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교단이 벌이는 악행을 전부 모르고 있다고는 말 못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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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이 목걸이를 품에 넣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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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또한 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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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가져서, 높은 곳에 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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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더 늘었다. 카프만의 판초를 움켜쥔 채 나진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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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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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이 마지막에 내뱉은 이름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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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게도, 그 이름은 나진 역시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성휘 교단에 대해 알아보던 중 보았던 이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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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휘 교단의 대사제 오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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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 아트만의 위에 지어진 성휘 교단의 본교회,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는 인물. 자신이 칼을 들이밀어야 할 존재가 누구인지 나진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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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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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만의 죽음을 오를랑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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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에 실패하고 말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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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를랑이 혀를 차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프만의 선에서 끝났다면 좋았을 것을, 귀찮게 만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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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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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등대는 얼룩졌다. 네 여신의 광휘에 그늘이 생겼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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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선 안 될 일이지요. 어쩌면 제가 일을 그르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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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옳았다. 네 여신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빛이 태어났다면, 이는 네 여신의 불찰이요 얼룩이다. 이를 지우고자 한 그대의 선택은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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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의 광휘가 얼룩져선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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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얼룩은 의심을 불러오고, 의심은 큰 그늘로 번지는 법이다. 그러니 언제나 여신께선 완전무결해야 함을 오를랑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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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께 얼룩이 생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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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께서 비추지 못하는 그늘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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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게 여신을 모시는 신도들이 해야 할 일이리라. 여신의 불찰을 제 한 몸을 바쳐 덮어내는 것. 그것이 여신께 헌신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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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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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움직이면 모든 별이 주목할 것이다. 네 여신의 불찰이 온 세상에 알려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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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 안 되지요. 조용히 처리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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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께선 침묵함으로써 긍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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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의 꼭대기에서 기도를 마친 오를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신의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고, 더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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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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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좋은 말이 하나 부서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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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말들이 그의 손에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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