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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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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휘(星輝) 교단.

성좌 ‘만물을 비추는 등대’를 주신으로 모시며, 별빛과 관련된 일들을 책임지는 곳. 별을 모시는 다른 두 교단에 비해 온건하고, 평화롭게 일을 처리하여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교단.

하지만 나진은 안다.

세간에 알려진 만큼 그들은 청렴하고 결백한 존재들이 아니란 사실을. 그 신도들은 모르겠으나, 수뇌부는 썩어 문드러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성휘 교단이 보냈습니까?”

그렇기에 나진은 과감히 질문을 던졌다.

내뱉는 것만으로도 교단을 모욕했다며 엄벌에 처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런 걸 신경 썼다면 애당초 지하도시를 탈출 하지도 않았겠지.

“바로 교단의 이름이 나오는 걸 보니, 너도 그놈들과 악연이 어지간히도 깊은 모양이군.”

카프만이 웃음을 흘렸다.

그 반응으로 하여금 나진은 몇 가지를 확신할 수 있었다. 카프만이 딱히 교단을 좋게 여기고 있지 않으며, 교단에 속하지는 않은 인물이란 사실을.

“그래. 교단이 나를 보냈다.”

카프만이 제 턱을 들어 올렸다.

목덜미에 닿아있는 나진의 롱소드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겨 밀어내고선, 그가 제 목덜미에 감겨있는 붕대를 풀었다.

“너를 죽이면 인질을 꺼내주기로 약속했거든. 지하도시 아트만에서.”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카프만의 목덜미에 새겨진 것은 낙인이었고, 그 낙인을 나진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으니까. 저건 이반의 안대 안쪽에 새겨져 있던 낙인이었고, 약쟁이 하칸의 팔에 찍혀있던 낙인이었다.

지하도시에 떨어진 이에게 찍히는 낙인.

오펜은 말했었다. 행운과 우연이 겹쳐 지하도시에서 탈출한다 한들, 저 낙인이 남아있는 한 교단에게 추격당해 죽고 말 거라고.

“당신도···.”

“미안한데 난 아트만 출신은 아니야. 이건, 그놈들이 내게 걸어놓은 목줄이지.”

인질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카프만이 어깨를 으쓱이며 중얼거렸다.

“인질이라면?”

“내 딸아이. 흔한 이야기지. 이래서 군인들이 새끼를 안 치나 싶더라고.”

카프만이 걸걸한 웃음을 흘렸다.

“동정받자고 하는 이야긴 아니다. 살려달라고 빌 생각도 없고. 어차피 널 안 죽이면 난 죽거든. 그렇다고 너 나한테 죽어줄 거냐?”

나진이 침묵했다. 거절의 의미였다.

“거봐. 난 너한테 졌고, 여기서 발버둥 친다고 널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승자가 승자의 권리를 누리게 두어야지.”

그가 말했다.

“보아하니, 너 교단과 악연이 보통 깊은 게 아닌 것 같던데. 하기야 그 아트만 출신이면 안 깊을 수가 없겠지. 그놈들이 왜 작정하고 널 죽이려 하는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카프만이 나진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웃음을 터뜨렸는데, 알만하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아니, 알만하군. 열여덟 살에 소드 시커에 근접한 괴물인데··· 정말로 소드 마스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쯤 되면 교단을 무너트리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그래서 널 위험 요소로 여겼을 것이고.”

“······.”

나진은 그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교단이 자신을 위험 요소로 여기는 것은 사실일 테니까.

“뭐 그거야 어쨌든.”

카프만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하십시오.”

“너, 교단을 엎어버릴 생각이 있냐?”

“예.”

나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어떠한 꾸밈도, 거짓도 없는 진심.

자신을 도시의 바깥으로 올려보내 준 이반의 이름에 걸고 나진은 맹세했었다. 교단을 부숴버리겠노라고.

“반드시, 제 손으로 그리할 생각입니다.”

“사연 참 많아 보이는 얼굴인걸.”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래, 뭐··· 거짓말 같지는 않군.”

카프만이 손을 뻗었다.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카프만의 판초였다. 나진은 카프만이 가리킨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져보면 계약서 한 장이 나올 거다. 내가 교단과 맺은 계약이 적힌 서류인데, 가지고 있으면 어딘가엔 써먹을 수 있겠지.”

그리 말하며 카프만은 웃었는데, 그 웃음에서 나진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판초를 들고 카프만에게 나진이 다가가려는 순간이다.

“오지 마라.”

카프만이 팔을 뻗어 나진을 제지했다.

나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카프만이 무언갈 준비하는 걸로 보이진 않았고, 반격할 기미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어이 나진.”

그 이유를 고민하면서도 나진은 일단 걸음을 멈췄다. 거리를 두고 나진은 카프만을 바라봤다. 카프만의 웃음에서 느낀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성휘 교단은 네 생각보다 더 지독하고, 더 철저하고, 더 음습한 집단이다. 그걸 기억해라.”

난데없이 늘어놓는 이야기.

카프만은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놈들이 부릴 수 있는 말은 많지. 아주 많아. 인질이 잡혔든, 세뇌를 당했든, 아니면 순수하게 종교에 미친 광신도들이든······.”

카프만이 옷자락 안으로 넣어놨던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목걸이 끝에는 장신구가 달려 있었는데, 그 장신구에 담긴 무언가를 바라보던 카프만은 이내 쓰게 웃었다.

“난 시작에 불과하겠지. 앞으로도 별 미친 것들이 너한테 달려들 거다. 잃을 것 없는 놈들이 좀 많아야지. 하여간 염병할.”

그리 말하며 카프만이 손에 힘을 주었다.

투둑, 소리를 내며 목걸이의 줄이 끊어졌다.

“뭐, 열심히 해봐라.”

카프만은 한평생 가지고 다녔던 목걸이를 나진을 향해 휙 던졌다.

탁.

어떠한 마법적인 수단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진은 카프만이 던진 목걸이를 낚아챘다. 카프만은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무덤에 그 목걸이나 같이 묻어주면 좋겠군.”

나진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카프만의 목덜미에서 치이이이익 소리가 들려왔다. 시뻘겋게 달궈지는 낙인. 카프만의 눈과 코와 귀에서 피가 흘렀다.

-금언(禁言)···? 아니, 저걸 왜?

당황한 멀린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카프만이 피를 게워 내며 기어코 마지막 말을 입에 담았다. 씹어 죽일 새끼의 이름은 반드시 발음하고 말겠다는 듯이.

“오, 를, 랑.”

누군가의 이름.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카프만의 몸이 부풀었다. 눈을 부릅뜬 나진이 판초를 움켜쥔 채 수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나진이 물에 뛰어듦과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하는 둔탁한 굉음이 지하 수로를 뒤흔들었다.

물에서 기어 올라온 나진은, 카프만이 주저앉아 있던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 카프만은 없었다. 사방으로 튀어 오른 살점 덩어리와 핏물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금언의 주문이야.

멀린이 말했다.

-특정한 단어, 특정한 이름. 그런 걸 쓰거나 말하는 걸 방아쇠로 만드는 주문이지. 보통 몸을 터뜨리는 주문하고 같이 써.

그리 말하면서도 멀린은 찝찝한 기색을 지우지 못했다. 조금이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멀린은 말했다.

-내 시대에도 금지된 주문이야.

-그때도 이런 식으로 사용됐으니까.

나진은 그을음이 남은 벽을 바라봤다.

카프만은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터져 죽었다. 사방에 가득 튀어오른 핏물과 살점만이 그 죽음을 증거할 뿐이다. 나진은 말없이 손을 펼쳤다.

그곳엔 카프만이 던진 목걸이가 있다.

목걸이 끝에 매달린 장신구를 열어보노라면, 그 안에는 사진이 담겨있다. 카프만과 그의 아내, 그리고 딸아이로 보이는 이가 담긴 사진. 나진은 한동안 그 사진을 바라봤다.

“······.”

자신을 죽이려 한 인물이다.

그런 이들의 죽음에 슬퍼하고 죄책감을 느껴서야 견디지 못한단 사실을 나진은 잘 안다. 그렇기에 애써 고개를 돌리려고 하지만, 사진을 본 순간 나진은 술렁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진에 실린 어린 소녀.

그 소녀를 나진은 알고 있었다.

이반이 금지한 인신매매에까지 손을 댔던 트릭시를 정리하며 나진은 그가 작성한 명부와 ‘상품’들을 확인했었고, 그 상품이 팔려나갈 곳을 보며 혀를 찼던 기억이 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나진의 표정이 구겨졌다.

“이런 씨발······.”

나진이 쌍욕을 내뱉었다.

먹은 것도 없거늘, 속에서 무언가 울렁이더니 역류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진이 까득 소리를 내며 이를 갈았다.

-······.

강렬한 감정. 나진이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멀린은 다만 침묵했다.

“멀린.”

-······말해.

“저는, 저는 말이에요.”

나진이 신음했다.

“윗동네는 다를 거라 생각했습니다. 별들의 시선을 받는 윗동네는 지하도시와는 다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좀 의심이 드네요.”

지하도시가 더러운 것은.

별들이 이곳을 비추지 않기 때문이다.

나진은 그렇게 여겼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나진의 안에는 의심이 싹텄다.

“별들은 이 세상에 관심이 없습니까? 최소한, 별을 모시는 교단이란 것들이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솔직한 대답을 듣고 싶어?

“예.”

멀린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대부분의 별자리들은 이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어. 특히나 중앙 대륙에는 더더욱.

어째서냐고 나진은 물었다.

그 물음에 멀린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미 끝난 존재들이니까.

오래된 성좌는 말했다.

-위업을 이루고, 하늘에 별을 걸고, 그 끝에 최후를 맞이했지.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려지는 곳이 아니라면 우린 개입할 수 없어.

그래도 개입하려고 하는 애들은 있어.

하지만, 그들도 후회할 뿐이야.

결국 우리는 방관자에 불과하니까.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성좌는 위대한 존재들이 아니야. 별들의 전장, 나락의 땅 캄란. 그런 곳에 발이 묶인 채 끝나지 않는 여정을 계속하는··· 얼핏 보면 망자와도 같은 존재들이겠지.

나진은 침묵했고.

멀린은 계속해서 말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관심이 없는 성좌가 태반이야. 대부분의 별은 자신들의 안위와 제 별을 빛나게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을 가져.

별들의 전장에서 다른 별들을 사냥하고.

제 화신을 만들어 별들의 전장을 누비고.

일찍이 끝나버린 이야기의 다음을 갈망하는 이들.

-그게 성좌란 이들의 본질이야. 어쩌면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

무어라 말하려는 나진에게 멀린이 피식 웃었다.

-끝나버린 여정의 다음을 갈망하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멀린이 길게 숨을 내뱉었다.

-별을 동경하는 네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성좌라 해서 다 위대하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야. 오히려 인간보다 더 추악한 별들이 더 많지.

나진의 환상을 깨는 이야기.

그렇기에 들려주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다. 그 진실을 입에 담으며 멀린은 나진의 심상을 바라봤다. 저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그러나, 별은 변하지 않았다.

나진의 심상에 떠 있는 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윽고 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더더욱 높은 곳에 올라야겠네요.”

-···뭐?

“교단이 모시는 성좌. 그 등대라는 별도 이 일을 알고 있을 것 같습니까?”

-아마도, 알고 있겠지. 엑스칼리버의 경우까지는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교단이 벌이는 악행을 전부 모르고 있다고는 말 못 할 테니까.

나진이 목걸이를 품에 넣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그 또한 물어야겠습니다.”

별을 가져서, 높은 곳에 올라서.

교단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하나 더 늘었다. 카프만의 판초를 움켜쥔 채 나진은 걸음을 옮겼다.

오를랑.

카프만이 마지막에 내뱉은 이름을 곱씹었다.

우습게도, 그 이름은 나진 역시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성휘 교단에 대해 알아보던 중 보았던 이름이었으니까.

성휘 교단의 대사제 오를랑.

지하도시 아트만의 위에 지어진 성휘 교단의 본교회, 그곳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있는 인물. 자신이 칼을 들이밀어야 할 존재가 누구인지 나진은 깨달았다.

카프만의 죽음을 오를랑은 느꼈다.

사냥에 실패하고 말았나.

오를랑이 혀를 차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카프만의 선에서 끝났다면 좋았을 것을, 귀찮게 만드는군.

“이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등대는 얼룩졌다. 네 여신의 광휘에 그늘이 생겼도다.

“있어선 안 될 일이지요. 어쩌면 제가 일을 그르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옳았다. 네 여신이 비추지 않는 곳에서 빛이 태어났다면, 이는 네 여신의 불찰이요 얼룩이다. 이를 지우고자 한 그대의 선택은 현명했다.

등대의 광휘가 얼룩져선 안 되는 일이다.

자그마한 얼룩은 의심을 불러오고, 의심은 큰 그늘로 번지는 법이다. 그러니 언제나 여신께선 완전무결해야 함을 오를랑은 안다.

여신께 얼룩이 생겼다면.

여신께서 비추지 못하는 그늘이 있다면.

그것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게 여신을 모시는 신도들이 해야 할 일이리라. 여신의 불찰을 제 한 몸을 바쳐 덮어내는 것. 그것이 여신께 헌신하는 방법이다.

“등대지기는···.”

-그 아이가 움직이면 모든 별이 주목할 것이다. 네 여신의 불찰이 온 세상에 알려지겠지.

“그래선 안 되지요. 조용히 처리해야겠군요.”

여신께선 침묵함으로써 긍정하셨다.

등대의 꼭대기에서 기도를 마친 오를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신의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고, 더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다.

“불러와라.”

쓰기 좋은 말이 하나 부서졌지만.

교단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움직일 수 있는 말들이 그의 손에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