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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멀린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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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사용하는 법은 가르쳐 줄 수 없다고. 심상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그렇게 그녀는 이야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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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근본적인 부분은 네가 채워야 해. 그건 변함이 없어. 하지만 심상을 다루는 법은 알려주지 못해도, 심상을 구체화하는 방법은 알려줄 수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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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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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끝에서 푸른 별자리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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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란 무엇인지. 이 힘을 내가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정도는 말해줄 수 있지. 근본은 네가 채우되, 방향성 정도는 가르쳐 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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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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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멀린이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자기 자랑이 심하며, 때로는 허접해 보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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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방금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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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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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멀린은 11개의 별을 가진 성좌였다. 아서와 나락의 마녀를 제외한다면, 가장 많은 별을 가진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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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대성좌(멀린 본인의 강력한 주장이었다. 10개가 넘는 별을 가진 자신은 그냥 성좌들과는 다른 대성좌라 그녀는 주장했다.)께서 들려주는 별에 대한 이야기는, 과연 경청할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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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뤄낸 위업은 별이 돼. 별에는 네 이야기가 깃들어. 그러니 별에서 힘을 끌어다 쓴다는 건 말야, 네가 이루어낸 위업을 재현하는 거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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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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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재현. 이를테면 이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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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별 중 하나의 별이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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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숱한 악마들을 익사시켰어. 거대한 홍수를 일으켜 악마들의 성채를 통째로 수몰시킨 적도 몇 번 있지. 그 과정에서 얻은 별이 이거야. 그리고, 이 별이 빛날 적 악마들은 이렇게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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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다. 파도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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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나는 파도였고, 거스를 수 없는 재해였던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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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하고 멀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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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 담긴 이야기, 누군가 그 별을 보며 떠올리는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 자신이 네 별을 보며 떠올리는 심상. 그 모든 게 뒤섞여 별은 하나의 이야기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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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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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이 줄글로 표현된 소설이라 생각해 봐. 너와 내가 나누는 대화는 따옴표 안에 기록되고, 대화가 끝나면 상황을 묘사하는 문장이 따라붙겠지. ‘멀린이 말했다.’ 이런 식으로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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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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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별을 다룬다는 건 그 줄글들 사이에 네 이야기를 끼워 넣는 거야. 수십, 수백 가지의 단어와 문장에 휘둘리지 않는 확고한 너 자신을 새겨넣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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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손짓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별이 빛났다. 11개의 별이 싯푸른 빛을 흩뿌리며 점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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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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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멸하는 빛 속에서 멀린이 말했다. 그녀는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발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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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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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온다. 모든 것을 휩쓸 파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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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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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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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도시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것이 하늘까지 닿은 거대한 파도가 만들어낸 그림자라는 사실을 나진은 뒤늦게 깨달았다. 파도가 지하도시의 하늘을 가렸다. 별들을 가린 채 지하도시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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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철썩였다. 격류가 지하도시를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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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휩쓸린 건물들이 무너졌다. 거대한 격류 앞에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파도는 도시 하나를 수몰시켰다. 그건 수몰인 동시에 수장(水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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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에 휩쓸린 나진은 강제로 심상에서 튕겨져 나왔다. 현실에서 눈을 뜬 나진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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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런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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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옆에는 멀린이 손가락을 까딱이고 있었다. 그런 멀린을 바라보는 나진의 눈동자에는, 정말 오랜만에 경외감이 깃들었다. 종종 까먹곤 하지만 이 사람 대단한 사람이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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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성좌가 나처럼 거대한 현상을 일으키진 못해. 대부분은 ‘나는 영원토록 타오르는 불이다.’ 라던지 ‘나는 부러지지 않는 검이다.’ 같은 식으로 자기 자신을 뚜렷하게 하는 데 별을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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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좀 위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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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며 멀린이 히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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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쯤 되는 대성좌는 하나의 별에 담긴 이야기만을 쓰지 않아. 자기 자신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대한 현상을 일으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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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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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악마를 수장시키며 얻은 별, 도시 하나를 수몰시켜 얻은 별, 파도를 일으켜 마녀의 군세를 휩쓸었을 때 얻은 별 등등. 여러 개의 별에 담긴 이야기를 연계해서 사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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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참 자기 자랑을 하던 멀린은 나진의 눈동자가 급격히 흥미를 잃어감을 느끼곤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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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말야. 네가 얻은 별이 무엇인지, 그 별에 담긴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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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자신의 별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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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도전, 다른 하나는 용살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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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든 걸 부정하는 외륙에선, 오직 네가 얻은 별만이 너를 긍정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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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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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외륙의 경계선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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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외륙에 걸음 했을 때와는 다른 곳. 제국군이 상주하는 전선이 아닌, 전략적으로 가치가 없는 험지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별들의 전장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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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한 막을 향해 나진은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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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의 바깥. 선을 넘어 한 걸음을 내디딘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마나의 흐름이 뒤바뀌었다. 여기까진 지난번에 외륙에 찾아왔을 때와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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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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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비명을 지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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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거세게 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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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의 마나가 요동치며, 동공에 핏발이 바짝 서거나 감각이 한계까지 곤두서지도 않았다. 나진은 말없이 제 손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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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를 두르지 않으면 피부가 갈라지고 육체가 바스러지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마나를 두르지 않았음에도 나진의 몸은 멀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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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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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짧게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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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별을 가졌다는 건 외륙에 발을 들일 자격을 얻었다는 것. 그 의미를 나진은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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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도 느껴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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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나진이 외륙에 발을 디딘 순간, 나진에게 집중되던 수많은 별들의 시선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의 나진은 눈에 띄는 외부인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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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조각나서 검게 물든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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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빛나는 수많은 별 사이에, 나진의 별 역시 빛나고 있었다. 대륙에 있을 때보다 그 별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제 별을 느끼며 나진은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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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륙은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뉘어.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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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설명을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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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쉽게 표현하면 초입, 중입, 그리고 심부. 지금부터 네가 향할 곳은 중간 지역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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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륙의 초입, 경계선의 인근에는 마왕군과 제국군이 맞부딪치는 전선이 형성돼 있다. 일전에 나진이 와이번 부대에 속해 활약했던 곳이 초입이었으며, 그곳에는 성좌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다고 멀린은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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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입부턴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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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지역. 전선을 넘어 깊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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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부터는 소위 ‘별들의 전장’ 이라 불리는 곳이다.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또 저무는 곳. 성좌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종종 초월자들이 목격되기도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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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진이 향하는 목적지가 바로 그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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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륙은 어느 방향에서 들어가느냐에 따라 중간지역까지 향하는지 걸리는 시간이 달랐는데, 지금 나진이 걷는 길은 ‘고행자의 길’이라 불리는 길이었다. 초입을 건너뛰고 단숨에 별들의 전장으로 향할 수 있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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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많은 영웅들이 걸어온 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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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길을 걷다 보면 서서히 풍경이 변해감을 나진은 느낄 수 있었다. 일부분이 쪼개져 밤하늘이 드러났을 뿐,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던 하늘이 끝나간다. 하늘은 새까맸다. 완전한 밤하늘이 저 지평선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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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뜨지 않았다. 푸른 하늘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 가득한 별들이 태양을 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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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으로 타오르는 별들. 그 강렬한 빛이 땅을 밝히고 있었으니. 나진은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침묵만이 가득했던 땅에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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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 카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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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 인간이 낼법한 소리였다. 나진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낡은 갑옷을 입은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는 다른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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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라프. 쿠르탄의 기사 그라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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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높인 기사의 검이 번뜩였다. 푸른색의 검기. 나진에겐 익숙한 검기였다. 이반의 검기가 딱 저런 색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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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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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의 검기가 불처럼 타올랐다. 형태를 가진 검기. 소드 시커의 상징. 스스로를 그라프라 외친 기사는 시퍼렇게 타오르는 검을 휘둘러, 자신을 둘러싼 이들을 차례차례 죽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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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와 싸우는 이들 역시 강자였지만, 그라프는 수준이 달랐다. 나진이 보기에도 그는 강자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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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싸움은 끝났다. 그라프의 승리였다. 타들어 간 시체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거리를 둔 채 나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숨을 몰아쉬던 그라프가 휙 하고 나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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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찍이서 보고 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덤벼라. 한 명 정도 더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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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진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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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제 양 팔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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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입니다. 경을 습격할 생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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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동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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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전 방금 외륙에 발을 들인 참입니다. 저들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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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륙에 처음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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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의 눈이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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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진의 행색을 빠르게 살폈다. 녹슬지 않은 장비. 새것과 같은 옷. 그라프가 천천히 검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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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보이는군. 하긴, 이쪽은 경계선과 가까웠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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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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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온 사람을 보는 건 오랜만이군. 나는 그라프. 대륙에 있을 적엔 쿠르탄이란 기사단에 속해있었지. 쿠르탄이란 이름을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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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년쯤 전에 활동한 기사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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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170년이라. 그렇게 오래됐나? 혹시 쿠르탄의 이야기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있나? 근황이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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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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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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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진에게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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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와도 좋다는 신호였다. 나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그라프를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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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탄은 어떻게 됐지? 여전히 위용을 떨치고 있나? 지금 기사단장은 누구일지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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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전장에서 활약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국이 가진 기사단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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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하! 170년이 지나도록 쿠르탄은 여전하군. 그렇지. 그게 쿠르탄이지. 용맹한 쿠르탄. 우리의 검은 휘둘러야 할 적을 아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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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나진을 힐끗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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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탄 기사단의 격언. 이다음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으므로 나진은 능숙하게 그 질문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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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노래하라, 쿠르탄의 기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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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이거 마음에 드는 친구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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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가 호쾌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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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던 나진은, 문득 그의 발치에 놓인 시체들을 힐끗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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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과는 왜 싸우고 계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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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물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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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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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내 긍지를 모독했다. 외륙에서 살아가는 주제에 무슨 기사며, 무슨 쿠르탄이냐며 나를 욕보였지. 그렇다면 마땅히 응징해야 하는 법. 쿠르탄의 검은 휘둘러져야 할 때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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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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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눈동자는 가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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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시체 하나를 바라봤다. 아니, 시체는 아니었다. 몸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음에도 그는 움찔거리고 있었으니까. 그가 입을 벙긋거렸다. 뭔갈 말하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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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륙에 막 발을 들였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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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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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땅의 상식에 대해선 무지하겠군. 이 땅에선 말일세. 좀처럼 죽기가 어려워. 죽이기도 어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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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닥에 널브러진 남자의 등줄기를 칼로 푹, 하고 찍었다. 그는 성대가 불에 타 비명을 지르지는 못했지만 몸을 크게 경련함으로써 제 고통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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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베어도, 아무리 불로 태워도 죽질 않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살아나지. 그렇다면 어떻게 죽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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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가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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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칼끝에는 심장이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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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이 땅에선 심장만큼이나 중요한 게 없지. 팔다리가 날아가고 머리가 날아가는 일이 있더라도 심장만은 잃지 말게. 그것이 상식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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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잃은 순간, 경련하던 시체가 축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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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괴물 같은 놈들은 심장이 뽑혀도 멀쩡히 살아 움직이나, 대부분은 심장을 뽑으면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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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면서 그라프는 칼끝에 꽂힌 심장을 손으로 뽑아냈다. 그리곤 제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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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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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심장을 물어뜯었다. 음식을 먹듯이. 고기를 뜯듯이. 혹은, 사과를 베어 물듯이. 나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시선에 그라프가 눈을 깜빡였다.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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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그라프가 손에 쥔 심장을 가리켰다. 그제야 뭔갈 깨달았다는 듯 그라프가 ‘아!’ 하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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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아! 내가 외륙에서 산 지 너무 오래되어 잊어버리고 있었군. 그렇지. 대륙에선 이게 끔찍한 행위겠지. 시체를 능욕하고 심장을 먹다니? 야만인들이나 할법한 행위야. 기사가 할법한 일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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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가 머쓱하다는 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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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외륙에선 당연한 일일세. 심장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나? 마나이고 양분이고 삶이 들어있지. 심장은 곧 삶에 비유되고 심장을 취한다는 건 삶을 취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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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는 다시 한번 심장을 물어뜯었다. 씹어서 삼켰다. 피로 번들거리는 입가를 혀로 핥으며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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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엔 아깝지 않나? 이 외륙에서 심장만큼이나 가치 있는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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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는 그라프의 어조는 담담했다. 그 표정 역시 당연한 걸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그 모든 행위가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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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취하면 별빛을 얻을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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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프가 나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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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작 역시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대화의 일부처럼 느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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