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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별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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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별이지. 뭐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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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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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을 얻게 된 지금, 나진은 별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별의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는 건 아니었다. 별이 뭘 상징하는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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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업을 이뤘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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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해 보이는 시련을 돌파해 하늘에 닿을 위업을 이뤄냈다는 증거가 바로 별이다. 이건 나진이 목숨을 걸고 도전한 보상이기도 했다. 나진은 쫙 펼친 제 손바닥 위에서 반짝이는 두 개의 별을 봤다. 집중하면 이런 식으로 별빛을 불러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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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긴 하다. 그토록 바라던 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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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뭐라 해야 할까? 별을 바라보며 나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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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떻게 쓰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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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걸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영웅담 속 아서왕은 별로 땅을 가르고 하늘도 가르고 막 그랬던 것 같은데. 나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멀린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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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2개 가지고 하늘 가르고 땅을 가를 수 있었으면 말야, 나랑 아서가 진작에 나락의 용 모가지도 따고, 나락의 마녀 목도 따버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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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가 그렇다는 거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별이 있으면 마법 같은 걸 부릴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영웅담 보면 별거 다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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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상상하는 것들은 최소 별이 네다섯개 정도는 모여야 해. 별과 별이 이어져 ‘별자리’를 이룰 정도는 되어야지 별의 능력이 증폭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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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허공에 손가락을 휘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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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끝을 따라 푸른 선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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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별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선 내가 설명할 수 없어. 그건 성좌마다 다 다르니까. 말했었지? 별은 네 삶이자 네가 걸어온 길 그 자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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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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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심상을 ‘어떻게’ 쓸지 내가 알려주지 못하는 것과 같아. 결국 너 스스로 알아가야 하지. 어려울 건 없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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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선이 그린 것은 멀린의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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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자신의 별자리를 보여주는가? 멀린과 함께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기에, 이제 나진도 멀린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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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자랑하려 하는구먼,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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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었다. 멀린은 나진에게 잘 보이도록 제 별자리를 휘적이며 말했다. 자랑할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않는 멀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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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하나가 곧 위업이지. 즉, 11개의 별을 얻은 난 11개의 위업을 이루었단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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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열한 개’ 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나진은 ‘와, 정말요. 대단한데요.’ 라고 답하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몇분 쯤 멀린의 자기 자랑을 듣다 보니 그제야 건설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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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별이 꼭 강함의 척도를 의미하진 않아. 별이 많다고 무조건적인 승리를 장담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별은 너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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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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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네가 살아온 흔적. 네가 걸어온 길. 네가 이뤄낸 위업을 증명하는 수단이자 증거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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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손을 뻗어 창밖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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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동이 트지 않아 바깥은 어두웠고, 어두운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예전에는 마냥 멀게만 느껴졌던 밤하늘.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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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에 자신의 별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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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별들 사이에서도 나진은 제 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직은 약하지만 분명히 빛나고 있는 두 개의 별. 나진이 하늘에 걸어놓은 자신의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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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존재를 넌 별로 새겨 하늘에 못 박아놨어. 저 별이 떨어지기 전까지, 어디에서든 하늘을 바라보면 넌 너 자신을 찾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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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이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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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하나라도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 넌 시작점에 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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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 어떤 시작점에 섰는지는 물을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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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오르는 첫 계단에 오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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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뿐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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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진을 보았다. 아직 나진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나진의 육체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별을 얻은 인간들이 으레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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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멀린은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그건 남이 말한다고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가 체득(體得)해야 하는 부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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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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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말하며 멀린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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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성(黎明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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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끝을 알리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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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입을 통해 발음 된 제 이명에 나진은 무심코 웃고 말았다. 여명성, 나쁘지 않은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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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도 얻었으니 그럼 증명하는 일만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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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증명은 이곳이 아닌 머나먼 바깥의 땅에서 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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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별들의 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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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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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본격적으로 외륙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그냥 몸만 휙 오면 됐던 캄브리아 때와는 달리, 외륙으로 향할 때는 조금의 준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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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때의 나진과 지금의 나진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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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에 막 발을 디뎠을 때의 나진은 이름은커녕 존재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애송이였다. 그 누구도 나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진은? 수많은 제국민들이 나진을 주목한다. 제국의 바깥에서조차 나진의 존재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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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소 소드 시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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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을 손에 넣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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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도 세(稅)라 했던가. 온 대륙에 명성을 떨쳤으니 당연하게도 나진에겐 온갖 시선이 따라붙었다. 그들은 나진이 앞으로 보일 행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일찍이 제국의 황제가 우려했던 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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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보기에 그대는 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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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불태울지도 모를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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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력에 들어가던 그 세력을 지나치게 거대하게 만들어버릴 존재. 반역도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제국을 불태울 불길이 될 존재. 나진이란 존재는 수많은 집단에게 있어 탐나면서도 위험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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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에 둔다면 더없이 가치 있는 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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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손에 들어간다면 이쪽을 죽일지도 모를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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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지 못한다면 최소한 상대 손에 들어가는 것 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렇게 숱한 집단이 나진의 행보를 지켜보는 가운데······ 나진은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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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시일 내에 외륙으로 떠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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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집단에도 소속 될 생각이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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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을 떠나 외륙으로 향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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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의 선언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외륙이 어느 곳인가. 숱한 영웅들이 성좌가 되기 위해 향했던 곳이며, 수많은 영웅들의 무덤으로 변한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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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되고, 가혹하며, 척박한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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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를 오가는 시련이 가득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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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대륙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망주가 향할만한 곳은 아니었다. 어느 집단에 속하더라도 부와 귀를 누릴 수 있는 유망주가 어째서 외륙으로? 어쩔 수 없이 외륙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아직 열여덟에 불과한 소년이 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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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의문에 나진은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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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시련을 동반하지 않는 영광에는 가치가 없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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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영웅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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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격언인 만큼 수많은 이들의 입을 통해 발음된 문장이었지만, 실천으로 옮긴 이들은 드물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란 어려운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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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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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가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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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진은 말만 번지르르한 허풍쟁이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리 공표한 직후, 나진은 외륙으로 떠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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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진을 두고 누군가는 멍청하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표현했지만, 그들조차도 나진의 행보가 옛 시대의 영웅들과 같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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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와 귀를 등지고 영광을 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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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미련하다고 표현할지언정, 틀리고 삿된 것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오히려 찬사받아 마땅한 결정이었다. 나진의 결정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황실과 아탕가의 기사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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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눈앞의 안락함을 등지고,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를 향해 뛰어드는 이에게 본인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대의 모든 선택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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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나진의 선택에 찬사를 보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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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향해 뛰어든다. 긍지를 아는 자의 결정이다. 부와 귀를 등지고 영광을 쫓는다. 명예를 아는 자의 결정이다. 명예를 알고 긍지를 아는 그대야말로 기사의 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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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탕가는 당장에라도 나진을 기사로 만들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아탕가 역시 나진에게 약속된 자리를 알고 있기에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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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과거 나진에게 약속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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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황제는 선언했었다. 나진이 세 소드마스터 앞에서 밝혔던 포부를 지키는 그날, 나진에게 직접 ‘자유 기사’의 작위를 하사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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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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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위가 가진 가치를 아탕가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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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기사는 머나먼 과거, 아서왕을 따른 원탁의 기사들에게 주어졌던 작위니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한없이 가벼워진 ‘기사’라는 단어와 달리, 그 단어의 무게는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겁게 간직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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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자리를 약속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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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은 나진이 증명하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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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올 그날.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하며 아탕가의 기사단은 군침을 흘렸다. 자그마치 수백 년 만에 자유 기사가 탄생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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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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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황실과 아탕가의 기사단이 입장을 밝히자마자 이때를 기다렸다는 것 마냥, 여기저기서 나진의 선택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에 대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는 아니었다.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려는 목소리였을 뿐이므로, 나진은 귀 기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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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진은 외륙으로 향할 준비를 했지만, 차마 흘려들을 수 없는 목소리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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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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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컥, 나진의 방문을 급하게 열어젖히며 누군가 나진의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갈색 머리칼이 예쁜 소녀, 디에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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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쯤 전 나진에게 고백 공격을 감행한 뒤, 며칠간 나진이 찾아가도 고개를 숙인 채 자리를 피하던 디에타다. 그런 그녀가 직접 찾아오다니? 드디어 수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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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가 도착했어요. 당신에게. 그, 어지간한 건 제 선에서 처리할 텐데 이건······ 이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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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니었다. 단지, 수치심을 극복할 만큼 거대한 사건이 터졌을 뿐이다. 그녀가 나진에게 편지 한 장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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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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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는 핏빛 가시덩굴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성혈 교단을 상징하는 문양. 하지만, 편지에 새겨진 문양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가시덩굴을 가로지르는 한 자루의 검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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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가시덩굴에 휘감긴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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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오직 한 명만이 새길 수 있는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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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 교단의 주신, 가시덩굴의 순교자와 가장 가까운 자. 가시덩굴 순교자의 대전사(代戰士). 성혈 교단의 처형인 등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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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귀, 유엘 라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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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서 도착한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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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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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 라지안은 검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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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날에 찐득하게 눌어붙은 핏물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그녀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내뱉은 숨결은 뜨거웠다. 핏물을 닮은 눈동자가 붉게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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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소드마스터의 검에 피가 묻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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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마스터가 무엇인가? 숨 쉬듯이 검기를 좍좍 뽑아내며, 원한다면 수십 수백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적을 베어버릴 수 있는 초월자들이다. 검기에 감싸인 칼날에는 이물질이 묻을 일이 없으며, 묻는다 하더라도 검기의 열기에 순식간에 증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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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소드마스터의 검에 피가 묻을 일은 거의 없다. ‘소드마스터의 검에 피가 묻었다’ 는 문장은 그들이 누군가를 죽였음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일 뿐, 정말로 그들의 검에 피가 묻었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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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소드마스터가 유엘을 지칭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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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드마스터의 검에 피가 묻었다, 라는 문장은 비유로 쓰이지 않았다. 유엘 라지안의 검에는 언제나 피가 묻어 있었으니까. 그 이유야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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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은 의도적으로 검기를 뽑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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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기를 활용하면 더 쉽고 간단하게 상대를 죽일 수 있음에도, 유엘은 그리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 이유를 물은 기사들에게 유엘은 이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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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야 베는 맛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검을 쓰신다면 아시지 않습니까. 살을 가르고, 뼈를 끊고, 내장을 헤집으며 몸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칼날. 칼날의 떨림. 칼자루를 타고 느껴지는 진동. 그 순간 저는 비로소 즐거움을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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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는 맛이 없다. 고작 그뿐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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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검기를 견딜 수 있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에, 유엘은 스스로의 힘을 제한하곤 했다. 어차피 녹아 사라질 사탕이라면 최대한 오랫동안 혓바닥 위에서 굴리겠단 심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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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상대에 대한 모욕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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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들은 그리 묻고 싶었지만, 그리 물을 수도 없었다. 유엘의 검이 베는 것은 죄인이었고 이단이었으며 악마와 관련된 사악한 것들이었으니. 예로부터 사악한 것들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것이 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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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유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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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겐 선과 악의 개념이 모호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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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은 딱히 흑마법사니 이단이니 하는 이들이 큰 죄를 저지른 죄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을 악인(惡人)이라 여겨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죽여도 뒤탈이 없기에 죽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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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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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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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삼킬 때마다 혈향이 진동했다. 황홀한 웃음을 지은 채 유엘은 시쳇더미에 제 검을 푹, 하고 박아 넣었다. 그렇게 검을 고정한 채 그녀는 품에서 서신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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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에 적힌 것은 한 소년에 대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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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제 부관을 시켜 수집한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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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에 쓰인 소년의 활약상을 읽어내리는 유엘의 눈동자가 가늘게 휘었다. 입꼬리에 웃음이 걸렸다. 다시 읽어보아도 서신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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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별을 동시에, 그것도 열여덟의 나이에? 대단하군요. 놀랍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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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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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옆에는 다리가 잘린 흑마법사가 하나 엎어져 있었으니. 흑마법사가 제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 맞부딪치며, 사라진 다리 대신 손으로 땅을 기며 도망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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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한 일입니다.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군요. 흥미로운 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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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은 도망치는 흑마법사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흑마법사는 유엘의 중얼거림을 미치광이의 독백쯤으로 여겼다. 딱히 대답을 바라기에 던지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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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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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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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질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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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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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온 힘을 다해 제 손을 움직였다. 거친 돌바닥의 표면에 손톱이 부러지고, 손가락 끝이 찢어져 피가 흐름에도 그는 미친 듯이 바닥을 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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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않습니까. 대단하지 않냐고. 저는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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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이 흑마법사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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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흑마법사의 손가락이 끝에서부터 바스러졌다. 깨진 손톱이 바스러지고, 피부가 흩어지며, 뼈가 갈려 나간다. 마치 사냥감을 해체(解體)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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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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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로 해체되는 고통에 흑마법사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든지 말든지, 유엘은 다시 한번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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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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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대단합니다. 훌륭합니다. 정말이지 다시는 없을 위업이며, 불세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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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어휘를 쥐어짜내 얼굴도 모를 어느 소년을 칭송했다. 과다출혈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그는 그리했다. 차츰 가늘어지던 흑마법사의 숨이 끊어질 무렵 유엘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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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실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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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엘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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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확인해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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