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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덩치는 크다. 검정색 티셔츠에는 어느 밴드인지 모를 밴드의 로고. 목에는 금목걸이가 걸려 있고, 팔은 온통 문신 투성이. 머리는 빡빡 깎았고, 스크래치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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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외형에서부터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 딱 봐도 뭔가 성격이 느껴지는 사람 있지 않은가. 괜히 목소리 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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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마스터를 한다고 해서 뭐 수당 같은 것을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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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 차기 좋아하는 사람인가? 명전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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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마스터란, 세션 밴드를 총괄하는 자리다. 진행도 하고, 가수가 알 수 없는 부분을 캐치해서 알려주기도 하고. 곡에 따라 편곡을 하기도 하고, 가수의 피드백에 따라 세션들의 조정을 거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경력도 필요하고, 실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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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단지 그것 뿐이다. 뭐 득이 되는 건 없다. 귀찮은 일만 가득할 뿐인 자리다. 아, 물론 어느 콘서트의 밴드 마스터 했다 이러면 좀 세션 경력상 플러스가 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딱 그정도에 불과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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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 나는 밴드 마스터 안 할래~’ 라고 손을 놔버릴 수도 없다. 잘하는 밴드 마스터가 들어오면 티가 안 나지만, 못하는 밴드 마스터가 들어오면 확 티가 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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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과 실력을 논했던 남자의 말 이후로, 딱히 대답이 없던 사람들. 태경은 불안한 심정으로 세션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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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동도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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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해주면 안 되나? 저 사람 왠지 성격 안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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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길가다 보이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 없다. 하지만 태경은 세션 밴드와 소통을 담당하는 스태프로서, 그래도 성격이 좀 괜찮은 밴드 마스터와 일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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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주현의 팀에는 ‘세션 밴드 담당’이라는 업무가 이제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저 사람이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해도 그게 맞는지 아닌지 알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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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이의 없으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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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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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에 답하며 올라온 손. 태경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찾아보았다. 메인 세션 밴드의 리더, 하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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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마스터는 아무래도 총괄직이니까. 메인 세션 밴드인 저희 쪽에서 맡아야 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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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세션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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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그런 게 있었나… 하는 눈치로 태경을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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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더라도. 어찌됐든 저희가 밴드 여러분 요구대로 다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경력도 짧아보이신 것 같은데. 세션적인 부분을… 음, 혹시 좀, 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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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세션을 알기나 하냐?’ 같은 느낌의 질문. 하지만 수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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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적인 부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짧기는 하죠. 하지만 실력이라거나, 뭐 지식이라던가. 그런 쪽에서 딱히 모자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요. 세션 일도 잘 알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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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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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참으로 가당찮다는 느낌으로 반문했다. 보통 저 나이 정도 되면 저렇게 거칠게 반응하지는 않는데. 근데 태경이 듣기에도 말이 안 되는 부분이긴 했다. 주로 물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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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고등학교 2학년이 지식도 좋고 실력도 좋은데 세션 일도 잘 알겠는가? 주현 팀에 세션 밴드가 안 들어온 거지 태경이 세션들과 소통하는 일을 안 해본 게 아니었기에, 태경은 저게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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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런 걸로 무시하긴 좀 그런데. 어리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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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경은 ‘그게 말이 되나요?’ 라는 말이 뒤에 생략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현장의 스태프와 나머지 세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싸움처럼 보이는 현장에 돌아가는 고개들. 하지만 수연은 씨익 웃으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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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중요한가요? 실력이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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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력 이야기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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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지, 목소리 톤이 낮아지는 세션. 수연은 살짝 웃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게 무슨 일인지 하는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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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잘 칩니까? 나도 어디가서 기타 못 친다는 소리 듣는 사람은 아닌데. 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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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밴드 마스터가 기타 잘 친다고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편곡도 하고, 뭐 소통도 하고. 그런 점에서 메인 밴드 리더인 제가 맡는 게 편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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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기타의 더 낮아진 목소리에, 수연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함인지 말을 살짝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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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잘 치시냐구요. 밴드 리더시면 잘 치시겠네. 어느정도 치십니까? 이 정도는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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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경이 보기에는, 세션 기타는 이미 살짝 흥분한 상태 같았다. 왜 저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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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애한테 무시당한다고 느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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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도 있겠다고 태경은 생각했다. 딱 봐도 경력이고 뭐고 자기보다 못 해보이는데, 메인 밴드 리더니 실력도 지식도 너보다 좋으니… 그런 말을 들으니 열이 뻗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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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세션 기타는 뭔가 앰프에 줄을 연결하고 속주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뭔가 빠르게 튕겨내는 줄. 상당히 빠른 속주에, 스태프들은 오~ 하는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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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연은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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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주로 기타 실력이 평가가 되나요? 세션 어느정도 하셨으면, 그런 걸로는 전혀 안 된다는 거 아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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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정도는 치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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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음… 허허. 뭐 그 정도는 평범하게 칠 줄 아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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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자포자기로 대답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속주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캐논락 치던 시절 어린 애들도 아니고, 딱 봐도 40대는 되어 보이는데 왜 그런 허상에 집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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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말이 길어지지 않고 그냥 ‘실력’으로 평가하자는 이야기는 좋다. 복잡하지 않고 편하니까. 설득의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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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프에 줄을 꽂고, 살짝 노브를 만진다. 이 앰프로 완벽하게는 만들어낼 수 없으나 어느정도는 재현이 가능하다. 싱글 코일로 낼 수 있는 헤비한, 하지만 스트랫의 색깔은 지우지 않는 정도로 톤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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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발을 몇번 구르고는… 명전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명전이 손을 풀 때 가끔 연주하곤 하는 곡 중 하나인, 잉베이 말름스틴(Yngwie Malmsteen)의 Far Beyond The Sun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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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는 세션 기타의 표정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다가, 조금 있다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이 일그러지다, 나중에는 표정 자체가 아예 멍하게 변해버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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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수연의 연주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세션 기타는 약 30초 정도의 연주를 보여주었지만, 수연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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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는 모르겠지만, 뭔가 약간 클래식한 느낌도 나는 메탈 속주곡을 거의 5분 정도 연주하고 있다. 주위 사람들은 연주를 말리기는 커녕 연주에 푹 빠져 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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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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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음을 끝내고, 수연은 기타에게 되물었다. 이미 혼이 빠져버린 표정이던 기타는, 그 말에 아무 말 없이 목을 긁적이더니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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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기타 구해야 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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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 중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낮은 헛웃음이 퍼져간다. 이서는 ‘그러게 왜 쟤한테 갑자기 시비를 걸어서는…’ 같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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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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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시작한 세션 연습은 순조로웠다. 리듬 기타를 빼고 연습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뭐 그렇게 중요한 파트도 아니니, 다음 주에 새로 들어오면 그때 다시 맞춰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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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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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을 받아 다들 연습실에서 나간 사이. 캔커피를 까 마시는 명전에게 다가온 서하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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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세상 어디에 쉬운 일이 있겠냐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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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가끔 그런 말 할때 진짜 노인네같은 거 혹시 자각하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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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은 뜨끔했다. ‘진짜 노인네 같은 거’ 가 아니라 진짜 노인네긴 했으니까. 하지만 서하는 그런 명전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한 채, 의자에 털썩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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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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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지. 내 생각에는… 아마 나이 때문에 화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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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으로 연령대를 추측해보면… 마흔 넘는 나이. 게다가 세션계에 이리저리 발을 걸치고 있던 명전이 이름 하나 들어보지 못했던 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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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사정을 섵불리 추측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 문제 같았다. 딱 봐도 어려보이는 여자애가 콘서트 메인 밴드 리더를 하고 있는데, 자기는 세션 리듬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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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이보다 실력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 하고 있으면, 안 그래도 정서 불안정하다는 ‘예술 하는 놈들’이 화가 안 날리가 없다. 명전도 재능 있는 젊은 애들에게 화를 내본 적이 좀 있었으니, 처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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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거랑 나한테 직접 그러는거랑은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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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 사람은 이제 우리랑 연관 없으니까. 그런데 진짜 콘서트 세션 밴드 정도 되니까, 엄청 신경써야 될 것도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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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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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세션단의 규모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그냥 간략하게 예닐곱명만 꾸려서 하는 경우도 있고, 서른명 마흔명이 들어가는 콘서트도 있다. 예를 들어 스트링 파트(클래식에서 사용되는 현악기들), 타악기(드럼 및 봉고 등등), 저음부, 기타(리드, 리듬1, 리듬2, 리듬3…), 캐스터네츠나 탬버린, 하모니카 같은 기타 악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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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전이 느끼기에 이 정도 규모 세션단이면 그렇게 막 규모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스트링 파트 있고, 리듬기타에 리드기타. 그리고 그 외 몇몇 특수 악기들과 밴드. 하지만 서하는 단독 드럼으로서 뭔가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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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 잡아주면 뭔가 다 흔들리는 느낌이야. 우리는 그래도 우리끼리 호흡도 다 맞췄고, 게다가 수연이 네가 완전 칼박이니까 혹시라도 내가 흔들리면 너를 보고 맞추는 부분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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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약하게 했나? 드럼이 박자를 못 맞춰? 이거 안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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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히이익- 하는 표정을 짓는 서하. 명전은 흐흫 웃으며 캔커피를 탈탈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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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런 거 한번 겪어보면, 실력 엄청 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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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자신의 뜻대로 부릴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연습을 하고 맞춰나가다보면… 어느새 실력이 부쩍 늘어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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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되네,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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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그런 이야기를 하긴 이르지 않나? 아직 몇번 연습이 더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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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좀 깨지 말아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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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의 말에 명전은 다시금 웃었다. 아이들에게 이런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것이, 점점 즐거워지고 있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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