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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있다가 뵙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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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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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들의 합창과 함께 박수가 이어진다. 밝은 표정으로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긴장되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아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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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 긴장돼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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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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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별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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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어쿠스틱 공연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던 현아의 친구들은 이번에도 세션을 서 주기로 했다. 학교 축제와는 질적으로든 규모적으로든 비교가 안 되는 스케일 탓에, 상당히 긴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여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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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다보면 다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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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뭘 하다보면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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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밴드에서는 움츠려 지내며 비슷한 걱정을 하고 받는 현아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저렇게 친구들 사이에서는 의지되는(아마 그럴 것이겠지) 모습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사람은 서는 곳이 바뀌면 모습도 양식도 다 바뀌는 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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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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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카페 갔다 오면서 슬쩍 가봤는데 벌써부터 줄 선 사람도 있더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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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입장은 순서대로 하면 되는 건데 줄은 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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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 사야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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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커피 구매 겸 정찰을 갔다 온 이서의 보고. 황당하다는 듯한 서하의 중얼거림에, 이서가 대답했다. 그는 둘이서 주고받는 그런 촌극을 보면서 크로매틱을 가볍게 해 보았다. 손이 휙휙 돌아가는 것이 컨디션이 좋은 듯 했다. 툭툭 쳐 보다가, 손 가는 대로 곡을 하나 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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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무슨 노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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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모르나? 세션 가면 가끔 연주하는데. Every breath you 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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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세션을 가보면 치는 노래. 특히 딜레이가 제대로 먹었나 테스트를 할 때 많이 치는 곡. 손에 쫀득하게 달라붙기도 하고 해서 상당히 유명한 곡인데. 이걸 모르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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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션 가면 이제 중년 아재 노인네들이 막 이거 연주하면서 코러스 넣어달라고 난리치고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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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그런 데 많이 가본 것 처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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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그렇게 들었다는 거… 가 아니라 실제로 세션 많이 돌잖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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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고 갸웃거리는 이서. 그는 입을 비죽거려보이고는, 공연장을 둘러보았다. 오늘 다 매진이라고 했었지. 매진될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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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현실이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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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곳을 빌리자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반대를 했었다. 그 밑급의 공연장을 빌려 매진을 시키는 것이 더 경제적일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빌리게 된 것은, 그가 강력히 주장했던 것이 컸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 그래서 더 빌리고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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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더 윗급 빌리자고 할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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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유명 아티스트들이 내한을 올 때 쓴 곳. 매진이 되고도 암표가 돌고 인터넷에 ‘그룹사운드 콘서트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 라는 글이 도는 걸 보면, 한 급 더 올려도 될 뻔 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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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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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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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자러 가야겠다. 뭔 일 있으면 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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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 눈을 번쩍 뜨는 이서. 표정은 마치, ‘이 상황에서 잠이 온다고?’ 같은 느낌이었다. 서하는 옆에서 “너는 지금 잠이 오냐?” 라고 실제로 말하고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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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뭐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공연 시작까지 한참 남았는데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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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건 아니라도 뭔가… 연습이라도 좀 할 수 있지 않나. 자는 건 좀… 긴장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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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몇번이나 했는데 이런 거에 아직도 긴장을 해. 그냥 한숨 자고 한 30분 전에 깨어나서 손 풀면 그걸로 그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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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대기실로 사라지려고 했다. 좀 늘어지게 잔 다음 일어나면 기분도 상쾌하고 좋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그의 목덜미를 잡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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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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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좀 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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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러 가신다고요?! 무슨 소리에요!!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메이크업도 해야 하고 유튜브 자컨용 인터뷰도 찍어야 하고 팬분들 선물 인증샷도 찍어야 하고 화환 같은 것도 감사 인사 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데!! 빨리 오세요 이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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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게 많다며 수연을 불러다가 그를 질질 끌고 가는 정유영 과장이었다. 그는 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했다가 치과 끌려간 아이처럼, 멤버들의 폭소에 복수심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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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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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없이 늘어선 줄의 끝에서, 세윤은 드디어 자신이 기다리던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공연 한정으로 발매된 옷들과 응원용 굿즈. 특히 한정 훈장(인지 키링인지 아무튼 그렇게 생겼다)과 옷들이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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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도 굿즈…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반 브랜드 옷 같은 느낌이고. 이건 진짜 달고 다녀도 일코 가능할 것 같은 디자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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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자부심이 있는 두 멤버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나 공들여 만든 것이 분명해보이는 굿즈들. 그녀는 줄을 꼬박 선 다른 사람들의 질시섞인 시선을 받으며 당당하게 콘서트 회장 안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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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련된 콘서트 회장을 보고, 잠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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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꺼서 의도적으로 어둡게 해 놓은 회장. 희미하게나마 비쳐 발을 헛디딜 염려는 전혀 없도록 만들어놓은, 360도 무대. 무대 안 쪽은 어둠으로 가려져 있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바닥을 수놓은 야광 불빛이 마치 반딧불이들의 행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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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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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누나 이름을 막 부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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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자리에 가 있던 그녀의 남동생, 세현. 그녀는 투덜투덜대며 자리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았다. 점점 어둠에 적응하는 시야. 무대 안쪽에는 희미하게, 많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오늘 뭔가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이렇게 세팅을 해 놓는 것 부터가 돈이 엄청 깨질텐데. 이 애들 돈을 안 벌려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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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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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이전 그녀의 덕질 대상이었던(지금도 하고 있긴 하지만) 주현을 떠올렸다. 이곳보다 더 관객이 많아 급이 높다고 표현되는 공연장을 주로 사용하는 주현이지만, 그는 가수 활동을 한지 벌써 10년차가 넘어가는 사람. 주현도 이 즈음에는 버스킹 정도나 하거나 했지, 콘서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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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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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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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들린 건, 세현의 탄성. 핸드폰으로 뭔가를 찾아보던 것 같던 그는, 이내 자신이 원하던 걸 찾았는지 세윤에게 화면을 들이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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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좀 봐. 락 밴드는 거의 뭐 전멸이고. 여돌 중에 여기 매진시킬 수 있는 그룹은 거의 뭐 1군급은 돼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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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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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현이 내민 자료에는, 유명한 기획사들에서 간판으로 밀어주는 아이돌들의 이름이 보인다. 턱 없이 모자란 수치도 있고, 비슷비슷한 수치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런 애들과 Group Sound가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는 것이겠지. 인디밴드인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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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밴드들 공연도 몇번 가 봤는데 지금 여기만큼 사람 많이 온 건 처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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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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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그런 대화를 세현과 주고받으며,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공연 시간이 되자 안내 방송이 나간다. 부스럭거리며 카메라를 숨기는 사람들이 보이는 가운데, 어두워지는 회장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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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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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성거리는 사람들. 세윤은 빠르게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어두운 회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파바바바박- 하는 소리와 함께 켜지는, 공중에 매달린 대형 스크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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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어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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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스포트라이트. 무대의 중앙에는, 네 명의 멤버가 뭔가 포즈를 취하며 사방으로 서 있었다. ‘모 만화’에서 나오는 아이돌 포즈를 한 것으로 보이는 이서와, 살짝 움츠러들어있는 현아.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서하와, 머리를 빙빙 꼬며 관객들을 응시하는 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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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네 명이 자신들의 자리를 잡으며, 음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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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울려퍼진 것은, 바로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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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낮은 템포, 리드미컬한 베이스. 인트로에서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는 베이스는, 이서의 실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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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았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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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함 속에는 거북이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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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나는 매점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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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가는 토끼를 바라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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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윤은 옛날에 봤던 영상 하나를 떠올렸다. 약간 조잡하게, 핸드폰 카메라로 녹화되었던 그런 영상. 이 곡, [잿빛의 나날들]이 처음 공연되었던 홍대의 버스킹 무대. 왜 나는 이때 홍대에 없었어서 이 풍경을 보지 못했던 걸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날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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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그 영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서 읊조리는 듯한 음성. 아련하게 중얼거리는 이서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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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언덕을 넘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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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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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는 내일의 열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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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사과를 베어물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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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상 이후로도 Group Sound는 많은 공연에서 [잿빛의 나날들]을 부르긴 했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엔 이 버전이 최고였다. 앨범의 정식 발매 버전이 나은지, 이 버전이 나은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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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는 사흘 전에 떠나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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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는 어딜 가는지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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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린 첫 눈의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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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더 네게 찾아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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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것 같았던 곡이 갑작스럽게 멈춘다. 감성에 젖어 있던 관객들은, 약간 의아한 기색을 보낸다. 하지만 그 중 앞 줄에 앉은 몇몇 사람들은, 뭔가 낌새를 눈치챈 듯 웅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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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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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룹 사운드의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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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소리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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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이자 보컬! 도내최고미소녀! 최이서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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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양심이 없어, 양심이. 원래 저렇게 입는 애들은 패션도 그렇고 그냥 남들 거 도둑질만 하고 다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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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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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시작된 만담. 하지만 뭔가 평소대로의 Group Sound 같은 분위기에,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이서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하며 너스레를 떨다 수연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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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그룹 사운드의 리더이자 기타를 맡고 있는, 기타리스트 하수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많이들 모여주셨는데요. 제가 듣기에는 매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희가 공연장을 잘못 잡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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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요!!”, “더 큰 곳으로 잡아주세요!!” 같은 고함소리가 울려퍼진다. 남녀가 섞인 그 목소리는, Group Sound의 팬층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게 했다. 그 말에 수연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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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잡았을텐데요. 저희도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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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저희의 공연을 관람했더라면… 아무래도 이게 수익이라는 게 있지 않나요? 그게 좀 극대화되긴 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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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들어오는 이서와 돈 이야기. 사람들의 웃음이 다시 한번 터진 가운데, 이서가 능글맞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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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잖아요~ 오늘 다들 이 곳에, 엄청나게 큰 결심을 하시고. 비싼 돈과 시간까지 지불해가시며 오셨잖아요? 저희가 이걸 다 만족을 시켜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제 다음 공연도 오시고 이러시면서, 저희의 공연 퀄리티도 상승하고 여러분들의 삶의 질도 상승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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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과 함께, 무대의 조명 색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뀐다. 자주색과 섞인 듯한, 오묘한 푸른 빛. 그리고 투두두두두- 하는 효과음과 함께, 강렬한 노을색 빛의 기둥이 시계방향으로 무대 바깥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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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아래에는 각자 한 명씩이 있다. 누군가는 피아노를, 누군가는 기타를. 누군가는 트럼펫 류를, 누군가는 스트링 류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악기도 있고, 마이크만을 앞에 둔 코러스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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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기 위해서!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콘서트 사양 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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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봐도 열명이 훨씬 넘어보이는 세션들. 첫 콘서트에 투입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의 인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원들이 만들어낼 화려한 사운드에 기대감이 들 정도의 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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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잿빛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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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관객들의 맹렬한 박수를 배경음악으로 둔 채로… 이서의 외침과 함께, 현악기들이 화려한 소리를 내며 연주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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