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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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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w Blame History

“좀 있다가 뵙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세션들의 합창과 함께 박수가 이어진다. 밝은 표정으로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긴장되어 보이는 기색이 역력한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아의 친구들.

“야 나 긴장돼 어떡해…!”

“별 거… 아니에요…”

“뭐가 별 거 아니야!”

이전 어쿠스틱 공연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던 현아의 친구들은 이번에도 세션을 서 주기로 했다. 학교 축제와는 질적으로든 규모적으로든 비교가 안 되는 스케일 탓에, 상당히 긴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여대생들.

“그냥… 하다보면 다 하는 거…”

“야! 뭘 하다보면 다 해.”

평소 밴드에서는 움츠려 지내며 비슷한 걱정을 하고 받는 현아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저렇게 친구들 사이에서는 의지되는(아마 그럴 것이겠지) 모습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사람은 서는 곳이 바뀌면 모습도 양식도 다 바뀌는 법이라고.

“사람 어때?”

“야, 카페 갔다 오면서 슬쩍 가봤는데 벌써부터 줄 선 사람도 있더라 진짜.”

“아니 입장은 순서대로 하면 되는 건데 줄은 왜 서?”

“굿즈 사야 되잖아.”

바깥에 커피 구매 겸 정찰을 갔다 온 이서의 보고. 황당하다는 듯한 서하의 중얼거림에, 이서가 대답했다. 그는 둘이서 주고받는 그런 촌극을 보면서 크로매틱을 가볍게 해 보았다. 손이 휙휙 돌아가는 것이 컨디션이 좋은 듯 했다. 툭툭 쳐 보다가, 손 가는 대로 곡을 하나 쳐 본다.

“그건 무슨 노래야?”

“이거 모르나? 세션 가면 가끔 연주하는데. Every breath you take.”

기타 세션을 가보면 치는 노래. 특히 딜레이가 제대로 먹었나 테스트를 할 때 많이 치는 곡. 손에 쫀득하게 달라붙기도 하고 해서 상당히 유명한 곡인데. 이걸 모르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세션 가면 이제 중년 아재 노인네들이 막 이거 연주하면서 코러스 넣어달라고 난리치고 그러지.”

“너 그런 데 많이 가본 것 처럼 말한다?”

“… 아니 그렇게 들었다는 거… 가 아니라 실제로 세션 많이 돌잖아 나.”

그런가? 하고 갸웃거리는 이서. 그는 입을 비죽거려보이고는, 공연장을 둘러보았다. 오늘 다 매진이라고 했었지. 매진될까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진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현실이 그러니까.

처음에 이 곳을 빌리자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반대를 했었다. 그 밑급의 공연장을 빌려 매진을 시키는 것이 더 경제적일 거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을 빌리게 된 것은, 그가 강력히 주장했던 것이 컸다. 역사와 전통이 있는 곳. 그래서 더 빌리고 싶었던…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더 윗급 빌리자고 할 걸 그랬나.

각종 유명 아티스트들이 내한을 올 때 쓴 곳. 매진이 되고도 암표가 돌고 인터넷에 ‘그룹사운드 콘서트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냐’ 라는 글이 도는 걸 보면, 한 급 더 올려도 될 뻔 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럼 이제…”

“이제?”

“한숨 자러 가야겠다. 뭔 일 있으면 깨워.”

그의 말에 눈을 번쩍 뜨는 이서. 표정은 마치, ‘이 상황에서 잠이 온다고? 같은 느낌이었다. 서하는 옆에서 “너는 지금 잠이 오냐?” 라고 실제로 말하고 있었고.

“야 뭐 그럼 어떻게 할 거야. 공연 시작까지 한참 남았는데 기다려?”

“아니 그건 아니라도 뭔가… 연습이라도 좀 할 수 있지 않나. 자는 건 좀… 긴장 안 돼?”

“공연을 몇번이나 했는데 이런 거에 아직도 긴장을 해. 그냥 한숨 자고 한 30분 전에 깨어나서 손 풀면 그걸로 그만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대기실로 사라지려고 했다. 좀 늘어지게 잔 다음 일어나면 기분도 상쾌하고 좋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그의 목덜미를 잡은 것은…

“어디 가세요!”

“아, 좀 자러…”

“네?! 자러 가신다고요?! 무슨 소리에요!!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메이크업도 해야 하고 유튜브 자컨용 인터뷰도 찍어야 하고 팬분들 선물 인증샷도 찍어야 하고 화환 같은 것도 감사 인사 해야 하고 얼마나 많은데!! 빨리 오세요 이 쪽으로!!”

할 게 많다며 수연을 불러다가 그를 질질 끌고 가는 정유영 과장이었다. 그는 돈까스 먹으러 가자고 했다가 치과 끌려간 아이처럼, 멤버들의 폭소에 복수심을 불태웠다.


수도 없이 늘어선 줄의 끝에서, 세윤은 드디어 자신이 기다리던 물건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공연 한정으로 발매된 옷들과 응원용 굿즈. 특히 한정 훈장(인지 키링인지 아무튼 그렇게 생겼다)과 옷들이 이뻤다.

‘재질도 굿즈…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반 브랜드 옷 같은 느낌이고. 이건 진짜 달고 다녀도 일코 가능할 것 같은 디자인이네.

패션에 자부심이 있는 두 멤버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꽤나 공들여 만든 것이 분명해보이는 굿즈들. 그녀는 줄을 꼬박 선 다른 사람들의 질시섞인 시선을 받으며 당당하게 콘서트 회장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마련된 콘서트 회장을 보고, 잠시 멈추었다.

불을 꺼서 의도적으로 어둡게 해 놓은 회장. 희미하게나마 비쳐 발을 헛디딜 염려는 전혀 없도록 만들어놓은, 360도 무대. 무대 안 쪽은 어둠으로 가려져 있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바닥을 수놓은 야광 불빛이 마치 반딧불이들의 행진 같았다.

“김세윤!! 여기!!”

“너는 누나 이름을 막 부르냐?”

미리 자리에 가 있던 그녀의 남동생, 세현. 그녀는 투덜투덜대며 자리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았다. 점점 어둠에 적응하는 시야. 무대 안쪽에는 희미하게, 많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오늘 뭔가 보여주려고 하는 걸까. 이렇게 세팅을 해 놓는 것 부터가 돈이 엄청 깨질텐데. 이 애들 돈을 안 벌려고 하는 걸까.

‘그보다…’

세윤은 이전 그녀의 덕질 대상이었던(지금도 하고 있긴 하지만) 주현을 떠올렸다. 이곳보다 더 관객이 많아 급이 높다고 표현되는 공연장을 주로 사용하는 주현이지만, 그는 가수 활동을 한지 벌써 10년차가 넘어가는 사람. 주현도 이 즈음에는 버스킹 정도나 하거나 했지, 콘서트는 꿈도 꾸지 못했다고 했었다.

“야… 진짜.”

“응?”

옆에서 들린 건, 세현의 탄성. 핸드폰으로 뭔가를 찾아보던 것 같던 그는, 이내 자신이 원하던 걸 찾았는지 세윤에게 화면을 들이밀며 말했다.

“이거 좀 봐. 락 밴드는 거의 뭐 전멸이고. 여돌 중에 여기 매진시킬 수 있는 그룹은 거의 뭐 1군급은 돼야 하네.”

“그러네?”

세현이 내민 자료에는, 유명한 기획사들에서 간판으로 밀어주는 아이돌들의 이름이 보인다. 턱 없이 모자란 수치도 있고, 비슷비슷한 수치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런 애들과 Group Sound가 비슷한 수치를 기록했다는 것이겠지. 인디밴드인데도 불구하고.

“국내 밴드들 공연도 몇번 가 봤는데 지금 여기만큼 사람 많이 온 건 처음 봐.”

“그 정도야?”

세윤은 그런 대화를 세현과 주고받으며, 잠시 기다렸다. 이윽고 공연 시간이 되자 안내 방송이 나간다. 부스럭거리며 카메라를 숨기는 사람들이 보이는 가운데, 어두워지는 회장의 조명.

“시… 시작한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세윤은 빠르게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 장면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어두운 회장을 응시했다. 그리고 파바바바박- 하는 소리와 함께 켜지는, 공중에 매달린 대형 스크린들.

“흐어어억-”

누군가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강렬하게 내리쬐는 스포트라이트. 무대의 중앙에는, 네 명의 멤버가 뭔가 포즈를 취하며 사방으로 서 있었다. ‘모 만화’에서 나오는 아이돌 포즈를 한 것으로 보이는 이서와, 살짝 움츠러들어있는 현아.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서하와, 머리를 빙빙 꼬며 관객들을 응시하는 수연.

그리고 네 명이 자신들의 자리를 잡으며, 음악이 시작되었다.

어둠 속에서 울려퍼진 것은, 바로 그 노래.

살짝 낮은 템포, 리드미컬한 베이스. 인트로에서 상당히 바쁘게 움직이는 베이스는, 이서의 실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실감케 한다.

하지 않았던 숙제

사물함 속에는 거북이가 있어

그날의 나는 매점 앞에 서서

뛰어가는 토끼를 바라보았네

세윤은 옛날에 봤던 영상 하나를 떠올렸다. 약간 조잡하게, 핸드폰 카메라로 녹화되었던 그런 영상. 이 곡, [잿빛의 나날들]이 처음 공연되었던 홍대의 버스킹 무대. 왜 나는 이때 홍대에 없었어서 이 풍경을 보지 못했던 걸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날의 공연.

첫 곡은, 그 영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서 읊조리는 듯한 음성. 아련하게 중얼거리는 이서의 목소리.

가파른 언덕을 넘어가

거북이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너와 나는 내일의 열차에서

새하얀 사과를 베어물었지

그 영상 이후로도 Group Sound는 많은 공연에서 [잿빛의 나날들]을 부르긴 했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엔 이 버전이 최고였다. 앨범의 정식 발매 버전이 나은지, 이 버전이 나은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거북이는 사흘 전에 떠나버렸어

그 애는 어딜 가는지 모른 채로

이미 내린 첫 눈의 그림자가

다시 한번 더 네게 찾아올 때…

끝날 것 같았던 곡이 갑작스럽게 멈춘다. 감성에 젖어 있던 관객들은, 약간 의아한 기색을 보낸다. 하지만 그 중 앞 줄에 앉은 몇몇 사람들은, 뭔가 낌새를 눈치챈 듯 웅성이고 있다.

그리고 이서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그룹 사운드의 리더!”

“뭔 소리 하는 거야.”

“리더이자 보컬! 도내최고미소녀! 최이서 인사드립니다!”

“얘는 양심이 없어, 양심이. 원래 저렇게 입는 애들은 패션도 그렇고 그냥 남들 거 도둑질만 하고 다니는…”

“이상하긴… 하죠…”

갑작스럽게 시작된 만담. 하지만 뭔가 평소대로의 Group Sound 같은 분위기에,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이서는 그렇게 몇 마디를 더 하며 너스레를 떨다 수연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안녕하세요. 그룹 사운드의 리더이자 기타를 맡고 있는, 기타리스트 하수연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많이들 모여주셨는데요. 제가 듣기에는 매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희가 공연장을 잘못 잡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어떠신가요?”

“부족해요!!”, “더 큰 곳으로 잡아주세요!!” 같은 고함소리가 울려퍼진다. 남녀가 섞인 그 목소리는, Group Sound의 팬층이 어떤 느낌인지 잘 알게 했다. 그 말에 수연은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잡았을텐데요. 저희도 아쉽네요.”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저희의 공연을 관람했더라면… 아무래도 이게 수익이라는 게 있지 않나요? 그게 좀 극대화되긴 했을텐데.”

느닷없이 들어오는 이서와 돈 이야기. 사람들의 웃음이 다시 한번 터진 가운데, 이서가 능글맞게 웃었다.

“맞잖아요~ 오늘 다들 이 곳에, 엄청나게 큰 결심을 하시고. 비싼 돈과 시간까지 지불해가시며 오셨잖아요? 저희가 이걸 다 만족을 시켜드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이제 다음 공연도 오시고 이러시면서, 저희의 공연 퀄리티도 상승하고 여러분들의 삶의 질도 상승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 말과 함께, 무대의 조명 색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뀐다. 자주색과 섞인 듯한, 오묘한 푸른 빛. 그리고 투두두두두- 하는 효과음과 함께, 강렬한 노을색 빛의 기둥이 시계방향으로 무대 바깥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각자 한 명씩이 있다. 누군가는 피아노를, 누군가는 기타를. 누군가는 트럼펫 류를, 누군가는 스트링 류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악기도 있고, 마이크만을 앞에 둔 코러스들도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콘서트 사양 세팅!”

얼핏 봐도 열명이 훨씬 넘어보이는 세션들. 첫 콘서트에 투입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의 인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원들이 만들어낼 화려한 사운드에 기대감이 들 정도의 인원.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잿빛의 나날들]!!”

그리고 관객들의 맹렬한 박수를 배경음악으로 둔 채로… 이서의 외침과 함께, 현악기들이 화려한 소리를 내며 연주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