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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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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터센드가 끝나고 축제의 열기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아이스랜드의 하늘은 충분히 인내한 듯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스랜드 전역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했으니까.

기념일이 지나고 모두가 변함없는 일상(월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카렘의 일상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며칠에 한 번씩 지그메서와의 기술 교류.

좀 더 풀어 말하자면 카렘은 기억하는 레시피와 응용법을 전수하고.

반대로 지그메서는 자신이 아는 레시피와 기본기를 카렘에게 전수했다.

카렘은 도저히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노인을 가르친다니.

거기에 그 노인이 과할 정도로 친근하게 아부를 곁들이자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그메서는 요리에 무척 진지했다.

그리고 카렘은 교류 자체가 피와 살이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기본기.

전력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취미에서 시작했기 때문일까.

응용부터 시작했던 카렘에게는 기본이 부족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그메서는 나이에 걸맞은 훌륭한 스승이었다.

또 카렘 자신이 배우려는 의지가 충만했기에 지그메서가 가르치는 족족 기본기와 요령을 받아들였다.

가르치는 사람도 사람 나름이라던가.

카렘은 교류회 때마다 실력이 발전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라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

투타티스니, 마요네즈니하는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에는 당연했다.

대마법사의 전속 요리사라고는 하지만 직접 보는 이도 드물었고.

동선도 딱히 겹치지 않는 데다가 하물며 나이도 어렸던 터라 관심을 가진 사람도 적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공자, 공녀님이 관심을 보였다.

다음엔 윈터홈의 나름 유력자인 총주방장이 아부를 떨며 굽신거리다니?

콩고물이 떨어지길 바라는 사람 이전에 소 닭 보듯이 지나치던 사람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네. 이게 전부입니다."

"평소보다도 더 품질이 좋네요."

"하하하. 잘 봐달라는 의미로 특히나 더 골라 담았습니다."

당장 식료품 창고에서 대놓고 카렘에게 신경 썼다는 일꾼처럼.

처음에는 떨떠름했던 카렘도 이젠 웃으면서 받아줄 수 있었다.

아무렴 지그메서의 불타는 손 비비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했다.

메리가 크고 작은 상자에 담긴 식료품을 받아 내려놓자 카렘은 곧바로 메리와 함께 식료품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양파도 단단하고, 생강도 괜찮고. 확실히 하나같이 전보다도 더 좋은 물건이군요. 보통은 본성의 주방으로 우선해서 들어가지 않습니까?"

"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지그메서님이 틈틈이 챙겨달라고 직접 부탁하시고 가셨거든요."

그 말에 카렘은 한순간이지만 눈앞이 아찔했다.

흐릿했던 시야에 쓸데없이 멋진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맨들맨들한 드워프 노인이 보였던 것 같았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카렘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재료가 좋아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잡념에서 벗어난 카렘은 향신료들을 살폈다.

비교적 향이 약했지만, 시대와 보관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훌륭했다.

그때.

향신료가 잘게 나뉘어 담긴 나무상자에서.

수상한 것을 하나 발견했다.

"응? 이건 뭐야."

아이가 양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은 나무 배럴.

"오우, 묵직한데."

"카렘 후배? 그건 뭡니까?"

"저도 잘 모르겠는데. 액체인가 본데요?"

카렘이 들어 올리자 내부에서 묵직한 찰랑거림이 느껴졌다.

안에 든 것이 액체인 것은 확실했다.

"게다가 틈새가 밀랍으로까지 봉인이 되어있네? 저기요! 이건 뭡니까?"

"음? 저런 게 있었나? 잠시만요."

목록이 적힌 나무판을 살피던 일꾼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목록에는 없는데요."

"본인이 정리한 게 아닌가요?"

"전 채소 담당입니다. 향신료 담당은 조금 전에 외출해버려서 말이죠."

자기 부서 외의 업무를 모르는 것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인가.

카렘이 난데없는 곳에서 친숙한 감각을 느끼는 사이 메리도 호기심을 느낀 것은 마찬가지인지 다가왔다.

"밀랍을 먹인 코르크로 입구를 봉인했고. 뚜껑과 바닥의 틈새란 틈새는 모조리 밀랍으로 봉인했군요."

"편집증이 느껴질 정도인데요."

"귀중한 물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리가 알기에도 1년에 한 통 나올까 말까 한다는 와인조차 이렇게 편집증적으로 봉인하지는 않아서 하는 말이었다.

위험물질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럴 리 없었다.

여긴 윈터홈이었다. 아이스랜드에서 가장 경비가 삼엄한 장소.

목판을 몇 번이고 검토하던 일꾼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했다.

"뭐, 목록에는 없지만, 상자에 담겨 있었으니 그냥 가져가시죠?"

"예? 그래도 될까요?"

"아무렴요. 여기에 표시조차 하지 않고 담았다면 모든 책임은 그 향신료 담당 일꾼한테 있을걸요?"

아무튼, 공짜로 준다고 하니 카렘은 냉큼 승낙했다.

일단 캐서린에게 가져가면 위험하더라도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마법사의 탑까지 옮겨 드릴까요?"

"아뇨. 그냥 적당히 손수레 하나면 충분합니다. 아니지, 제가 직접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카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일꾼이 꺼낸 배려의 말은 일거리가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굳건한 메리의 의지에 단칼에 잘려버렸다.

기어코 손수레를 하나 빌린 메리는 상자들을 직접 적재했다.

브라우니라고는 해도 겉보기엔 가녀리고 이쁘장한 여성에 불과했던지라 창고에 있던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짐을 번쩍번쩍 들어 날랐다.

카렘은 잠자코 기다리고 있다가 메리가 일을 끝마치고 고갯짓하자 그녀와 함께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함박눈을 뚫고 식료품 창고를 떠났다.

사람이 많은 축제는 모름지기 뒷정리도 골치 아픈 법.

축제는 진작에 끝났고 폭설이 내리는데도 윈터홈은 분주했다.

종사들과 일꾼들은 장식을 내리고, 예술품을 옮기고 쓰레기를 청소하는 등 뒤처리를 하고 있었으니까.

"후우우우. 진짜 이놈의 눈! 적응이 안 돼!."

"돌아가자마자 탑 주변에 쌓인 눈부터 치워야겠습니다. 혹시나 말하는데-"

"네네. 말 안 하셔도 안 도와드릴 겁니다."

"좋습니다. 확실히 춥군요."

입으로는 춥다고 말하지만 메리는 티를 하나도 내지 않고 묵묵히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했고, 또 알고는 있지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기에 카렘은 슬쩍 물었다.

"그래도 고생이 많으신데. 오늘 점심은 뭐 먹고 싶은 게 있으신지?"

"후우. 먹고 싶은 거 말입니까?"

"고된 노동. 손끝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한 냉기. 먹으면 입에서 목구멍을 타고 뱃속까지 따끈하게 만드는 국물과 열기를 간직한 건더기?"

"그것참."

이런 추위에 따끈한 국물을 참을 수는 없겠지.

카렘의 생각대로 아이스랜드의 겨울같이 풀풀 풍기던 메리의 무뚝뚝함에 기대감이 서렸다.

그리고 물었다.

"크림을 듬뿍 넣어서?"

"듬뿍 넣어서."

"버터를 듬뿍 넣은 빵과 함께?"

"그럼요."

마법사의 탑에 입성한 이후 크림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버터를 넣은 빵은 매일 이른 새벽같이 본성의 제빵사가 배달해주는 물건들이 있었다.

크림하면 역시 클램차우더.

하지만 조개는 진작에 떨어진 지 오래.

대체재로 생선 살만 넣을 수도 있겠으나 생선도 없었다.

그래도 카렘은 방향을 선회하기로 했다.

그럼 그냥 크림 스튜를 만들면 되겠지.

그것도 이름만 크림 스튜인데 밀가루가 들어간 스튜가 아니라 진짜배기 크림을 아낌없이 듬뿍 넣은 크림 스튜.

하물며 춥고 건조한 날씨에 바짝 말라가는 뱃살 베이컨도 주방의 창고 한쪽에 고이 모셔지고 있었다.

버터와 빵, 크림에 환장하는 브라우니답달까.

메리의 굳은 표정은 순식간에 흐물흐물하게 변했다.

"그거 좋군요."

"그러면 얼른 돌아가-음?"

저벅-저벅-눈더미 사이에 있던 무언가가 카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얇지만 붉은 껍질 파편, 그리고 노란빛이 도는 눈곱만한 하얀 씨앗.

"카렘 후배. 뭐 하는 겁니까. 얼른 돌아갑시다. 크림이 듬뿍 들어간 뜨거운 국물을 위해서."

"네네. 재촉하지 않아도 갑니다."

얼른 주머니 안에 챙긴 카렘은 메리의 재촉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림 스튜.

이례적으로 스튜인데 기원이 아시아에서 비롯된 물건.

카렘이 기억하기로는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것으로 기억했다.

물론 누가 생각을 떠올리면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둘은 더 있다고.

유럽에도 비슷한 물건은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프랑스.

"이것도 저것도 아니니 아이스랜드 식 크림 스튜라고 하면 되겠지."

달군 냄비에 한입 크기로 자르고 밑간을 한 닭다리살을 투입.

버터를 벌써 넣어줄 필요는 없었다.

껍질이 달군 냄비 밑바닥에 눌어붙으며 지방이 녹아 기름을 뱉어내기 시작했으니까.

고소한 닭기름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우고 바깥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침 시간은 점심때.

굶주린 이들의 코가 예민해질 시간.

냄새를 맡은 캐서린이 주방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오호라. 오늘은 닭고기인가?"

"옙. 크림이랑 채소를 넣고 푹 끓인 다음에 바싹 구운 베이컨을 부숴서 뿌릴 예정입니다."

"베이컨?"

그 말에 카렘은 테이블에 놓인 큼지막하고 딱딱하며 네모난 덩어리를 두드렸다.

시험 삼아 포르게타를 만들던 날, 준비를 끝마치고 건조를 시작했던 물건이 건조하기 짝이 없는 아이스랜드의 기후 덕분인지 금세 완성이 된 덕이었다.

카렘은 지식으로 알고만 있던 터라 불안했지만, 만능 집요정 메리의 도움을 받아 한 번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물론 훈제가 아니라 오븐으로 끝마무리를 지었던 터라 훈제향은 없었다.

"드디어 먹어볼 수 있는 게냐?"

"좀 짜긴 할 텐데. 저것만 따로 드셔보시겠습니까?"

"그거 좋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손질한 각종 채소를 버터와 함께 냄비에 투입.

소금과 후추를 넣고 버무린 카렘은 곧바로 달군 무쇠 프라이팬에 안간힘을 써서 얇게 자른 베이컨을 올렸다.

고온에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

그리고 카렘은 화덕에 연결된 오븐에 베이컨이 담긴 프라이팬을 그대로 투척했다.

지금부터는 온도와 시간의 일이었다.

“후, 이거 오븐 없이 바삭하게 만들겠다고 팬을 몇 개나 버렸던지”

"응? 꼬마야. 뭔가 말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슬슬 물과 크림을 넣어줘야겠네요."

팬을 몇 개나 불태워버렸던 안 좋은 기억을 저편으로 날려버린 카렘은 냄비에 크림과 물을 투입했다.

비율은 2대 1. 처음 해산물 차우더를 선보일 때와 같은 비율이었다.

지글거리던 냄비가 차가운 온도에 식고, 다시 팔팔 끓어오르기 시작하자 카렘은 곧바로 오븐에서 베이컨을 꺼냈다. 시간이 딱 맞았다.

"돼지라서 그런가. 상당히 줄어드는군."

"한 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당연하지.”

파사삭-! 카렘이 내민 베이컨을 물자 캐서린은 정말로 감탄했다.

곱씹는데도 바삭거리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았다.

"마치 통구이의 가장 맛있는 바삭한 껍질만 따로 먹는 느낌인데."

"스튜의 채소가 다 익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는데."

"상관없다. 요리는 인내심을 가지면 더욱 맛있어지는 법이니."

캐서린에게 마저 베이컨을 물린 카렘은 자리에 앉으려다 문득 이물감을 느꼈다.

그재야 주머니에 챙겼던 물건이 떠올라 곧바로 꺼내들었다.

이전에 주웠던 붉은 껍질 파편과 노란 기가 도는 하얀 씨앗.

피부에 닿자 화끈거리는 느낌이 뭔가 매우 익숙했다.

"이거 진짜 뭔가 익숙한데..."

"응? 붉은 마녀의 손가락? 파편이라지만 그게 왜 너한테 있냐?"

"예? 오는 길에 눈더미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아니, 아. 너무 작아서 고통을 덜 느끼는 건가?"

고통? 붉은 껍질. 익숙한 씨앗. 이건 고통이라기 보단...

설마 이거 고추? 그런데 붉은 마녀의 손가락이라는 고어한 네이밍은 뭐지?

카렘은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