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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와 엇갈리지 않게 엘리베이터 작동을 중지시킨 나메는 13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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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열려있던 현관문을 보고 윤슬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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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시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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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이 난장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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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아파트인만큼 화계마도를 써도 불에 타지는 않았지만 가구 곳곳에 그을린 자국들이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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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이럴 거면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올 걸 그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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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체력이 붙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힘든 것은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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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냐? 너 왜 아직도 윤슬의 집에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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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기 그지없는 공간에 대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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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끝맺기가 무섭게 안방에서 코트를 입은 남성이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초여름에는 맞지 않는 복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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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수룩하게 자란 머리, 며칠은 깎지 않고 내버련듯한 수염이 남성의 초췌한 인상을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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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또 뭐야...? 리카 동생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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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괴한도 적잖이 당황에 찬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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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여자 아이의 몸집이 너무 작아, 나름 위협해본다고 하는 말조차 무해하게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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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시선을 한참이나 받은 남성이 무언가 떠올렸는지 돌연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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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너 노네임 아니야? 네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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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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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의 합방에서 몇 번이나 같이 나온 노네임의 아바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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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괴한은 자신이 가상현실에 접속해있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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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잘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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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입에서 노기가 담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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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오기 전까지 넌 나한테 죽을만큼 처맞을 거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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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뜩한 말을 내뱉는 소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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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 빨리 오는 걸 빌어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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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내뱉은 단어에 남성이 순간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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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내가 뭘 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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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거 아니야? 네가 이 지랄을 해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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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정적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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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에도 나메는 남성을 어떻게 제압할지 머리를 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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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화계마도를 사용하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체격은 평범한 성인 남성이지만 위력을 보았을 때 결코 수준이 낮은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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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3서클, 아니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4서클까지 사용할 줄 안다고 가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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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어디까지나 일고여덟 살에 지나지 않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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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의 경험을 생각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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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범시전으로 아라베스크의 매듭을 사용한 걸 생각하면 더욱 마나를 아껴서 사용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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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최대한 마나가 적게 들어가는 마법을 고안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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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무스시몰-이보텐산 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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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서클 시전: 환각(halluc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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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너도 날 죽이려고 체나가 보낸 거구나! 내가 시전하게 놔둘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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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헛숨을 삼켰다. 설마했는데 소녀는 마법을 다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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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복잡한 생각을 뇌에서 잠시 지워버리기로 했다. 본능이 판단하건대 이건 명백한 전투개시의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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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을 저지하기 위해 남성이 악을 쓰며 나메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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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에서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씨를 주먹에 옮겨 붙여 인정사정없이 그녀가 있던 곳을 향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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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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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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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닿으려는 순간, 인영이 흐릿해지더니 나메가 있던 자리에는 뿌연 연기가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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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느리게 휘둘러서야 맞힐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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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뒤에서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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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꼬마아이는 어디가고 이번에는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이 안방 침대 위에 다리를 꼰 채로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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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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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이 더 낯이 익을 텐데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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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하게 늘어진 팔다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고운 금발 머리에 이글거리는 호박색 눈동자까지. 남성도 익히 본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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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월드 오브 아르세리아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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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아까가 환각이었고 이게 본모습이란 말이지? 그래 차라리 이쪽이 더 현실감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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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래 어린 아이가 이런 마법이라니 말이 안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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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은 처음부터 자신을 방심하게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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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이번에는 양 주먹에 불을 붙여 더욱 출력온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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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으로 이글거리는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안방의 벽지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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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어느쪽이 진짜일까? 원래는 이쪽이 더 편하긴 한데, 요 근래에 어린 아이쪽도 많이 적응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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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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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다시금 나메쪽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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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가 맞아서 더욱 얼굴을 조준하고 주먹을 내지르기 간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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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을 가지고 턱뼈를 으깨버리려는 움직임에도 여성은 여전히 태평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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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움직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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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 속에서 그러한 의문이 함께 피어올랐다. 어쩌면 숨겨둔 속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생각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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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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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혼신을 다한 일격이 겨우 여성의 고운 손에 이리 간단히 막혀버릴 줄은 몰랐는지, 남성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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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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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네. 괜히 걱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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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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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남성의 역린을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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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서 약하다는 소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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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너무 약해. 옛날 우리 집에 살던 열댓살 시녀가 너보다 더 강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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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입 안 닥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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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자, 꿇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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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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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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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표정이 극심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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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곧바로 물밀 듯이 밀려오는 공포감에 눈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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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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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가빠지고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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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어둠에게 잡아먹힐 듯한 공포감이 몸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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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무릎을 꿇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에 남성의 무릎이 천천히 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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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얼마나 좋아. 올려다보려니까 힘들었잖아. 이제 엎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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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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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구의 몸집이 바닥에 내팽개치듯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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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위에 앉은 나메는 안방에 나뒹굴고 있던 윤슬의 머리끈을 주워긴 황금빛의 머리를 한 갈래로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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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지? 경찰이 빨리 오기를 빌어야 할 거라고. 시간이 오래 걸리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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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바닥에 엎드려 꼼짝 못하는 남성의 뒷목을 손으로 잡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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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네 스스로의 힘으로 환각에서 벗어나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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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눈을 한번 깜빡거린 그 사이에 방의 풍경이 새하얗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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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마법도 뭐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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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의혹은 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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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리라는 명령을 하였을 때 그 어떤 마법진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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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 설마 나... 아직도 환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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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서야 환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음을 깨달은 남성은 발버둥을 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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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마법을 시전하는지만 알면 빠져나올 수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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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마도 – 에스타샤 류 제4식(式) - Med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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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마법 자체는 대체적으로 실용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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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환상 안에서 시전하는 마법이 어떤 것인지 개략적으로 알기만 해도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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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실제로 마법을 시전하는 게 아닌 허수공간에서의 ‘가시전’의 원리를 차용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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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오러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기만 해도 몸 전체에 방벽을 둘러 환각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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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자세부터 보고 알았어. 어디서 전문적으로 싸워본 경험이 없어보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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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두가지 모두 충족하지 않은 사람에게, 환각마법은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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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탁월한 마법선정에 괴한은 완벽하게 무력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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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목이 돌처럼 변하더니 그 범위가 서서히 넓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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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 팔, 다리, 그리고 발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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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만 남기고 모두 석화가 되어버린 자신의 몸을 남성은 두 눈을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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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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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읍! 으읍! 으으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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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는 일어나라는 명령이 주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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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완벽하게 굳어버린 몸은 명령을 완수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페널티로 극심한 공포감이 남성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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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충혈되다 못해 실핏줄이 터진 남성을 보고 나메가 조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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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좋네. 그대로 듣고 있으면 되겠다. 간간이 내 질문에 답도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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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윽...! 제발... 살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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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살려줄 거야. 죗값은 받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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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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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윤슬의 집에는 무슨 목적으로 찾아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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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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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계속 몸을 벌벌 떨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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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메는 벌떡 일어서서 남성의 오른쪽 팔을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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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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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아아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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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변해버린 팔이 산산조각 나버리고 그 잔해 위로 남성의 몸이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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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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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 흐으윽... 끄으으으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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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온몸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절단의 고통만큼은 온전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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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지르고 싶어도 입이 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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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치를 넘은 고통에 안면근육이 격하게 일그러지며, 남성은 이를 꽉 깨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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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아프지... 아프겠지. 나도 알아 이게 어떤 고통인지. 그러니까 제때 대답해줬으면 얼마나 좋아. 그렇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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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 제발 살려만... 끄으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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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은 나한테 할 게 아니고 윤슬이한테 가서 해야지. 너 살인미수범이야. 마법도 못 쓰는 여자애를 13층에서 떨어뜨린 거라고. 그래서 왜 찾아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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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읍! 흐으 체나가... 체나가 와서 리카를 죽이라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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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잘 안 들리는데 반대쪽도 균형을 맞춰줘야 하나. 그럼 말하기 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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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발끝으로 뻣뻣하게 굳은 다른 쪽 팔을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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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고통을 애써 인내하여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 사실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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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경험을 두 번 다시 할 수는 없다는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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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 말할게요... 다 말할테니까 제발 살려주세요 경찰선생님... 아으으윽...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체나가 디... 디엠으로... 밤마다 디엠으로 연락해서 리카를 죽여달라고. 마... 맞아 여기도 체나가 제 몸을 조종해서 올 수 있었던 거예요! 전 진짜 그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하도 부탁하니까... 부산역에서 출발해서 왔는데 부산역은 1953년 대화재로 불타버렸다가 2003년에 증개축돼서 무사히 찾아올 수 있었 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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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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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래 CCTV! 집에 CCTV가 있어...! 189개 CCTV가 저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감시해가지고 정말 어쩔 수 없었다니까요... 안 그러면 체나가 저와 제 가족을 죽여버리겠다고... 끄아아아악아으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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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말해도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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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 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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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남성을 목 위까지 완벽하게 석화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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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한숨을 내쉬고, 주위를 잠시 두리번거렸다. 창문 밖으로 경찰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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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바닥을 뒹구는 남성의 앞에 쪼그려 앉아 눈을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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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까짓 머리가 만들어내는 그 어떤 망상보다 내가 더 무서우면 되는 거잖아. 안 그래? 참으로 간단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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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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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게 몇 번이나 경험해도 익숙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발전하는 건 하나 있어. 그게 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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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입이, 그 다음에는 눈이, 최후에는 정수리에 있는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전부 굳어버린 남성에게, 나메는 사형선고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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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주마등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거. 어떻게 하는지 못 알려줘서 참으로 아쉽네. 한번 요령껏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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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그저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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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남성의 정수리에 손바닥을 활짝 펴서 갖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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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시간이 영원히 흐르는 것만 같은 환상 속에서, 그녀의 손 주위로 마나가 회오리치듯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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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 응축되어 마치 빗물처럼 돌덩어리 속으로 스미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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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응축액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개미굴처럼 뻗어나갔을 때, 그녀가 주먹을 빠르게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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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서클 시전: 급속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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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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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도로 냉각된 액체가 바위에 균열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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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 구석구석이 바스러지는 고통에 남성은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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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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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없는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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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복으로 똘똘 무장한 경찰들이 윤슬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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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까지 확인해봤어? 여기 없으면 아파트 계단 타고 옥상으로 도망쳤다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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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찾았어요 반장님! 어라? 쓰러져있는데 이 사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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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서 발견한 괴한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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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미심쩍게 생각한 순경은 서둘러 팔에 수갑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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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주머니에서 무전기를 보내 들 것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하던 중에 그녀의 뒤에서 옷장이 끼익하고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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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범 현장 체포했습니다. 여기 들 것 하나 지원 부탁- 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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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들짝 놀라 손이 반사적으로 테이저건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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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찰에게 다가온 건 예닐곱 살 정도 돼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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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조르르 달려와 그녀의 품에 와락 안겨서 얼굴을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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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사람이 들어와서 계속 숨어있었어요! 경찰 언니 구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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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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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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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입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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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야 너 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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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꾹 눌러 입 안 가득 밀려 올라온 핏물을 삼킨 소녀는 말끝을 흘리며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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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사람이 때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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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가리킨 곳은 당연하게도 쓰러져 있는 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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