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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 캡슐에서 나온 건 늦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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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를 확인할 여력도 없이 그녀는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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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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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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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생각한 것만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스스로 자책할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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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델라와 나메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말을 더듬더라도 확실하게 끝맺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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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착한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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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거면 충분하다고 봐. 언니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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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소문처럼 어른스럽고 똑똑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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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의 기대에 부응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윤슬은 다시 우울감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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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게 없다는 말에는 공감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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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체나 언니는 결국 나 때문에 죽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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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건네준 유서를 떨리는 손으로 펼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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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자신을 위해 대중들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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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윤슬아,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네가 성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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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사에서 혼자 비겁하게 도망친 너를 향해 몇 번이나 저주했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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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랜만에 만나보게 된 너는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밝게 빛나 보여서, 그동안 너를 뒤에서 욕하기만 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초라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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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줘서 고마웠어. 나같은 안티팬마저 팬으로 만들었으니 너는 앞으로도 뭐든지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내 몫까지도 꼭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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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체나가 자신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마치 윤슬이 나메와 아델라를 향해 품었던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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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밝게 빛나는 별은 주위의 별을 모두 침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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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윤슬에게 있어서 나메와 아델라는 그러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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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카리리의 말투를 아델라와 비슷하게 만든 이유도, 예전에 한창 월오아 나이트메어 스토리를 시청하면서 그녀의 행동거지를 따라해보려고 애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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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도 서로를 아껴주는 두 소녀의 관계가 너무 애틋하고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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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이런 가족 사이에서 태어나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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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은 이내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편이 좋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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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따갚대도 윤슬이 스스로 변화를 주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참가한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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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는 매끄러웠고, 병세도 차차 나아지는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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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메에게까지 합방을 제안해 트라우마를 떨쳐내려고 해보지만, 공황발작은 쉬이 예측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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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까지만... 대회까지만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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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으니 최선을 다하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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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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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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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체나처럼 다 내려놓고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충동적으로 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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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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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인데 병원을 간다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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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했지만 건강검진 때문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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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그게 오늘 체육대회 날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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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 때문에 체육대회가 일주일 뒤로 미뤄졌잖아. 이미 있던 건강검진 일정에 우연히 겹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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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면 안 돼?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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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중순에 있을 체육대회가 때 아닌 장마로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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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 주 미루게 된 게 하필 몇 달 전부터 잡은 건강검진 일정이랑 겹쳐서 불가피하게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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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사실을 열심히 설명해보지만 아이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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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는 내년에도 있고 내후년에도 있잖아. 체육대회 말고도 재밌는 행사가 얼마나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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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석계를 제출하러 아침에 잠깐 학교에 들른다는 게, 아이들의 만류로 스케줄이 계속 지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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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유나야. 나메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선생님 도와드리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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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 내가 얼마나 오늘만 기다렸는데... 흐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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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후 네가 유나 잘 챙겨줘. 혹시라도 유나 오늘 다치기라도 하면 내일 나한테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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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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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선생님께 결석계를 드리고 조심히 잘 갔다오라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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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아카데미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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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계속해서 집-학교-집-학교 생활패턴만 반복되니 조금만 길을 벗어나도 펼쳐지는 풍경이 새롭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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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설마 뉴스에서 말하는 심각한 수준의 VR중독이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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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세상에 너무 빠진 나머지 현실과의 지나친 괴리감을 못 이겨 우울증에 빠진다는 환자가 날로 증가한다는 뉴스가 일종의 분량 떼우기인지 계속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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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 본모습 그대로 아바타를 사용하고 있으니 해당사항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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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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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사항이 적힌 종이를 미리 병원에 제출하고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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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무료한 검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풀코스라서 더욱 자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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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를 찍고, 원리가 궁금해지는 마나공명장치 안에 누워보기도 하고, 피도 뽑았다. 다행히도 빨간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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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완전 뽀짝뽀짝거리는 거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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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게 나도 저런 손녀 딸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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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결과는 이메일로 보내줄게! 수고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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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꿍하는 표정으로 간호사들이 나를 배웅했다. 내가 아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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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호들갑을 떠는지라 여기저기서 쏘아보는 시선이 늘어나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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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동안에는 카리리에 대한 정보를 계속 읽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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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윤슬이 계속 마음에 담고 있던 건 아무래도 ‘아이돌 체나 사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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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스케줄 일정과 소속사의 갑질에 처지를 비관하여 스스로의 인생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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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정말 옥외광고판이며, 뉴스며 전부 체나를 추모하는 내용으로 도배된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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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가 늦게 공개된 이유는 유가족들이 연습생 시절 체나에게 성접대를 강요한 소속사를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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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직까지도 치열한 법적 공방이 오가는 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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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의에 같이 묶인 서울시장은 뇌물수수 건이 인정되어 사퇴하였지만, 여전히 본인은 미성년자와의 신체적 접촉은 일절 없었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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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복잡하고 더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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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위키라는 미궁 속에 더 빠져버리기 전에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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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카리리가 그녀와 엮인 부분은 아무래도 합방했던 당시가 사망일 바로 전날이라는 점, 추가로 같은 소속사 연습생이었다는 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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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 소속사에서 나와 버튜버를 시작할 때, 체나는 열여덟의 나이로 4인조 아이돌 그룹 ‘엔비’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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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저냥 저조한 성과를 내다가 체나가 혼자 낸 솔로곡이 전 세계적으로 대박을 터뜨리니 소속사에서 계속 밀어준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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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나 April 2049 월드투어 일정.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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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팬이 정리한 일정표를 보면 확실히 살인적인 스케줄인지라 절로 고개가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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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쉬지도 않고 2년 넘게 했으니 어린 아이가 버티기에는 무리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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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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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아이돌 체나 사망사건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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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던 요소도 전부 체나의 자살 징후만 나열했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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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 의욕이 없었던 점, 방송 도중 가슴통증을 언급했던 점, 카리리의 노래 제안을 거절했다던가 카리리가 부른 노래 중 자신도 ‘들국화’처럼 되고 싶다는 언급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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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없네. 이런 걸 가지고 윤슬이 어떻게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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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카리리의 방송 스타일상 속마음을 털어놓는 코너에서 체나의 자살충동을 부추겼을 거라는 추측성 대목을 읽으면서 가장 화가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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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하나하나가 모두 카리리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들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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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하는 것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려는 와중에 천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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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아직도 밖이니? 건강검진은 잘 받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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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곧 집 앞이에요. 결과는 나중에 이메일로 받을 수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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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빨리 집으로 와주겠니? 우리 둘이서 할 얘기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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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집이세요? 네 금방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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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아침 일찍 출근하신 걸로 아는데 이 시간에 웬일로 집에 다 계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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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치매이시면 안 될 텐데. 괜히 걱정돼서 오는 길에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다드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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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내가 먹고 싶어서 산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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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니 두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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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참으로 애매한 게 조금만 더 일찍 끝났더라면 체육대회도 구경하러 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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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카데미 체육대회 경험은 내년으로 다시 미루어야 할 듯싶었다. 우리 반은 이겼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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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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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집에 오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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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장에는 천교수의 검은색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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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면서 호두과자 사왔어요. 좋아하시려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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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안방에 계시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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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뒤를 돌아 신발을 벗었다. 허리를 굽히지 않으려는 최적의 움직임을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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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과 신발 사이에 내 작은 구두가 가지런히 주차된 것까지 확인한 후 미닫이문을 확실하게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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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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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쪽에서 벌써 천교수의 뒷모습이 반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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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부엌에 계셨네요? 뭐 하시느라 대답도 없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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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의 맞은편에는 남성 한 명이 더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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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게 손을 들어보이는 인물은 나도 아주 잘 아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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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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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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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왜 여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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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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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세민씨가 조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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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악센트가 세게 나가서 괜히 욕처럼 들릴 것 같아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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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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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기색으로 천세민이 벌떡 일어나 답을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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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아아 맞아! 이쪽이 우리 큰아버지 맞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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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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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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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우연이 다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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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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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천교수에게 의절한 남동생이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그쪽 가족사항이야 솔직히 내가 궁금할 이유도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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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천세민이 그의 조카를 자처하니 당혹감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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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가 묵묵히 편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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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대범죄수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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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51-006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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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천세민, 노나메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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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수사요청처리결과통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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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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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에서 절제된 감정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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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민쪽을 바라보더니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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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모양으로는 대충 ‘난 아무것도 안 말했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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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한테 직접 들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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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정말 길어질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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