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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월드를 3천년간 통치한 벌꿀오소리 카리리 제왕. 계속되는 가뭄으로 쿠데타가 일어나 인간 세상으로 잠시 피신했다. 백성들의 생활을 잘 이해하기 위해 인간들의 모든 서브컬쳐를 섭렵하겠다는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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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 소개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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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버튜버 캐릭터가 가진 고유한 설정들을 통틀어 RP(Role-Playing)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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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아바타를 내세워 방송을 하는 스트리머와 버튜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버튜버는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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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RP를 준수해야지만 버튜버로 간주할 수 있는지 통일된 의견은 없었다. 방송이 진행될수록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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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리리는 누구에게나 버튜버로 인지될만큼 RP에 충실하고 있음에도, 일명 ‘안의 사람’이 널리 알려진 정말 특이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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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1년차 만에 본인의 부주의로 중학생이라는 나이가 공개되고, 심지어는 과거에 유명 연예 기획사 ‘엔티스’ 소속의 아이돌 연습생 출신이었다는 게 밝혀지기까지 했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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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님 근데 스크림 전에 노네임님이랑 합방해서 노래 불렀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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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림 대기실에서 스트리머 달토리가 고개를 불쑥 내밀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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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엑 누가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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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시청자들이 도네로 막 일렀어요. 둘이 월오아 연습하려고 모였다가 놀기만 하고 끝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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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히히 이렇게 친해지는 것도 결국 승리를 위한 작전이라구요! 왕은 언제나 큰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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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경우 대처법은 두가지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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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를 버리고 안의 사람으로서 방송을 계속할지, 아니면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탄압하고 RP를 고수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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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리리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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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님 예전에 아이돌 연습생 하셨다고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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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자들 앞에서 춤도 여러번 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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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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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앞에서 춤추기 vs 초면에 억지 컨셉 밀어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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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너무 어려운데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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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죽택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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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고르면 자동으로 죽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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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들이 당황타서 피할 듯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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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 왕국에서 취미로 아이돌을 했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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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토리에게 설명을 해주자 그녀는 당황에 찬 목소리로 애써 긍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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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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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토리의 두 손바닥이 허공에서 짝하고 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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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내가 다 부끄럽네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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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이른 설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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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 은근 카리리 맥이네 나만 느낌?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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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원래 악질이라니까 노네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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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네가 부끄러워하는데 카리리야! 아이도루가 부끄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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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부끄럽거든...? 하나도 신경 안 쓰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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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튜버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과거사까지 인정하는 그녀 나름대로의 방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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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론상으로는 괜찮긴 한데... 아무리 봐도 노네임님 역할이 막중하겠는데 괜찮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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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더 블로리’의 감독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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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스크림에서 연습해볼 작전에 대해 감독에게 개요를 설명해주고, 그는 산하 코치들과 함께 계획의 세부적인 요소까지 검토를 끝마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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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건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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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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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카리리가 팔짱을 끼고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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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에 어떻게 침을 뱉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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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의 순진무구함이 감독 코치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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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번 한 판만 해보고 안 되면 폐기하는 걸로.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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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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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스크림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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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빌게요. 더... 블로리 팀 아자아자 화이팅! 아씨 발음 진짜 조심해야되잖아 누가 팀명 이렇게 정한 거야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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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카리리 이기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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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 대신 자신감으로 소명하는 카리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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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블로리 vs 전지적 법사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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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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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가장 오래된 시청자였던 ‘호야무야호’의 눈이 기대감에 차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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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 띵- 띠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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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을 잠그고 신발을 대충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채 곧장 소파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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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가방을 메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어린 소년은, 주섬주섬 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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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학원에서 3시간 동안이나 붙잡혀있던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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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앉아 있어서 뻐근했던 허리가 이제야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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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태양’이라는 명찰이 달린 교복도 벗어버리고 잠옷으로 갈아입으니, 티비와 폰이 연결되는 신호와 함께 트위시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송출 영상이 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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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이 출전하는 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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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카리리랑 같은 팀으로 배정되었다는 게 태양은 신기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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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자신은 알기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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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숙제를 하기 싫어서 트위시 방송 목록을 별 생각 없이 내리다가 우연히 만난 스트리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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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자신과 같은 나이의 소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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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오아의 랭킹 판도마저도 뒤엎어버린 어엿한 대기업으로 성장해 카리리와 합방까지 하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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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방송이 나날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설태양 자신조차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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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총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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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연습 게임이었음에도 그 열기는 대회를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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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태양도 그 이름만큼은 수도 없이 들어본 한용철의 다급한 외침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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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의 일인칭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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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협곡에서 대치 중이었던 병사들을 향해 그녀의 검이 궤적을 남기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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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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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만 6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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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까지 합치면 50대 50으로 전면전을 펼치는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 노네임은 제 위용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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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 중앙을 뚫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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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변하는 진형을 확인하는 노네임의 오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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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하고도 정제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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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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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보다 훨씬 작아진 카리리가 엄지를 척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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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이 넘는 교전 동안 겨우 5데스밖에 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레벨은 확연히 높았다. 그러나 평소보다도 떨어지는 2만의 체력은 위태로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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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믿고 계속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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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임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해야지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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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겁을 모르는 카리리가 오늘은 더더욱 기개를 내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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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과 적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전열에서 창 끝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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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법사 달토리를 노리고 온 적의 공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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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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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빠르게 합류한 카리리 덕분에 근접전의 위험에서 벗어난 달토리가 연신 감사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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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 어서오소리다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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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의 힐을 믿고 카리리는 전방을 향해 성큼성큼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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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진군을 막아서는 검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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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기끼리 부딪치며 쇠를 긁는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불똥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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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병사들에게 포위되고 만 카리리는 서서히 몸이 붉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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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향해 찔러들어오는 검을 일일이 쳐내기 버거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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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체력이 초단위로 깎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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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때마다 적절하게 들어오는 노네임의 힐과, 후방에 대기 중인 아군으로부터의 지원 사격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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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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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가 신음을 삼키며 클로를 마구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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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공격이라도 밀집된 공간에서는 맞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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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발악이 나름 효과를 보았는지 일렬로 길게 대치 중인 적군의 포위망에 작은 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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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이라면 저 틈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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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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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은 단번에 아군 병사들을 뛰어넘어 적에게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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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에 들린 초라한 검이 이 시간만큼은 형을 집행하는 도살자의 것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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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있어서 검의 등급은 상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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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대미지가 들어가는 치명타(Critical)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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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30% 타격 보정이 들어간 레전더리 등급의 무기를 사용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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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플레이어의 가슴에 칼자국이 새겨지고 그 위로 영문자 ‘Critical’이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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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솟구치게 내버려두지도 않고 확실하게 사살을 결심한 그녀는 팔다리 관절을 모두 끊어버리기에 이른다. 이 역시 ‘Critic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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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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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이러한 장면을 브이튜브에서 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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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와 프로들의 랭크 하이라이트 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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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게임에서 한번 나오기조차 어려운 것을, 지금 노네임은 밥 먹듯이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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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랑이 일격: 패링 성공 시 주문력에 비례한 추가 피해가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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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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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패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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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게 공격하셨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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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링에 성공하자마자 적 기사의 옆구리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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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빛 섬광이 퍼벙 튀기더니 평소보다도 심한 출혈량에 상대가 당황하는 감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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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국평천하: 중첩된 일격을 가할 때마다 3%에 해당하는 추가 피해가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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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7스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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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 노네임과 대치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적들이 후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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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바로 앞에는 적의 위그드라실이 있다. 이러면 거의 다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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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칠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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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카리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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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의 힐이 들어오지 않는 범위에서 카리리가 데스 카운트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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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몸을 뒤로 불쑥 빼더니, 중심을 잃고 그대로 수십개의 창에 고슴도치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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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마음에 소파에 누워있던 태양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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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아깝다 거의 다 잡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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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아직 불리해진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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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유일한 탱커인 카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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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체력상으로 유리해도 수적으로 딸리고 탱커마저 없으면 무리한 진군 과정에서 대참사가 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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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버티면 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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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팀원들도 어쩔 수 없나보다. 태양도 같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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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님 리스폰 지점부터 뛰어올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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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안...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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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폰 장소 점령도 상대에게 내어주고 과감하게 적 위그드라실까지 돌진하는 작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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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카리리가 다시 뛰어온다 한들, 앞으로의 전투 양상에 따라 게임이 뒤집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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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할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돌격하는 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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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도 함께 머리를 쥐어짜내는 찰나, 카리리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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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요... 저 집에 누가 찾아온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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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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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아 뭐지... 택배이려나? 어쩌지... 빨리 받으러... 가야할 것 같은데 초인종이. 당장 여기서 못 끝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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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다 어차피 카리리님도 합류하기까지 1분 넘게 걸릴 것 같은데 이대로 밀고 끝내버립시다. 노네임님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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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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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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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iri님이 게임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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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가 느닷없이 게임에서 탈주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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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달아 대회를 같이 관람 중인 시청자들의 채팅도 거센 불길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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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스크림 중인데 탈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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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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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없다 잘하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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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안 맞고 버티기만 하면 됐는데 왜 굳이 설쳐가지고 죽어준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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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 이건 좀 논란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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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택배 받으러 나간거임?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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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앞에다 두고 갈 텐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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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기 우편인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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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기 우편 그거 찾아오기 귀찮다고 스크림을 나가버림??? 그건 너무 ㅂ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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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가 아니라 아랫집에서 찾아 올라왔을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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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슐에서 가만히 게임 중인데 누가 찾아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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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래도 이건 카리리가 잘못한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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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설마 스토커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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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ㄷㄷ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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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ㄹㅇ 소름이겠네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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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ㅈ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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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때문에 간 거다, 이웃집에서 찾아온 거다, 스토커가 쫓아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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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설이 채팅창에서 난잡하게 흘러나왔지만 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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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떡 일어선 소년이 현관문을 확인했다. 조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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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티비 소리를 크게 해놓았다지만 초인종 소리가 묻힐 정도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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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누나! 누나아! 설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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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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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탁자에 발이 걸려 물건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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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에 느껴지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태양이 안방에 들어가 알약통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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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람정 0.5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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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짜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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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과는 멀리 떨어진 또 하나의 다른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달칵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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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포스트잇과 브로마이드로 난잡하게 꾸며진 방 구석에 핑크빛 캡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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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가운데에 솟아 있는 붉은 버튼을 주먹으로 쾅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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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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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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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러운 소음을 내며 캡슐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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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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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로 입을 뻐끔뻐끔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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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 김이 서릴 때까지 복식호흡을 반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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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강제종료되기 직전까지 하래! 제정신이야? 빨리 여기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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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으.. 하아... 숨이... 나 숨이 안 쉬어져... 흐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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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 도질 것 같으면 바로 나오라고 말했잖아! 왜 고집을 피우는 건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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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표정을 짓는 소녀에게 태양은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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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그녀의 입에 항불안제 약을 넣어놓고 물컵까지 가져와 삼키기를 종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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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흐으... 끄윽 죽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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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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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고. 나한테... 다들 왜 그러는 건데... 하으으... 진짜 죽을 것 같아... 이번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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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호흡해 호흡.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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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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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이 고장난 것처럼 투명한 물이 하염없이 뽀얀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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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팍을 세게 부여잡은 소녀의 손이 사정없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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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푹 쉰 태양은 자신의 누나가 공황발작에서 진정될 때까지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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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이 몇 바퀴나 시계의 정상을 오르내리고, 윤슬의 호흡이 안정되었을 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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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잡은 손에 갑자기 힘이 들어간 걸 느낀 태양이 다시 소녀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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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이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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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어이가 없어진 태양은 폰을 확인하고는 캡슐에 누워있는 누나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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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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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iri(어쌔신) - 4/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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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 지금 그게 걱정이야...? 어!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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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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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리, 아니 설윤슬. 그녀는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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