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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캡슐의 문이 닫힘과 동시에 침을 삼킨 소녀는 두 손을 배꼽 위에 가지런히 모아 올리고, 서서히 눈을 감았다.
복식호흡으로 공기가 드나들며 그녀의 가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카리리는 만반의 준비를 펼쳤다.
수많은 스트리머, 인플루언서, 그리고 연예인들과의 합방으로 인기를 챙겨온 그녀였다.
겨우 그 리스트에 한명이 더 추가될 뿐인 일일 텐데, 대기방에 들어선 카리리는 계속 한쪽 다리를 덜덜 떨며 초조함을 드러냈다.
“잘해보자.”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짝 때려서 정신을 차린다.
방송이 켜지는 순간, 그간의 감정은 파도에 씻겨 내려가듯 사라진다.
[‘리리만큼카만큼’님이 10,000원 후원!]
-어서오소리! 카리리 오늘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어서오소리! 리리만큼카만큼님 만원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그러게? 왜 이렇게 빨리 왔을까? 뭐 때문에 빨리 왔을까? 우리 허니비 백성들을 보고 싶어서?”
시청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카리리는 개인적으로 귀엽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많기를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와 시청자들 사이의 관계는 n년차 연인에 가까웠다.
-앵기지 마라~
-좀 떨어져봐요 카리리님 뒤에 곰돌이 안 보이잖아요!
-따갚대 스크림 오늘 어디랑 함?
-깜짝 이벤트 뭐야뭐야? 월오아 안 해 지금은?
“아니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 오늘만큼은 새로운 기분을 느끼려고 무려 스타일에 중대한 변화를 주고 왔다고. 정말 나 어디가 달려졌는지 모르겠어? 응? 엉?”
약간의 여유 타임을 가지고 빌드업을 위해 시청자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대다수는 모르겠다는 의미로 갈고리를 던져댔다.
[‘skyblue’님이 100,000원 후원!]
-(‘?’ 모양)
하늘에서 뿅 하고 나타난 노란색 물음표 모양 갈고리 쿠션이 카리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으갹! 잠깐만 오늘 방송에서는 3D 이모티콘 후원 금지라고! 기다려봐 설정하고 올 테니까.”
미리 이런 후원이 터졌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게스트에게 피해를 입힐뻔했다.
설정을 끝내고 다시 카메라 시야에 들어선 카리리가 이윽고 후드를 벗었다.
“바로바로! 오늘은 트윈테일을 하고 왔다 이 말이제비!”
-아니 후드를 쓰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 아는데 카리리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휴우 4년차 육수 자격 박탈당할뻔
-오랜만에 트윈테일 귀여워요!
“아직도 모르겠니? 너네들 감 다 떨어졌구나? 카리리 방의 메인 콘텐츠도 못 알아보고 말이야! 두 글자 두 글자.”
-???
-방종?
└ ㅋㅋㅋㅋㅋㅋ
-메인 콘텐츠가 뭐였지 이 방
-월와
-저챗?
“방종 누구야! 전혀 아니거든? 월와도 아니야 애초에 줄여도 월오아라고? 합방 합방! 왜 아무도 몰라주는데!”
-합방?
-아무런 공지도 없었잖아
-합방 안 한지 몇 달째인데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 진짜 합방이야 누구랑?
-스크림 두 시간 뒤인데?
-벌써부터 따갚대에 염상을...!
-트윈테일이 힌트?
“오 예리했어 트윈테일, 맞아. 오늘은 트윈테일을 하신 분이랑 합방을 할 거예요.”
이미 두 시간 뒤 오후 6시에 타 팀과 스크림 약속이 잡혀있던 카리리였다.
그 짧은 사이에 게스트를 불러 합방을 진행할리는 없을테고 그러면 높은 확률로 따갚대에 참여하는 인원으로 축소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 트윈테일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최근에 카리리가 특정 인물에게 지속적으로 구애했다는 점을 반영하여 리스트를 추리면.
-와 노네임?
-진짜로?
-캬
-이걸 해내네! 이걸 해내네! 이걸 해내네!
-트위시 미짜 듀오 크로스!
카리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카메라를 가져와 밀착시켜 화면을 얼굴로 가득채웠다.
“그러니까 여러분! 오늘 진짜! 제발! 너무! 꼭 부탁해요. 노네임님 이제 겨우 열네 살이야. 평소처럼 하면 큰일난다고.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았죠?”
-평소처럼이 뭐죠?ㅋㅋㅋㅋㅋ
-????
-잘 모르겠네요ㅎㅎㅎ
-이미 평범함의 기준이 어긋난wwww
[‘유이0284’님이 10,000원 후원!]
-평범한 중학교 2학년 대하듯이 대하면 되는 거지 카리리야?
“그래 평범한 중학생 대하듯이-”
[영상공유 - ‘Ratelfan’님이 15,000으로 공유해주셨습니다!]
(중2 카리리 막말 매드무비(16~20).mp4)
“그래 이런 말같지도 않은 말 하지 말라고! 애 앞에서! 알았냐? 그리고 이 영상은 제발 좀 지워줘요 이런 거 흐엉헝헝... 부탁할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네가 했잖아!ㅋㅋㅋㅋ
-끊이지 않는 업보ㅠㅠㅠㅠ
-결국 모두가 알게 돼 있어
-진실은 숨길 수 없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지
[‘오소리네’님이 2,000원 후원!]
-근데 카리리야 더 블로리라는 팀명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야?
“아 그게 말이지! 저번에 드라마 리뷰 한 거 있었잖아, 시청자들이랑 같이. 거기에 있는 꼬마애가 노네임이랑 정말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한 거 있지?”
[NoName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노네임씨 아바타를 처음 봤을 때 헉...! 로리다...! 완전 도내 S급 초 카와이한 리얼 JS! 이런 생각밖에 안 들어서 딱 지어내버렸어! 카리리 완전 천재이지 않아?”
“로리요?”
“히에에에에엑! 어... 언제 왔어...!”
“로리가 뭔데?”
우리 팀 이름은 The Blurry가 아니었나?
블러리, 직역하자면 ‘흐릿한’.
카리리는 탱커이지만 암살자 클래스를 맡고 있다.
월오아를 많이 하면 할수록 깨닫는 게 있다면 탱커는 언제나 팀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으나 싫으나 카리리의 스타일에 팀 스타일을 맞춰야했기 때문에 팀명도 그에 맞추어 나름 잘 정했다고 생각했다.
카리리는 온몸으로 채팅창을 막는데 급급했다.
“안 돼 노네임 여길 보면 안 돼! 빨리 뒤 돌아!”
-더 블로리(Double Loli) 라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노네임을 속였어?
-니네가 사람이냐
-카리리 완전 악마!
-그래 상식적으로 허락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거대한 화면을 작은 몸집으로는 가리기 확실히 버거워보인다.
“그래서 로리가 뭔데? 트럭을 말하는 건 아닌 것 같고.”
게임에서 실력이 아득히 뛰어난 자를 트럭이라고 표현한다고는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건...!”
내 말에 카리리가 몸을 움찔거리더니 내 시선을 피하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그녀의 코미디쇼와 채팅창을 몇 번이나 번갈아보자, 결국 카리리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귀여운 여자 아이...?”
“그래? 근데 왜 숨겨?”
“약간 성적인 뉘앙스가 담긴...”
-노네임 경멸하는 눈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
-합방 망한 것 같은데 터뜨리자
-합방이 아니라 팀이 터지게 생겼어!
-솔직히 카리리는 이제 로리라고 불릴 나이는 지났지 않았나...
-과거의 영광ㅋㅋㅋㅋㅋ
“아아아아무튼 짜잔! 오늘의 합방은 노네임씨랍니다! 다들 박수 와와아아아아아!”
카리리가 과장스럽게 박수를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래 뭐 대충은 이해했어.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오늘 할 일에 대해 가볍게 물어보기로 했다.
“오늘 그래서 뭐하는데?”
“음... 사실 오늘 합방이 갑자기 정해진 거라서 나도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아 맞다 여러분 노네임씨랑은 총 5일동안 매일 2시간씩 합방하기로 했어요!”
“뭐야 그것도 안 알려준 거야?”
“언니가 미안하제비... 흐엉...”
-노네임 성격 완전 시니컬해ㅋㅋㅋㅋㅋㅋ
-100% 쿨계열
-카리리는 더 때려도 돼!
-우리 카리리는 이게 맞아
“그럼 평소 다른 사람들이랑 합방했던 걸 말해봐.”
“에에에... 보통은 Q&A 시간을 많이 가졌지?”
-노네임 지켜!
-게스트한테 막말을 쏟아붓는 사람이 있다?
-???: 왜 이렇게 얼굴에 비해 늙었어요? (초면에 한 말)
└ 그거 LK한테 말한거냐?ㅋㅋㅋㅋㅋㅋㅋ
└ 나이에 비해 젊어보여요를 반대로 말한 겈ㅋㅋㅋㅋ
-???: 약간 조폭들이 좋아할 스타일인 것 같아요 (현직 아이돌에게)
-빼빼로 게임 제의ㅋㅋㅋㅋㅋㅋㅋ
└ 엌ㅋㅋㅋㅋ 근데 이거 합법 아님?
└ 어라?
└ 어 진짜네?
└ 빼빼로 게임 제안에 면역인 사람이 있다?
“이왜진?”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킨 카리리는 방 구석에 있던 서랍장을 뒤졌다.
토독-
부스럭-
무언가 포장지를 벗기는 소리와 함께 입에 가느다란 막대를 입에 물고 자신의 입술을 가리켰다.
“느릉 쁘쁘르 그음 흘르?(나랑 빼빼로 게임 할래?)”
[‘알트탭커신’님이 10,000원 후원!]
-무친련아!
[‘반갑제비좋아’님이 3,000원 후원!]
-이걸 진짜 하네 정신 나갈 것 같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독-
연이은 도네 폭격에, 카리리의 자그마한 입술 사이로 드러난 하얀 치아가 과자를 두동강냈다.
“아아 네임앙 진짜 할 생각 없었어...! 그냥 이런 거였다고 보여준 거야.”
입 안으로 들어간 것들을 오물오물 씹으며 소리를 빽 내지른다.
“미성년자의 지위를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건 언니가 처음인 것 같아.”
“헉...!”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게스트들을 괴롭혀온 거구나.
그녀도 고등학생이라고 했으니까 확실히 이런 소리를 면전에서 들으면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나도 미성년자라 살았다 방금은.
-캬
-와 말 똑부러지게 잘한다ㅋㅋㅋㅋㅋㅋ
-진짜 천재긴 천재인가보네ㅋㅋㅋㅋㅋ
-그동안 천룡인이라서 좋았지 카리리야!
잡담이 더 길게 늘어지기 전에 끊어야만 했다.
왠지 모르게 계속 넋 놓고 있다보면 휘말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로 랭겜 돌리자.”
“어? 랭겜을?”
“응. 이번 주 목표는 다이아까지.”
“다이아? 나 플래티넘 3이야 절대로 안 돼! 절대로!”
“그럼 앞으로 이긴 경기 횟수만큼 Q&A 질문권을 줄게. 됐지?”
“만약에 대답을 안 하면? 벌칙 시켜도 돼?”
“마음대로 해...”
“좋아 가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