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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에피소드는 외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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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같이 미치지 않는 사람은 온전히 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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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제국이든, 성국이든, 설령 마경이든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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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선량한 시민이 강도에게 칼에 찔려 죽어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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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을 하려면 직장상사나 귀족에게 뇌물을 주는 게 관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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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으면 가장 막내 자식부터 노예상에게 팔아치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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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가 절대로 정상적인 상황이 아님을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세태를 규탄할 힘은 개개인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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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순응하고, 받아들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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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엘라 산맥에서 토끼 사냥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자신을 레이븐이라 소개한 남성도 그런 수많은 인간군상 중의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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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혼란이 막심한 시대에 미친 사람은 널리고 널렸어도, 자신 눈 앞에서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는 여인보다 더 미친 사람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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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사냥하겠다고? 자네 진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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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침식을 잠재우려면 꼭 드래곤하트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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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말로는 누가 못하나. 자살하는 방법도 다양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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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이 콧방귀를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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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을 사냥하겠다는 뜻은 신살(神殺)의 위업에 도전하겠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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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단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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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고기를 거침없이 뜯어먹는 여인을 보고 레이븐은 이내 관심을 끄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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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머리가 나간 여인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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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부터 미친 것일까, 아니면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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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이 알기로는 전자도 많았고 후자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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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전쟁과 ‘침식’이라는 재난의 생존자 대다수가 어디 머리에 나사가 하나씩 빠진 마냥 행동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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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여인의 외모는 레이븐이 평생 본 그 어떤 여인보다도 아름다워서 시선을 거두려고 해도 눈길이 조금씩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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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는 데는 별 문제 없었나? 누가 귀찮게 했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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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이 하는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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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뛰어난 외모는 오히려 난세에서 극독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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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젠의 동쪽 지역은 황제의 힘도 닿지 않는 무법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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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만 세고 무식하기만 동쪽 오랑캐들에게 겁탈당하고 생매장당한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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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서러워도 제 몸을 지킬 힘이 없다면 험한 꼴을 당하는 게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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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약해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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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무력에는 자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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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았거든. 잘 먹었어. 여기 토끼 고기가 참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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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뼛조각을 모닥불에 퉤하고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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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은 장작을 더 쑤셔 넣으며 사그라드는 불길을 다시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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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남성도 토끼 뒷다리를 집어 한입 베어먹어보려고 했지만 이내 인상을 격하게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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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미친 게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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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에 오염된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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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량이면 먹어도 무방했지만 이토록 마기에 절여진 수준은 가열해서 그 쓴 맛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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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늘 저녁은 굶어야하나 고민하는 레이븐의 시선이, 조약돌을 잘그락거리는 여인의 손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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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그 돌 같은 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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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공깃돌이라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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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그끼또르? 들어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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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의 재밌는 놀이지. 한번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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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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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거친 흙바닥에 앉아 다섯 개의 조약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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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브 바깥으로 여인의 하얗고 가느다란 팔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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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여인은 유려한 손놀림으로 조약돌을 던지고 받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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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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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별 게 다 재밌나보군. 확실히 거렁뱅이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놀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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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러다니는 돌로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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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의 빈정거리는 평가에도 여인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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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나무 높이까지 던져보기도 하면서 재밌게 노는 여인에게 레이븐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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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돌댕이들은 뭘로 만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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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덩이라니 실례네. 이거 나름 비싼 물건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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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그냥 단순한 돌조각 내지는 유리 조각으로 보이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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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팩트야. 그것도 보관 아티팩트지. 각각의 돌에는 꽤 진귀한 보물들이 들어있어. 뭐가 들어있을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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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보여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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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둠에 가려 알아채지 못했지만 레이븐은 그것들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말대로 정말 아티팩트가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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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질문에 대답해줄 때마다 하나씩 보여줄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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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선에서 최대한 답해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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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달콤한 말에 빠져든 사냥꾼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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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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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엘라 산맥에 침식이 진행된 지 얼마나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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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식? 어느 걸 말하는 거지? 모든 동물들이 돌로 변해버리는 침식인가 아니면 모든 동물들이 마물로 변해버리는 침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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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이면 둘다 알려줬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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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는 잘은 모르겠지만 3년도 더 된 것 같고, 후자는 정확히 20개월 됐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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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월... 알겠어. 도움이 되는 정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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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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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옅은 붉은빛을 띠는 공깃돌에 마나를 불어넣은 뒤 툭툭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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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공깃돌이 딸깍하고 반으로 쪼개지더니 간이 마법진 12개가 정십이면체를 이루며 발동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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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가운데에 손을 집어넣어 정체불명의 물건을 꺼내 모닥불에 비추어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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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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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다이아몬드 반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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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큰 게 전부 다이아몬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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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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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물건을 보고 탐욕의 감정을 품지 않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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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반지에 박힌 보석이 손톱만하기는커녕 엄지발가락보다 커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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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말을 허언으로 치부하기에는 반지의 숄더와 마운트 부분이 상상 이상으로 정교하게 세공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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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아그네스의 눈물. 프라하인 제국의 현 황후가 가장 아끼는 보물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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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화...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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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예뻐서 나도 끼고 다녔는데, 사실 착용해보면 무지하게 무겁고 불편하기밖에 안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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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치지 말게. 그런 물건이 왜 자네한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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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레이븐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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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질문도 부탁해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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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들어봅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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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위압감에 레이븐은 잠시 침을 꼴깍 삼키며 분위기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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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당신은 어떻게 침식에 대응할 수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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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우리 주민들은 모두 마력기관 절제술을 받았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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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하트를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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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러하트보다 아래 붙어있는 작은 기관이라는데 자세한 명칭은 나도 모르네. 의사 양반이 멋대로 해주어서 말이야. 덕분에 마기가 옅은 곳에는 간단히 왕래해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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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의사였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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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는 양반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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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이제 두 번째 아티팩트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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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금으로 빛나는 도장이었다. 그 위에 정밀하게 조각된 불사조가 특히나 도드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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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이구만. 금으로 칠해진 게 한눈에 척 봐도 비싸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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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쌀지는 잘 모르겠네. 팔릴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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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지? 팔리지 않는다니. 정 그러면 황금상에게 팔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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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양반이 이걸 사줄까? 이거 옥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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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새? 내가 아는 그 옥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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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다 타고 재가 되어버린 숯을 꺼내서 도장 바닥에 비볐다. 오돌토돌한 면에 검댕이가 잔뜩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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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중한 물건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레이븐이 뒤늦게 말려보지만 여인은 끄떡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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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어 그녀가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바닥에 펼쳐서 도장을 쾅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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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젠 제국의 단 하나밖에 없는 군주의 성명이 룬어로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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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새가 빛이 나면서 종이의 효력을 검증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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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중간에 여인이 옥새를 다시 아티팩트에 담아버리면서 레이븐은 그 절차의 끝을 알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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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질문. 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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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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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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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게나... 아니, 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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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의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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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인이 도른년인건 틀림없다. 그런데 하필 돌아도 제대로 도른년이라는 게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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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나라 황후의 반지에 이어서 아이로겐 황제의 옥새까지 나타나자 그제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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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 아니다. 아니, 까딱 잘못하면 오히려 이쪽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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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드래곤이 레어에 돌아온지 얼마나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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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내가... 아니 제가 어떻게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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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인데 그것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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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년 반? 아니 많이 잡아도 2년은 안 되었을 겁니다... 제 추측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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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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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를 비롯한 몬스터의 서식지가 급격하게 바뀐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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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추론이네. 도움이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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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은 아티팩트에 담긴 물건에 대해 더 알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꿋꿋이 세 번째 물건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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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봐도 뭔지 모르니까 설명해줄게. ‘천국의 열쇠’라는 건데 알펜하임 교황청의 보고(寶庫)에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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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당신한테... 아니 정체가 대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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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질문이야. 그럼 블루 드래곤의 레어는 어디로 가면 볼 수 있을까? 슬슬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대답해주는 게 좋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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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드래곤의 레어라는 게 위치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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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지. 그래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잖아. 빈 레어라도 본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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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흠... 흠... 십년 전에 자작 아드님 한 분께서 드래곤 레어를 찾아보겠답시고 병력을 꾸리고 들어갔다가 전멸당한 사례가 있긴 합니다. 여기서 북동쪽 방향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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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쉬운 대답이었지만 어쩔 수 없지. 자 이것도 정말 흥미로운 물건일 거야. 다른 거랑 다르게 훔치는데 꽤 애먹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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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방금까지의 물건들은 길에서 주운 것이라도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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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의 지적은 운 좋게도 목 끝에 걸려 여인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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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빛으로 불길하게 발광하는 펜던트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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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알자하브의 것이야. 용도는 아직 모르겠지만 무척 소중한 거니까 이렇게 악을 쓰고 쫓아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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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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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까지 왔으면 마지막 물건은 봐야 하지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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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은 궁금하지도 않으니까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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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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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이 낮게 내리깐 목소리로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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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레이븐이 이를 무시하고 도망치려고 하자 여인은 그의 등허리를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뻥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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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을 한차례 뒹군 레이븐이 억울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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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바쁜 몸입니다...! 숙녀분께서 야영장비도 없이 홀몸으로 시엘라 산맥을 건너신다길래 이렇게 고기도 구워주고 쉼터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는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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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타샤 황녀의 검은 머리칼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본래의 색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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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홍채가 금빛으로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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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이야. 20여 차례의 살인과 강도강간을 일삼은 악명 높은 지명수배자가 이곳 시엘라 산맥에 숨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왔어. 푸른 피의 반룡(半龍) 크레이븐 고든은 어디서 만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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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사냥하려면 새끼부터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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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 황녀에게 저질렀던 악독한 수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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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줄 용의가 없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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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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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사람이 시엘라 산맥에 거주하고 있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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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와 사냥꾼의 시선이 교차하고 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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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븐 고든의 전신이 비늘로 뒤덮이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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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지명수배자가 서로를 향해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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