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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선생님인 줄 알고 깜짝 놀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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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시각은 포션을 복용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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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공기놀이를 하며 반 아이들과 적당히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 플라스크도 같이 씻을 겸 화장실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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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번 아토마이저로 담배 피우듯 마셔버리니까 다시는 이 액체를 마실 자신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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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제라도 내 혓바닥의 안위도 챙겨야겠다 싶어서 한 번 더 마법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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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화장실 환풍기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의자를 타고 올라가 거기서 몰래 연기를 밖으로 내빼기로 했다. 그럼 냄새도 덜 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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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킬 염려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작전이었다. 호기심 많은 아이가 내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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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전자담배 아니야...? 우리 나이에는 담배 피우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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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내 손에 들린 물건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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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플라스크 안 보여? 담배가 아니라 내가 먹는 포션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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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유나가 건네준 빈 볼펜으로 엉성하게 만들었었지만 요즘에는 꽤 요령이 생겨서 진짜 전자담배처럼 보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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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플라스크랑 직접 연결할 필요도 없이 용액만 보충하면 되는 식으로 만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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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을 왜 그렇게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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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션이 맛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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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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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유나 못 봤어? 이거 생각보다 엄청 맛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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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먹었을 때 포카리 스웨트라고 생각했던 건 역시 내 미각에 문제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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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뭘 먹어도 다 밍밍했는데 그냥 신체가 정상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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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서 냄새도 잘 느껴지고, 단맛 이외의 맛들도 어느 정도 분별이 되었는데 몸이 조금씩 회복단계에 들어섰다는 좋은 징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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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포션이 점점 역하게 느껴지는 반작용을 수반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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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얜 또 왜 이렇게 떨지? 확실히 창문이 열려 있어서 차가운 바깥 공기가 들어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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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선생님한테는 안 이를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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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안 이를 거니까 내보내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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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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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전: 회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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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컥 소리와 함께 화장실 문이 다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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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복도에서 얘기 좀 하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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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무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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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뭐 이런저런 학교생활에 대해서. 난 전학생이라서 아카데미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거든. 네가 작년에 반장도 했다면서. 이번에도 반장선거 나갈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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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 그렇지. 설마 나메 너도 나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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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귀찮게 그런 걸 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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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다행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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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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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조별과제의 조장도 질색하는데, 그런 성가신 직책 따위 나는 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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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는 반장선거를 왜 이렇게 늦게 해? 4월 초순에 하는 학교는 처음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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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나뭇가지에 푸르른 잎사귀가 돋아나고도 남은 시기였다. 복도 창문을 타고 들어온 산들바람이 우리들의 머리를 흐뜨러뜨리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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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한 달 동안 친구들이랑 친해지면서 누가 반장에 어울리는지 잘 알 수 있잖아. 공부만 잘한다고 책임감까지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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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시후나 유나같은 애들이 반장을 맡으면 좀 그렇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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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서유나는 맨날 자기밖에 모른다니까? 내가 작년에 나름 같은 반이라서 열심히 챙겨주려고 말도 걸어봤는데, 오히려 날 때리기까지 했어! 여기에 일주일 동안 멍들었을 정도로 진짜 아팠는데... 나메는 아무것도 모르는 전학생이니까 유나가 계속 너한테 친한 척 구는 것 같은데 걔랑 친하게 지내봤자 좋을 거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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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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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게다가 이깟 재미도 없는 공기놀이...인지 뭔지 이겨보겠다고 이 악물고 하는 걸 네가 봤어야 해. 봐봐 나 여기 손등 다 빨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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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손바닥이 바닥으로 향하도록 두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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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에 공감해달라는 요청이었다면 안타깝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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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야 이리 가까이 와볼래? 볼 좀 이리 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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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볼에 뭐 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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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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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무릎을 살짝 굽혔다. 딱 알맞은 높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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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얼굴에 묻은 것을 떼준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살포시 감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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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주는 건 맞지. 그녀에게 깃들어있는 무례함을 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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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작은 볼때기를 확 꼬집어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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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야야! 느 므흐느 그으(너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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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은 당사자 앞에서 말할 게 아니라면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공기놀이는 나름 내가 작심하고 알려준 건데 재미없다고 하니까 조금 속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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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 즘 믄즈 느크(이거 좀 먼저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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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얼굴에 힘 안 빼 이하루? 힘 주면 더 아프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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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작으니까 아주 그냥 만만해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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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에는 제국의 삼공작들도 내 앞에서 빌빌 기어댔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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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하루가 내게서 벗어나려고 하길래 아예 오러를 써서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려버리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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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녀가 바닥에 넘어지면서 혹여나 다치지는 않도록, 겨드랑이를 부축하며 조심스럽게 복도에 무릎을 꿇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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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를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너를 위해서이기도 한 거야. 하루가 유나한테서 짜증이 난 부분이 분명 있었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걸 들어주는 내 입장에서는, 네가 아무나 막 험담하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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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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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중에 하루랑 친해져도 ‘아 얘는 나한테 조금만 화난 일이 생겨도 뒷담하는 애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럼 나한테 충분히 신뢰를 못 얻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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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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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침울해진 기색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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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우리 유나가 조금 건방진 면이 있어도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함부로 때릴 만한 애가 아닌데. 진짜로 유나가 그랬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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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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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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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방금 유나보고 건방지다고 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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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나 앞에서 당당하게 너 좀 건방지다고 말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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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말해도 유나는 헤실거리는 웃음만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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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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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르겠어, 잘 기억이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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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나중에 유나한테 한번 물어보지 뭐. 그때 네 잘못이 있으면 유나한테 사과할 거야? 물론 유나가 너 때린 것도 내가 확실히 사과시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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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절대 물어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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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루가 내 손목을 휘어잡으면서 애걸복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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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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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그냥 지금 유나한테 가서 사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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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한테 욕했어? 아니면 뭐 뒷담한 게 걸렸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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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야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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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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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뭘 했길래 일곱 살짜리 아이가 명치에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화가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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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가슴을 후려친 유나가 대단한 건지, 애를 그 지경까지 화를 돋운 하루가 대단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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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양쪽 말을 다 들어야 하는 사안 같네. 유나하고 하루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야. 내가 잘 얘기해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마. 그리고 볼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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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얘기만 듣고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내막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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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가해자는 잊어버려도 피해자는 그 순간을 평생 기억하는 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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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유나에게 맞은 사실을 두고두고 곱씹는 것처럼, 아마 유나에게도 그런 일이 분명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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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뿐만 아니라 빨개진 하루의 볼을 보니 가슴이 메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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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뭐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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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얼굴에 잘 포개고 있어봐. 안 아프게 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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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전: 조직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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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용한 게 또 조직 재생 마법이다. 요즘 들어 정말 자주 쓰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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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이럴 거면 스크롤로도 하나 장만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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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개진 피부가 다시 원래의 색을 되찾았다. 하루는 신기한지 양손을 번갈아 쳐다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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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으로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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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수업시간이 끝나는 시간이기도 하고, 그때까지 반에 없으면 선생님께서 찾으실 것 같아서 얼굴이라도 비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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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하루는 계속 복도에 무릎 꿇은 채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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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되돌아가서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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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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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이 심한 아이인가. 그렇게 세게 꼬집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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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나 사실... 유나한테 진짜 나쁜 말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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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울어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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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한테... 아빠도 없는 왕따라고 했어.... 나 나메랑도 짱친 맺고 싶었는데... 그 말 들으면 너도 나 싫어하게 되잖아... 나메도... 그... 입양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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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양 입술을 꽉 깨물며 고백했다. 눈물을 이 악물고 참아내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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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양아인 건 또 어떻게 아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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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하고 말 한마디도 안 섞는 유나는 당연 아닐 테고. 어린 애들이라도 정보력은 무시할 게 못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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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화낼 만 했네. 그래도 하루가 진심으로 사과하면 유나도 분명 받아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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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아무렇지도 않아...? 화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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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런 말을 들으면 화나겠지. 하지만 하루는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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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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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간단하잖아. 네가 사과하면 되고, 나는 그 사과를 받아주면 되는 거고. 나도 하루같은 인기 많은 애가 친구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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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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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간단한 걸 못 하는 족속들을 떠올리면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를 정도로 간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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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차니까 얼른 일어나자. 감기 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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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일으켜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정작 하루는 내 다리를 부여잡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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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있잖아... 진짜 그 말 하고 너무 후회했어... 우리 엄마가 작년 겨울에 사고로 돌아가셔서, 내가 그때 얼마나 심한 말을 했는지 알게 됐어 흐끅...! 다 내가 유나한테 그따위로 말해서 천벌을 받은 건가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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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처음 듣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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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래도 뒷담 거의 안 했는데...! 작년에도 서유나 챙겨주려고 한 건 여자애들 중에서 나밖에 없었다고... 너무 억울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우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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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많이 힘들었겠네. 그동안 하루 혼자 견뎌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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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코를 훌쩍이며 맹맹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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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흑...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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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하루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자니 그녀가 추가로 할 말이 더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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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 볼 꼬집을 때 많이 아팠어. 나 살면서 엄마 아빠한테도 맞아본 적 없는데. 서유나가 때린 게 처음이었고.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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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하게 해서 미안해.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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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서 나 놀래킨 것도 사과해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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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것도 사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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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은근 속에서 쌓아놨다가 터뜨리는 뒤끝있는 타입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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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수업을 마칠 때까지 나는 복도에서 그녀를 달래줄 수밖에 없었고,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그녀와 손을 맞잡고 부리나케 반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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