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d 3 AI agents (writing, revision, story-continuity specialists) - Add 4 slash commands (rovel.create, write, complete, seed) - Add novel creation/writing rules - Add Novelpia reference data (115 works, 3328 chapters) - Add CLAUDE.md and README.md 🤖 Generated with [Claude Code](https://claude.com/claude-code) 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57 lines
12 KiB
Markdown
257 lines
12 KiB
Markdown
|
|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사람들은 하나둘씩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
|
|
|
그리고 그런 군중들 사이에서, 나메는 4월의 날씨치고는 너무 더운 게 아니냐고 속으로 구시렁대며 지하도를 걸었다.
|
|
|
|
두 갈래로 땋은 긴 머리카락이 이제는 바닥까지 닿을락 말락 할 지경이다.
|
|
|
|
아역모델 뺨치는 외모와 진귀한 헤어스타일의 소녀가 혼자 지하철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이따금씩 흘끔거리는 시선이 쏟아졌지만, 나메는 아랑곳하지 않고 핸드폰 화면에만 집중했다.
|
|
|
|
지도앱을 켜서 내려야할 정거장과 출구를 외운 뒤, 지하철 구석 빈자리에 몸을 밀착하듯 앉았다.
|
|
|
|
지하철은 덜컹거리는 소음 없이 조용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다음 정거장에 도달했다.
|
|
|
|
아직은 내려야 할 때가 아니라는 듯, 나메는 눈을 감고 조용히 들려오는 백색소음을 자장가 삼아 아직 가시지 않은 피로를 덜어냈다.
|
|
|
|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
|
|
|
안내 방송이 나왔음에도 지하철 문은 닫히지 않았다. 환승역이라서 출입문을 드나드는 승객들이 많았다.
|
|
|
|
사람들은 빈 자리를 하나씩 잡고 앉았고 어느새 나메의 옆자리에도 사람이 앉게 되었다.
|
|
|
|
“저기...”
|
|
|
|
곤란한 기색이 담긴 청년의 목소리에 나메가 눈을 떴다. 청년이 가리킨 것은 나메의 옆자리였다.
|
|
|
|
“죄송해요.”
|
|
|
|
“아냐 고마워.”
|
|
|
|
나메는 옆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품에 안았다.
|
|
|
|
인형 같은 귀여움에 웃음이 나올뻔한 걸 가까스로 참은 청년은, 혹시라도 자리를 뺏기랴 서둘러 자리에 앉고 들고 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
|
|
|
백색소음을 배경삼아 다시 잠을 청하려는 나메였지만 머지않아 옆 칸에서 온 불청객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
|
|
|
“이 육시럴, xx xx들아! xxx이 다 꺼져 이 xx들아!”
|
|
|
|
오랫동안 관리를 안 해온 것처럼 꾀죄죄한 몰골과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누더기를 겹쳐서 입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해진 옷을 입은 노인이 고함을 질러대며 인파 사이를 뚫고 나간다.
|
|
|
|
지하철의 사람들은 아예 상종도 하지 않으려는 듯 눈을 피하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
|
|
|
“뭐야 정신병자인가봐.”
|
|
|
|
“쉿, 그냥 무시해.”
|
|
|
|
술이라도 마신 것처럼 비틀거리는 남성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또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
|
|
|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나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남성은 나메와 눈이 마주치고 가던 길을 멈춰버렸다.
|
|
|
|
“뭘 그렇게 꼬라봐 이 xx아? 너도 내가 우스워? 눈깔 확 파버릴라!”
|
|
|
|
“...”
|
|
|
|
“너도 북한에서 날 감시하라고 보낸 년이지? 개돼지도 못한 간첩 xx들을 다 잡아 족쳐야 하는데-”
|
|
|
|
“아니 아저씨! 어린 애한테 무슨 짓거리이에요! 신고하기 전에 빨리 가요, 당장!”
|
|
|
|
나메에게 위협을 주는 남성에 맞서 옆자리 청년이 불쑥 일어나 그를 제지했다.
|
|
|
|
“이 새파랗게 어린 놈들이 쌍으로...!”
|
|
|
|
“계속하시면 저도 가만 안 있습니다.”
|
|
|
|
노인이 손찌검이라도 할 심산이었는지 팔을 높이 들어보지만, 청년은 곧바로 그의 손목을 거칠게 잡았다. 팔뚝에 힘이 들어가자 노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
|
|
|
촤르르-
|
|
|
|
그 와중에 청년이 들고 있던 파일철들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
|
|
|
한차례 실랑이가 벌어지나 싶었지만 큰 체격의 청년에게는 차마 대들 수 없었는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떠나는 꼴에 사람들은 속으로 박수를 쳤다.
|
|
|
|
“진짜 2호선은 빌런들도 가지가지 한다니까. 저기 애야 괜찮아?”
|
|
|
|
어느새 파일철들을 줍고 있던 나메는 그것을 한데 모아 그에게 정리해서 돌려주었다.
|
|
|
|
“네 뭐, 고마워요.”
|
|
|
|
“앗 안 주워줘도 괜찮은데 정말 고마워! 진짜 저런 인간은 태그나 제대로 찍고 들어왔는지 몰라.”
|
|
|
|
“시위... 나가시나봐요?”
|
|
|
|
“아 이거?”
|
|
|
|
표지가 드러난 파일철 하나를 바라보며 청년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
|
|
|
“별 건 아니고. 비유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서 주문을 했는데 식당이 음식을 똑바로 안 만들어서 말이야. 그래서 우리가 단체로 화났다고 알려주려고 가는 거야. 혹시 월오아라는 게임 아니? 아직 어려서 모르려나?”
|
|
|
|
“알죠. 잘 알아요.”
|
|
|
|
“오 알고 있었구나. 사실 이런 자리에 내가 나가는 게 처음이라 조금 떨리네. 급하게 준비했던 대본이라 잘 썼는지도 모르겠고...”
|
|
|
|
“결국은 진실된 마음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
|
|
|
“어?”
|
|
|
|
“그 게임 좋아하신다면서요. 솔직하게만 말하면 다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여기서 내려야해서 가볼게요. 그럼 화이팅.”
|
|
|
|
“아 그래...! 정말 고맙다 친구야!”
|
|
|
|
지하철이 멈추고 급정차 과정에서 약간의 쏠림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능숙하게 넘겼다.
|
|
|
|
지하철의 문이 열리면 수백명의 사람이 나오고, 다시 수백명의 사람이 들어온다.
|
|
|
|
같은 공간이라도 다른 세상이 된 것처럼 새로운 사람들로 붐볐지만, 한 펑퍼짐한 옷차림을 한 여성이 손을 번쩍 들어 앉아있던 청년을 불러 세움으로써 다시 익숙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
|
|
|
“오 7-2칸 제대로 찾아왔다! 안뇽안뇽. 총대진님 이거 준비는 잘 해내셨나 모르겠네? 너 밤 꼴딱 셌다며?”
|
|
|
|
“아 진짜 말도 마. 방금까지도 그냥 자살할까 생각 중이었음.”
|
|
|
|
“하핳핳핳. 그럼 지금은?”
|
|
|
|
“진짜 엄청 귀여운 꼬마 애한테 시위 힘내라고 응원받고 힘이 났다. 너 오면서 혹시 못 봤어? 한 초등학교 1학년쯤처럼 보였는데?”
|
|
|
|
“글쎄다? 폰만 쳐다보고 오느라.”
|
|
|
|
“와 네가 꼭 봤어야 했는데 까비네. 진짜 배우 보는 줄? 아 혹시 진짜 아역배우였나? 말하는 것도 엄청 똑부러지던데. 싸인이라도 받아놓을 걸.”
|
|
|
|
“영화나 드라마도 안 보는 게 싸인 받아봤자 무슨 상관이냐. 걍 우리 귀여운 네임짱이나 같이 덕질하자.”
|
|
|
|
“귀엽기로는 그 애가 훨씬 더 귀여웠다니까?”
|
|
|
|
순간 청년은 자신의 표현력이 부족한 것을 한탄하며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다.
|
|
|
|
“에이 네가 노네임 생방은 안 보고 브이튜브로만 봐서 잘 모르나본데 사실 메인 아바타도 장난 아니게 귀엽거든? 만약 노네임이 더 귀여우면 어쩔래? 내기하실?”
|
|
|
|
“그래봤자 아바타잖아. 내가 본 건 현실 사람인데? 비교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
|
|
|
|
“가상현실에서 더 오래 사는 사람이 참 까다롭기는...”
|
|
|
|
“뭐?”
|
|
|
|
“아무튼 보여줄게. 거기 앉아 있지 말고 와서 봐봐.”
|
|
|
|
“아니 역 한참 남았는데...!”
|
|
|
|
* * *
|
|
|
|
“잘못 찾아왔을리는 없는데.”
|
|
|
|
서마루가 톡으로 보내온 ‘감골 카페’의 위치는 분명 이곳이 맞았다.
|
|
|
|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건 빈 건물과 시멘트 포대가 전부.
|
|
|
|
건물 한바퀴를 빙 둘러보니 그제서 이 카페가 최근에 다른 곳으로 이전했음을 알게 되었다.
|
|
|
|
그런데 정작 어디로 옮겼는지에 대한 정보는 바람에 날아가버렸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어 난처했다.
|
|
|
|
서마루에게 연락을 한번 더 돌리고 그냥 멍하니 서 있기에는 아닌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
|
|
|
“저기 언니, 오빠.”
|
|
|
|
지나가는 커플을 붙잡고 내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
|
|
|
“감골 카페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최근에 옮긴 것 같은데 지도에 안 떠서 모르겠네요.”
|
|
|
|
“어머...! 잠깐만 감골 카페가 어디로 갔더라... 오빠 기억나?”
|
|
|
|
“아니? 리모델링 한다고는 들었는데 언제 옮겼대?”
|
|
|
|
“저번에 사장님이 우리한테도 알려줬잖아! 그 선우네한테 한번 전화해보자. 빨리 전화 걸어봐.”
|
|
|
|
“김선우? 아아 박선우? 맞다 걔네들이랑 같이 갔었지.”
|
|
|
|
“잠시만 기다려줄래 친구야? 친구한테 바로 물어볼게!”
|
|
|
|
내가 언니라고 불러서 신이 난 모양인지 여성은 박수를 짝 치며 성심성의껏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
|
|
|
통화음이 연결되는 동안 태양 아래에서 우리 셋은 쭈뼛쭈뼛 서 있었다.
|
|
|
|
“친구야 이름이 뭐야?”
|
|
|
|
남자쪽이 통화를 하는 동안 검은 롱스커트를 입은 언니가 무릎을 쭈그리고 내게 물었다.
|
|
|
|
“나메예요.”
|
|
|
|
“우와 이름도 정말 예쁘다! 몇 살이야 나메는?”
|
|
|
|
“곧 여덟 살이에요.”
|
|
|
|
“오오 여덟 살인데 여기 혼자 온 거야? 집이 어디야?”
|
|
|
|
“멀지는 않아요. 한 두세 정거장 정도.”
|
|
|
|
“나메는 대단하네! 지하철도 혼자 탈 줄 알고.”
|
|
|
|
“전화 안 받는데? 유봄한테 걸어봐야 하나. 나메야 조금만 기다려줄래?”
|
|
|
|
어차피 서마루한테 오는 연락보다는 빠를 것 같으니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
|
|
이쪽 언니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싱글싱글 웃고 있는 모양새다.
|
|
|
|
“얘 속눈썹 진짜 길다. 그치 않아 오빠?”
|
|
|
|
“나메야 여기 언니가 너 엄청 예쁘대.”
|
|
|
|
“아하하...”
|
|
|
|
“예쁘다는 소리 많이 들어서 지겹구나?”
|
|
|
|
“딱 보면 몰라? 나메는 인기 엄청 많을 것 같잖아! 남자친구 있어?”
|
|
|
|
“남자친구는 없어요.”
|
|
|
|
“왜? 나메 좋다는 사람 많을 것 같은데.”
|
|
|
|
“그건 좀...”
|
|
|
|
“꺄아악 어떡해 너무 귀여워!”
|
|
|
|
다행히도 커플들의 주접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
그녀가 건네준 위치 정보를 폰으로 넘겨받은 나는 머리를 꾸벅 숙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
|
|
|
생각보다 그리 멀지는 않았고 바로 다음 블록에 위치해 있었다.
|
|
|
|
근처가 전부 공사하는 아파트들뿐이라 다 똑같이 생겨서 미로를 빠져나오는 기분으로 도보를 거닐었다.
|
|
|
|
[감골 카페]
|
|
|
|
겨우겨우 찾아온 카페의 문을 열고 나니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이마에 스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혀주었다.
|
|
|
|
“어서오세요!”
|
|
|
|
“네 안녕하세요.”
|
|
|
|
카운터에서 명랑하게 반겨주는 젊은 여성 점원의 인사를 받아주고 가장 구석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
|
|
|
몸이 약해 최대한 짐을 덜고 덜었는데도 어깨결림이 있었다.
|
|
|
|
가방을 옆 의자에 올려놓고 안에서 파일철과 여러 캡슐 녹화 메모리 등을 꺼내 미리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
|
|
|
때마침 서마루에게도 연락이 왔다.
|
|
|
|
[맞다, 감골 카페 지금 지도에 업데이트가 안 돼서 위치가 다를 거야! 내가 바로 찍어서 보내줄게. 난 5분 뒤 도착할 듯!]
|
|
|
|
빨리도 보내준다.
|
|
|
|
그러거나 말거나, 파일철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가장 완벽한 조명 아래서 완벽한 각도로 정렬해놓았다.
|
|
|
|
[브이튜브 공동 사업 계약서]
|
|
|
|
“주문하시겠습니까?”
|
|
|
|
나를 바라보는 점원이 너무 높이 있다. 메뉴판은 그보다 더 높았다.
|
|
|
|
상체를 쭉 내밀고 고개를 한참 치켜들어야만 전체 메뉴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
|
|
웃는 낯으로 내 주문을 기다리는 점원에게 고민 끝에 내 메뉴를 먼저 시켰다.
|
|
|
|
“카라멜 프라푸치노에 통 자바칩 추가해주세요. 에스프레소 휘핑 많이 주시고 모카 시럽과 카라멜 드리즐도 부탁해요. 나머지는 일행 오면 또 시킬게요.”
|
|
|
|
“아아 네헷? 네네 주문 받았습니다! 자... 잠시만요!”
|
|
|
|
“천천히 하세요. 천천히.”
|
|
|
|
이런 날에는 단 게 땡겼다. 굳이 이런 날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