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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생님이 재단에서 오신 분이랑 회의가 있어가지고 4교시는 자유 시간으로 대체할게요. 대신 여러분께 설문지를 나누어 줄 테니까 모든 질문에 빠짐없이 적어서 선생님 책상에 뒤집어서 올려놓으면 돼요. 각자 이름 쓰는 것도 까먹지 말고요! 다 하기 전까지는 자리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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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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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의사항이 있는데 마지막 페이지는 꼭 혼자서 답변해야 되니까 혹시라도 다른 친구에게 보여달라고 떼 써도 안 돼요. 그럼 끝나고 다들 점심 맛있게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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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선생님은 종이뭉치를 가장 앞자리에 있었던 한결에게 건네주면서 성급히 반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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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자유시간이다 자유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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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건네받은 설문지의 양은 대략 양면으로 A4 3장 분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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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아서 빨리 적고 놀 생각에 반 아이들은 다들 기분이 들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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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내 등을 툭툭 건드려서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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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얘기하면서 설문지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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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뭐. 혼자 하면 심심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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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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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시후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유나가 하자는데 뭐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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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이었나? 혹시 몰라 시후에게도 권유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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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후 너도 우리랑 같이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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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리고 설문조사는 원래 혼자서 하는 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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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애들은 지금 다 같이 하고 있는데? 뭐야 유나랑 단둘이 아니라면 싫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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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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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후가 나랑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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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순진하게 물어오자 시후가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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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 안 할 테니까 둘이서 열심히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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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그럴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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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의자를 아예 뒤로 돌려서 유나와 마주보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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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바꿔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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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 친구 요한이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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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다 하기 전까지 선생님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면서. 규칙은 지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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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니까. 어른이면 아이들 앞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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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형으로 적는 것도 많아보여서 생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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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 15분은 걸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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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빨리 끝내버리고 우리도 같이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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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앞페이지에 우리의 이름을 적고 페이지를 넘겨서 첫 번째 질문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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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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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마법의 주입’ 과목란에 체크 표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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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벌써 골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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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이게 고민되는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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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법을 고르지 않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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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네들은 마법이 없는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이게 신기한 일인지 체감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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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도 엄연히 큰 틀에서 우주적 물리법칙을 따른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가들의 주장이고 사실 아직도 나한테 마법이라는 건 미지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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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미사일 하나를 발사할 때도 얼마나 많은 석학들이 달려들어서 머리를 싸매고 일일이 수식을 적고 수천번의 실험 테스트를 거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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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않고는 작동은커녕 그 자리에서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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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법이라는 건 일단 기본적인 틀만 유지하면 시전자가 원하는 방향에 최대한 맞추어서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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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올바른 수·과학지식을 함양하여 마법진을 구체화 시킬 수록 그 마법의 위력과 정확성이 증대되긴 했지만,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한 수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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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 강요에 못 이겨 유나도 나랑 똑같이 마법의 주입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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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어떡하냐고? 내가 좋아하게 만들어 줄 거니까 상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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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다음 질문도 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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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하는 과목? 난 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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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구처럼 쓸데없는 것에 몸을 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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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뚱아리가 약하기도 했을 뿐더러, 그냥 천성적으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도 싫어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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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맨날 체육시간에 쉬니까 그럴 것 같았어. 나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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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그건 진짜 의외네 보통은 다들 좋아하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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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큰 오빠가 그림 진짜 잘 그리는데, 내가 그릴 때마다 이상하다고 놀려서 별로 안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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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싫어할 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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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동심을 짓밟는다니 잔인한 일이다. 이게 남매라는 걸까. 이해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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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에 살고 있는 사람이 심지어 내 또래라면 뭔가 괴롭히고 싶어지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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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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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족을 소개하는 칸에, 나는 천교수님의 성함을 적을까 하다가 그런 의도로 묻는 질문은 아닌듯 하여 단순하게 두글자를 적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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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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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처음으로 가족다운 가족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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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자신의 성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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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어서 잠시 펜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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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정말 끝까지 이런 식이야.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본인 생각밖에 안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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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음... 유나야 내 성격이 어떻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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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는 천사 같은 성격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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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손으로 그렇게 쓰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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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실인 걸 어떡해. 나메는 완전 천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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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라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다. 그렇다고 착하다라고 쓰기에도 너무 성의 없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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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선을 돌려 옆 분단에서 조잘대는 여자애들에게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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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내 성격이 어떻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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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가 타인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있는지는 나도 궁금하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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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런 부분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어느 때를 기점으로 아예 생각하지 않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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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흥미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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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음... 잘 모르겠는데? 하루야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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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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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는 모르겠다고 하고 하루는 머뭇거리면서 대답을 미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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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으면 나 혼자서 대충 적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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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같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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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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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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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너무 뜬금없는 소리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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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처럼 친절하고 멋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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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뒤늦게 손을 내저으며 변명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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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한 표현이라서 마음에 드네. 그럼 그대로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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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왜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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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 성격에 천사는 너무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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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볼을 부풀리며 항의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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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는 비교적 쉬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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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습관이나 흥미, 여가 시간에 무얼 하는지, 인상 깊게 본 책이나 영화, 최근에 있었던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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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답을 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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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항목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그리운 스승님의 이름을 적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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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테라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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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은 꼭 혼자서 하라고 해서 뭐 중요한 게 있나 싶었더니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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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하는 건의사항, 선생님에게 개인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 아카데미에게 하고 싶은 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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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빠르게 적어버리고 설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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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끝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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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마지막 장에서 몇 분이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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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지만... 너무 어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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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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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세 번째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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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 3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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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깊은 한숨과 함께 책상에 엎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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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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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 캐롤의 업무는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도 쭉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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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주입 수행평가로 인해 산더미처럼 쌓인 보고서를 3시간에 걸쳐 모두 채점하고 난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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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중간중간에 브이튜브를 보지 않았더라면 2시간 안에도 끝낼 수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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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 언제나 학부모 상담이 진행되었다. 한 명이 끝나면 또 다음 학생의 학부모가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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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어디보자... 유나하고 요한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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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 상담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도 정말 곤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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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상담은 아카데미에서 의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생이 바쁜 학부모들을 염치 불고하고 어떻게든 아카데미로 불러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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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평가를 바탕으로 아이들이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는지 설명하고, 교사의 눈으로 본 아카데미 생활도 간략히 전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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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재클린은 전체적으로 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이들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반 아이들에게 직접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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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상담이 시작된 지도 벌써 이틀 차였지만, 아직도 설문지 결과를 종합해보지 않아서 오늘만큼은 기필코 하리라는 다짐과 함께 재클린은 종이 더미를 책상 앞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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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지에 있는 질문의 수는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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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누가 있는지, 현재 가장 고민이 되는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의 간단한 문답으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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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은 그들의 응답을 하나하나 데이터셀에 집어넣으면서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런 걸 아직도 아날로그로 처리해야 하는 점에 대해 투정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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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론 아카데미 학생들의 주요 고민거리는 성적이 65%로 가장 앞서있었고, 친구관계, 여가시간 부족, 가족관계 등이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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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아이 3명을 물어보는 질문을 정리하는 과정은 더욱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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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하나하나 기계적으로 정리를 해보니 수십 개의 화살표가 화면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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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가 몰려 있을 수록 반에서 중심이 되는 아이라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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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리’가 당연히 가장 많은 화살표를 받았고, ‘이하루’와 ‘김한결’도 수치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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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이나 듣기 싫은 말, 평소의 학습 시간, 아카데미에게 하는 건의사항을 빠짐없이 살펴본 재키 선생은 마지막 문항에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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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행실을 고쳐주었으면 하는 친구가 반에 있다면 누구이고 그 이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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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동성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일수록 이성친구에게 미움을 많이 받는 경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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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증명하듯이 김한결도 3명의 여자 아이들에게서 장난을 많이 쳐서 싫다는 얘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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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루도 4명의 남자 아이들에게서 잔소리가 심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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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건 딱히 문제의 소지가 없었지만 그녀는 다른 인물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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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에게서 단 두 개의 화살표만 얻은 유나는, 반 과반수의 친구들에게 미움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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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척해서, 이기적이라서, 나쁜 말을 해서, 숙제를 안 알려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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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A반에서 갖가지의 이유로 고립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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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재클린은 유나의 설문지를 다시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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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 세 명을 묻는 물음에 그녀는 오직 한 명의 이름을 칸 세 개에 똑같이 적어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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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 / 노나메 / 노나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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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할 것 같은 친구 부문에서 윤시후를 제치고 1위에 든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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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반에서 가장 친해지고 싶은 아이로 뽑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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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클린은 나메의 설문지를 찾아 대조해보면서 혹시 그녀는 친구로 누구를 지목해 제출했는지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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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나 / 한서리 / 윤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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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메가 잘 챙겨주고 있었나 보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은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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