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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또 내 방에 있는 화장실 썼지! 제발 들어오지 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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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외출한 사이에 화장실 바닥이 물바다가 된 현장을 보고 하루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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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언니는 하루 방에 있는 화장실의 욕조가 조금 더 크다는 이유로 그녀가 부재 중일 때마다 몰래 들어와 목욕을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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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꺼랑 얼마 차이도 나지 않잖아! 그리고 쓸 거면 깨끗하게 써야지 이게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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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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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 진짜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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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가득한 하루의 눈빛이 쏘아졌다. 친동생에게 패드립을 치면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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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억울해도 일곱 살 터울의 언니 이보름에게 대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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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나이이지만 언니쪽에서 어머니를 들먹이는 순간 하루에게는 이길 수 없는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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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그들의 가정은 벼랑 끝에 몰렸다는 말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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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일에 치여 살아 집에서 본 적이 드물 정도였고, 이보름은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며 돈을 흥청망청 허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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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그런 언니도 매우 못마땅해했지만, 이를 제지하지 않는 아버지가 더욱 원망스러워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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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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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그리운 이름을 불러보아도 돌아오는 건 공허한 도시의 소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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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어머니를 항상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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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원체 허약해서 집보다는 병원에서 더 자주 볼 수 있었지만, 만날 때마다 하루의 얘기를 정성스럽게 귀담아 들어주는 건 언제나 어머니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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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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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는 얘기는 굳이 아버지한테까지 알려줄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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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보나마나 해외출장일 거라며 어렴풋이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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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그걸 다 들고 가실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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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경호원이자, 수행원이자, 이제는 운전기사 역할까지 맡게 된 박 실장이 난처하듯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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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손에 들린 그녀의 몸집만큼 커다란 캐리어에 대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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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많이 뺀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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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일단 갖고 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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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탑승한 하루는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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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세상은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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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처음부터 전색맹이었던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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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녀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항상 고질병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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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아빠가 놀이동산에 데려다주겠다는 약속을 어겼을 때라든지, 아카데미 입학 시험을 준비했을 때가 대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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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본 뒤로는 노나메를 만나기 전까지 다시는 색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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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은 하루의 기억 속에서 말 그대로 뭉개져버릴 정도의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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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하루종일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울어대기만 했었다는 어렴풋한 장면만을 간신히 떠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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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도 하루의 원추세포에는 문제를 찾지 못해 고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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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전색맹이 아니라 뇌에 문제가 있다는 소견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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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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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대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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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앗...!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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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을 실수로 입 밖으로 꺼낸 하루가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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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나메가 자신더러 유나와 화해할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기획한 이벤트였지만, 하루는 주말에도 나메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더욱 의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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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곁에 있으면 잠시나마 세상에 활력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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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이, 그리고 생물들이 내뿜는 아름다운 자태를 더욱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하루는 수행원더러 서두르기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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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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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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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유나구나! 나메가 말한대로 머리색이 예쁜 친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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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감사합니다! 근데 나메가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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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야 네가 빨리 타야 나도 타지. 뒤에 차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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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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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거리는 유나를 빨리 뒷좌석에 밀어 넣어버리고 나도 그 옆에 쏙 들어가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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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유나는 텐션이 정말 높아져 있어서 엉덩이를 시트에 붙이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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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좌석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천교수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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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 집은 어디 있어요? 여기서 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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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멀지는 않는단다. 차로 10분이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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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 방은 넓어요? 화장실도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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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면 알 게다 하하. 유나가 집이 많이 궁금한가 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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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안전벨트 매 서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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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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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소매를 쭉 잡아당겨서 올바른 자세로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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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천교수의 차도 신기했었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하고, 내비게이션과 자율주행 AI가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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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나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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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는 내게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는지 허벅지를 툭툭 건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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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살짝 옆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유나는 내 옆머리를 살짝 쓸어넘긴 뒤, 왼손으로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고 내게 귓속말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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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 집은 혹시 엄청 부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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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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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한복판에 40평대 아파트를 가진 이가 부자가 아니라고 하면 실례인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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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도 돈 많았으면 좋겠다. 가장 빨리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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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애가 벌써부터 무슨 돈 타령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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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돈이 많으면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잖아...! 요플레 뚜껑을 안 핥아먹어도 될 만큼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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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꿈이 큰 거야 작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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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황금만능주의적 태도도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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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돈이 없었기에 생긴 온갖 서러움을 다 겪었으니 할 수 있는 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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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유나가 돈을 엄청나게 많이 벌면 뭐부터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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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네 개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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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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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마루 오빠랑, 노을 오빠랑, 그리고 나까지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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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 따로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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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난 그래도 엄마랑은 같이 살고 싶은데... 그럼 세 개면 충분할 것 같아! 으음 또... 애플폰도 살 거구, 캡슐도 제일 좋은 걸로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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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많이 밝히는 거 치고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원래 어린애들의 생각이 그런 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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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제일 쉽고 빠른 방법은 결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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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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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부자랑 결혼하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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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고도의 사회학적 행위이자 신분상승의 길로 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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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전생에서는 가문과 가문의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새로운 무역로를 열기 위해, 무너져가는 가문을 되살리기 위해 일면식도 없는 고위 귀족에게 청첩장을 보내는 건 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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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중세의 가치관이 내 안에 뒤섞여 있는 탓에 조금 혼란스러운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현대에서도 자본과 명성의 욕구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인간의 본성은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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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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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오래 살다보면 사랑하게 될 수도 있는 게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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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에 있다보면, 귀족 여성들의 마음가짐과 본성을 더욱 잘 알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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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배우자에게 큰 흠결이 없는 이상,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킬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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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으로서의 자아가 조금 남아있는 나로서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가치관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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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별로. 굳이 그래야 한다면 난 나메랑 같이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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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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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나메는 부자인데 다른 애들처럼 나대지도 않고, 착하고 얌전하고 똑똑하잖아. 동화 속 왕자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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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플래그를 내가 아니라 윤시후가 가져갔어야 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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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 나중에 중고등학교 때 어린 시절 했던 약속이라며 써먹기라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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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생각하는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데? 주말에는 하루종일 맨날 잠만 자고, 고기 반찬 없으면 절대 밥 안 먹고, 쇼핑 가자고 하면 싫다고 투정 부리고, 술 마시는 거랑 게임하는 게 취미인 배우자라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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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기서 술은 마셔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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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그건 한번 생각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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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릴 때 그런 약속들은 남발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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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유나라면 굳이 결혼이 아니라도 어느 분야로 나아가든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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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계획을 짜서 살아가는 친구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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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만 잘 바쳐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올곧게 자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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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유나야 궁금한 게 있는데 뭐 하나 물어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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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뭐가 궁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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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네가 학교에서 오빠가 그린 그림이라고 프린트해서 나한테 보여줬잖아.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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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마루오빠 진짜 잘 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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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컴퓨터로 그린 거 아니야? 막 그림이 움직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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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맞을걸?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로 만든 거라고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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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화가라길래 단순히 캔버스에 유화를 생각했는데, 이는 유나가 아직 어휘가 부족해서 생긴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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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서마루의 작품이라면서 건네준 디지털 페이퍼에는 수준급의 애니메이팅 스플래시 아트가 있었다. 게임 캐릭터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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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말이야. 너희 오빠한테 다른 일 구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면 실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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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일? 어떤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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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튜브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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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아아... 그런데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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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사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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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되면 그런 것도 사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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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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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은 모르지. 근데 적어도 난 사줄 의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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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이왕 제대로 시작하는 김에, 브이튜브 편집자까지 미리 뽑아 놓으면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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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서마루와는 일면식이 있으니까 껄끄럽지도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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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하자고 하는 일이었지만 분명 그에게도 나쁘지만은 않은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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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한번 물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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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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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와 수다를 떨고 나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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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서 내가 39층에 산다는 걸 깨닫고 만약 지진이 나면 어떻게 대피해야 하냐면서 겁을 먹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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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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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의 첫째날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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