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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 아빠가 차라리 악독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던 적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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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이 부모와 연을 끊지 못하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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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그들이 보내온 게 비뚤어진 사랑일지언정, 니엘에게 언제나 진심으로 대했던 사람 또한 역설적으로 부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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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지 말라고,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용돈을 보내주시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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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다양하게 사 입으라고 준 돈이었지만, 정작 그는 매일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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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이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 교무실까지 직접 찾아와 니엘을 감싸며 끝끝내 가해자들을 전학보낸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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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싫어했던 사람인데도, 그때만큼은 세상에서 자신의 편이 어머니 하나밖에 없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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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인생이 꼬여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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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사기당할 것 같은 낌새를 눈치채고도 확실하게 말해주지 못한 것? 예일학교에 떨어진 것? 아니면 바이올린과 사랑에 빠진 게 잘못이었을까? 그것도 다 아니라면 그냥 내가 태어난 게 잘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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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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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현재의 고달픔을 잊기 위해, 찬란했던 과거로 의식이 옮겨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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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견의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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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악보라도 바로 연주해버리는 능력으로 ‘마에스트로’에서 만난 팬들이 유덱스에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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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단니엘은 어머니가 결코 해주지 않는 그런 사소한 칭찬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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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이면 ‘초천재’라는 멋진 별명이 되어버리니까. 초등학생의 감성에 딱 알맞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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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현재의 니엘은 나메의 실력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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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위키’에서 인류 역사상 다시는 나오지 않을 천재라는 사심과 주접 가득한 문구가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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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1년차라고? 저게 정말로 초천재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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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튼의 곡을 음대생 동기들에게 초견으로 연주해보라고 시켜봐도 정확도 99% 이상을 넘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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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굳어버린 니엘과 달리 나메는 어리기까지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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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100%로 이기고 있어도 사실상 졌다는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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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니엘의 점수판이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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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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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ūdex: 정확도 9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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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oName: 정확도 9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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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조금씩, 정확도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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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문제지? 난 제대로 했는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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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은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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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이올린 음들이 미세하지만 조금씩 옆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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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손가락으로 비브라토를 넣어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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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오락실 바이올린의 줄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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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잠깐만 중단했다가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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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이 나메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그녀는 연주에 집중한 나머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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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가락들로 안간힘을 다해 현을 짚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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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왜 내가 이겨야하지? 아니 이 내기를 대체 왜 하고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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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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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에 인생을 바친 자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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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보다 뒤떨어진다는 피수정 교수의 말이 사실일 리 없다는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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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라도 살살 연주한다면 줄이 끊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고, 이 대결도 니엘의 완벽한 승리로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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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도 나메는 자신이 직접 조원들에게 가서 사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가락 살갗이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연주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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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게 필요한 일이라면 해야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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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니엘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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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말대로 자신이 직접 가서 사과하는 게 역시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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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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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은 활을 크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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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의 복슬복슬한 활털이 거침없이 현과 마찰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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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 소리와 함께 현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다가 다시 머리채가 잡힌 것처럼 바닥을 향해 맥없이 고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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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가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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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이겼어 노나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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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맞지 않게 정말로 어른스러운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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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의 연주 동안 단니엘은 나메의 노력에 감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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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노나메가 본 내기에서 승리하는 것도 합당한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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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 언니 괜찮아요? 손 안 다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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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괜찮아. 원래 연주하다보면 줄도 자주 끊어지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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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저희 것도 아닌데 물어줘야 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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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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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메가 물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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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서의 자존심마저 무너져버린 단니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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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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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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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니엘이 허리를 90도 이상으로 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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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기울이면 머리가 바닥에 닿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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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의 걱정과는 달리 조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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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한 사과에 감동한 면도 있었지만, 그녀가 준비한 필살기가 매우 효과적이었던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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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이번 기말고사 출제범위만 포함한 요약본이라고요? 니엘씨가 힘들게 만든 건데 우리가 써도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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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교수님께서 올려주신 5년 치 족보를 전부 수합해서 정리한 거니까 이것만 봐도 웬만한 문제는 다 맞히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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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니엘씨가 저번에 조모임 빠진 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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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메일로 연락드린 참이었는데 3번까지는 빠져도 감점이 없으니 괜찮다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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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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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대박이당! 하루만 공부해도 A+ 나오겠네 이러면! 고마워요 단니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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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수업 ‘인간관계의 심리학’은 조모임이 주가 되는 수업이지만 정작 학점은 기말고사에서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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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보고서의 편차는 기껏해야 1에서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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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 한 문제만 더 맞추어도 메꾸고도 남을 사소한 점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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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학기라 학점이 중요했던 우다연은 단니엘에게 격하게 반응했던 게 미안했는지 같이 사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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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해진 분위기 속에서 끝난 니엘의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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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구하는 일은 생각만큼 거창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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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허무할 정도로 쉬운 일이기에, 왜 지금까지 말을 못하고 있었을까 니엘이 토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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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메는 오늘 웬일로 빨리 왔어? 아직 수업 시작하기도 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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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있던 우다연이 양손으로 내 어깨를 짚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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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각 오후 2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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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분 가량 진행되는 교수의 수업이 끝나야만 조모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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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일찍 끝나서 한번 와봤어요. 청강은 자유라고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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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업은 그냥 핑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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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니엘에게 개인적으로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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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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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이 계속 꼬치꼬치 캐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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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기밀 정보라서 아무에게나 말해주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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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알겠어, 안 물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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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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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니엘은 동물 좋아하려나? 사자, 표범, 아니면 킹코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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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쭉한 6인용 책상이 빽빽하게 들어선 교실, 우리는 비어있던 가운데에 대충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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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는 단니엘이, 오른쪽에는 우다연이 노트북을 펴고 앉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막아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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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외세란 다른 대학생들의 수군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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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너 인기 정말 많다. 그냥 네가 앞에 나가서 수업해도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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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있다가 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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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한국대 입학해버리자. 넌 진짜 프리패스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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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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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이 나라의 교육과정에는 관심이 없어서 정말로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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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수업 교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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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좋지, 아니 완벽하지! 잘생기고, 목소리 좋으시고, 수업도 너무 재밌고 시험은 기말 한 번에 학점마저도 잘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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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중간고사가 없어요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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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래서 꿀강이라고 소문난 교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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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원래 세 번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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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두 번에 기말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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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렇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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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님이요. 아 그럼 대신 퀴즈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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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퀴즈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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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변별력 있는 평가가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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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을 다 함께 잘 받으면 되잖아. 꼭 누군가는 못 받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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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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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내 가치관이 통째로 흔들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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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천교수에게 세뇌라도 당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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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이어 앞문으로 중년의 훤칠한 교수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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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월요일인데도 다들 활기가 넘치네요.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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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거림이 멈추자 이번에는 따가운 시선들이 사방에서 쏘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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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된다. 그냥 밖에서 기다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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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두 번을 거쳐,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대학교 수업은 어떨까 궁금해서 참여한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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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이 통 자제라는 걸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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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를 의자에서 스르륵 앞으로 빼버리니 시야가 점차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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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조금만 더 움직이면 아예 머리가 책상보다 밑으로 내려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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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결국 교수와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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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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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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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짧은 감탄사를 내뱉자 학생들이 기다렸다는 듯 꺄르르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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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말은 더 가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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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한국대에서만 출몰한다는 전설의 포켓몬 노나메님 아닌가요! 현 총장님보다 유명하기로 소문난 분이 저희 수업을 선택해주시다니 엄청난 영광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다들 큰 박수 한 번씩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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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발 그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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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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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그리 즐거운지 옆에 단니엘도 숨이 넘어가도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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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난 책상 아래로 얼굴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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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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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니엘을 카리리의 사파리 월드? 아니 드림이었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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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드림 1기생의 후보로 점 찍어놓은 데는 이유가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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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마에스트로의 오랜 경력으로 다져진 애니송과 보컬로이드, 우타이테 문화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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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씹덕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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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보편화를 위해 만들어진 어플리케이션은 결국 리듬게임의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본 노래로 도배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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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와 영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게 잘하니까 가산점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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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메인 콘텐츠는 확보된 거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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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마에스트로에서 수년 전에 행적이 묘연해진 의문의 아마추어가 버튜버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초반 인기는 보장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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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제안만 할 뿐이고 나머지는 카리리와 단니엘이 알아서 협의해 볼 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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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는 카리리의 마음에 들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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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엘 언니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가 제일 즐겁다고 했잖아. 정확히 어떨 때 즐거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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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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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어머니에 의해 관성적으로 살아온 단니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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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있어 하는지, 여유가 없었기에 그런 것들을 고민해볼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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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잘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진짜 바이올린으로 최고의 연주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대중들 앞에서 환호받는 게 좋은 건지. 만약 후자라면 버튜버도 괜찮은 선택일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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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을 찍어 올린 것부터가 그녀는 이미 관종 기질이 충분하다는 걸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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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살아오면서 성격도 많이 내향적으로 변한 것 같은데 또 사람이라는 게 여유가 생기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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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녀가 버튜버에 도전해볼 생각이 있다면 나 또한 그녀가 폐소공포증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줄 거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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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실례되는 질문이긴 한데... 카리리 그분은 얼마나 버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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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5천은 버나? 자세히는 안 물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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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1년에 5천만 원이나? 한동안 뜸한 것 같더니 요즘 버튜버 시장이 다시 살아났나 보네. 잘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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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한 달에 5천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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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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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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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클래식 음악 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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