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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덜레스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항공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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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원 클래스로 가장 먼저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던 두 승객은 저녁 식사로 레드와인 소스를 곁들인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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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마지막 남은 고기 한 점을 포크로 찍어 접시에 남은 소스를 싹싹 묻혀 입으로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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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벌써 다 드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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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가 맛있네. 제주도에서 잡아온 거라 했었나? 한국여행이 정말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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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러 박사님. 저희는 여행을 하러 온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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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백금발의 여성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같이 동행한 대머리 남성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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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알지. 하지만 세피론 재단을 대표해서 가는 자리이니만큼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잘 숙지해야할 필요성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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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러 박사는 양복 가슴팍에 금으로 도금된 뱃지를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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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를 형상화한 로고, 위아래면과 한쪽 대각선이 굵은 선으로 나타나 마치 알파벳 ‘S’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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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퓰러 박사와 에밀리 마야코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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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세피론 재단에서 파견된 인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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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저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검증이라는 걸 잊지 말아주셨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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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개의 수학 난제에 대한 나메의 증명은 모두 ‘검증 불가’라는 결론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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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들의 말을 인용하자면 마치 잘 포장된 도로를 가다가 갑자기 거대한 바위에 막혀버렸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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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향이 정녕 맞는지 틀린지 알기도 전에 길이 중간에 막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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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일한 방법은 도로의 설계자에게 직접 따지러 가는 수밖에 없었고, 퓰러 박사와 에밀리는 나메가 있는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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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을 비롯하여 한국 문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심이 많은 퓰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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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고도는 구름보다도 높이 뜬 상공 1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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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 노나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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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마친 그가 인터넷에서 나메를 찾아보게 된 건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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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건 브이튜브 실시간 랭킹 10위에 든 화제의 영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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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nd Gayageum Rock Paganini (두리도 가야금 록 파가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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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가야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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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봐서는 영상의 정체를 도저히 추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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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구미호에 홀린 듯 영상을 재생시켰고, 거기에는 나메가 미친듯한 속주로 가야금을 뜯는 영상이 5분 내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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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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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평은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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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전부 보아도 지금 자신의 뇌는 이해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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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오마이갓... 근데 한국인들은 애완용 뱀도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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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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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이거 봐봐. 옆에서 뱀이 낼름거리면서 지켜보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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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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퓰러 박사의 말대로 나메의 몸집만한 거대한 구렁이가 기둥을 타고 슬금슬금 정자 위로 올라오더니, 갑자기 몸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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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한국 출장을 포기할까 생각했던 에밀리 마야코브스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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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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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을 보고 여기 섬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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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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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만나게 되면 너무 매몰차게 대해주지 마시고 반겨주세요. 다 훈장님이 좋아서 오신 분들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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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은 모두 집에 남겨두고, 나는 훈장과 함께 뒷동산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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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마루에게 방금 막 브이튜브 업로드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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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곤 훈장은 감태나무 지팡이를 땅에 짚으며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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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펼쳐진 바다를 둘러보면서 그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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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브렀어. 안 그러냐 나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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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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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하는 내가 너무 옛날 사람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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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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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고놈 참 솔직하기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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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가설이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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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사는 곳에는, 제자리에 멈춰있기 위해 계속 앞으로 달려야만 하는 기묘한 법칙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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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무한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발버둥쳐야지만 도태되지 않는다는 생물학적 이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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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러한 가설에만 따르면, 백봉곤 훈장은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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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은 100m 달리기가 아니에요. 원형 트랙처럼 뒤처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보니까 앞서있고. 또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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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레트로 열풍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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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에 청자켓이 패션테러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또 어느새 패션의 선두 자리를 먹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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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과 요즘 것을 나누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훈장님께서 진정으로 마공품을 알리고 싶은 거면, 적어도 섬에 틀어박혀 있을게 아니라 인터넷이든 뭐든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셨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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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걸 모를 리가 없는 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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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랜섬웨어 때문에 구매한 비트코인이겠지만 디지털 문화도 잘 알고 계시고, 안방에는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으며, 또 메디컬 캡슐까지 잘만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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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꽤 알아주시는 명장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숨어 지내게 된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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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는. 여기가 내 고향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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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마력발전소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통신도 안 되던 지역인데 그게 숨은 거나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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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교수가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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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곤 훈장은 나름 서울에서 알아주는 공방도 차렸었고 단골손님도 제법 많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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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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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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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훈장이 대뜸 내게 폰을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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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인지 고인인지 이거 가져가고 싶었던 거 아녀? 거기 가상화폐거래소 앱 들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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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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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 죽으면 가져가려고 했니? 호찬이가 시세 내려간다고 별 지랄염병을 떨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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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님이 가상화폐를 거론하니까 이보다 부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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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지갑에 접근하기 위한 비밀번호 창이 뜬 사이 그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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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 네 말이 맞다. 속세를 떠난 것도 전부 내 선택인 게지. 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치유 받지 않고는 창자가 끊어질 듯이 너무 아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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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많이 편찮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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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이 마음이 너무 아프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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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애통하듯 가슴을 팡팡 두드리는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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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에 수심이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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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잃은 남편은 홀아비, 남편 잃은 아내는 과부, 부모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하지만, 그럼 자식 잃은 부모를 일컫는 단어는 뭐라 하는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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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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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는 거야. 대신 참혹할 참(慘)에 근심할 척(慽)을 써서 ‘참척’이라는 말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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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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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비극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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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흐느끼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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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훈장의 눈은 이미 오래 전에 메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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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 말이냐? ‘baek221214lee2212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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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와 연도가 잇따라 나오는 비밀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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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알려준대로 타이핑을 하니까 그토록 백호찬이 염원하던 전자지갑의 안쪽이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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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도 12월. 무슨 의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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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찬은 처음 이걸 풀기 위해 자신의 생일도 넣어보고 부모님의 생신도 대입해보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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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해준 연도에는 2022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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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귀한 외동아들 이름이 백호준이여. 그리고 울 며늘아가 이름은 이나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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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찬 삼촌의 부모님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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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려. 그리고 22년 12월은 아이들의 기일이지.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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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의 전원을 끄고 그의 옆에 앉아 한참동안이나 파도가 치는 해안가를 응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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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확실하게도 1년 365일 변하지 않는,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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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곤 훈장의 시간은 2022년에 멈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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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찬이는 자기 낳아준 부모 얼굴도 모를 거야. 태어나자마자 애는 나한테 맡겨버리고 자기들은 중동으로 사람 죽이러 가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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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이면 백호찬도 겨우 세 살이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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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잃는 것도 하늘이 무너질 듯한 슬픔일 지언데,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리면 어떤 심정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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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곤 훈장이 속으로 삭히는 비통함을 나는 끝끝내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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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장사도 다 접고, 나 찾아오는 친구들 다 내치고, 섬으로, 고향으로 떠밀리듯 왔다. 그래도 호찬이만큼은 내가 잘 키워야하지 않겠냐. 호찬이가 나더러 뭐라 그러디? 별로 안 좋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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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호찬 삼촌은 할아버지가 싫으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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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지. 애가 어디 가서 부모 없다고 놀림 받으면 되겠나. 그래서 더욱 엄하게 키웠어. 이 놈이 아카데미에 가겠다는 고집까지는 꺾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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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부모님 두분 다 아카데미 출신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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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지십을 넘어선 문일지백이로구나 나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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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수에 찬 얼굴로, 훈장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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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카데미를 증오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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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개인주의고 한국은 공동체주의라고? 전혀 틀렸어. 아카데미하고 재단 놈들은, 겉만 자유주의고 개인주의지 하는 짓만 보면 사실 빨갱이들하고 다를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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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곤의 이가 빠득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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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명예로 치장하고선 아무것도 모르는 새파랗게 어린 애들을 꾀어서 험한 전장으로 내보내는 새끼들이 악마가 아니면 뭐더냐! 청춘의 들끓는 피를 이용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도록 명령하는 놈들이 악마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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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봉곤은 자식들의 목숨을 앗아간 재단을 증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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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죽을 때까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가치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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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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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 마도사들의 거룩한 희생은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누군가의 자식이자 형제이자 부모였을 이들은 모두 유가족들의 가슴 속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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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메야. 너도 위험한 일에는 엮이지도 말고 엮일 생각조차 말아라. 병호 그 놈도 참으로 불쌍한 아이야. 어쩌면 나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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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만 끔뻑이고 있자 백봉곤이 어깨를 탁 붙잡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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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비가 아무것도 안 말해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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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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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나 참내... 마음이 무뎌지기는 개뿔! 하나도 못 잊었구만. 그래 됐다. 정 궁금하면 병호, 아니 규진이라 했나? 그래 규진이한테 가서 물어봐라. 이제 내려가서 말썽꾸러기 놈들이랑 저녁 묵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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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석양이 우리 바로 옆의 섬인 비안도 아래로 모습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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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과 주황색 물감을 함께 풀어놓은, 넓게 펼쳐진 맑은 여름 하늘에서 잠자리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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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안 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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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 옆으로 감태나무 지팡이가 좌우로 흔들리며 나를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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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상심을 털어놓은 백봉곤 훈장은 아무래도 후련한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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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태양이 머리 끝까지 모습을 감추니 작은 숲 전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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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천교수를 떠올리자,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불편해져서 가슴을 부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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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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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보유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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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25 BTG(Bitcoin Gold): ₩193,76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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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는 세바스챤(반먹구렁이)을 함께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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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님. 잠깐만 이리로 와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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