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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평범한 문맹 시골소녀는 신의 부름을 받아 느닷없이 프랑스 왕국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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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단 2년 만에 파테전투와 오를레앙 전투에서 승리하며 백년전쟁의 전세를 180도 뒤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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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소년은 17세의 나이에 일가족을 모두 여의고 탁발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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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난세의 중국 대륙을 천하통일하여 황제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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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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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업적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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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처한 상황, 역사적 배경, 그리고 모든 요소를 고려해보았을 때, 그저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할만큼 이것들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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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니까 인간이 음식과 물 없이 마나만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아무리 낙관적으로 잡아도 1년이 한계입니다. 특히나 신진대사가 활발한 영유아들은 실제 대사율이 성장기의 청소년들보다도 높기 때문에... 최적의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고 쳐도 7년은 너무 어불성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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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생 마법이나 오러라고는 배워보지도 못한 잔 다르크가 화형당했을 당시, 꼬박 하루나 생존해있다는 기록처럼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이체질로는 설명할 수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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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인 관점에서는 회의적인 의견을 드릴 수 밖에 없네요. 사실 특이체질이라는 기록도 과학적으로 전혀 입증된 바가 없는 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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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자는 잔 다르크, 후자는 홍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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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름을 대면 그제서야 역사학자들은 개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뼈에 살을 붙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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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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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뼈는, 그 핵심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미지수로 남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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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게 가능해?’라며 반문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가지 대답만이 메아리처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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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일어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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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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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된 기록마저 의심해버리면 역사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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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확인하고픈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기록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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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전한 마법이 범시전 마법이라는 잔 다르크의 역사는 참이었으며, 수계마도만을 다루었던 이순신이 입에서 번개를 내뿜었다는 낭설은 거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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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전자매체의 발달과 정보화 시대의 도래로 완전교차검증에 의하여 역사기록의 조작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21세기에, 터무니없는 낭설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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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아이의 마법학 지식의 수준이 대학 교수나 현직 종군마도사와도 비견될 수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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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아이의 수학적 지식이 현대 최고의 석학들과 동일한 위치에 서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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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녀의 출생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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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위인들의 스토리? 그보다 더한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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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알에서 부화한 왕이나, 태어나자마자 뱀을 목 졸라 죽인 영웅과도 비견될 신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거짓 민담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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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호 교수님 이렇게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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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뉴스룸에서 초청한 예명대학 순환기내과 교수와의 인터뷰가 빠르게 끝나고 아나운서가 다시 화면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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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은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이 오전 11시에 10분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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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와 가짜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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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언론들마저 언급을 아끼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대응이 이례적으로 빠른 것은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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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브리핑에는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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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사회 안전망을 재검토하고,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은 확실하게 그리고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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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대변인은 명확한 사실관계를 검증하여 공포하거나 정부의 입장을 드러내기는커녕, 테러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말만 연이어 되풀이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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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나메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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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저도 테러에 관하여는 대통령의 공식 의견이 아니라는 말을 끝에 덧붙이며 큰 공분을 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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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 대통령의 의견이지 도대체 무슨 개소리임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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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망언 탄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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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ㅂ 간 보는 거 실화냐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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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질이 맞냐고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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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극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언제나처럼 신중한 스탠스를 취한 건데 억까가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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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브이튜브 영상 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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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듣던 것보다 더 어리네 ㅁ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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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은 그저 전초전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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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푸르기스의 생존자가 나왔다는 뉴스는 현재 대한민국의 유구한 전통 아래에서 7년째 끊임없이 이어진 뻔하디뻔한 사기꾼들의 레퍼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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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혼잡한 출근길로 향하는 직장인들도, 졸린 눈을 비비고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도 뉴스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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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학생과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시작되는 낮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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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브이튜브 채널에 특별할 것 없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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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터박스) Total MVP Interview: NoName | 2051 Season 1 따갚대&몰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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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전 매체가 앞다투어 특종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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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제가 일곱 살이라는 사실은 다들 머리에서 지워주시고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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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나메의 인터뷰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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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가는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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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몇 날 며칠 기사 팔아먹다가 끝에는 주작이라고 할 게 뻔한데요 뭐. 이제는 하다하다 애까지 팔아먹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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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의 등장과 그에 맞물린 가짜뉴스의 대량살포로 언론의 신뢰가 땅으로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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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VR과 AI라는 최첨단 현대 기술과 함께라면 일반인들이 이를 검토하는 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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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실에 대항하기 위해 주요 대형언론들은 ‘신뢰성’의 가치를 제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주요 사건이라고 판단되기만 하면 마치 하이에나처럼 힘을 합쳐 공조수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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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이 조작되거나 배경이 가상현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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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대법원 특수감정인, 그리고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 자문위원의 공식 의견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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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뭐시여? 진짜라고? 전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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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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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까진 부장이 젓가락을 내리치고 탄성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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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뉴스에서 나온 기사는 곧바로 다른 언론에도 전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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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의 ‘기레기’라는 멸칭을 이 기회에 전부 탈피해버리겠다는 소명이라도 가졌는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새로운 정보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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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후자로 밝혀진다면 진실을 숨긴 이유와 그 책임자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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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강력범죄수사대 관계자에 따르면 작년 6월, 기존에 파악되지 않았던 MEIMEI-2X 캡슐을 발견한 바가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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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구급대원은 시신 한 구로 기록되었던 사실과 달리, 당시 캡슐은 총 두 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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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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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메는 곧바로 다른 병원으로 배치되었기에 구급대원들의 증언만으로는 행적을 찾아내기 어려웠지만, 기자들의 집요한 추궁 끝에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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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희 학교 아이였던 것 같아요...! 노나메,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까먹을 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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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별 초등학교에서 찾아낸 그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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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역으로 추적하여 그녀가 ‘메를린 보육원’ 소속이었고, 그 전에는 아산 OO 병원에 있었다는 사실까지 도달하는 데는 반나절의 반조차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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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심심해서 아무거나 한번 물어봤더니 제일로 먹음직스러운 사슴의 목이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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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한 기자의 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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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중들이 가장 물어뜯기 좋아하는 사슴고기는 단언컨대 정부 말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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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국뽕티비 최초 패배 위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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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0년간 모든 수학자들은 노네임 하나만도 못하다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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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모든 수학자들은 노네임 하나만도 못하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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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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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발해라 이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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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에 난제 증명? 이 나이라면 난제에 접근했다는 거 자체만으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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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기사들 너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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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도 진짜야? ㅇㅇ 진짜임. 설마 이것도 진짜야? ㅇㅇ 진짜임. 계속 이 레퍼토리 중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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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세상은 각양각색의 의견이 모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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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의 천재성에 주목하여 또 한번 세계를 뒤흔들 인물의 등장에 환호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녀가 살아온 비극적인 배경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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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메 인생사 듣고 울어버렸음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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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발푸르기스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빌긴 했는데 이런 식으로 비참하게 나타날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어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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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캡슐에 7년이나 갇혀있을 수 있는 거지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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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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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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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대부분을 가상현실에서 살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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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중국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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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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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탐지도 안 되는 ㅈ같은 캡슐 안 만들었으면 이런 사단도 안 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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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 엄마는 죽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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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아 제발 말하지 말라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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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생방으로 듣고 진심으로 울컥했다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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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기자들이 숟가락으로 떠먹여주고 있구만 정부는 대체 뭐하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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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오전에 브리핑 이후로 아무 말 없고 좀 답답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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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발푸르기스는 다 잊고 어디 시골에서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설마 계속 갇혀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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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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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있는 게 기적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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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 지금 다들 건강이 엄청 걱정된다고 한 입 모아 말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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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네임이 살아있는 게 기적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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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다이브’ 기술과 ‘기체흡입형 마나포션’은 지난 십몇 년간 UN에서 그 위험성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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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다이브 기술이 전 세계에서 7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금지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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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이하의 어린이가 하루 8시간 이상 장시간 사용하였을 때 뇌 신경세포의 변형 및 파괴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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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파가 통제되지 않은 채로 급격하게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뇌전증(간질)의 원인이 된다고 함. 물론 캡슐회사는 절대 인정 안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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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체흡입형 마나포션’ 이건 더 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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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3대 욕구 중 식욕을 눌러내고 1년씩이나 포션만 마셔댈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가끔 인도의 미치광이 수도승들이 마나포션만 섭취하고 금식을 하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레스타카야 증후군에 걸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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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ㅈㄴ 무서운 병이냐면 인간의 오러하트는 환경에 적응하려는 성질이 있는데 고농도 마나환경에는 쉽게 적응하지만 그 역은 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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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1년 내내 마나를 해독할 시간도 안 주고 계속 쏟아부으면 오러하트는 이걸 정상환경이라고 생각하고 도리어 현실을 이상환경이라고 간주해서 계속 경고신호를 내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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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온몸의 면역체계가 다 망가져버려서 백혈병이든 뭐든 걸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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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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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노네임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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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그걸 알면 내가 방구석에 안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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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구석 의사였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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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엄연히 간호대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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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로 결론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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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노네임 몸 씹창났을 확률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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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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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캡슐 ㅈㄴ 위험한 거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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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ㄴ 7살만 넘어도 사실 해는 없긴 해, 아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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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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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직접 안 만나봐서 사회성이 떨어짐, 근데 너네들한테는 더 떨어질 사회성이 있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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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발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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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누구라도 노나메 만나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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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돌아와줘 노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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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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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그녀의 비현실적인 능력과 행적에 대한 설명을 듣기를 바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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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대에 부응이라도 한 듯, 늦은 오후에 청와대 대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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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미사여구를 녹여내어 잘 짜여진 대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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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 전 대통령님께서 서울삼성병원에 들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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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무책임한 대변인은 ‘왜’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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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의문은 충분히 추론 가능한 종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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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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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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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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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물에 색종이를 입혀놓듯 형형색색의 빛깔이 눈을 매섭게 찔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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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 언니... 냉장고 문쪽 아래에... 빨리 약 좀... 영어로 포션이라고 써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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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조금만 기다려 당장 가져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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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에는 본래 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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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의 오러하트는 때때로 그것을 가시광선의 형태로 착각하여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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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지금 이걸 볼 수 있다는 뜻은, 애써 갈기갈기 찢어놓은 오러하트가 다시 봉합되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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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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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과 관련된 부위일 테니까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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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집에 쳐들어온 괴한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한 3서클 환각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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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가(假)시전한 나의 고유마도 ‘메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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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가짜로 시전한 마법임에도 오러하트가 알아서 반응할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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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마나를 섭취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탐욕스러운 기관은, 점점 더 내 심장을 세게 옥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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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이 늦춰지는 고통은 숨을 쉬지 못하는 느낌과는 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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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메! 나메야 흐아아앙 어떡해! 약... 약!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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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끅... 다... 입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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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의 손가락과 함께 큼지막한 다섯 개의 알약들이 혀 위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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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크기가 크기인지라 내 작은 목구멍으로는 넘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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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한 손으로 턱을 부여잡고 알약들을 어금니 깊숙이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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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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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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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이 쓴 것도 아니고 쓰라릴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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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찔끔 나오려고 할 때 윤슬이 다시 부엌으로 달려가서 물을 대령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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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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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가 마비될 것만 같은 감각, 그래도 심장이 아픈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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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윤슬이 대성통곡을 하며 끄윽끄윽 서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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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놀랐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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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며 계속 안심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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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내가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면서 창백해진 내 인상을 설명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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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얼마 안가 우리 집에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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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읏... 난 진짜 너 잘못되는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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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 다시 울먹이며 해명하였고, 나는 한숨을 픽 쉬며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을 천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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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천교수님. 저 잠깐 입원할까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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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너머의 목소리만 들어도 그의 표정이 대충 예상이 가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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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하기엔 조금 뭐하지만 심장은 아픈데 마음은 더없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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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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