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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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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엔리는 이브에게서 들은 한 마디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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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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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갑자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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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맘때쯤 열리잖아. 뭐가 갑자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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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평화롭게 농땡이나 치려고 했던 엔리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 그도 그럴 것이, 아가씨가 굳이 자신을 불러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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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해. 너랑 루카, 둘 데려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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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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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 있어? 목소리가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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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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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 있으면 말해. 사교회를 안 가도 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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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엔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귀찮은 사교회에 안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그게 뭔지 들어나 볼 법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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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왕실에 쳐들어가 선전포고해. 그리고 다 때려부수렴. 그럼 사교회고 뭐고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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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 그런 짓 했다간 전쟁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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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교회가 가기 싫으면 전쟁이라도 일으키렴. 그런 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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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사교회가 귀찮다고 전쟁을 일으킬 미치광이는 없었다. 사교회가 귀찮은 일이라면 전쟁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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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목욕이나 휴식은 사치였으며, 제아무리 엔리라고 할 지라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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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이라면 모를까 귀찮다는 이유로 선택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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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아가씨. 언제는 인맥 같은 건 쓰잘데기 없다고 안 만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카데미도 인맥 필요 없다고 안 가시는 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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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친목질 하지 않는 거랑 아예 칩거하는 거랑 같니? 전자는 고고한 늑대지만 후자는 왕따야. 집단에게 따돌림 당하면 공작이고 뭐고 골로 가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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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아가씨. 고고한 늑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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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질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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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브가 악역영애다운 폭력성을 드러내고 나서야 집무실을 나선 엔리는 사교회 파티에 입을 옷가지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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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과 부단장이 동시에 영지를 비워도 좋은 건가 싶었지만, 그건 엔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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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가 말하기를 사교회는 전쟁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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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 빈손으로 나가는 멍청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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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무장을 들고 나가는 것이 전쟁의 드레스 코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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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이 놈의 나라는 뭐만 했다 하면 파티를 여네……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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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는 전생의 역사에서 보았던 여러 불안한 요소들을 떠올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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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나 마력 열차 따위를 보고 있으면 산업 혁명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혁명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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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 세상에 붉은 낫과 망치가 대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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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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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있는 놈들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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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기 짝이 없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리지만.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인지라. 사교회는 겉으로는 귀족들의 친목회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말 없는 전쟁터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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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염탐하고, 누가 누구와 사이가 좋은 지 파악하고, 영지의 핵심정보를 빼내고, 자식을 이용해 서로 동맹을 맺고…… 문자 그대로 창칼만 오가지 않는 냉전 그 자체의 장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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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들으면 누가 좋아서 이 전쟁터에 끼겠느냐 싶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칼날이 무섭다고 칼을 갈지 않으면 전쟁에 대비할 수 없듯이. 사교회라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곧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름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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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다섯 기둥 중 하나! 클라우디아 공작과 그 영애께서 입장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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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는 공작과 함께 사교회장에 발을 디뎠다. 그 곁에는 호위기사인 루카와 엔리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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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이브를 보게 된 이들은 아주 잘 되었다는 듯 매섭게 눈동자를 굴렸다. 그녀가 단순히 하급 귀족 나부랭이였더라면 그만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공작 영애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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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떠받치는 다섯 개의 기둥 중 하나. 심지어 어린 나이에 사실상 공작을 실각시키고 그 권력을 차지했다는 소문이 도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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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친해지지 않으면 치명적이게 될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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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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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일행이 안으로 드나들기가 무섭게, 금발을 찰랑거리는 장발의 남성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공작을 상대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올 수 있는 건 이 나라에서 오직 한 부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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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우렐리아 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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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자 얼굴 보기가 이토록 힘들어서야 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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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여의치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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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영애는 그리 말하며 얼굴에 웃음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장착했다. 그 아름다운 미소에 속아 넘어간 귀족이 대체 얼마나 될까. 아우렐리아는 쓴웃음을 내지으며 콧바람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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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각하도 오랜만입니다. 사위로서 자주 찾아뵀어야 하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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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전하. 저희야말로 먼저 인사드리지 못 해 죄송할 따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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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아뇨, 저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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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기 그지 없는 귀족들의 허례허식이 시작되었음을 본 엔리는 표정을 살짝 굳히며 루카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곧장 반응한 루카가 눈동자만 슬쩍 굴려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엔리는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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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 올 테니까 여기 잘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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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니, 단장.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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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교대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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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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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나누는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몸을 움직인 엔리는 자연스럽게 파티 음식이 놓인 장소로 향했다. 그릇과 집게를 들고 음식을 담은 뒤, 그걸 먹을 포크 한 자루를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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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 같은 위험한 물건이 여기 있는 걸 보면 이 사교회의 보안 의식도 바닥을 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데…… 사교회 벽면에 붙여놓은 기사들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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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음식을 음미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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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입에 맞으시나요? 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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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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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는 자신의 은폐가 뚫렸음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뚫리는 일 자체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의 은폐가 뭐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건 아니니까. 기척을 죽이고 시야의 사각으로 빠져나가는 기술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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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처음부터 자신을 집요하게 노리는 이가 있다면 저를 찾아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뜻이다. 다만 그 상대가 자신을 그렇게 지켜볼 필요가 없는 이라서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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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샛별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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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의차리지 않으셔도 괜찮답니다? 저희 사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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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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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노아 그라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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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아 왕국의 2왕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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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하나뿐인 공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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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제게 말을 걺으로서 그녀를 주시하던 시선이 제게로까지 옮겨 붙는다. 맘 편하게 식사는 못 하겠군. 그리 생각한 엔리는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입가를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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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들었답니다. 이번에도 엔리 경께서 대단한 공을 세우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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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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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었나요? 로엔그람 경으로부터 그렇게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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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잘못된 정보입니다. 그 아저씨. 공주님께 헛바람을 넣는 걸 보니 위험한 사람이군요. 징계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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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 로엔그람 경을 그렇게 얘기하는 건 아마 엔리 경밖에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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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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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는 속으로 로엔그람에 대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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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전에서 손에 넣을 건 죄다 넣었기에 공을 양보했건만. 그걸 굳이 다 갖다 일러바쳤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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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다음 번에 또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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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뭐. 기회가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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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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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그로란 어그로는 죄다 이쪽으로 옮겨놓고 스리슬쩍 빠져나가는 엘레노아를 지켜보던 엔리는 조심스레 다시 접시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왕족과 친분이 있어 보이는 존재를 귀족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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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달려든 귀족들이 인사 한 번 나눠보고자 말을 걸어대는 가운데, 그들을 일일이 상대하다간 끝이 없으리라 생각한 엔리는 적당히 말을 끊고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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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인기쟁이시네요? 엔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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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누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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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또 다시 붙잡힌 엔리는 욕지거리 나오려던 입을 틀어막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이 정말로 로맨스판타지 소설 속이라면 그곳의 주인공일 것임이 확실시되는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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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 피에시타와 3왕자 카시우스가 그곳에 있었다. 엔리는 아까 전 엘레노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예법을 갖춰 인사를 올린 뒤 두 사람을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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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코델리아 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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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랜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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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는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예전과 달리 카시우스는 그 웃음을 보고 질투를 보내지 않았다. 코델리아라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익숙해졌을 뿐더러, 눈앞에 있는 엔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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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엔리가 코델리아에게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단 점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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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이제 아예 달라붙어 다니시는 군요. 이제 공주님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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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아니예요! 저랑 전하는 그런 관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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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짓굿게 농담을 던지던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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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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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물의 울음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져나가는 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파티를 즐기던 귀족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치는 가운데, 창가와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도 마물이 덮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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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 사람의 몸을 녹여버리고 그 어떤 타격과 참격도 통하지 않는 강력한 몬스터. 오직 몸뚱아리의 중심에 숨겨진 코어를 베어야만 목숨을 잃는 강력한 몬스터가 코델리아를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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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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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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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에게 습격당하는 코델리아의 몸 위를 카시우스가 덮치듯 감싸안는 가운데, 두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느껴지지 않는 고통에 의아하다는 듯 조심스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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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그곳엔 포크 한 자루로 핵을 정확하게 찔러 슬라임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엔리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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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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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네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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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 일인지…… 잠깐 보고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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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와 포크를 두 사람에게 넘겨준 엔리는 곧장 무기를 찾아 떠났다. 그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코델리아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껌뻑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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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 무슨 일 있나? 어디 다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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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전하.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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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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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는 이것이 이벤트였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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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몬스터의 습격, 이를 구해주는 왕자님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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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빛 마법의 각성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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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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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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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양손을 내려다보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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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손에서는 빛 한 줄기 터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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