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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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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회요?”

영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엔리는 이브에게서 들은 한 마디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사교회.”

“이렇게 갑자기요?”

“원래 이맘때쯤 열리잖아. 뭐가 갑자기야?”

오늘도 평화롭게 농땡이나 치려고 했던 엔리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 그도 그럴 것이, 아가씨가 굳이 자신을 불러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준비해. 너랑 루카, 둘 데려갈 거니까.”

“……예엡.”

“불만 있어? 목소리가 왜 그래?”

“아뇨, 아무것도.”

“불만 있으면 말해. 사교회를 안 가도 되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까.”

그 말에 엔리는 귀를 쫑긋 세웠다. 귀찮은 사교회에 안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니? 그게 뭔지 들어나 볼 법 하지 않은가.

“당장 왕실에 쳐들어가 선전포고해. 그리고 다 때려부수렴. 그럼 사교회고 뭐고 없을 테니까.”

“엑…… 그런 짓 했다간 전쟁이잖아요.”

“그래. 사교회가 가기 싫으면 전쟁이라도 일으키렴. 그런 말이란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교회가 귀찮다고 전쟁을 일으킬 미치광이는 없었다. 사교회가 귀찮은 일이라면 전쟁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목욕이나 휴식은 사치였으며, 제아무리 엔리라고 할 지라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대업.

명령이라면 모를까 귀찮다는 이유로 선택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아가씨. 언제는 인맥 같은 건 쓰잘데기 없다고 안 만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카데미도 인맥 필요 없다고 안 가시는 분이?”

“굳이 친목질 하지 않는 거랑 아예 칩거하는 거랑 같니? 전자는 고고한 늑대지만 후자는 왕따야. 집단에게 따돌림 당하면 공작이고 뭐고 골로 가는 거란다.”

“오- 아가씨. 고고한 늑대십니까?”

“……뒤질래 진짜?”

결국 이브가 악역영애다운 폭력성을 드러내고 나서야 집무실을 나선 엔리는 사교회 파티에 입을 옷가지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사단장과 부단장이 동시에 영지를 비워도 좋은 건가 싶었지만, 그건 엔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이브가 말하기를 사교회는 전쟁터였으니까.

전쟁터에 빈손으로 나가는 멍청이는 없다.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은 무장을 들고 나가는 것이 전쟁의 드레스 코드였다.

“그보다 이 놈의 나라는 뭐만 했다 하면 파티를 여네……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닌가.”

엔리는 전생의 역사에서 보았던 여러 불안한 요소들을 떠올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총기나 마력 열차 따위를 보고 있으면 산업 혁명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혁명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부디 이 세상에 붉은 낫과 망치가 대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교회.

문자 그대로 있는 놈들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자리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리지만. 단순한 것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인지라. 사교회는 겉으로는 귀족들의 친목회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말 없는 전쟁터로 변모했다.

서로를 염탐하고, 누가 누구와 사이가 좋은 지 파악하고, 영지의 핵심정보를 빼내고, 자식을 이용해 서로 동맹을 맺고…… 문자 그대로 창칼만 오가지 않는 냉전 그 자체의 장소가 되었다.

이것만 들으면 누가 좋아서 이 전쟁터에 끼겠느냐 싶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칼날이 무섭다고 칼을 갈지 않으면 전쟁에 대비할 수 없듯이. 사교회라는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곧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름길이었다.

“─왕국의 다섯 기둥 중 하나! 클라우디아 공작과 그 영애께서 입장하십니다!”

이브는 공작과 함께 사교회장에 발을 디뎠다. 그 곁에는 호위기사인 루카와 엔리가 함께했다.

평소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이브를 보게 된 이들은 아주 잘 되었다는 듯 매섭게 눈동자를 굴렸다. 그녀가 단순히 하급 귀족 나부랭이였더라면 그만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공작 영애 아니던가?

이 나라를 떠받치는 다섯 개의 기둥 중 하나. 심지어 어린 나이에 사실상 공작을 실각시키고 그 권력을 차지했다는 소문이 도는 존재.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친해지지 않으면 치명적이게 될 여자였다.

“─이게 누구야.”

공작 일행이 안으로 드나들기가 무섭게, 금발을 찰랑거리는 장발의 남성이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공작을 상대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다가올 수 있는 건 이 나라에서 오직 한 부류뿐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우렐리아 전하.”

“약혼자 얼굴 보기가 이토록 힘들어서야 쓰나.”

“사정이 여의치 못 했습니다.”

이브 영애는 그리 말하며 얼굴에 웃음으로 만들어진 가면을 장착했다. 그 아름다운 미소에 속아 넘어간 귀족이 대체 얼마나 될까. 아우렐리아는 쓴웃음을 내지으며 콧바람을 내뱉었다.

“공작 각하도 오랜만입니다. 사위로서 자주 찾아뵀어야 하는데 말이죠.”

“……아닙니다. 전하. 저희야말로 먼저 인사드리지 못 해 죄송할 따름이지요.”

“아뇨아뇨, 저야말로─.”

귀찮기 그지 없는 귀족들의 허례허식이 시작되었음을 본 엔리는 표정을 살짝 굳히며 루카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곧장 반응한 루카가 눈동자만 슬쩍 굴려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엔리는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밥먹고 올 테니까 여기 잘 지켜.

‘예? 아니, 단장. 잠…….

‘조금 있다가 교대해줄게.

슬쩍.

이야기 나누는 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몸을 움직인 엔리는 자연스럽게 파티 음식이 놓인 장소로 향했다. 그릇과 집게를 들고 음식을 담은 뒤, 그걸 먹을 포크 한 자루를 챙겼다.

포크 같은 위험한 물건이 여기 있는 걸 보면 이 사교회의 보안 의식도 바닥을 긴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로도 충분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데…… 사교회 벽면에 붙여놓은 기사들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리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며 음식을 음미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식사는 입에 맞으시나요? 기사님.”

“……?”

엔리는 자신의 은폐가 뚫렸음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뚫리는 일 자체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의 은폐가 뭐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건 아니니까. 기척을 죽이고 시야의 사각으로 빠져나가는 기술일 뿐이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신을 집요하게 노리는 이가 있다면 저를 찾아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란 뜻이다. 다만 그 상대가 자신을 그렇게 지켜볼 필요가 없는 이라서 문제였지.

“왕국의 샛별을 뵙습니다.”

“너무 예의차리지 않으셔도 괜찮답니다? 저희 사이잖아요?”

“그럼 그럴까요?”

엘레노아 그라시아.

그라시아 왕국의 2왕녀.

왕국의 하나뿐인 공주였다.

그녀가 제게 말을 걺으로서 그녀를 주시하던 시선이 제게로까지 옮겨 붙는다. 맘 편하게 식사는 못 하겠군. 그리 생각한 엔리는 접시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입가를 닦아냈다.

“소식은 들었답니다. 이번에도 엔리 경께서 대단한 공을 세우셨다고.”

“예? 아닌데요.”

“아니었나요? 로엔그람 경으로부터 그렇게 들었는데…….”

“완전히 잘못된 정보입니다. 그 아저씨. 공주님께 헛바람을 넣는 걸 보니 위험한 사람이군요. 징계하시죠?”

“아하하-! 로엔그람 경을 그렇게 얘기하는 건 아마 엔리 경밖에 없을 거예요.”

망할.

엔리는 속으로 로엔그람에 대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번 작전에서 손에 넣을 건 죄다 넣었기에 공을 양보했건만. 그걸 굳이 다 갖다 일러바쳤단 말이지.

“아무튼, 다음 번에 또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요.”

“……예, 뭐. 기회가 있으면.”

“이만 실례.”

어그로란 어그로는 죄다 이쪽으로 옮겨놓고 스리슬쩍 빠져나가는 엘레노아를 지켜보던 엔리는 조심스레 다시 접시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왕족과 친분이 있어 보이는 존재를 귀족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달려든 귀족들이 인사 한 번 나눠보고자 말을 걸어대는 가운데, 그들을 일일이 상대하다간 끝이 없으리라 생각한 엔리는 적당히 말을 끊고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완전 인기쟁이시네요? 엔리 경.”

“또 누구…… 아.”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또 다시 붙잡힌 엔리는 욕지거리 나오려던 입을 틀어막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이 정말로 로맨스판타지 소설 속이라면 그곳의 주인공일 것임이 확실시되는 상대.

코델리아 피에시타와 3왕자 카시우스가 그곳에 있었다. 엔리는 아까 전 엘레노아에게 그랬던 것처럼 예법을 갖춰 인사를 올린 뒤 두 사람을 마주했다.

“오랜만입니다. 코델리아 영애.”

“네! 오랜만이에요!”

코델리아는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예전과 달리 카시우스는 그 웃음을 보고 질투를 보내지 않았다. 코델리아라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익숙해졌을 뿐더러, 눈앞에 있는 엔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어렴풋이 깨달은 것이 컸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엔리가 코델리아에게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단 점도 한몫했다.

“두 분은 이제 아예 달라붙어 다니시는 군요. 이제 공주님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네!? 아, 아니예요! 저랑 전하는 그런 관계가…….”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짓굿게 농담을 던지던 그때였다.

-키야아아아악!

마물의 울음소리와 함께 유리창이 깨져나가는 소리가 가득 울려퍼졌다. 파티를 즐기던 귀족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치는 가운데, 창가와 가까이 있던 그들에게도 마물이 덮쳐왔다.

슬라임. 사람의 몸을 녹여버리고 그 어떤 타격과 참격도 통하지 않는 강력한 몬스터. 오직 몸뚱아리의 중심에 숨겨진 코어를 베어야만 목숨을 잃는 강력한 몬스터가 코델리아를 향해 뛰어들었다.

“꺄아아아악-!?”

“코델리아!”

몬스터에게 습격당하는 코델리아의 몸 위를 카시우스가 덮치듯 감싸안는 가운데, 두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느껴지지 않는 고통에 의아하다는 듯 조심스레 눈을 떴다.

눈을 뜬 그곳엔 포크 한 자루로 핵을 정확하게 찔러 슬라임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엔리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네에에…….”

“이게 뭔 일인지…… 잠깐 보고 오겠습니다.”

접시와 포크를 두 사람에게 넘겨준 엔리는 곧장 무기를 찾아 떠났다. 그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코델리아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껌뻑였다.

“코델리아? 무슨 일 있나? 어디 다친 거야?”

“아, 아뇨. 전하. 괜찮아요…….”

뒤늦게.

코델리아는 이것이 이벤트였음을 깨달았다.

갑작스런 몬스터의 습격, 이를 구해주는 왕자님의 부상.

그리고 그런 부상을 치료할 수 있는 빛 마법의 각성 이벤트…….

그러나.

‘……어, 어쩌지.

아무리 양손을 내려다보아도.

그녀의 손에서는 빛 한 줄기 터져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