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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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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거고.
이건 이거.
엔리는 갈빗대를 하나 집어들고서 물어뜯었다. 주변 생도들이 숫제 짐승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으나 개의치 않았다. 달짝찌근한 양념이 입 안 가득 터져나오는 이 순간에는.
‘……맛있네.
십여년 만에 다시금 접하는 한식은 엔리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추억을 향수와 함께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공작 가문의 기사로서 부족함 없이 먹고 자랐음에도 그러했다.
하기야 판타지 세계 음식이 얼마나 대단하건 치킨에 콜라 한 잔이 땡기는 걸 막을 수는 없었지. 이건 그 욕구를 얼마간 채워주었다.
잠시 후, 도시락을 텅텅 비운 엔리는 아쉽다는 듯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면서 요기를 마무리했다. 그 모습을 본 코델리아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먹는 방법을 아시네요!? 다른 사람들은 포크로 깨작깨작…… 아니, 조신스럽게 드시던데!”
“길바닥 스트릿 출신이라 뭐든 잘 주워먹습니다.”
“길바닥…? 아, 혹시 평민 출신이시라는 건가요?”
“예, 천민 출신이지요.”
코델리아는 그리 물으며 손수건을 건넸다. 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수건을 건네받아 손가락에 남은 타액과 양념을 닦아냈다. 이런 고급스러운 손수건을 휴지 대용으로 쓰는 게 마음에 퍽 걸리긴 했지만 뭐. 본인이 주는 거니까.
그러나 주변에 선 남자 생도들은 그 귀한 손수건으로 양념이나 닦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매서운 눈빛을 쏘아붙이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만일 제가 아무런 힘 없는 평민이거나 빽 없는 기사였더라면 겁 먹고 벌벌 떨 정도로 매서운 시선이었다.
“뭘 봅니까?”
그러나 엔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선을 마주보았다. 개중에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섞여 있었는데, 엔리는 이 녀석들을 대체 어디서 본 건지 떠올리려 애써 머리를 굴렸다. 한참동안 머리를 굴려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
“잘 먹었습니다. 답례라도 드리고 싶은데 제가 마땅히 드릴 게 없어서.”
“아, 아뇨! 괜찮아요!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예요!”
“정말입니까? 그렇군요. 그럼 평소 동경하던 기사를 향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리 중얼거리던 엔리는 뒤늦게 저 징그러운 남자 생도들의 얼굴을 어디에서 보았는지를 떠올렸다. 한 놈은 자신에게 끈질기게 집착하던 테오도르 기사단장을, 또 한 명은 왕좌 위에서 뒤룩뒤룩 녹아내린 국왕을 닮아 있었다.
다른 한 명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저 둘 사이에 끼어 있다는 건 그 또한 보통 귀족은 아니란 뜻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 아가씨께서 이 여자를 창녀니 뭐니 불러댔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사단장의 아들이나 왕자를 꼬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하기야, 저 가슴은 못 이기지…….
팔팔한 십대 청춘의 육신으로 저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아무리 귀족이라고 할 지라도 그렇다. 하물며 그녀는 십대의 본능을 자극하는 몸매에 더해 이 세상에선 본 적도 없는 문물로 상대를 매혹하지 않는가?
귀족이건 왕족이건 함락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그러나.
엔리는 아니었다.
“때마침 잘 됐군요.”
“네? 꺄앗-!?”
“상으로 벤치 이용권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따뜻하게 뎁혀 놓으십시오.”
“네, 네에? 그게 무슨-.”
제 여자에게 손을 대자 날카로운 살기가 마구 날아든다. 엔리는 그들이 보내는 시선을 가볍게 무시한 뒤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정지해 있던 몸이 순식간에 최고 속도로 내달린다. 기사의 육신이 뿜어내는 각력은 말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라서, 엔리의 몸은 앗- 하는 순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엔리가 사라지자, 뒤늦게 분을 싹히고 있던 이들이 코델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코델리아 양! 괜찮으십니까!?”
“레이디의 몸을 함부로 만지다니…… 저 녀석.”
“하여간 칼잡이란 것들은. 죄다 매너가 없군.”
차례대로 기사단장의 아들, 3왕자, 마탑주의 제자가 내뱉은 말이었다.
벤치에 앉아 그들을 올려다보게 된 코델리아는 하하- 어색한 웃음을 내뱉으며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저런 놈, 돌아가면 바로 작위를 박탈하도록 아버님께 알려야겠군.”
3왕자가 말했다. 코델리아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다.
“아, 아뇨! 고작 이런 일로 박탈이라뇨…… 저는 정말 괜찮아요!”
“그렇지만…….”
“정말이래도요! 만일 그런 짓을 하신다면 저는 앞으로 전하를 싫어하게 될 거예요!”
내가 너를 싫어하겠다. 순수하다면 순수하고 오만방자하다면 오만방자한 그 말이 3왕자의 마음을 꿰뚫었다. 사실, 이미 어장에 붙잡힌 물고기는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말에 껌뻑 죽을 수밖에 없긴 했다.
그렇게 한 차례 흥분을 가라앉힌 코델리아는 방금 전 모습을 감추었던 엔리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기사는.”
“코델리아 양?”
“기사는, 전부 방금 전처럼 달릴 수 있나요?”
그건 순수한 질문이었다. 코델리아는 마법학부의 학생이었으므로 기사들의 움직임에 대해선 잘 몰랐다. 마찬가지로 정확하게는 모르는 3왕자와 마탑주 제자의 시선이 유일한 기사학부인 크리스토퍼를 향했다.
제게 몰려드는 시선에 잠시 침음성을 흘리던 크리스토퍼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방금 전 움직임. 고작 한 번의 도움닫기로 전속력을 낼 수 있는 건 제아무리 기사라 할 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제 아버지라 할 지라도…….
그 사실을 깨달은 크리스토퍼는 이 자리에 있던 기사의 실력이 심상치 않음에 놀랐다. 과연 공작의 대리로 모습을 드러낼 정도는 되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기사단장급은 되어야 하겠지요.”
“과연! 그럼 대단하신 기사님이 맞았네요! 나중에 가르침이라도 받는 게 어떠세요?”
“가, 가르침 말입니까?”
왕국제일검인 아버지를 두고서 다른 영지의 기사에게 검을 배우라는 터무니 없는 말에 당황한 크리스토퍼였지만, 그는 순진무구한 소녀의 얼굴을 앞에 두고서 거부할 정도로 담력이 크지 않았다.
“……고려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시도 따위는 없을 것이다.
……없을 것이다.
* * *
“오, 오지 마아아-!”
아카데미 마법학부 생도 리엘은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며 제게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밀어냈다. 그러나 평소 이렇게 무거운 걸 제대로 드는 일도, 쥐고 휘두르는 일도 없던 그녀의 휘두름은 엉망진창이었다.
심지어는 체력도 점점 빠져나가고 있어서, 그 속도마저 조금씩 느려지고 있는 마당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지팡이 들 힘도 없어질 마당.
일이 이렇게 된 건 전부 다 저기 저 망할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바깥에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그렇게 징징거리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주었더니만…….
“끄아아아악-!”
엉덩이에 화살 한 대를 맞고, 아까 전부터 비명 지르며 굴러다니고 있었으니까. 정말이지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녀석이었다. 정이 뚝 떨어질 만치 한심한 모습.
“오지 말래도오오오-!”
그녀는 제게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향해 계속해서 소리만 버럭버럭 내질렀다. 고블린들은 그런 그녀와 남자를 보며 킬킬거릴 뿐이었다.
만일 그녀가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남자친구가 엉덩이에 화살을 맞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주문 영창에 집중했더라면, 하다 못해 마법학부가 아닌 기사학부 애인을 가졌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마법 영창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당황, 불안, 고통, 두려움을 느끼며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었다.
괜히 마법학부 필수 교양에 명상 수업이 있는 게 아니었다. 침착과 진정은 마법사의 덕목이었으므로.
휘익-.
툭-.
-킬킬.
“아아, 아아-.”
한참동안 지팡이 휘두르며 물러서던 그녀는 기어이 그 지팡이마저 빼앗기고 말았고, 전장의 신이라 불리던 마법사는 일개 연약한 소녀로 전락하고 말았다.
리엘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덜덜 떨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그녀도 알지 못 했다. 저 녹슨 쇠꼬챙이에 찔려 살해당하려나? 아니면 아예 납치당해 평생 고블린의 애를 낳는 모판으로 전락할 지도…….
두려움에 눈물콧물 질질 짜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깔고 앉았던 치맛자락에서 축축함마저 느껴질 무렵이었다.
─푸욱!
날카로운 파열음이 그녀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뒤이어 자신을 내몰았던 징그러운 소귀小鬼들의 비명소리가 뒤따랐다.
-끼에에에에엑!
-끕!
-끼약! 끼야아악!
한 차례 비명이 터져 나온 이례, 적막이 그곳을 집어 삼켰다. 리엘은 아주 천천히, 겁에 질린 어린아이가 공포의 대상이 물러갔을 때를 확인할 때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
그곳엔 기사가 서 있었다. 녹색 머리의 기사가.
“괜찮으십니까?”
“어, 어어- 괘, 괜찮. 괜찮…… 읏!”
그녀는 덜덜 떨면서 몸을 일으키려다말고 제 다리가 삐엇음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본 엔리는 일어나려던 그녀를 멈춰세우고 품 속에서 예비용 포션을 꺼내들었다.
“드십시오. 저쪽을 처리하고 올 테니까.”
“저쪽……?”
엔리의 턱짓에 따라 고개 돌린 리엘은 엉덩이를 훤히 드러낸 채로 기절한 제 애인을 발견했다. 더러운 엉덩이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녹색 머리의 기사는 엉덩이에 화살 박힌 벨에게 다가간 뒤, 숨도 쉬지 않고 화살을 뽑아내곤 그 자리에 포션을 들이부었다. 그 고통에 기절해있던 벨이 눈을 떴다.
“끄으으으읅-!?”
“오, 일어나셨네. 조금만 참으쇼.”
“끄아아아악-!”
“그러길래 밖에서 엄한 짓은 왜 해서…… 안 그래도 고블린 놈들은 후각에 민감해서 살냄새도 잘 맡는데.”
다음부턴 조심하라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들은 그녀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귓가에는 오직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하모니만이 울려퍼졌다.
어려서부터 자주 봐온 동화 속 한 장면. 백마 탄 기사가 공주를 구하러 오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잠시 옷매무새를 정리한 리엘은 비틀거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고 일어나 엔리의 곁으로 향했다.
“저, 기, 기사님?”
“아, 이제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아요! 그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리엘은 여지껏 없던 두근거림을 느끼며 엔리에게 물었다.
“애인 있으신가요!?”
그 물음에, 엔리는 표정을 살짝 굳히며 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리엘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냅다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사람들이 있는 방향이었기에, 엔리는 애써 붙잡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얼굴도 귀엽고 몸매도 나쁘지 않았지만, 엔리는 그녀의 고백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처녀가 무슨, 내가 만만한가…….”
방금 전까지 이 자리에서 떡치던 연놈의 고백을 받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