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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스러운 것은 의심스러운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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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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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는 갈빗대를 하나 집어들고서 물어뜯었다. 주변 생도들이 숫제 짐승을 보는 듯한 시선을 보냈으나 개의치 않았다. 달짝찌근한 양념이 입 안 가득 터져나오는 이 순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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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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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 만에 다시금 접하는 한식은 엔리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추억을 향수와 함께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공작 가문의 기사로서 부족함 없이 먹고 자랐음에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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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판타지 세계 음식이 얼마나 대단하건 치킨에 콜라 한 잔이 땡기는 걸 막을 수는 없었지. 이건 그 욕구를 얼마간 채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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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도시락을 텅텅 비운 엔리는 아쉽다는 듯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면서 요기를 마무리했다. 그 모습을 본 코델리아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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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방법을 아시네요!? 다른 사람들은 포크로 깨작깨작…… 아니, 조신스럽게 드시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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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 스트릿 출신이라 뭐든 잘 주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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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바닥…? 아, 혹시 평민 출신이시라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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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천민 출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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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는 그리 물으며 손수건을 건넸다. 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수건을 건네받아 손가락에 남은 타액과 양념을 닦아냈다. 이런 고급스러운 손수건을 휴지 대용으로 쓰는 게 마음에 퍽 걸리긴 했지만 뭐. 본인이 주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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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변에 선 남자 생도들은 그 귀한 손수건으로 양념이나 닦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지, 매서운 눈빛을 쏘아붙이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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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제가 아무런 힘 없는 평민이거나 빽 없는 기사였더라면 겁 먹고 벌벌 떨 정도로 매서운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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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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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엔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시선을 마주보았다. 개중에는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섞여 있었는데, 엔리는 이 녀석들을 대체 어디서 본 건지 떠올리려 애써 머리를 굴렸다. 한참동안 머리를 굴려도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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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었습니다. 답례라도 드리고 싶은데 제가 마땅히 드릴 게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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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괜찮아요!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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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입니까? 그렇군요. 그럼 평소 동경하던 기사를 향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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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중얼거리던 엔리는 뒤늦게 저 징그러운 남자 생도들의 얼굴을 어디에서 보았는지를 떠올렸다. 한 놈은 자신에게 끈질기게 집착하던 테오도르 기사단장을, 또 한 명은 왕좌 위에서 뒤룩뒤룩 녹아내린 국왕을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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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명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저 둘 사이에 끼어 있다는 건 그 또한 보통 귀족은 아니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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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제야 우리 아가씨께서 이 여자를 창녀니 뭐니 불러댔던 이유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사단장의 아들이나 왕자를 꼬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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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저 가슴은 못 이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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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한 십대 청춘의 육신으로 저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지는 않다. 아무리 귀족이라고 할 지라도 그렇다. 하물며 그녀는 십대의 본능을 자극하는 몸매에 더해 이 세상에선 본 적도 없는 문물로 상대를 매혹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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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건 왕족이건 함락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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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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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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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잘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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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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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으로 벤치 이용권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따뜻하게 뎁혀 놓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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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에? 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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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여자에게 손을 대자 날카로운 살기가 마구 날아든다. 엔리는 그들이 보내는 시선을 가볍게 무시한 뒤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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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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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해 있던 몸이 순식간에 최고 속도로 내달린다. 기사의 육신이 뿜어내는 각력은 말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라서, 엔리의 몸은 앗- 하는 순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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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가 사라지자, 뒤늦게 분을 싹히고 있던 이들이 코델리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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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 양!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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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의 몸을 함부로 만지다니…… 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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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간 칼잡이란 것들은. 죄다 매너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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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대로 기사단장의 아들, 3왕자, 마탑주의 제자가 내뱉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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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에 앉아 그들을 올려다보게 된 코델리아는 하하- 어색한 웃음을 내뱉으며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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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놈, 돌아가면 바로 작위를 박탈하도록 아버님께 알려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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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왕자가 말했다. 코델리아는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그러지 말라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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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뇨! 고작 이런 일로 박탈이라뇨…… 저는 정말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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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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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래도요! 만일 그런 짓을 하신다면 저는 앞으로 전하를 싫어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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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싫어하겠다. 순수하다면 순수하고 오만방자하다면 오만방자한 그 말이 3왕자의 마음을 꿰뚫었다. 사실, 이미 어장에 붙잡힌 물고기는 먹이를 주지 않겠다는 말에 껌뻑 죽을 수밖에 없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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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차례 흥분을 가라앉힌 코델리아는 방금 전 모습을 감추었던 엔리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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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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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델리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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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전부 방금 전처럼 달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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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순수한 질문이었다. 코델리아는 마법학부의 학생이었으므로 기사들의 움직임에 대해선 잘 몰랐다. 마찬가지로 정확하게는 모르는 3왕자와 마탑주 제자의 시선이 유일한 기사학부인 크리스토퍼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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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몰려드는 시선에 잠시 침음성을 흘리던 크리스토퍼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방금 전 움직임. 고작 한 번의 도움닫기로 전속력을 낼 수 있는 건 제아무리 기사라 할 지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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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제 아버지라 할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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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깨달은 크리스토퍼는 이 자리에 있던 기사의 실력이 심상치 않음에 놀랐다. 과연 공작의 대리로 모습을 드러낼 정도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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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적어도…… 기사단장급은 되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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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럼 대단하신 기사님이 맞았네요! 나중에 가르침이라도 받는 게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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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가르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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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제일검인 아버지를 두고서 다른 영지의 기사에게 검을 배우라는 터무니 없는 말에 당황한 크리스토퍼였지만, 그는 순진무구한 소녀의 얼굴을 앞에 두고서 거부할 정도로 담력이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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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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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말로 그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시도 따위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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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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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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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오지 마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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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마법학부 생도 리엘은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며 제게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밀어냈다. 그러나 평소 이렇게 무거운 걸 제대로 드는 일도, 쥐고 휘두르는 일도 없던 그녀의 휘두름은 엉망진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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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체력도 점점 빠져나가고 있어서, 그 속도마저 조금씩 느려지고 있는 마당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지팡이 들 힘도 없어질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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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이렇게 된 건 전부 다 저기 저 망할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바깥에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그렇게 징징거리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주었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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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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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에 화살 한 대를 맞고, 아까 전부터 비명 지르며 굴러다니고 있었으니까. 정말이지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녀석이었다. 정이 뚝 떨어질 만치 한심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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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말래도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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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제게 다가오는 고블린들을 향해 계속해서 소리만 버럭버럭 내질렀다. 고블린들은 그런 그녀와 남자를 보며 킬킬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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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녀가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남자친구가 엉덩이에 화살을 맞건 말건 신경 쓰지 않고 주문 영창에 집중했더라면, 하다 못해 마법학부가 아닌 기사학부 애인을 가졌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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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법 영창은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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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 불안, 고통, 두려움을 느끼며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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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마법학부 필수 교양에 명상 수업이 있는 게 아니었다. 침착과 진정은 마법사의 덕목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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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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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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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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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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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동안 지팡이 휘두르며 물러서던 그녀는 기어이 그 지팡이마저 빼앗기고 말았고, 전장의 신이라 불리던 마법사는 일개 연약한 소녀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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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은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덜덜 떨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는 그녀도 알지 못 했다. 저 녹슨 쇠꼬챙이에 찔려 살해당하려나? 아니면 아예 납치당해 평생 고블린의 애를 낳는 모판으로 전락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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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눈물콧물 질질 짜내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녀가 깔고 앉았던 치맛자락에서 축축함마저 느껴질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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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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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파열음이 그녀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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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자신을 내몰았던 징그러운 소귀小鬼들의 비명소리가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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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에에에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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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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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약! 끼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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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비명이 터져 나온 이례, 적막이 그곳을 집어 삼켰다. 리엘은 아주 천천히, 겁에 질린 어린아이가 공포의 대상이 물러갔을 때를 확인할 때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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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엔 기사가 서 있었다. 녹색 머리의 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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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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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괘, 괜찮. 괜찮…… 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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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덜덜 떨면서 몸을 일으키려다말고 제 다리가 삐엇음을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본 엔리는 일어나려던 그녀를 멈춰세우고 품 속에서 예비용 포션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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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십시오. 저쪽을 처리하고 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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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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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의 턱짓에 따라 고개 돌린 리엘은 엉덩이를 훤히 드러낸 채로 기절한 제 애인을 발견했다. 더러운 엉덩이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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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머리의 기사는 엉덩이에 화살 박힌 벨에게 다가간 뒤, 숨도 쉬지 않고 화살을 뽑아내곤 그 자리에 포션을 들이부었다. 그 고통에 기절해있던 벨이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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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으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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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일어나셨네. 조금만 참으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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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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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길래 밖에서 엄한 짓은 왜 해서…… 안 그래도 고블린 놈들은 후각에 민감해서 살냄새도 잘 맡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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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부턴 조심하라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들은 그녀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귓가에는 오직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하모니만이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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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자주 봐온 동화 속 한 장면. 백마 탄 기사가 공주를 구하러 오는 소설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잠시 옷매무새를 정리한 리엘은 비틀거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고 일어나 엔리의 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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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기, 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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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괜찮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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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 괜찮아요! 그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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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엘은 여지껏 없던 두근거림을 느끼며 엔리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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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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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음에, 엔리는 표정을 살짝 굳히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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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답을 들은 리엘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냅다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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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있는 방향이었기에, 엔리는 애써 붙잡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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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도 귀엽고 몸매도 나쁘지 않았지만, 엔리는 그녀의 고백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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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처녀가 무슨, 내가 만만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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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까지 이 자리에서 떡치던 연놈의 고백을 받을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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