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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숙청은 빠르고 정확하며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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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 처가가 그랬고, 세종대왕님 처가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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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외가라는 ‘유교적 관념’에 따르면 절대로 숙청해서는 안 되는 분들을 보내버려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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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 아니 죽인다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자신의 왕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자라 판단하면 살려주었고 연좌제도 최대한 덜 적용하려 노력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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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 필요 없고, 지금 조정의 형조판서가 정도전 장남이라는 사실만 얘기하면 간단히 설명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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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나에게 암행어사라는 자리를 맡긴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선호하는 숙청 방식을 알아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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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은 아니지만 그가 내준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만 하는 나는 어떻게 사고하며 행동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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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김만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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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왜 맨 처음을 안성에서 시작하려 하신 겁니까? 안성보다는 한양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감찰하시면 좀 더 편하지 않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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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이면 먼 곳부터 시작하는 게 나중이 편할 거 같아서. 일부러 내가 돌아야 하는 군현 중 제일 먼 안성부터 찾아온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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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이 나에게 돌아볼 것을 지정해 준 지역에서 한양으로부터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이 안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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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자동차도 없고, 기차도 없는 조선에서 여러 도시를 돈다는 거 자체가 고역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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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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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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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풀 때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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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볼 때도 그렇고, 회사 생활할 때도 그렇고 ‘출제자의 의도’나 ‘상사의 의도’를 맞추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힘들고 일을 아무리 잘해도 과장 이상 진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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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일이지만 일은 정말 열심히 잘하는데, 상사가 원하는 나쁜 방향과 어긋나거나 아부를 적절히 하지 못해서 기업에서 ‘정리해고’ 당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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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상사의 의도를 잘 맞추는 덕분에 조금 무능해도 부장까지 진급하는 케이스도 많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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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는 조선의 관리로서 이방원과 세종대왕님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니... 김만덕에게는 내 답안지를 공유해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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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백계를 위해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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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 군수를 탄핵하실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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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의 권한을 이용한다면 안성 군수 나리를 영원히 관직 생활 하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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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에 숨겨진 조그마한 부정부패부터 방원법 실시하면서 생기는 온갖 문제까지 하나하나 다 파헤쳐서 보고하면 그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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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해서 군수 나리를 보내버리고 질서를 바로잡는 건 이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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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류 관리라면 군수 나리께서 자발적으로 과오를 뉘우치고, 스스로 잘못을 고치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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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수증(명절 선물 형태로 주는 뇌물) 안 받는 관리가 어디 있겠으며, 양반과 아전이 짜고 올해도 흉작이라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토지 100결을 가졌으나 자신은 50결 밖에 없다면서 세금을 낮춰달라고 주장하는 이 없다고도 어찌 말할 수가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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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올 인간 따위는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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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조선에서 내가 작정하고 털어대면 탈세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한 정황이 안 나올 자가 누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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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짓거리를 싹 다 잡아낸다는 각오로 고을을 감찰 해댄다면, 안성 군수 나리는 물론이고 안성의 양반 가문은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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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방원이 원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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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법하고 단호한 감찰로 부패한 양반들이 싹 다 없어지게 되면, 그 자리에는 다른 양반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뿐 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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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 공백과 마을 치안 공백 그리고 질서 문란 등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무정부 사태란 진짜 무서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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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없으니 아녀자를 강간하고, 살인이 일어나도 누구도 처벌해 주지 못하니 범죄를 안 저지르는 놈이 멍청이가 되는 참사가 터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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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나는 이방원이 나에게 맡겨준 철퇴를 깐깐하게 휘두를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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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을 안 받고, 안 주는 건 조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방원법에서 딱 정한 만큼만 해야 한다 할 것이며. 토지 100결 가진 자에게는 토지 100결에 해당하는 세금을 걷으면 그만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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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군수와 양반들을 몰살할 생각은 아니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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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네. 그저 따르지 않으면 태상왕 전하께서 많이 화내실 거라 경고만 할 것일세. 이렇게 하여 질서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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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는 탈영, 혹은 탈영을 시도한 병사가 있으면 거의 반드시 총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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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죽게 된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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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당하는 자는 어차피 죽을 죄를 지었으니 죽는 거고, 다른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죽기 싫어서’라도 탈영하지 말라는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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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해서는 그런 일 벌일 생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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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지간하지 않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나도 방침을 수정하여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피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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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나리께서는 언제 혼례를 올리실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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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안에 혼례를 올리지 않으면 아버님께서 괜찮은 집안의 여식을 아무나 고르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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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딸을 내게 첩으로 준 김만덕에게 할 소리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아! 진짜 누구랑 결혼해야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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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일이 이렇게 꼬이면 단옷날 나가서 그네 타고 있는 양반댁 규수 중에 얼굴이 제일 예쁜 여자로 정하는 수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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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백성들이 부르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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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마침 수확기기도 하고, 그사이 전국 방방곡곡에 방원법이 반포되어 시행에 들어갔으니... 세금이 줄어서 살맛이 난다고 흥겨워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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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로 가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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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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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드라마, 영화 같은 데에서 보면 암행어사는 수령의 부패를 감지하자마자 관아에 곧장 출도하여 다 때려잡는 걸로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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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건 극적인 효과를 얻으려 일부러 그렇게 연출하는 것일 뿐이다. 실제 현장에서 그런 식으로 ‘출도’하면 곧장 삼수갑산으로 유배 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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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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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서 수사를 시작할 때도 합리적인 증거가 어느 정도 있어야 압수 수색 영장 같은 걸 발급받고 경찰서로 출두해달라 명령할 수가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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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랑 근거는 하나도 없이 경찰서로 막 부르면 그 경찰은 ‘직권남용’으로 온갖 징계를 다 먹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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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나보다 품계가 무려 4개나 높은 군수를 정황 증거도 없이 수사한다면 어찌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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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암행어사 노릇의 시작 단계에서는 주변 소문부터 들어야 하고, 명백한 범죄 정황을 잡고 나서야 출도하는 게 올바른 공무 집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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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 자네만 날 따라오게. 저들에게 술이라도 한잔 얻어 마시면서,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물어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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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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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과 나는 곧장 잔치가 벌어진 곳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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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두 명이 갑자기 나타났지만, 저들은 우리를 보며 꺼지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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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나랑 김만덕 모두 ‘과거 치고 돌아가는 양반’을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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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하나만 묻지. 뭐가 이리 좋아서, 한가위 같은 명절도 아닌 때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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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농민 한 명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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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반포된 방원법 때문에 세금이 내려가서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되었으니 웃지요. 이전에는 공납 때문에 땅 한 조각 없는 우리 같은 소작농도 한 호당 쌀 3~4섬씩을 내야 했는데. 이제는 1결당 13되만 내면 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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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리는 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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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뭐 병작반수라고 해서 소작율 50%가 평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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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결 18두, 18되의 절반 정도는 낼 수 있다고 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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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결에 13되를 물려? 이건 좀 선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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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니까, 이건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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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많이 줄어서 살맛이 나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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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제 자식들 밥은 배불리 먹일 수가 있겠습니다. 아니면 허리띠를 좀 졸라매서 땅을 사는 방법도 있고요. 참 좋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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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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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에게 이 이야기를 장계에 적어 보내주면 엄청 좋아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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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원법이 만백성을 이롭게 하였어도, 세상에는 탐관오리 새끼들이 넘쳐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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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의 틈새와 약점을 이용하여 부정부패를 저지를 놈들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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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말로 백미 3섬씩 뜯기던 백성들에게는 수취액을 줄여 백미 2섬을 가져간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천세를 부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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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틈을 파고들어 세금을 횡령하려고 하는 놈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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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보자, 내 머리에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됫박 크기 조작이라던가 그거밖에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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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고민에 빠진 나를 두고 김만덕이 나서서 백성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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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과거를 쳐서 낙방하기는 했어도, 집에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그래서 그러는 건데... 그 임금님께 바치는 공물 파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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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덕이 주섬주섬 제법 큰 면포 덩어리를 백성에게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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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받은 이는 손 사레를 치면서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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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물로 바치는 물건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고을 아전 나리나 양반 나리들께 소개를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사찰을 통해서 구매하시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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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법의 핵심은 관아는 쌀을 주고, 상인들은 그 대가로 공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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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상인 00의 물건을 직접 거래할 수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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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을 경유해야만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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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성 군수 나리, 아무래도 암행어사 출도 한 번 받아보셔야 정신을 차리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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