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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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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의 숙청은 빠르고 정확하며 인상적이다.
양녕대군 처가가 그랬고, 세종대왕님 처가도 그러했다.
본인의 외가라는 ‘유교적 관념’에 따르면 절대로 숙청해서는 안 되는 분들을 보내버려서 그렇지...
죽일 필요가 없는 사람, 아니 죽인다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자신의 왕권에 해를 끼치지 않는 자라 판단하면 살려주었고 연좌제도 최대한 덜 적용하려 노력한 분이다.
다른 말 필요 없고, 지금 조정의 형조판서가 정도전 장남이라는 사실만 얘기하면 간단히 설명되겠지.
자, 이제 나에게 암행어사라는 자리를 맡긴 이방원이라는 인물의 성격과 선호하는 숙청 방식을 알아봤으니.
수험생은 아니지만 그가 내준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만 하는 나는 어떻게 사고하며 행동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까?
그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김만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리, 왜 맨 처음을 안성에서 시작하려 하신 겁니까? 안성보다는 한양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감찰하시면 좀 더 편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왕이면 먼 곳부터 시작하는 게 나중이 편할 거 같아서. 일부러 내가 돌아야 하는 군현 중 제일 먼 안성부터 찾아온 것이라네.”
이방원이 나에게 돌아볼 것을 지정해 준 지역에서 한양으로부터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이 안성이다.
물론 자동차도 없고, 기차도 없는 조선에서 여러 도시를 돈다는 거 자체가 고역이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아,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네.”
문제를 풀 때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능 볼 때도 그렇고, 회사 생활할 때도 그렇고 ‘출제자의 의도’나 ‘상사의 의도’를 맞추지 못하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힘들고 일을 아무리 잘해도 과장 이상 진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니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일은 정말 열심히 잘하는데, 상사가 원하는 나쁜 방향과 어긋나거나 아부를 적절히 하지 못해서 기업에서 ‘정리해고’ 당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반대로 상사의 의도를 잘 맞추는 덕분에 조금 무능해도 부장까지 진급하는 케이스도 많고 말이다.
그러니 나는 조선의 관리로서 이방원과 세종대왕님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니... 김만덕에게는 내 답안지를 공유해줘야겠지?
“일벌백계를 위해서네.”
“...... 안성 군수를 탄핵하실 생각이십니까?”
암행어사의 권한을 이용한다면 안성 군수 나리를 영원히 관직 생활 하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 수 있을 거다.
고을에 숨겨진 조그마한 부정부패부터 방원법 실시하면서 생기는 온갖 문제까지 하나하나 다 파헤쳐서 보고하면 그만이니까.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군수 나리를 보내버리고 질서를 바로잡는 건 이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일류 관리라면 군수 나리께서 자발적으로 과오를 뉘우치고, 스스로 잘못을 고치게 만들어야지.
“조선에서 수증(명절 선물 형태로 주는 뇌물) 안 받는 관리가 어디 있겠으며, 양반과 아전이 짜고 올해도 흉작이라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토지 100결을 가졌으나 자신은 50결 밖에 없다면서 세금을 낮춰달라고 주장하는 이 없다고도 어찌 말할 수가 있겠고.”
이 세상에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올 인간 따위는 없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이겠지.
하물며, 조선에서 내가 작정하고 털어대면 탈세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한 정황이 안 나올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 짓거리를 싹 다 잡아낸다는 각오로 고을을 감찰 해댄다면, 안성 군수 나리는 물론이고 안성의 양반 가문은 단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것이야.”
이건 이방원이 원하는 게 아니다.
적법하고 단호한 감찰로 부패한 양반들이 싹 다 없어지게 되면, 그 자리에는 다른 양반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뿐 더러...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 공백과 마을 치안 공백 그리고 질서 문란 등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무정부 사태란 진짜 무서운 건데.
정부가 없으니 아녀자를 강간하고, 살인이 일어나도 누구도 처벌해 주지 못하니 범죄를 안 저지르는 놈이 멍청이가 되는 참사가 터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방원이 나에게 맡겨준 철퇴를 깐깐하게 휘두를 생각은 없다.
“수증을 안 받고, 안 주는 건 조선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방원법에서 딱 정한 만큼만 해야 한다 할 것이며. 토지 100결 가진 자에게는 토지 100결에 해당하는 세금을 걷으면 그만인 거지.”
“안성 군수와 양반들을 몰살할 생각은 아니시군요.”
“그렇네. 그저 따르지 않으면 태상왕 전하께서 많이 화내실 거라 경고만 할 것일세. 이렇게 하여 질서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네.”
전장에서는 탈영, 혹은 탈영을 시도한 병사가 있으면 거의 반드시 총살한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죽게 된다.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사형당하는 자는 어차피 죽을 죄를 지었으니 죽는 거고, 다른 병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죽기 싫어서’라도 탈영하지 말라는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기게 되는 것이다.
“어지간해서는 그런 일 벌일 생각이 없어.”
물론, 어지간하지 않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나도 방침을 수정하여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다. 나는 피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아, 그러고 보니... 나리께서는 언제 혼례를 올리실 생각이십니까?”
“내년 안에 혼례를 올리지 않으면 아버님께서 괜찮은 집안의 여식을 아무나 고르겠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자기 딸을 내게 첩으로 준 김만덕에게 할 소리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아! 진짜 누구랑 결혼해야 하냐?
자꾸 일이 이렇게 꼬이면 단옷날 나가서 그네 타고 있는 양반댁 규수 중에 얼굴이 제일 예쁜 여자로 정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혼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저 멀리에서 백성들이 부르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 마침 수확기기도 하고, 그사이 전국 방방곡곡에 방원법이 반포되어 시행에 들어갔으니... 세금이 줄어서 살맛이 난다고 흥겨워하는 거겠지.
“저기로 가보지.”
“예, 나리.”
우리가 흔히 드라마, 영화 같은 데에서 보면 암행어사는 수령의 부패를 감지하자마자 관아에 곧장 출도하여 다 때려잡는 걸로 나오는데.
사실 이건 극적인 효과를 얻으려 일부러 그렇게 연출하는 것일 뿐이다. 실제 현장에서 그런 식으로 ‘출도’하면 곧장 삼수갑산으로 유배 확정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경찰에서 수사를 시작할 때도 합리적인 증거가 어느 정도 있어야 압수 수색 영장 같은 걸 발급받고 경찰서로 출두해달라 명령할 수가 있는 거지.
증거랑 근거는 하나도 없이 경찰서로 막 부르면 그 경찰은 ‘직권남용’으로 온갖 징계를 다 먹게 될 거다.
하물며, 나보다 품계가 무려 4개나 높은 군수를 정황 증거도 없이 수사한다면 어찌 되겠어.
그러니 암행어사 노릇의 시작 단계에서는 주변 소문부터 들어야 하고, 명백한 범죄 정황을 잡고 나서야 출도하는 게 올바른 공무 집행이다.
“김만덕 자네만 날 따라오게. 저들에게 술이라도 한잔 얻어 마시면서, 무슨 좋은 일이 있냐고 물어보도록 하지.”
“네, 나리.”
김만덕과 나는 곧장 잔치가 벌어진 곳으로 찾아갔다.
낯선 사람 두 명이 갑자기 나타났지만, 저들은 우리를 보며 꺼지라는 말을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나랑 김만덕 모두 ‘과거 치고 돌아가는 양반’을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말 하나만 묻지. 뭐가 이리 좋아서, 한가위 같은 명절도 아닌 때 이렇게 즐거워하고 있는 건가?”
내 말에 농민 한 명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새로 반포된 방원법 때문에 세금이 내려가서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되었으니 웃지요. 이전에는 공납 때문에 땅 한 조각 없는 우리 같은 소작농도 한 호당 쌀 3~4섬씩을 내야 했는데. 이제는 1결당 13되만 내면 됩니다요.”
13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리는 띵해졌다.
그래, 뭐 병작반수라고 해서 소작율 50%가 평균이니까.
1결 18두, 18되의 절반 정도는 낼 수 있다고 치자고.
그런데 1결에 13되를 물려? 이건 좀 선 넘었다.
그래도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니까, 이건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세금이 많이 줄어서 살맛이 나겠구려.”
“예, 이제 자식들 밥은 배불리 먹일 수가 있겠습니다. 아니면 허리띠를 좀 졸라매서 땅을 사는 방법도 있고요. 참 좋은 세상입니다.”
백성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방원에게 이 이야기를 장계에 적어 보내주면 엄청 좋아할 거다.
하지만 방원법이 만백성을 이롭게 하였어도, 세상에는 탐관오리 새끼들이 넘쳐나는 법.
이 법의 틈새와 약점을 이용하여 부정부패를 저지를 놈들은 많다.
막말로 백미 3섬씩 뜯기던 백성들에게는 수취액을 줄여 백미 2섬을 가져간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천세를 부를 일이니까.
이 틈을 파고들어 세금을 횡령하려고 하는 놈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어디 보자, 내 머리에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됫박 크기 조작이라던가 그거밖에는 없는데...
말없이 고민에 빠진 나를 두고 김만덕이 나서서 백성에게 물었다.
“내가 과거를 쳐서 낙방하기는 했어도, 집에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그래서 그러는 건데... 그 임금님께 바치는 공물 파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김만덕이 주섬주섬 제법 큰 면포 덩어리를 백성에게 건네주었다.
그걸 받은 이는 손 사레를 치면서 거절했다.
“공물로 바치는 물건은 아무나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고을 아전 나리나 양반 나리들께 소개를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사찰을 통해서 구매하시던가요.”
방원법의 핵심은 관아는 쌀을 주고, 상인들은 그 대가로 공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상인 00의 물건을 직접 거래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찰을 경유해야만 구매할 수 있다?
우리 안성 군수 나리, 아무래도 암행어사 출도 한 번 받아보셔야 정신을 차리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