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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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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은 모두를 부유하게 만든다.
쌀농사 짓기 좋은 고을이 있고, 철이 지천에 널린 고을이 있다고 쳐보자.
쌀농사 짓기 좋은 평야가 많다고 하더라도 밭을 경작할 농기구가 없으면, 돌로라도 농기구를 만들겠지만... 그걸로는 제대로 된 수확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반대로 좋은 농기구를 만들 철이 널려있다고 한들 그걸 사람이 먹을 수는 없으니 결국에는 굶어 죽는 꼴을 못 면하겠지.
그러나 철이 널린 고을에서 농기구를 만들고, 벼농사 짓기 좋은 고을에서 그 농기구를 써서 농사를 지은 뒤 그 대가로 쌀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농사짓기 좋은 고을의 쌀 수확량이 몇 배로 늘어나게 되면서 두 고을 사람들 모두 풍족게 먹고 살 수 있게 된다.
공납으로 바치는 특산물도 마찬가지다. 벼농사 짓는 백성들에게 억지로 특산물을 구해오라 시키면 죽을 맛이 되지만, 적당한 양의 쌀을 내는 대가로 특산물을 주면...?
모두가 쌀밥도 먹고, 곶감과 멸치도 먹을 수 있게 되는 거다.
이걸 고을 단위로 하는 게 아니라 조선 팔도 단위로 확장하게 된다면?
우리 고을은 틀림없이 부유해지겠지.
"일단 자네들은 멸치잡이 어선을 늘리고, 감 심는 땅도 좀 더 넓히게."
"다른 사또들께서는 상업을 최소화해야 하시면서 어선도 줄이라 하시고, 과일도 쓸데없이 많이 기르면 백성들이 과일 먹는 사치에 탐닉하게 된다 하시며 경계하라 하셨는데..."
"쌀이 보리보다 비싼 건 수확하기가 좀 더 어려워서이지. 과일이 비싸고, 멸치가 비싼 것도 결국에는 매년 얻는 양이 적기 때문이야."
마트에 가면 표고버섯 1kg를 10,000원 언저리 가격에서 살 수 있다.
반면 조선에서는 표고버섯 1kg를 사려면 쌀 다섯, 여섯 가마를 줘도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조선의 표고버섯이 한국 표고버섯보다 맛이 좋고, 효능도 말도 안 되게 뛰어나서 그런 걸 것일까?
그건 당연히 아니다. 조선에는 표고버섯을 인공 재배할 기술이 없어서 수확량이 적기 때문이다.
감이 비싼 이유? 과일나무 심는 사치 부리지 말고 벼농사, 보리농사 짓는 데에만 집중하라면서 이리저리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멸치도 대충 비슷하다.
조선은 모든 사람에게 청빈하게 살라고 강요하는 경향이 강한 나라이고, 그 탓에 비싼 물건을 어떻게 하면 더 싸게 만들까라고 고민하는 대신...
그냥 안 쓰면 그만이니 만들지를 말라고 하는 나라니까.
"전하께서는 백성들이 맛있는 걸 많이 먹기 바라시네. 감도 먹고, 멸치도 먹고, 가능하면 고기도 며칠에 한 번은 꼬박꼬박 먹었으면 하시지. 그렇게 하려면 자네 같은 이들이 장사를 더 크게 해서, 백성들이 곶감이나 멸치를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게 도와야 하지 않겠나?"
한국에서는 이게 당연한 거지만, 조선에서는 이런 개념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다 필요 없고 16세기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자연스럽게 생긴 시장'이 보이면 관은 무조건 탄압하고 나서기가 바빴다.
하여 성리학 꼰대여야 할 사또가 상인인 자신들을 이렇게 생각해 주었으니. 저들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니 본관이 진해 현의 사또로 있는 이상, 너희들이 국법을 어겨 내야 할 세금을 속이지만 않는다면 이유 없이 박해받을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너희 장사가 더 커지고, 곶감과 멸치, 오동나무 공예품을 구하기가 더 쉬워지면 쉬워질수록 백성들의 공납도 더 가벼워질 테니 말이다."
"망극합니다."
다른 사또들은 상인 녀석들을 무시하고 윽박지르며, 말대꾸라도 할 시에는 장사하는 놈 주제에 건방지다며 혼내려 들었을 거다.
그런데 나는 저들이 장사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지원해 주겠다 말한 것이니.
저들은 내가 따로 언질을 주지 않아도 '일정한 양의 선물'을 나한테 바치려 할 것이다.
대기업 회장, 중소기업 회장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들에게 명절 선물 가득 주듯 말이다.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모순되는 거 아니냐고 할 텐데.
내가 순전히 백성 입장만 생각하고 세금을 낮추려 들면... 쟤들에게 이전 납품가를 보증해 줄 수 있겠어?
관리 생활 오래 할 생각은 진짜 없지만 관리로서 살아가는 동안은 나도 생존하기 위해 뒷주머니를 차야만 한다.
안 그러면 조선의 빌어먹을 명절 선물 문화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당장 내년만 되어도 진해 현감으로 부임한 나한테 명절 선물 내놓으라고 주변 곳곳에서 닦달을 해올 테고.
꼭 그게 아니라도 나는 부자 되면 안 되냐?
"그리고 세금을 매기는 기준도 이전과 달리 하겠다. 이전에는 아전들이 너희가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지를 멋대로 가늠해서 매기고, 자릿세와 같은 것들을 걷었다. 그러나 이제는 감나무의 숫자, 멸치를 잡는 어선의 숫자를 파악하여 그것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도록 하겠다."
이렇게 정한다 해도 녀석들은 무슨 꼼수를 부릴 수 있으면 어떻게든 부려서 세금을 줄이려 들 거다.
선박 숫자는 빤하니 그걸 줄일 수 없다면 '조업량'을 속인다던가.
감나무 과수원에 나무 10,000그루가 있는 데 우리한테 안 들키는 범위 내에서 1,000그루 정도를 몰래 빼던가 그런 식으로 말이다.
재벌집 회장님들도 세금 내기 싫으니까 3살 먹은 애한테까지 건물 증여하고 그러잖아.
저 녀석들도 재물이라면 누구 부럽지 않을 이 고을의 알부자들인데 안 그럴 리가 없지.
"사또, 갑자기 세금 제도를 그리 바꾸시면 저희가 감당하기 힘듭니다."
"간악한 아전들이 너희를 찾아가 탄압하거나 자릿세니 뭐니 하는 명목으로 돈과 물건을 걷어가는 일이 없게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에게도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면 이익이지, 손해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아전들은 쟤네가 돈을 얼마 버는지를 모른다.
그렇지만 조선은 세금 제도를 이상하게 만들어 놓아서 '중앙 정부에 내는 세금'은 있는데, 지방 관청 운영할 세금은 산정 자체를 아예 안 한다.
아전들도 자신의 일로 먹고 살고 품위 유지도 해야 하고, 사또 월급에 명절 선물 보낼 거까지 마련해야 하니 누굴 족치겠어? 상인들 족치고, 농민들 족치는 거지.
지금은 삼정 문란 시기는 아니지만, 상인들은 저 간악한 아전들에게 매년 수입의 30%~50%는 뜯겨 왔을 거다. 탄압과 무시까지 받아 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본관이 너희를 용서하여 죄를 캐내지 않는 것은 그대들이 선한 양민이라서가 아니네. 자네들도 저기 땡중들에게 공물을 건넬 때 가격을 좀 부풀린 게 있지 않았나?"
"예..."
"싫으면 죽으면 되겠군. 어찌하겠나?"
"세금을 잘 내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감나무밭을 넓히고 멸치잡이 어선에 태울 선원을 모으되 이 고을에서 일이 없는 이들을 중심으로 모으게. 또 저들의 늠료를 말도 터무니 없이 낮게 책정하지는 말게나. 안 그러면, 내가 목민관으로서 '애민 정신'을 실천할 수밖에 없어."
사업 키워서 부자 되고 싶으면 내 말 잘 듣고 백성들에게 잘하라 경고하는 거다.
안 그러면 나의 애민 정신 실험 대상이 될 테니까.
아니다, 철퇴의 이방원이 살아있으니 저 작자들은 한양에서 대가리가 깨져 죽을 수도 있다.
"사또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저들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는 아전들과 적절한 대화를 하여서 우리가 땡중들에게 돌려받은 백미 4,700섬 중 절반만을 백성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정했다.
아전 중에 정신 못 차린 녀석 하나가 4,700섬 중 따로 챙긴 백미 2,350섬은 여기 있는 우리가 나눠 가지자고 제안했지만.
내가 아무리 세금 걷어서 사리사욕 안 채우면 죽는 세상에 산다고 할지라도, 저거까지 손댈 생각은 없어서 사소한 주의를 줬다.
사소한 주의를 받은 놈은 다음날 다른 아전들에 의해 양 눈이 보라색으로 물든 상태로 출근했다.
"백성들에게 2,350섬이 돌아갈 테니, 다들 엄청나게 좋아하겠지."
그러면 내가 꽁친 백미는 어디에 쓸 거냐고? 진짜 좋은 데다가 쓸 거다.
**
조선의 사또를 누군가는 이렇게 비유했다.
한 도시의 경찰서장이자, 법원장이자, 시장이라고 말이다.
하나만 맡아도 몸이 축나는 일을 세 개나 맡고 있으니 몸이 안 남아난다.
그러나 내 어깨에 지워진 무게가 무겁다고 세종대왕님이 맡긴 일을 대충한다?
관료로서 가져야 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면신례(신입생 환영식, 온갖 부조리의 향연)를 통해 주입하려 대기 타고 있는 허조랑 황희가 날 가만히 놔둘까?
군대 2년이 천국처럼 보일 정도의 부조리를 당하게 될 거다.
"사또,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방납으로 해 쳐먹은 땡중들 참교육하는 그날 말이다.
저놈들은 내 머리를 아프게 한 놈들이니 곤장으로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내가 바로 새로 부임한 이 고을의 현령이다. 나는 이 고을을 공정하게 다스리며, 전하의 교화가 너희에게 미치게 할 것이다. 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너희를 괴롭히던 죄인을 벌하도록 하겠다."
고을 사람들은 나타난 죄인의 얼굴을 보더니 경악하는 소리를 냈다.
"아니, 성흥사 주지 스님이시잖아?"
"스님들이 대체 왜 죄인이 되신 거지?"
조선 초기, 중기, 후기 상관없이 승려들은 나름 괜찮은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죽은 다음의 사후를 보장해 주는 사람들이라서 재상 가문에서 알음알음 돈을 대주며 불경을 읊어달라 의뢰했을 정도니까.
존경하는 스님들이 저 꼴을 당하고 있으니까 불만을 가질 법도 하지.
"여기 있는 성흥사의 주지를 비롯한 땡중들은 너희들의 공납을 나라에 대신 내준다고 하며, 무려 백미 4,700섬 어치를 횡령했다. 그 탓으로 너희의 삶이 어려워졌으니, 어찌 내가 저들을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백미 1섬이면 과장 조금 보태서 성인 남자 한 명을 1년 정도 먹고 살게 할 수 있다.
4,700섬이면 4,700명이 1년간 먹고 살 쌀의 양이라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엄청난 금액이고 말이다.
"하여, 본관은 이 땡중들에게 곤장 20대를 치는 벌을 내린 뒤, 한양으로 압송하여 정당한 벌을 받게 할 생각이다."
한양에 올라가면 이놈들은 틀림없이 목이 잘릴 거다.
스님이라는 작자들이 작작 해 먹을 것이지 하면서 허조가 저놈들은 꼭 죽여야 한다고 난리 쳐댈 테니까.
이방원은 민생을 어지럽힌 놈 대가리에 철퇴 샷을 날리겠다며 화를 낼 거고 말이다.
"저놈들을 매우 쳐라!"
관아의 포졸들이 죄인 놈들을 몹시 쳤다.
20대를 다 맞은 땡중 중 몇 명은 의식을 잃었다.
백성들의 표정은 좀 애매했다. 맞을만한 짓을 한 거지만, 그래도 자기들이 존경하던 스님이라는 생각에 그러는 것이겠지.
내가 이럴 거 같아서 백미를 백성에게 얼마나 줘야 할지부터 정하자는 이야기를 한 거다.
지금 여기에서 쌀을 돌려주면? 나는 저들을 착취에서 구한 영웅이 되는 거니까.
"백성들은 관아 앞 정문으로 가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쌀을 반 가마씩 줄 것이다."
"쌀 반 가마나 말입니까요?"
"저 땡중들이 너희의 고혈을 빨아먹은 걸 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공물을 관아에서 직접 상인들에게서 살 것이니. 너희들이 내야 하는 세금도 줄 것이다."
내 말이 끝났을 때 곳곳에서 만세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천세! 주상 전하 천세!"
"새로운 사또 천세!"
"사또 나리 감사합니다!"
......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과거 치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종에게 죽어라 굴려지는 건 사양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