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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랑 첫날밤을 치르고서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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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껏 지금 맡은 일만 마치면 사직하겠다는 생각으로 관직 생활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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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과 전시에 합격했을 때는 딱 몇 년만 관직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하였고, 진해 현감으로 갔을 때는 딱 현감 임기만 마치고 끝을 내겠노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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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상소 때도, 방원법 때도 늘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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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대로 관직 생활을 마친다 해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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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은 계속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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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법이 시행되면 백성들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윤택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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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에게는 체감상 세율 30%~40%를 먹이고, 부자들에게는 체감 세율 10% 미만을 적용하는 지금까지의 세금 체계가 확실히 혁파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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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세금으로 16%를 내게 될 거고, 가난한 이들의 실질 세율은 10% 미만으로 줄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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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 조정되었다 하여 가난한 이들의 수입이 확 늘어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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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월 200만 원 벌어서 소작료로 100만 원 뜯기고, 나라에 세금 내고 나면 매달 20만 원 남짓 남던 것이... 앞으로는 세금을 내고 났는데도 60~70만 원이 남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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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백성이 체감하는 월수입은 갑자기 3배가 된 것 같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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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은 방원법으로 인해 보다 나은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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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현 백성들이 시장에 내가 왔다고 잔치를 벌이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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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나물 팔고 짚신 팔아 번 돈으로 자식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먹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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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좀 배가 고픈 걸 참더라도 내년에 땅 한 마지기를 사서 제 땅에서 농사를 지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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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소작 짓는 밭일을 끝낸 뒤에, 산에 들어가서는 약초를 캔답니다. 약초 판 돈으로 뭘 할지 고민하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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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백성에게는 시장을 열어주는 것보다 더 큰 효과로 다가올 방원법이라니 과연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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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모여서 임금님 천세를 외쳐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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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한 것으로 내가 해야 할 거는 웬만큼 한 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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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집 오는 길에 봤던 농민의 수고가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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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상이라고 하는 나무토막과 도리깨 같은 효율이 떨어지는 농기구로 타작하던 그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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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을 시켜서 홀테니 족답식 탈곡기를 만들면 훨씬 쉽고 빠르게 작업을 끝낼 수 있게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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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농사일이 더 편해질 거고, 저들의 삶의 질은 이전보다 개선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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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내가 제안하여 장영실이 만든 농기구를 빠르게 보급하고, 전국 곳곳에 수리 시설까지 확충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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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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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앙법이 시작되면 전라, 충청, 경상도에서는 이모작이 가능해져 식량 생산이 2배가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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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은 이모작까지는 안 되지만 벼 수확량이 늘기에 식량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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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잉여 노동력이 생기게 되어 공업, 상업까지도 발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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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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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편히 지내는 나는 늘 이 생각을 반복할 거다. 계속 후회하며 살게 될 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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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바에야 조금 더 구르는 게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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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서 겨울이 앞에서는 누구보다 멋진 남자로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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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정리를 끝낸 나는 곧장 복직하겠다는 상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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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얼마나 더 조선을 위해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들어서 못 해 먹을 것 같으면 이번처럼 사직상소 내고 낙향... 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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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막말로 뭔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설마 세종대왕님이 황희 부려 먹듯이 날 부려 먹기야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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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대동법이 시행되었을 때 사악한 수령들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유의해야 할 점을 적어 보내드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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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이 아주 이로운 법이긴 하지만, 허점을 파고들어 이용하여서 나쁜 짓을 할 놈은 세상에 널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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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이라는 건 올바르게 걷고, 새는 것 없이 중앙으로 올라가야만 의미가 있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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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선 일부러 가라앉히기, 쌀 됫박 크기 일부러 큰 거 쓰기, 서류 조작하기, 부자들의 땅 숨기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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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법들로 절세가 아닌 탈세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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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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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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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수찬 김대붕이라는 자는 날 때부터 종묘사직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병에 걸린 충신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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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면 진해 현감으로 있을 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선물'을 제외한 뇌물을 하나도 안 먹을 이유가 없을 뿐 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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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현전 수찬으로 있을 때 6조 판서 모두의 총애를 받았음에도 그 어떤 청탁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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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서 사직상소를 내자마자, 방원법의 걸림돌이 될 영의정을 탄핵하는 미친 짓을 할 리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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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남자가 미녀를 밝히는 것처럼 김대붕은 '종묘사직'을 위해 헌신하는 일에 환장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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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임금의 의무는 이런 충신이 원하는 만큼 조선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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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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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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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바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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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의무가 무엇인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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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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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이 옳다. 자, 그러면 만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열망에 몸이 달아올라 견디지 못하는 신하가 있다면 어찌해야겠느냐? 나는 그 간곡한 바램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임금으로서 책무를 게을리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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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신하들을 이공계 박사과정 대학원생 굴리는 것처럼 일하게 만드는 악덕 노예주, 아니 성군 세종대왕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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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도 아바마마와 같은 생각이옵니다. 김대붕과 같은 유능한 충신이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백성들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음에도 소자가 게을러서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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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이라는 사람을 볼 때, 가장 웃긴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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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만고의 충신이 아니요 이기적인 한량 지망생이라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만고의 충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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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철퇴를 맞아 머리가 납작해져서 세상을 하직한 류정현마저 그를 간신이라고 부를지언정, 사리사욕에 절은 인간이라 생각한 적은 없을 정도니 할 말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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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옳다. 그리고 김대붕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탄핵당해 마음이 상했을 뿐 더러 혹여 자신이 현직에 있으면 너나 나에게 누가 될까 하는 생각으로 사직서를 내었을 때. 너는 그의 부모에게 김대붕을 타일러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스스로 놓아버리지 않게 종묘사직을 위해 복귀하도록 잘 타이르라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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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대붕이 낙향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가 올린 상소문은 참으로 이방원과 세종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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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향해서 좀 쉬고 오라는 의미로 사직상소를 잠시 받아준 것인데, 어찌 그리 기특하게도 자기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방원법 시행 시 발생할 탈법 사안들과 대처 방안을 자세히 적어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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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선 밑바닥에 물이 찼다는 걸 핑계로 곡식을 버리려는 사례가 나올 것이니, 조운선이 침몰당하거나 화물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있던 것이 아니라면... 수송하는 세곡의 5푼(5%) 이상의 손실이 났을 경우, 조운선의 선장과 그 선박이 소속된 고을의 수령을 문책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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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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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율이 5%가 넘지 않게 죽어라 잘 관리하라는 의미와 5% 미만의 뒷주머니는 빼돌려도 봐주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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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세우되, 박봉이라서 횡령이나 탈세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정을 배려하여 만든 규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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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배려해 준 바가 있으니 조운선 선장을 비롯한 이들도 세곡의 5%를 챙기기 위해서, 최대한 안전하면서도 효율적으로 항해하려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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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이 조항은 일종의 상여금 제도처럼 쓰일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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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과 이방원은 능히 그 뜻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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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서 사악한 관리들이 도량형을 속이려 들 수도 있다라... 이것도 참 일리가 있는 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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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쓰이는 됫박은 관아별로 그 용량이 미묘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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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성종 이후 신설된 제도인 암행어사 제도의 암행어사가 들고 다니는 물건 중에는 '유척'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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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어사들은 이 유척을 써서 관아에서 쓰는 됫박의 용량이 비정상인지 정상인지를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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됫박 크기가 좀 큰 게 뭔 별거 인가 싶지만... 조선에서 주로 쓰는 됫박 하나면 대략 1.8kg의 쌀이 들어가는데, 관아에서 세금을 더 많이 걷겠다고 2.4kg 정도의 됫박을 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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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을 징수할 때 30% 정도를 더 걷게 되는 것이니, 추가 징수한 분량의 세금은 수령과 아전들이 꿀꺽하고 먹어버려도 증거가 전혀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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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암행어사가 유척을 들고 다니며 관아의 됫박을 점검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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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은 이 사실을 떠올리고 상소에 적은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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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소 말미에 적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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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전법이라, 이게 참으로 좋은 법이로구나. 토지를 한 조각도 남김없이 측량할 수 있다니. 참으로 훌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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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문과 관리 출신의 이방원에게 방전법에서 쓰인 수학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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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칙연산과 같은 수학은 이방원도 꽤 잘했지만, 나이 든 전직 문과 급제자 이방원에게 새로운 수학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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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과, 문과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세종은 방전법의 원리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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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흥분한 세종은 속사포처럼 방전법의 위대함을 이방원에게 설명하려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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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면서 처소로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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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호조 판서 황희를 비롯한 6조 판서(문과)들은 방전법에 쓰인 새로운 수학 개념을 경연 시간에 임금을 통해 직접 주입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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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장을 물러 나온 대신들은 한 입처럼 김대붕을 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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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흘러, 방원법의 본격적인 시행이 코 앞에 닥친 즈음... 세종이 김대붕에게 남몰래 입궐할 것을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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