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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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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랑 첫날밤을 치르고서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이제껏 지금 맡은 일만 마치면 사직하겠다는 생각으로 관직 생활에 임했다.

대과 전시에 합격했을 때는 딱 몇 년만 관직 생활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하였고, 진해 현감으로 갔을 때는 딱 현감 임기만 마치고 끝을 내겠노라 생각했다.

지부상소 때도, 방원법 때도 늘 그랬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대로 관직 생활을 마친다 해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계속 남겠지?"

방원법이 시행되면 백성들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윤택해질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체감상 세율 30%~40%를 먹이고, 부자들에게는 체감 세율 10% 미만을 적용하는 지금까지의 세금 체계가 확실히 혁파될 것이기에.

부자들은 세금으로 16%를 내게 될 거고, 가난한 이들의 실질 세율은 10% 미만으로 줄게 될 것이다.

세금이 조정되었다 하여 가난한 이들의 수입이 확 늘어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월 200만 원 벌어서 소작료로 100만 원 뜯기고, 나라에 세금 내고 나면 매달 20만 원 남짓 남던 것이... 앞으로는 세금을 내고 났는데도 60~70만 원이 남게 된다면?

가난한 백성이 체감하는 월수입은 갑자기 3배가 된 것 같을 거다.

조선의 가난한 백성들은 방원법으로 인해 보다 나은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해현 백성들이 시장에 내가 왔다고 잔치를 벌이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시장에서 나물 팔고 짚신 팔아 번 돈으로 자식들에게 하루 세끼 밥을 먹일 겁니다.'

'저는 지금 좀 배가 고픈 걸 참더라도 내년에 땅 한 마지기를 사서 제 땅에서 농사를 지어보려 합니다.'

'요새는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소작 짓는 밭일을 끝낸 뒤에, 산에 들어가서는 약초를 캔답니다. 약초 판 돈으로 뭘 할지 고민하는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그런데 백성에게는 시장을 열어주는 것보다 더 큰 효과로 다가올 방원법이라니 과연 어떻겠는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모여서 임금님 천세를 외쳐댈 것이다.

"이거 한 것으로 내가 해야 할 거는 웬만큼 한 셈인데."

그런데 이번에는 집 오는 길에 봤던 농민의 수고가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

개상이라고 하는 나무토막과 도리깨 같은 효율이 떨어지는 농기구로 타작하던 그들의 모습.

장영실을 시켜서 홀테니 족답식 탈곡기를 만들면 훨씬 쉽고 빠르게 작업을 끝낼 수 있게 될 텐데.

그러면 농사일이 더 편해질 거고, 저들의 삶의 질은 이전보다 개선될 것이다.

여기에 내가 제안하여 장영실이 만든 농기구를 빠르게 보급하고, 전국 곳곳에 수리 시설까지 확충한다면?

조선은 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이앙법이 시작되면 전라, 충청, 경상도에서는 이모작이 가능해져 식량 생산이 2배가 될 것이고.

다른 지역은 이모작까지는 안 되지만 벼 수확량이 늘기에 식량 사정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다.

더 나아가 잉여 노동력이 생기게 되어 공업, 상업까지도 발달하게 될 것이다.

"나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고향에서 편히 지내는 나는 늘 이 생각을 반복할 거다. 계속 후회하며 살게 될 거라는 말이다.

그럴 바에야 조금 더 구르는 게 낫지.

더 나아가서 겨울이 앞에서는 누구보다 멋진 남자로 있어야 하니까...

마음의 정리를 끝낸 나는 곧장 복직하겠다는 상소를 올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조선을 위해 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힘들어서 못 해 먹을 것 같으면 이번처럼 사직상소 내고 낙향... 하면 되니까.

내가 막말로 뭔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설마 세종대왕님이 황희 부려 먹듯이 날 부려 먹기야 하겠어?

"아, 그리고 대동법이 시행되었을 때 사악한 수령들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유의해야 할 점을 적어 보내드려야겠지."

대동법이 아주 이로운 법이긴 하지만, 허점을 파고들어 이용하여서 나쁜 짓을 할 놈은 세상에 널렸기에.

세금이라는 건 올바르게 걷고, 새는 것 없이 중앙으로 올라가야만 의미가 있는 것인데.

조운선 일부러 가라앉히기, 쌀 됫박 크기 일부러 큰 거 쓰기, 서류 조작하기, 부자들의 땅 숨기기 등등...

이런 방법들로 절세가 아닌 탈세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지.

"......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

이방원은 믿고 있었다.

집현전 수찬 김대붕이라는 자는 날 때부터 종묘사직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병에 걸린 충신이라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진해 현감으로 있을 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선물'을 제외한 뇌물을 하나도 안 먹을 이유가 없을 뿐 더러...

집현전 수찬으로 있을 때 6조 판서 모두의 총애를 받았음에도 그 어떤 청탁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더 나아가서 사직상소를 내자마자, 방원법의 걸림돌이 될 영의정을 탄핵하는 미친 짓을 할 리도 없고 말이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남자가 미녀를 밝히는 것처럼 김대붕은 '종묘사직'을 위해 헌신하는 일에 환장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임금의 의무는 이런 충신이 원하는 만큼 조선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도야."

세종이 대답했다.

"예, 아바마마."

"임금의 의무가 무엇인지 아느냐?"

"만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 말이 옳다. 자, 그러면 만백성을 편안하게 하려는 열망에 몸이 달아올라 견디지 못하는 신하가 있다면 어찌해야겠느냐? 나는 그 간곡한 바램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임금으로서 책무를 게을리하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모든 신하들을 이공계 박사과정 대학원생 굴리는 것처럼 일하게 만드는 악덕 노예주, 아니 성군 세종대왕이 답했다.

"소자도 아바마마와 같은 생각이옵니다. 김대붕과 같은 유능한 충신이 그 뜻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백성들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음에도 소자가 게을러서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김대붕이라는 사람을 볼 때, 가장 웃긴 것이 바로 이 점이었다.

자신은 만고의 충신이 아니요 이기적인 한량 지망생이라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를 만고의 충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철퇴를 맞아 머리가 납작해져서 세상을 하직한 류정현마저 그를 간신이라고 부를지언정, 사리사욕에 절은 인간이라 생각한 적은 없을 정도니 할 말다한 것이다.

"그 말이 옳다. 그리고 김대붕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탄핵당해 마음이 상했을 뿐 더러 혹여 자신이 현직에 있으면 너나 나에게 누가 될까 하는 생각으로 사직서를 내었을 때. 너는 그의 부모에게 김대붕을 타일러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를 스스로 놓아버리지 않게 종묘사직을 위해 복귀하도록 잘 타이르라 했었지."

그리고 김대붕이 낙향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가 올린 상소문은 참으로 이방원과 세종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였으니.

낙향해서 좀 쉬고 오라는 의미로 사직상소를 잠시 받아준 것인데, 어찌 그리 기특하게도 자기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방원법 시행 시 발생할 탈법 사안들과 대처 방안을 자세히 적어준 것인지.

"조운선 밑바닥에 물이 찼다는 걸 핑계로 곡식을 버리려는 사례가 나올 것이니, 조운선이 침몰당하거나 화물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있던 것이 아니라면... 수송하는 세곡의 5푼(5%) 이상의 손실이 났을 경우, 조운선의 선장과 그 선박이 소속된 고을의 수령을 문책하여야 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손실율이 5%가 넘지 않게 죽어라 잘 관리하라는 의미와 5% 미만의 뒷주머니는 빼돌려도 봐주겠다는 것.

원칙을 세우되, 박봉이라서 횡령이나 탈세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사정을 배려하여 만든 규칙이다.

이렇게 배려해 준 바가 있으니 조운선 선장을 비롯한 이들도 세곡의 5%를 챙기기 위해서, 최대한 안전하면서도 효율적으로 항해하려 애쓸 것이다.

하면 이 조항은 일종의 상여금 제도처럼 쓰일 수가 있는 것이다.

세종과 이방원은 능히 그 뜻을 알아봤다.

"더 나아가서 사악한 관리들이 도량형을 속이려 들 수도 있다라... 이것도 참 일리가 있는 말이로구나."

조선에서 쓰이는 됫박은 관아별로 그 용량이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성종 이후 신설된 제도인 암행어사 제도의 암행어사가 들고 다니는 물건 중에는 '유척'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암행어사들은 이 유척을 써서 관아에서 쓰는 됫박의 용량이 비정상인지 정상인지를 점검했다.

됫박 크기가 좀 큰 게 뭔 별거 인가 싶지만... 조선에서 주로 쓰는 됫박 하나면 대략 1.8kg의 쌀이 들어가는데, 관아에서 세금을 더 많이 걷겠다고 2.4kg 정도의 됫박을 쓴다면?

세금을 징수할 때 30% 정도를 더 걷게 되는 것이니, 추가 징수한 분량의 세금은 수령과 아전들이 꿀꺽하고 먹어버려도 증거가 전혀 남지 않는다.

그래서 암행어사가 유척을 들고 다니며 관아의 됫박을 점검하였던 것이다.

김대붕은 이 사실을 떠올리고 상소에 적은 것이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상소 말미에 적혀 있었는데.

"...... 방전법이라, 이게 참으로 좋은 법이로구나. 토지를 한 조각도 남김없이 측량할 수 있다니. 참으로 훌륭해."

순수 문과 관리 출신의 이방원에게 방전법에서 쓰인 수학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사칙연산과 같은 수학은 이방원도 꽤 잘했지만, 나이 든 전직 문과 급제자 이방원에게 새로운 수학이라니.

그러나 이과, 문과의 모든 지식을 섭렵한 세종은 방전법의 원리를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하여, 흥분한 세종은 속사포처럼 방전법의 위대함을 이방원에게 설명하려 했으나...

이방원은 갑자기 몸이 좋지 않다면서 처소로 돌아가 버렸다.

후에 호조 판서 황희를 비롯한 6조 판서(문과)들은 방전법에 쓰인 새로운 수학 개념을 경연 시간에 임금을 통해 직접 주입 받게 되었다.

경연장을 물러 나온 대신들은 한 입처럼 김대붕을 욕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방원법의 본격적인 시행이 코 앞에 닥친 즈음... 세종이 김대붕에게 남몰래 입궐할 것을 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