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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uthored-By: Claude Opus 4.5 <noreply@anthropic.com>
2025-12-14 21:31:57 +09:00

211 lines
12 KiB
Markdown

어색한 침묵을 깨는 겨울이의 부름에 나는 즉각 응답했다.
"그래."
이상하리만치 빨리 튀어나온 대답에 겨울이가 피식 웃었다.
하긴, 우리 둘은 어엿한 어른이고 혼인식도 한 사이인데 첫날 밤 치른다고 남자라는 놈이 이렇게 굳어 있으니 내가 좀 웃기기는 하겠지.
내가 22살, 겨울이는 올해 딱 20살이 된 것인데 막상 멍석을 깔아주니 버썩 얼어있는 내 바보 같은 꼴이라니.
그래도 겨울이의 웃음 때문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방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
그래, 오늘 첫 합방을 마치고 나면 앞으로도 꾸준히 해나갈 일인데 아무리 모솔이라지만 이렇게 뻣뻣하게 굳어 있으면 쓰나.
원래 남자라 하면 몰라도 아는 척 허세를 부려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자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첫날 밤을 앞둔 지금 같은 때 말이다.
"이제 좀 긴장이 풀리셨나요?"
"덕분에 좀 풀렸어. 첫날 밤을 맞이한 신랑이 망부석처럼 굳어만 있으니 좀 우스꽝스러웠지?"
이미 이미지 트레이닝만큼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수천, 수만 번을 해봤다.
'나는 잘할 수 있다.'
마음속으로 각오를 다지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내뱉기를 수차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나니 감당 안 될 정도로 두근거리던 심장 박동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래, 평정심을 유지하자. 내가 아는 것처럼만 하면 최소 실패할 일은 없다.
양구에 살 때 친하게 지냈던 양반댁 어느 도령처럼 너무 흥분해서 쌍코피가 터지는 바람에 분위기가 다 죽어 버려서 첫날 밤을 못 치르는 등의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겠지.
"나리, 제가 따르는 술 한 잔 받아주세요."
겨울이가 조심스럽게 내 잔에 술을 따랐다. 조선이나, 한국이나, 아니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첫날밤 치르기 전에는 '술의 기세'를 타는 게 통상적인 일이니...
우리 앞에도 당연스럽게 온갖 화려한 안주와 독한 술이 담긴 병이 놓여 있다.
향기를 맡아보니 이건 국화주 같은데...
"고마워."
나는 망설임 없이 겨울이가 따라준 국화주를 마셨다.
국화의 향과 맛 덕분에 술술 넘어가지만, 한 잔만 마셔도 알코올이 확 느껴지는 걸 보니...
이거 한 병 다 마시면 큰일이 날 것 같다. 첫날 밤에 이불에 토를 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긴장한 만큼 겨울이도 긴장이 되는 건지... 내 앞에서는 이제껏 한 잔의 술도 마시지 않던 겨울이가 국화주를 같이 마셨다.
술에 약한지 그녀의 얼굴은 금방 벚꽃잎처럼 연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우리 둘은 침묵 속에서 몇 번이고 같이 술을 마셨다. 점점 몸이 달아오르고, 욕망을 한시라도 빠르게 풀어놓고 싶어졌을 때...
머릿속에 연애 고수라 자칭했던 형님이 예전에 해준 말이 떠올랐다.
'처음인 여자한테는 무조건 달콤한 말부터 해줘라.'
'첫 경험을 망친 여자는 평생 남자에게 거북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남자는 육체적 쾌락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여자는 관계를 맺기 전 경험한 모든 것에 더 중점을 둔다.'
그리고 어떤 빨간 버튼 어플리케이션에서 나오던 의사 선생님도 말했었다.
'육체적 관계를 맺는 건 정서적 교류의 연장선상이자 완성이다.'
육체관계에 있어서도 남자 혼자서 욕구를 만족스럽게 풀었다 하여 잘했다 하는 게 아닌 것이.
사랑이라는 건 한쪽이 만족한다 하여 제대로 가고 있다 할 수는 없는 거니까.
"...... 겨울아."
"네, 나리."
"나는 네가 좋다."
여자로서 첫 경험을 하게 된 것으로 인해 생긴 부담감과 긴장감 거기에 취기까지 더해져서 새빨간 사과처럼 붉어진 겨울이의 얼굴.
그녀의 얼굴은 이제 빨간색 페인트를 연상시킬 정도로 빨갛게 변했다.
나는 겨울이의 손을 꽉 잡았다.
"우리 둘이 처음 만난 건 만덕이 억지로 소개 시켜 준 자리이긴 했지만, 나는 너를 처음 본 순간에 바로 사랑에 빠졌다."
...... 나도 내가 뭔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딴 식으로 첫날 밤 치르기 전에 고백하는 미친 새끼가 나 말고도 있을까?
솔직히 술기운 때문에 내가 이런 말을 하긴 하는 건데...
술에서 깨고 첫날 밤의 흥분이 가시고 나면, 나는 내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서 종종 이불을 걷어차게 될 거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왜냐하면 긴장 가득했던 겨울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걸 내가 봤으니까.
"진해 현감으로서 임무를 마치고, 성은을 받아 집현전 수찬이 되었을 때 면신례는 어떻게 안 치르고 넘어갔다만... 류정현 그 작자가 나를 미워하여 핍박할 때나, 6조 판서 대감들이 나에게 엄청난 업무를 안겨주어서 과로로 고생하던 때나... 네가 내 옆에서 위로해 준 덕분에 큰 힘을 얻었었다."
"그러셨나요..."
"내 집에 와서 안 살림을 도와주면서, 일에 지쳐 돌아온 나를 맞아주는 네 생각을 할 때면 힘이 많이 났었다. 그리고 네 앞에서는..."
이건 좀 많이 부끄럽다. 내가 하기는 하는데 하면서도 좀 많이 부끄럽다.
조선 시대 딱딱한 선비라면 절대 안 할 말이겠지만... 어쨌든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겨울이에게 다가가고 싶다.
겨울이가 비록 첩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그리고 부부라는 게 뭐야? 힘든 게 있으면 같이 짊어지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즐거워해 주는 그런 거잖아.
'솔직한 게 최선이겠지?'
"사실 네 앞에서는 조선 안의 그 누구보다 멋진 사내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열심히 할 수 있었다."
겨울이는 말로 대답하는 대신에, 내 마음을 받아들이겠다는 긍정의 의미를 담아서 나의 손을 마주 잡아 주었다.
"네 앞에서만큼은 천하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될 테니, 너도..."
"예, 나리. 저도 나리 보시기에 천하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가 될 테니, 너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여자가 되어달라.
내가 이전에 자주 들었던 노래 가사의 내용이다.
어떤 파란색 토끼랑 빨간 머리가 인상적인 여자 해적이 불렀던 결혼식 노래에서 나온 이야기. 우연히, 정말 우연히 들은 가사지만 참 로맨틱하다 생각했지.
그러면서 그 로맨틱한 가사를 부끄럽게도 내 입이 내뱉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리만을 위해서 매일 화장을 하고, 나리만을 생각하며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할 것이며, 나리께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실지 생각하여 식사를 준비하고, 나리의 고단함을 풀어드리기 위해 항상 노력할 것입니다."
"벼슬도 내려놨는데, 내가 고단할 일이 뭐가 있겠어?"
...... 벼슬을 그만두었으니 이제 더 이상 머리 썩혀가면서 집현전 망부석으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나는 겨울이랑 집에 틀어박혀서 쉬고 놀고 그러기만 하면 된다.
첫날밤을 무사히 치르고 난 다음부터는 즐겁게 운우지락을 계속해서 나누면서, 쌓아놓은 재산을 쓰면서 편히 살기만 하면 되는 건데...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는 관직 생활에 관한 잡생각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것 때문에 기껏 좋아진 분위기가 깨지려는 때.
겨울이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잡고 있던 손을 놓은 뒤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리께서는 종묘사직과 백성을 위해 그 어떤 사리사욕도 없이 헌신해 오셨습니다."
"그건 그냥..."
차마 내 입에서 그 말이 안 나왔다. 겨울이한테 까지 숨길 생각은 없는데.
나는 과거에 급제만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겨울이 같은 미녀 아내와 조용히 백년해로하면서 사는 게 꿈인 한량 지망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겨울이는 나에게 실망할까? 아니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까?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가 되겠다 방금 말해놓고 바로 이어서 백수가 꿈이라고 말하는 게 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만 정작 내가 '사직하고 편히 살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는 것은...
내 진심도 그게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진해에 있을 때 아버님께서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현감 나리들은 무엇보다 품계 오르는 것을 중히 여겨, 임기 중에도 상급자들에게 보낼 선물 챙기는 일에 집중하느라, 백성 돌보는 것을 뒷전으로 돌리기가 십상이다. 그러나 나리께서는 백성을 위해서 승차도 포기하시고, 직접 장시에 나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만 집중하셨다. 부정한 재물은 단 하나도 취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백성들이 배곯을까 그 일만을 걱정하셨다고 말입니다."
나는 공무원이라고 선공후사를 위해,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나랏일에 우선 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라님의 녹을 받는 관리라면 백성들이 굶지나 않는지 가난으로 힘겹지나 않은 지를 항상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출세할 기회를 날려 먹는 일이 생긴다 해도 말이다.
전생에서도 나는 출세와 연금, 행정고시 패스하고 정년까지 버텨서 대기업 임원으로 스카웃 되어 떵떵거리며 노후 자금 왕창 모으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그러다 보니 참... 남들에게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한직으로 쫓겨났었지.
후회는 없지만, 지금 와서도 나는 그 시절 그 버릇을 못 고쳤다.
"여기 오면서도 보리타작하는 백성들이 고되게 일하는 걸 보시며, 어찌 도울지만을 고민하셨잖아요."
"...... 그건...."
"소녀는 나리께서 원하시는 뜻을 펼치셨으면 좋겠습니다. 나리께서 원하신다면 양구현에서 편히 사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겨울이가 내 손을 끌어다 자기 가슴에 얹으면서 말했다.
"소녀가 한양의 나리 댁에 처음 방문했던 날, 진해현 백성들이 나리께 직접 여러 음식을 바치며 기뻐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지으셨던 그 미소를 말입니다. 그때 나리께서는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 밝은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 저 말을 듣고 있으니 왜 복직이 마려운 거지?
늘 사직하고 귀향할 것을 꿈꿨지만 진짜 내 속마음은 복직하여 백성들을 더 돌봐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내가 좀 힘들더라도 힘들게 살아가는 백성들 돌봐주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힘든 거 뻔히 알면서도 팔짱 끼고 남은 평생을 살아간다면 과연 나는 맘 편히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러면 백성의 고단함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을 텐데.
내가 관직에 나가 고생을 감수한다면 백성의 삶이 달라질 건데 말이다.
"소녀는 나리께서 행복하시기만을 바랍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결정하였다.
...... 그래,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말이다.
내가 결심을 굳혔을 때 겨울이가 조용히 저고리의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
으아... 이건 사극에서 맨 날 봤던 신방의 첫날 밤 장면이 아닌가?
나와 겨울이는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못 일어났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비슷한 설득을 내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