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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임금과 대신들이 모여서 국정을 논하는 것을 조회라고 부른다.
이 조회 자리에는 보통 세종과 삼정승, 좌, 우찬성과 참찬, 6조 판서와 같은 이들이 모여서 나라의 일을 논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오늘은 조금 특별한 참가자가 있었는데.
그는 검은색 곤룡포를 입고서 옥좌 바로 밑에서 불편한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고 있는 남자, 태종 이방원이었다.
재상들은 어떤 안건 때문에 태종이 조회에 참석한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딱 하나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으니.
황희와 조말생이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어디에서 누가 고려 망령 같은 짓을 했나 봅니다, 대감.’
‘그러게 말입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이 피바람이 불 것 같습니다.’
저 둘의 눈빛 대화가 한창일 때, 세종이 엄숙한 목소리로 도승지를 찾았다.
“도승지.”
“예, 전하.”
“도승지는 전 집현전 수찬 김대붕이 올린 상소를 읽도록 하시오.”
김대붕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황희를 비롯한 재상들은 온몸의 털이 쭈뼛 곤두서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사직한 김대붕과 검은색 곤룡포를 입고 나타난 철퇴왕 이방원이라니.
딱 봐도 좋은 조합이 아니다.
이는 무언가 흉참한 일, 마치 참게와 곶감을 동시에 먹는 수준의 끔찍함을 연상시켰다.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도승지는 서둘러서 상소를 읽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무려 방원법을 반대하는, 아니 정확히는 반대할 수밖에 없는 족속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상세히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흉년이 들면 전하와 백성들의 마음에는 근심이 가득하여, 어찌해야 굶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고리대금업을 하는 이들은 흉년이 들면 귀한 술을 꺼내 축배를 들면서, 장차 고리대로 벌어들일 엄청난 재물을 기대하며 마냥 즐거워합니다. 저들에게는 흉년이야말로 돈 벌만한 때요, 재산을 늘리기 좋은 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의 상소 내용을 들은 류정현은 온몸을 감싸는 불길한 기운에 등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조선에서 고리대금은 합법이지만, 조선의 법은 임금의 기분에 따라 적용되는 면이 있으니까.
저기 서 있는 황희와 조말생 하다못해 맹사성까지도 다들 큰 비리에 한 번씩 연루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을 잘하는 능력을 인정받아 풀려난 전적이 있다.
물론, 자신은 황희보다 조금 더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재상이고 ‘법에 안 걸리는 선’에서 치부하였기에.
지금까지는 사헌부가 탄핵을 하든 말든 ‘나는 법을 어긴 적이 없다.’라며 당당하게 권력을 누려 왔지만...
‘이건 몹시 위험하다!’
“풍년에는 백성들 집 창고에도 곡식이 가득 차서, 춘궁기가 와도 고리대를 놓는 이들에게 쌀을 빌리지 않아도 되지만. 흉년에는 당장 먹고 죽을 곡식도 없기에 춘궁기가 되면 고리대를 놓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쌀을 빌리게 됩니다. 흉년에 쌀을 빌리면 장리(이자율 50%), 갑리(이자율 100%)로 갚아야 하니, 이 얼마나 크게 남는 장사가 되겠습니까?”
이방원과 세종의 얼굴이 더욱더 굳어졌다.
이미 이 상소를 읽고 왔기에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다시 들으니 또다시 분노가 차올라 속이 뒤틀렸기 때문이었다.
임금으로서 평생을 조선과 조선에 사는 백성을 위해 일하고 헌신하면 무엇하겠는가?
고리대금이나 놓는 기생충들이 백성들을 다 죽이고 있는데 말이다.
“소신이 고리대를 빌린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보다 더 참혹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고리대로 쌀을 빌리면, 내년에는 더욱 가난해지기에. 결국에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밭이 있는 자라면 밭을 팔아야 하고, 물려받은 밭이 없는 자는 자기 딸이 노비로 끌려가 양반의 노리개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종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자기가 낳고 길러 한없이 소중한 자식이 노비가 되고, 늙고 추한 양반의 노리개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조이는 것처럼 아파 절로 눈물이 솟구친 것이다.
조선의 법으로는 이를 규제하지 않았으나, 이는 왕권이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고리대를 놓는 이들은 막대한 재물을 모읍니다. 하여, 저들은 언제나 백성들이 가난하고 궁핍한 처지에 있기만을 원합니다.”
김대붕은 백성의 행복을 진정으로 원했다.
그래서 이 상소를 쓴 것이다.
더불어 딴에는 이 상소를 써서 영의정을 날리게 되면, 자신은 조정에서 영의정을 썰어 버린 문제아로 간주 될 것이니 ‘영원한 자유(사직)’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하면서 말이다.
“소신은 고려를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리대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쥐어짜며 괴롭혀 온 저들이야말로 고려의 잔당이요 망령이라 확신하옵니다.”
고려의 잔당, 망령이라는 표현이 나오자, 신하들 모두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 상소는 드디어 단 한 사람, 김대붕이 진정으로 치워 없애려 작정한 인물에게로 초점을 맞췄다.
“무능한 소신이 태상왕 전하와 주상 전하의 성은을 받들지 못하는 불충을 저질러 사직을 청하면서, 낙향을 준비하던 중 흉측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무엇이고 하니, 영상 대감께서...”
김대붕의 상소에는 갑석의 이야기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먹을 게 없는 갑석이 류정현에게 곡식을 빌렸고, 이듬해 갑자기 오른 소작료 때문에 고리대를 갚지 못하였더니. 류정현의 하인들이 나타나 명문을 들이밀며 자기 딸을 노비로 끌고 갔다는 이야기.
더 나아가 류정현은 자기 하인들을 전국 각지에 배치해 놓고 고리대를 놓고 있으며. 고리대 일을 잘하는 이에게는 역승 자리를 주고 임기를 채우게 되면 무관 자리까지 줬다는 사실을.
이 대목에서 세종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 가는 소리가 아주 커서 편전에 있는 모두가 들을 정도로 말이다.
동시에 이방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세종에게 의미심장한 시선을 보냈다. 네가 해야 할 말을 하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 시선의 의미를 파악한 세종이 옥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 영상.”
“예, 전하.”
“영상은 고려의 신하인가, 아니면 조선의 신하인가?”
류정현의 얼굴과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세종의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소신은 조선의 신하이옵니다, 전하.”
세종이 고개를 저었다.
“과인이 곰곰이 생각했을 때, 경은 조선의 신하가 아니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소신은 종묘사직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왔습니다. 백성들에게 걷는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절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순자께서 논하신 부국강병의 길이기에 소신 그리 한 것이옵니다.”
김대붕이 등장하기 전에만 해도 조선의 경제정책은 일단 세금 징수액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였다. 세금을 적게 거두면 거둘수록 백성이 그만큼 잘 먹고 잘살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조선에서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그 정책에 다들 동의하였지만...
지금은 세금을 대책 없이 적게 거두는 것이 백성을 죽이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진해 현에서 김대붕이 보여준 시장 정책이 가장 대표적인 예시였다.
세금을 올렸으면 백성이 궁핍해져서 원성이 올라와야 하는데, 오히려 김대붕이 최고라면서 천인소를 올리고 송덕비까지 세우는 걸 보면서 이제는 다들 잘못된 상식을 버리게 된 것이다.
“조선은 백성을 품어주는 나라네. 그래서 세금을 줄여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자 한 것이다. 세금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진정 백성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였기에 그리했었는데...”
세종은 류정현을 쳐다보면서 피비린내가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신하들은 세종에게서 이방원을 떠 올렸다.
세종이 입고 있는 곤룡포는 분명히 빨간색인데, 입고 있는 옷 색깔이 순간 검은색으로 변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김대붕은 세금을 적절하게 걷는 것이 조선과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했네. 그것은 영상이 여태까지 주장해 온 정책이 탁상공론이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지. 그럼에도 과인은 경의 충심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네. 고리대를 한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그건 뭐 다들 하는 일이니 적당히 덮으려 하였는데.”
세종은 류정현이 자기 장인이었던 심온을 죽이는 데 앞장선 것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천인으로 강등시키라는 그의 제안도 외척의 발효를 막기 위한 충심의 일환이라 여겼다.
그러나 과도한 충성과 반역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고...
방원법의 시행을 이리저리 반대하면서 계속해서 지체시키는 그의 모습에서... 충신과 간신 사이 어딘가에 있던 류정현에 대한 세종의 평가가 김대붕의 상소로 확정 지어졌다.
나라를 망치는 간신, 권신.
더 나아가서 조선을 고려와 같이 권문세족이 다 해 먹는 나라로 만들려는 작자.
“전국 각지에 경의 노비가 퍼져있고, 고리대 잘 걷는 이들은 역승으로 임명하며 나중에는 무관 벼슬까지 주었다고 하니.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건 데 이것이 반역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주 고려의 권문세족이야, 권문세족.”
류정현이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경이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방원법을 반대하고 지체시킨 행보도 결국에는 고리대를 놓는 것이 힘들어질 것 같으니 그리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를 않는다.”
“전하, 신은 그저 조선을 위해서.”
세종은 그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내금위는 무엇 하느냐?”
“예, 전하.”
“류정현을 의금부에 하옥하고, 이번에 방원법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린 작자들과 그가 연관이 있는가를 엄히 문초하여 밝히도록 하라.”
류정현이 질질 끌려 나갔다.
“의금부에서는 방원법을 가로막으려 한 저 작자를 대역죄인으로 간주하고 엄히 문초하라.”
그리고 류정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리대를 놓아 악랄하게 치부해 온 사실과 방원법을 반대하기 위해 상소를 조작한 죄의 전말이 드러났다.
**
문초가 끝난 직후, 류정현과 김점은 온갖 고문에 의해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로 한성 시전으로 끌려 나왔다.
역모와도 같은 죄로 취급하겠다는 세종의 어명 때문에 연좌죄도 적용되어, 그 집안의 3족 중 15세 이상의 남자도 다 같이 말이다.
세종은 간결하고 빠르게 이 놈들이 왜 역적인지를 읊고나서 선포했다.
"역적 류정현과 김점은 전조 고려의 권신들과 똑같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었다. 하여, 저 둘은 능지처참하고(조선에서는 거열형을 능지형이라 부름), 저 둘의 집안 3족의 15세 이상 남자는 참형에 처하여 국법을 바로 세울 것이다."
저 모습을 이방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봤다.
대화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도 좋지만, 선을 넘은 자들은 엄히 벌해야 질서가 서는 법이니.
고려의 망령을 상대로 거열형을 집행하는 것은 실로 바람직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형을 집행하라!"
이날, 수십 명이 넘는 이들이 처형당했다.
그러나 한양 백성 누구도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모두가 기뻐했다.
고려의 망령이 퇴치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