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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현, 이 쓰레기 같은 놈은 조선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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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직이 조금 미뤄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쓰레기 같은 놈은 반드시 조선에서 치워버리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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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앞에서 울먹이고 있는 가장의 호소를 듣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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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나리... 쇤네는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 굶겨 잡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춘궁기에 영상 대감에게서 쌀 1섬을 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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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군.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어려웠었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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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작료를 떼고 공납이니, 군역이니 하는 세금까지 내고 나면 진짜 집 안 쌀독에 남는 쌀이 하나도 없습니다. 쇤네도 고리대는 정말이지 빌리고 싶지 않지만... 빌리지 않으면 당장 제 처자식이 굶어 죽을 판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올해 1섬을 빌리면 다음 해에 1섬 다섯 말로 갚아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잘 알지만... 이 못난 아비만 바라보며 굶고 있는 자식들을 어떻게 나 몰라라 외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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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들의 주 고객층은 부자가 아니다. 몹시 가난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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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유용할 돈 100만 원이 없어서 공과금, 대출금이 밀리고, 좁은 집 월세조차 못 내기에 언제 쫓겨날까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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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바뀌어도 사람 사는 세상의 근본은 비슷하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남자 역시 가족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고리대를 빌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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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해를 버텨오다가, 올해 지주 나리께서 갑자기 소작료를 5할(50%)로 올리셔서. 그 바람에 영상 대감께 갚아야 할 쌀을 갚지 못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영상 대감께서 부리는 종들이 어느 날 제 집을 찾아와 다짜고짜 제 딸 언년이를 데려가 버렸습니다. 올해 갚아야 할 쌀을 내지 못하였으니, 쌀을 빌릴 때 작성한 명문(계약서)에 따라서 제 자식 중 맏이인 언년이를 노비로 데려가는 거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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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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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나, 한국이나 성인인 남자는 부모님 장례식 같은 게 아니면 어떻게든 안 울고 버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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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이 망할 위기에 처해 죽을 것같이 힘들어도 남 앞에서는 우는 모습을 안 보이려 하는 게 보통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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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 무릎 꿇은 남자는 이제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며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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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네는 쌀을 언제까지 얼마 갚으면 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명문에 그런 말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제 딸년이 영상 대감 댁 노비가 된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만, 이 못난 아비는 관아에 고변하기는커녕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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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에서는 류정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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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재정 전문가(예산을 마구잡이로 삭감하는 게 정책의 전부기는 하다)이지만, 백성들을 상대로 너무 심하게 고리대금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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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 독했으면 ‘백성들이 웬만해서는 영의정에게 돈을 빌리려 하지 않는다. 원성이 자자하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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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미친놈은 태종 이방원이 죽고 나서 효령대군이 차명계좌(자기 휘하 종)를 써서 류정현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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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현은 효령대군이 돈을 제대로 안 갚는다 하여 차명계좌로 쓰인 종의 집을 싹 다 엎어버리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러고도 원 역사에서 안 죽은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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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독종 중 독종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무자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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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 글 못 읽는 사실을 이용해서 자식을 노비로 만든다는 조항을 넣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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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선에서는 빚을 못 갚으면 노비로 데려가는 게 합법이라서 관에 고발조차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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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 류정현. 너는 조선을 위해 꼭 좀 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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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나리. 쇤네를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건 잘 알지만, 제발 제발 소인을 좀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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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는 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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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던 자식이 병에 걸려 죽어도 부모는 남은 평생 그 자식을 못 잊고 가슴에 담는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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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사기를 당해서 자신의 어린 딸이 노비로 끌려가 다시는 얼굴도 보지 못할 수가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사람 새끼면 저래서는 안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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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대가 없이 도와주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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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없이 선행을 베풀면, 요행을 바라는 다른 거지들까지 우르르 달려들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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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까지 다 감당할 수는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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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짜로 도와줄 수는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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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고 앉아 대성통곡을 하던 눈앞의 남자, 갑석이 갑자기 머리를 바닥에 탕탕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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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간절한지 이마가 깨져 피가 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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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딸년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쇤네보고 죽으라 하셔도 따를 것이 옵니다.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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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삯은 넉넉히 쳐줄 테니, 앞으로는 자네 가족들 다 우리 집에서 일하도록 하게. 그거면 족하네. 소문은 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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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사람, 특히 자식을 잃을 위기에 놓인 부모에게 손을 뻗어주면 은혜를 받은 이는 그걸 죽어도 못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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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갑석을 도와주면, 갑석은 날 위해 말 그대로 죽음도 꺼리지 않을 거다. 나에게는 장차 큰 도움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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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나에게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한 상황이니 잘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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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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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몇 섬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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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섬 반이면 족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언년이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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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니라 너와 네 처자식이 배불리 먹으려면 쌀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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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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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일하는 이는 누구도 배를 곯지 않지. 갑석이 네 자식들도 가끔은 허드렛일로 도와야 할 텐데, 그러면 우리 집 식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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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에 갑석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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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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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돌쇠랑 같이 가서 영상 대감에게 진 빚을 갚고, 언년이부터 찾아오게. 그리고 곡식을 2섬 정도 더 줄 터이니, 이제부터는 처자식을 배불리 먹이도록 하게나. 그리고 자네가 내일부터 당장 해줘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자네는 자네처럼 영상 대감에게 억울한 일 당한 이들의 사연을 모아오는 일을 해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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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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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가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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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친 나는 돌쇠를 불러 갑석과 같이 류정현의 집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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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류정현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한 뒤에, 사랑방에 들어가 상소를 적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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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지화문, 설참이신도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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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사람을 베는 검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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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소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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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많은 사람을 죽게 했던 예송논쟁, 숙종 시대의 환국은 모두 단 하나의 상소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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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이 장남이라면 상복을 3년 입어야 하는 데, 효종은 장남이 아니니까 1년만 입는 게 맞지유? 정통성이야 떨어지지만 이게 팩트잖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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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소 하나에 조선은 서인, 남인으로 나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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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리는 상소는 누군가, 정확히 말한다면 류정현을 비롯 백성을 착취하는 나쁜 놈들을 뿌리 뽑기 위한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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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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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방원법도 제안하였고 그 뒤에 호조에서 밤낮없이 굴러서 그 기틀까지 다 짜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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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마지막으로 은퇴하기 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할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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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법을 혐오하여 어떻게든 훼방 놓으려는 고려의 망령들, 조선 백성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개같은 자들을 썰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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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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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를 다진 후에 붓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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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수도 없이 잡고 쓰는 붓인데,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쓴다 생각하니 붓의 무게가 몹시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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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집현전 수찬 김대붕이 돈수재배(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는 것)하고 아뢰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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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 전하께서 전국에 방원법을 반포하시어 널리 쓰신다면 만백성은 태평한 세상이 왔다며 기뻐할 것이고, 배를 주리는 일 또한 없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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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관자의 말을 떠올려보니, 방원법을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전하께서 어린 백성들에게 새로운 하늘을 열어주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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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건 경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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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난하지만 부단히 노력하면 내일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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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땅 한 조각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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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힘써 일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옷과 음식을 처자식에게 줄 수 있다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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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만드는 것이 바로 위정자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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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대동법이 실로 만백성을 이롭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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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개입한 덕분에 방원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수백 년 먼저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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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신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선에서 고리대를 하는 자들은 태상왕 전하와 주상 전하의 거룩한 뜻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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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경제가 불황이면 불황일수록, 취업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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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자면 사채업자, 보이스 피싱, 사기꾼, 범죄 조직 같은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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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은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등을 쳐서 돈 버는 놈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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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불황이 닥치면 녀석들 수입은 확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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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류정현이 대표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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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고리대라는 것은 가난한 백성이 어떻게든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자, 눈물을 머금고 쌀과 돈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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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이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게 되면, 결국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것처럼... 백성들도 처자식을 살리기 위해 고리대를 빌리게 되면 결국에는 이를 갚지 못해 고리대를 놓은 이의 노비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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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대를 하는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치부하여 왔는데, 방원법이 실시되면 백성들의 사정이 나아져 더 이상 고리대를 빌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즉, 저들은 치부의 수단을 잃게 될 것이 옵니다. 그걸 고리대 하는 이들이 원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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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방원법에 반대하는 놈은 고려의 잔당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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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리대를 좋아하는 재상은 조선에 한 명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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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류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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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반드시 죽이고 낙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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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원법을 시행하려면 확실한 본보기가 필요할 거 같은데, 이 인간이 제격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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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는 류정현의 각종 만행까지 싹 다 적어서 상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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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붕의 상소는 조정을 뒤집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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