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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4 21:31:5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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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현, 이 쓰레기 같은 놈은 조선에서 살아 숨 쉬는 것만으로도 죄다.

내 사직이 조금 미뤄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 쓰레기 같은 놈은 반드시 조선에서 치워버리고 가야겠다.

지금 내 앞에서 울먹이고 있는 가장의 호소를 듣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고, 나리... 쇤네는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 굶겨 잡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춘궁기에 영상 대감에게서 쌀 1섬을 빌렸습니다.”

“그랬었군. 보릿고개를 넘기기가 어려웠었나 보군.”

“소작료를 떼고 공납이니, 군역이니 하는 세금까지 내고 나면 진짜 집 안 쌀독에 남는 쌀이 하나도 없습니다. 쇤네도 고리대는 정말이지 빌리고 싶지 않지만... 빌리지 않으면 당장 제 처자식이 굶어 죽을 판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올해 1섬을 빌리면 다음 해에 1섬 다섯 말로 갚아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 잘 알지만... 이 못난 아비만 바라보며 굶고 있는 자식들을 어떻게 나 몰라라 외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사채업자들의 주 고객층은 부자가 아니다. 몹시 가난한 사람들이다.

당장 유용할 돈 100만 원이 없어서 공과금, 대출금이 밀리고, 좁은 집 월세조차 못 내기에 언제 쫓겨날까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 사는 세상의 근본은 비슷하니,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남자 역시 가족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고리대를 빌린 거겠지.

"그렇게 몇 해를 버텨오다가, 올해 지주 나리께서 갑자기 소작료를 5할(50%)로 올리셔서. 그 바람에 영상 대감께 갚아야 할 쌀을 갚지 못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영상 대감께서 부리는 종들이 어느 날 제 집을 찾아와 다짜고짜 제 딸 언년이를 데려가 버렸습니다. 올해 갚아야 할 쌀을 내지 못하였으니, 쌀을 빌릴 때 작성한 명문(계약서)에 따라서 제 자식 중 맏이인 언년이를 노비로 데려가는 거라 했습니다."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조선이나, 한국이나 성인인 남자는 부모님 장례식 같은 게 아니면 어떻게든 안 울고 버티려 한다.

집안이 망할 위기에 처해 죽을 것같이 힘들어도 남 앞에서는 우는 모습을 안 보이려 하는 게 보통이고...

내 앞에 무릎 꿇은 남자는 이제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며 울기 시작했다.

"쇤네는 쌀을 언제까지 얼마 갚으면 된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명문에 그런 말이 있을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제 딸년이 영상 대감 댁 노비가 된 지는 이미 오래입니다만, 이 못난 아비는 관아에 고변하기는커녕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실록에서는 류정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유능한 재정 전문가(예산을 마구잡이로 삭감하는 게 정책의 전부기는 하다)이지만, 백성들을 상대로 너무 심하게 고리대금을 벌였다.

오죽 독했으면 ‘백성들이 웬만해서는 영의정에게 돈을 빌리려 하지 않는다. 원성이 자자하다.’는 기록을 남길 정도다.

그리고 이 미친놈은 태종 이방원이 죽고 나서 효령대군이 차명계좌(자기 휘하 종)를 써서 류정현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었는데...

류정현은 효령대군이 돈을 제대로 안 갚는다 하여 차명계좌로 쓰인 종의 집을 싹 다 엎어버리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러고도 원 역사에서 안 죽은 게 신기하다.

그래서 독종 중 독종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무자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백성이 글 못 읽는 사실을 이용해서 자식을 노비로 만든다는 조항을 넣다니.

그래도 조선에서는 빚을 못 갚으면 노비로 데려가는 게 합법이라서 관에 고발조차 못 한다.

대단하다, 류정현. 너는 조선을 위해 꼭 좀 죽어야겠다.

"나리, 나리. 쇤네를 제발 한 번만,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건 잘 알지만, 제발 제발 소인을 좀 도와주십시오."

듣고 있는 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키우던 자식이 병에 걸려 죽어도 부모는 남은 평생 그 자식을 못 잊고 가슴에 담는다는데.

계약 사기를 당해서 자신의 어린 딸이 노비로 끌려가 다시는 얼굴도 보지 못할 수가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사람 새끼면 저래서는 안 되는 거지.

마음 같아서는 대가 없이 도와주고 싶지만.

'대가 없이 선행을 베풀면, 요행을 바라는 다른 거지들까지 우르르 달려들게 되지.'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그런 사람들까지 다 감당할 수는 없는 일.

"...... 공짜로 도와줄 수는 없네."

무릎 꿇고 앉아 대성통곡을 하던 눈앞의 남자, 갑석이 갑자기 머리를 바닥에 탕탕 박았다.

얼마나 간절한지 이마가 깨져 피가 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말이다.

"제 딸년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쇤네보고 죽으라 하셔도 따를 것이 옵니다. 제발 제발 도와주십시오."

"...... 삯은 넉넉히 쳐줄 테니, 앞으로는 자네 가족들 다 우리 집에서 일하도록 하게. 그거면 족하네. 소문은 내지 말고."

간절한 사람, 특히 자식을 잃을 위기에 놓인 부모에게 손을 뻗어주면 은혜를 받은 이는 그걸 죽어도 못 잊는다.

내가 지금 갑석을 도와주면, 갑석은 날 위해 말 그대로 죽음도 꺼리지 않을 거다. 나에게는 장차 큰 도움이 될 거다.

마침 나에게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한 상황이니 잘된 일 같다.

"나리."

"쌀 몇 섬이 필요한가?"

"1섬 반이면 족합니다. 그것만 있으면 언년이를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너와 네 처자식이 배불리 먹으려면 쌀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물은 것이다."

"예...?"

"우리 집에서 일하는 이는 누구도 배를 곯지 않지. 갑석이 네 자식들도 가끔은 허드렛일로 도와야 할 텐데, 그러면 우리 집 식구가 아닌가?"

나의 말에 갑석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집 돌쇠랑 같이 가서 영상 대감에게 진 빚을 갚고, 언년이부터 찾아오게. 그리고 곡식을 2섬 정도 더 줄 터이니, 이제부터는 처자식을 배불리 먹이도록 하게나. 그리고 자네가 내일부터 당장 해줘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자네는 자네처럼 영상 대감에게 억울한 일 당한 이들의 사연을 모아오는 일을 해주게."

"예, 나리."

"어서 가보게."

말을 마친 나는 돌쇠를 불러 갑석과 같이 류정현의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류정현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한 뒤에, 사랑방에 들어가 상소를 적기 시작했다.

**

구시지화문, 설참이신도라는 말이 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사람을 베는 검이라는 뜻이다.

상소가 그러하다.

조선시대 수많은 사람을 죽게 했던 예송논쟁, 숙종 시대의 환국은 모두 단 하나의 상소에서 시작되었다.

효종이 장남이라면 상복을 3년 입어야 하는 데, 효종은 장남이 아니니까 1년만 입는 게 맞지유? 정통성이야 떨어지지만 이게 팩트잖아유?

이 상소 하나에 조선은 서인, 남인으로 나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였다.

내가 올리는 상소는 누군가, 정확히 말한다면 류정현을 비롯 백성을 착취하는 나쁜 놈들을 뿌리 뽑기 위한 초석이다.

"내가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방원법도 제안하였고 그 뒤에 호조에서 밤낮없이 굴러서 그 기틀까지 다 짜놓았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은퇴하기 전에, 정말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할 일을 하자.

방원법을 혐오하여 어떻게든 훼방 놓으려는 고려의 망령들, 조선 백성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개같은 자들을 썰어버리자.

"...... 써볼까."

각오를 다진 후에 붓을 잡았다.

평상시 수도 없이 잡고 쓰는 붓인데,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쓴다 생각하니 붓의 무게가 몹시 무겁게 느껴졌다.

[전 집현전 수찬 김대붕이 돈수재배(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하는 것)하고 아뢰옵니다.

주상 전하께서 전국에 방원법을 반포하시어 널리 쓰신다면 만백성은 태평한 세상이 왔다며 기뻐할 것이고, 배를 주리는 일 또한 없어질 것입니다.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관자의 말을 떠올려보니, 방원법을 제정하여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전하께서 어린 백성들에게 새로운 하늘을 열어주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건 경제다.

지금 가난하지만 부단히 노력하면 내일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오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땅 한 조각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내가 힘써 일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옷과 음식을 처자식에게 줄 수 있다는 기대.

이걸 만드는 것이 바로 위정자가 해야 할 일이다.

조선에서는 대동법이 실로 만백성을 이롭게 했다.

그런데 내가 개입한 덕분에 방원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수백 년 먼저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소신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선에서 고리대를 하는 자들은 태상왕 전하와 주상 전하의 거룩한 뜻에 반기를 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경제가 불황이면 불황일수록, 취업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자면 사채업자, 보이스 피싱, 사기꾼, 범죄 조직 같은 거 말이다.

이놈들은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의 등을 쳐서 돈 버는 놈들인데...

그러다 보니 불황이 닥치면 녀석들 수입은 확 올라간다.

조선에서는 류정현이 대표적인데.

[왜냐하면 고리대라는 것은 가난한 백성이 어떻게든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자, 눈물을 머금고 쌀과 돈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목마르다고 바닷물을 마시게 되면, 결국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것처럼... 백성들도 처자식을 살리기 위해 고리대를 빌리게 되면 결국에는 이를 갚지 못해 고리대를 놓은 이의 노비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고리대를 하는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치부하여 왔는데, 방원법이 실시되면 백성들의 사정이 나아져 더 이상 고리대를 빌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즉, 저들은 치부의 수단을 잃게 될 것이 옵니다. 그걸 고리대 하는 이들이 원하겠습니까?]

이방원은 방원법에 반대하는 놈은 고려의 잔당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고리대를 좋아하는 재상은 조선에 한 명뿐이니.

영의정 류정현.

"너는 내가 반드시 죽이고 낙향한다."

방원법을 시행하려면 확실한 본보기가 필요할 거 같은데, 이 인간이 제격이거든.

여기에 나는 류정현의 각종 만행까지 싹 다 적어서 상소를 올렸다.

**

김대붕의 상소는 조정을 뒤집어 놓았다.